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작은도서관과 마을 만들기 - 작은도서관엔 마을이 있고 사람이 있다
최근 ‘마을공동체 만들기’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면서 작은도서관이 함께 주목받고 있다. 작은도서관이 마을 만들기의 거점이 되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인정받은 결과다. 5월호 특집에서는 마을 만들기와 관련된 작은도서관의 역사와 특성을 살펴보고, 작은도서관에서 이루어진 구체적인 활동 사례를 소개한다. 그리고 좋은 사례로 알려진 ‘서울 성대골어린이도서관’과 ‘고양 재미있는느티나무온가족도서관’ 이야기를 통해 ‘작은도서관과 마을 만들기’의 바람직한 모습과 역할, 방향을 모색한다.
작은도서관엔 마을이 있고 사람이 있다
인기 키워드로 급부상하는 ‘마을 만들기’
우리나라 마을 만들기 운동은 정치, 문화, 예술, 건축, 농업, 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실험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마을 디자인, 마을 가꾸기, 마을 만들기, 마을진흥사업, 생태마을운동, 공동체 운동, 주민자치운동 등 그 목적과 내용, 방법 또한 다양하게 표현된다. 1990년대 주민자치 시대를 맞아 시작된 마을 만들기 운동이 서울이라는 대표도시의 중요한 정책으로 등장하면서 갑자기 더 주목받게 된 것이다.
이미 마을 만들기는 전국 방방곡곡에 많은 사례들이 있다. 공간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도시놀이터, 동네 텃밭, 공원과 함께 작은도서관이 종종 등장한다. 작은도서관은 마을 사람들의 삶에 꼭 필요한 공간 중 하나로 인기 있는 주제다. 서울 은평구 대조동 ‘꿈나무도서관’, 전북 익산 ‘삼성동어린이도서관’ 등 마을 만들기 과정에서 만들어진 작은도서관, 작은도서관에 모인 지역주민들이 주체가 된 마을 만들기 등 이름만 붙이지 않았을 뿐 작은도서관운동은 마을 만들기와 많은 부분 연결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최근 사례를 통해 작은도서관의 마을 만들기적 성격을 살펴보려고 한다.
작은도서관의 역사와 마을 만들기
전국 방방곡곡에서 작은 공간들을 열어 도서관을 만들어온 작은도서관운동의 역사를 살펴보면 지역주민들과 소통하고 함께하려는 지역 공동체운동이 담겨 있다.
1980년대
격변의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야학과 노동서원과 도시 외곽 지역에 생겨난 지역주민도서실 등은 지역주민의 사랑방이고 그들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돕는 공동체였다. 당시 만들어진 도서실 중 부천 약대 글방은 부천 ‘약대 신나는 가족도서관’으로 공립화되었고, 관악구 난곡주민도서실은 난곡주민도서관 ‘새숲’으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난곡주민도서관 ‘새숲’의 소개글을 보면 이 도서관의 중요한 모토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사진] 1989년 10월 3일 달동네 난곡(신림7동)에 문을 연 이후, 지난 20여 년 동안 건강한 생활문화공동체를 만들기 위하여 지역주민들과 함께하고 있다. 도서관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평등한 교육 문화 공간으로 책을 통해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하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꿈꾸게 하는 곳이어야 한다. 난곡주민도서관 새숲은 내 집 서재처럼 편안한 도서관, 아이들이 희망을 만드는 도서관, 주민이 스스로 주인이 되는 도서관을 만들고자 한다.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람이 살아나는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은 우리의 꿈이다. (다음 카페 / 난곡주민도서관 새숲)
1990년대
어린이책 출판 시장 활성화와 ‘어린이도서연구회’, ‘공동육아’, ‘어린이 전문서점’ 같은 어린이책 문화운동의 영향으로 작은어린이도서관들이 생겨났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문을 연 1세대 작은어린이도서관으로 강동구 지역시민단체가 만든 ‘함께크는우리’, 중랑구의 ‘파랑새’, 왕십리의‘ 책읽는엄마책읽는아이’, 은평구의 ‘꿈나무’, 청주의 ‘초롱이네’, 성남의 ‘책이랑’, 수지의 ‘느티나무’ 등이 있다.
