[도시탐구] 이태원과 유관순 열사, 무슨 연관이 있을까?
이태원의 부군당역사공원, 유관순 열사추모비 자리 잡아
이태원은 다양한 한국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곳 민간 신앙은 물론 독립운동과 외국 군대 주둔의 흔적까지
[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 윤여정 배우가 노개런티로 출연한 영화가 있다.
2020년에 개봉한 김초희 감독의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그 영화다. 좋은 영화로 입소문이 났지만
아카데미상 받은 배우가 출연했다고 해서 더욱 화제가 되었다.
영화에는 서울의 산동네가 주요 배경으로 나오는데 조금은 인상 깊은 곳도 나온다.
극 중에서 ‘찬실이’는 동네 산책을 하다 잠시 앉아 쉬며 생각을 정리한다. 찬실이 뒤로는 한국 전통 양식의 담장이 있고
담장 안에도 한국 정통 양식의 건물이 있다. 어떤 곳인지 궁금할 즈음 ‘이태원 부군당’이라는 안내가 살짝 보인다.
그 순간 ‘이태원에 저런 곳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전통 양식의 건물과 이태원은 어울리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군당은 또 뭘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2021. 05. 12) 이태원부군당역사공원 전경.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이태원 부군당 역사공원
영화 배경으로 나온 곳은 ‘이태원 부군당 역사공원’이었다.
‘이태원 세계 음식 거리’에서 주택가로 오르는 급경사 길(이태원로15길)을 잠시만 오르면 나온다.
‘부군당(府君堂)’은 마을의 수호신을 모셔 놓은 제당을 말한다. 주로 서울과 경기도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지도 앱으로 부군당을 검색하면 이태원 외에도 서울 용산구의 서빙고동과 동빙고동 그리고 영등포구의 당산동과
신길동에 부군당이 남아있다.
자료에 의하면 부군당을 한강 유역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제당이라고 한다.
(2021. 05. 12) 이태원 부군당.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12) 이태원 부군당.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12) 이태원 부군당은 닫혀 있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12) 닫힌 문 사이로 들여다 본 부군당.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이태원 부군당의 설립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비석의 비문에는 조선 광해군 11년인 1619년에 설립된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원래 이태원 부군당은 남산 중턱에 있었으나 일제가 훈련소를 세우면서 1917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이태원 부군당은 ‘이태원동부군묘관리위원회’가 주축이 되어 1년에 두 번 제례를 지낸다.
또한, 용산구청에서 관리하는 공원이기도 하다. 부군당 문은 잠겨있으나 주변은 잘 정비된 공원이다.
유관순 열사 추모비
이태원 부군당 역사공원에는 ‘유관순 열사 추모비’도 있다. ‘이태원과 유관순 열사와 무슨 관계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2021. 05. 12) 유관순 열사 추모비.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12) 유관순 열사 추모비와 열사의 유언.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이태원은 원래 남산과 이어진 산이었다. 조선총독부는 용산의 군 시설에서 경성 도심을 거치지 않고
경성 동부 지역으로 빠르게 연결하고자 했다. 그래서 이태원을 관통하는 ‘남산주회도로’를 만들었다.
남산주회도로는 현재 서울지하철 6호선 ‘삼각지역’과 ‘신당역’에 이르는 구간이고, 이태원로 대부분과
한남대로의 일부 그리고 장충단로 일부를 포함한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그때 뚫린 길을 달리고 있다.
이태원의 산은 1930년대까지는 공동묘지이기도 했다. 유관순 열사도 원래 그곳에 묻혀 있었다.
1920년에 순국한 열사를 이화학당 측에서 수습해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했던 것.
그러나 조선총독부는 1930년대에 이태원의 산 중턱을 뚫어 길을 내고 교외 주택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공동묘지를 파헤쳤다. 연고 있는 묘는 이장했지만 연고가 없는 2,800여 기는 ‘망우리 공동묘지’에 합장했다.