작은도서관과 공공도서관 철학이 부재한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생겨난 작은어린이도서관들은 모여서 협의회를 만들거나 지역 협의회나 재단 등을 통해 작은도서관의 전망을 모색해나갔다. 이 기간 동안 국가가 주도하는 공공도서관 건립과 공립작은도서관 만들기 사업에 밀려 도서관 이전과 폐쇄를 고민하기도 하고, ‘기적의도서관’ 같은 큰 프로젝트가 도서관운동을 대표하는 듯 보여질 때는 ‘부러우면 지는 거야’ 하는 마음으로 소신을 지켜나가야 했다. 민간에서 진행된 다양한 작은도서관 지원 사업들이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작은도서관을 함께 만들어온 주민들, 후원자들과 작은도서관의 대안을 모색하며 동네를 지켜온 시간이야말로 가장 큰 자산이 되었다. 도서관에서의 삶은 사람을 성장시켰고, 다양한 책 문화 공동체를 만들었으며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창조적인 마을 만들기의 과정이 되었다.
작은도서관의 특성과 마을 만들기
‘작은도서관운동’이 민간에 의해 자발적으로 형성된 민간자조운동인 만큼 ‘크다’ ‘작다’라는 규모나 시설의 의미보다는 ‘운동’의 개념으로 생각해야 하며, 특히 지역주민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생활친화적 문화공간이라는 중요한 특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국립중앙도서관 발간 『작은도서관 운영매뉴얼』에서)
작은도서관은 근접성, 생활밀착형, 주민사랑방(커뮤니티)이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 특성은 마을 만들기의 가장 좋은 조건이자 목표가 된다. ‘근접성’은 도서관 접근이 힘든 노인, 영유아, 문화소외계층을 더 배려하는 공공도서관 정신과 동네나 마을이라 고 하는 좁은 지역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생활밀착형’의 의미는 지역주민과 지역사회 요구에 부응하는 도서관 활동, 즉 지역의 특성과 주민계층 분포를 파악해 필요를 읽어내는 적극적인 정보 교육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주민사랑방’은 시민성과 공동체성을 배우고 나누는 다양한 주민 커뮤니티의 평생학습장이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해마다 ‘최고작은도서관상’을 시상하는데,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25,000명 미만의 규모를 서비스 대상자로 삼고 있다. 이 상을 수상한 작은도서관들을 보면 지역 경제가 무너진 폐광 지역에서 주민들의 자립을 돕고 일자리를 지원한 사례, 청소년이 노인들에게 인터넷을 가르쳐 정보 불평등과 세대 격차를 줄이려고 노력한 알래스카 지역의 사례, 별다른 문화 인프라가 없어 도서관이 결혼식장이나 공연장이 되는 사례들이었다. 선정 가이드라인에는 창의적인 도서관 프로그램과 다양한 정보 접근을 위한 기술 교육, 정보망 확장을 위한 노력, 이용자 확대를 위한 서비스 등이 있지만 무엇보다 ‘지역 커뮤니티 센터로서 도서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작은도서관 활동에서 찾은 마을 만들기
작은도서관에서 아이들과 엄마들은 경쟁보다는 참여와 공동체의 가치를 배웠다. 건강한 가족 문화 만들기를 위한 의사소통과 자기 성찰 교육, 또래 아이를 둔 엄마들의 품앗이 육아 공동체, 책 읽는 엄마 모임 등을 만들었다. 후원금을 내고 도서관운영위원이나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며 도서관 만들기에 함께 참여하기도 한다. 또한 작은도서관에서 나눔과 평화와 같은 가치를 배우고 시민의식을 키워갔다. 국가가 나서기 전에 다양한 다문화 프로그램을 시도했고, 아이들이 직접 참여하는 나눔 장터나 바자회를 열어 이웃이나 도움이 필요한 해외 아동들과 수익을 나누기도 했다. 인간과 환경을 걱정하며 생태 감수성을 키우는 지구 지킴이 활동, 참여하는 시민정신을 배울 수 있는 다양한 인문학 강좌, 시민 사서를 키우는 ‘도서관학교’, 평화를 나누는 ‘작은 음악회’ 등도 함께 진행해나갔다.