서울 중랑구 망우리공원 유관순 열사 분묘 합장 묘역 (사진: 중랑구 제공)
그 과정에서 유관순 열사의 묘도 1936년에 파묘되었다. 그리고 이름 모를 망자들과 함께 화장되어
망우리 공동묘지에 합장되었다. 현재는 ‘망우리공원’에 ‘이태원묘지 무연분묘 합장비’와 ‘유관순열사 분묘 합장 표지비’로
그 흔적이 남아있다. 한편 유관순 열사는 1962년에 건국훈장 3등급인 ‘독립장’을 받았었다.
안중근, 윤봉길 의사는 1등급 대한민국장이고, 신채호 선생은 2등급 대통령장이다.
3·1운동의 상징이기도 한 열사의 훈격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2등급까지만 대통령의 헌화 대상이다.
이에 2019년에 삼일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열사에게 건국훈장 1등급인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용산구는 유관순 열사 추모비를 2015년 9월에 세웠고, 공원 앞 도로를 ‘유관순길’로 명명했다.
(2021. 05. 12) 이태원 부군당 역사공원 앞길은 유관순길로 명명됐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전쟁기념관과 미군기지
이태원 부군당 역사공원은 전망이 좋다. 인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만큼 시야가 확 트였다.
여의도 63빌딩, 용산역 주변의 고층 건물들, 해방촌과 남산타워, 멀리 인왕산 너머까지 보인다.
그런데 시야 아래로 넓은 녹지 공간과 시설들이 눈에 띄었다. 용산의 높은 건물들, 그리고 해방촌의 빽빽한 주택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여유로워 보이는 공간이었다. 지도를 보니 미군 기지 자리였다.
(2021. 05. 12) 이태원 부군당 역사공원에서 내려다 본 옛 미군 기지.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12) 이태원 부군당 역사공원에서 내려다 본 옛 미군 기지. 용산의 고층 빌딩들과 전쟁기념관이 보인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그 자리는 무척 역사가 깊다.
사료에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에도 왜군 병참기지가 있었다고 전하며, 1882년 임오군란에 개입한 청나라 군대 3천 명이
인근에 주둔했다고 한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며 그곳에 일본 군대가 진주하기 시작했고, 일제강점기에는
‘주조선일본군’ 사령부가 자리했다. 해방 후에는 그 자리에 미군이 오랫동안 주둔했다. 이태원로 북쪽의 메인포스트와
남쪽의 사우스포스트를 포함해 약 80만평이다. 2013년부터 용산기지 이전 사업이 진행 중이고, 미군 기지 터는
‘용산공원’으로 만들 예정이다.
이테원, 다양함을 간직한 곳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한 만큼 산책객들이 많이 보였다.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듯했다.
“러시아보다 한국에서 더 오래 살았어요. 한 30년 살았으니까요.”
이태원에 사는 러시아에서 온 A(여)씨의 말이다. 그녀는 이태원에서만 거의 30년을 살았다고 한다.
어떤 점이 그녀 가족이 이태원을 떠나지 못하게 한 걸까.
“처음에 정착할 때는 서울 시내와 가깝고 정감 있는 골목이 매력이라 선택했어요. 그런데 외국인이 많이 살다 보니
이방인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자유로운 게 좋아졌어요. 다르다는 것이 정상인 분위기라고 할까요.”
(2021. 05. 12) 이태원 부군당 역사공원에서 내려다 본 해방촌과 남산.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이태원 골목들을 다니다 보면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주민들에게 보금자리가 되어주는 작은 집들, 이방인들에게 고향의 정을 나눠주는 가게들, 관광객들에게 세계의 맛을
전해주는 식당들, 그리고 그 안에 살거나 오고 가는 한국인들과 외국인들.
이러한 모습들만 봐도 이태원은 한국에서 가장 이국적인 곳 중 하나다.
하지만 민간 신앙 제당인 부군당과 항일운동의 상징인 유관순 열사의 흔적이 있다는 사실에서 무척 한국적인 색채를
지닌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근의 오래된 외국 주둔군 시설에서 역사의 질곡을 간직한 곳이라는 생각도.
첫댓글 아하 그렇군요
유관순 그분이면 여기 병천에다있는줄알았더니
상식의 한계를 넓혀줘서 감사합니다 지기님 최고유 ㅎㅎ
이태원 부근당
한번 가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