작은도서관은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알고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힘이 있다. 도서관에서 만나 배우고 행복해진 아이들과 엄마들은 도서관 밖 이웃들을 찾아가 자신의 배움을 나누는 주체가 된다. 소아병동, 동네 유치원, 근처 초등학교, 지역아동센터를 찾아가 책도 읽어주고 놀아준다. 도서관 책 축제도 기획하고 지역의 다른 단체들이나 관공서와도 다양한 파트너십을 가지고 협의하며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한다. 한 달에 한 번씩 도서관 근처 공원에 ‘찾아가는 공원도서관’을 열어 도서관에 찾아오기 어려운 동네 아이들과 만나기도 하고, ‘어린이 기자단’은 동네와 도서관 소식을 담은 신문을 만들기도 한다. 도서관에서 시작된 오카리나 동아리가 지방자치단체의 문화 행사에 초청되어 공연도 하고, 엄마 바느질 모임은 마을 기업으로 발전하려고 고민 중이다. 이렇게 작은도서관은 동네를 행복하게 만든다.
위와 같이 작은도서관의 활동을 살펴보면 도서관에서 배우고 성장한 사람들이 책, 교육 등과 같은 문화 생활공간의 문제들을 나누는 공동체를 만들고 지역사회에서 이웃들과 돌봄과 나눔의 가치로 소통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마을 만들기의 구체적인 사례이다.
성대골어린이도서관 사례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가보고 싶은 그림책마을이 일본 미야자키현에 있다. 그림책 카페와 책방, 소극장으로 변신하는 도서관, 그리고 자연 속 게스트하우스, 물 위의 야외공연장이 있는 ‘키조(木成) 그림책마을’이다. 키조 그림책마을은 쇠퇴해가는 농촌 마을을 살리고자 하는 일본의 ‘마을부흥운동’에서 시작되었다. 마을 주민들이 기획부터 운영까지 참여하는 마을 만들기 과정이 진행 중이다. 일본의 마을 만들기 운동을 국내에 소개하여 마을 만들기 운동을 촉발한 김찬호 교수는 일본의 마을 만들기에 대해 “지역공간을 주민들이 스스로 디자인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김찬호, 「일본의 도시화 과정에서 마을 만들기의 전개와 주민참여」)
그렇다면 우리나라 작은도서관들 중 이러한 과정을 겪고 있는 도서관이 있을까? 초기 작은도서관들이 뜻 있는 사람이나 단체의 필요로 만들어졌다면 그 후 작은도서관 조성을 지원할 목적으로 진행된 사업들 가운데는 주민의 요구와 참여로 마을도서관의 구체적인 모습과 내용들이 만들어지는 사례들이 있다. 늠름한 농민들의 ‘옥천 안남배바우작은도서관’과 어린이들이 고사리손으로 모금을 시작해 여러 단체들의 지원으로 건립한 ‘철암어린이도서관’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문을 연 작은도서관들 중에는 좀 더 전형적인 마을 만들기 운동의 좋은 사례들이 있다. 그중에서 ‘성대골어린이도서관’은 주목할 만하다.
‘성대골어린이도서관’은 2010년 10월에 개관한 새내기 작은도서관이다. 동작구 풀뿌리 시민단체인 희망나눔동작네트워크가 아름다운가게의 지원을 받아 ‘우리동네어린이도서관만들기’ 사업으로 개관한 1호 어린이도서관이다. 도서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많은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지역 자원으로 발굴된 할아버지 목수가 적은 비용으로 도서관 인테리어를 도와주었고, 할아버지의 사회적 일자리가 될 수 있는 ‘성대골 별난 목공소’가 주민 출자형 희망가게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마을 카페 ‘사이시옷’도 있다. 그 외에도 어린이도서관 2호가 개관했고, 취학계층 청소년들의 학습지원을 위해 공익학원 ‘반올림’도 만들었다. 물론 마음을 품은 마을 만들기를 진행하는 풀뿌리 시민단체의 역할이 컸지만 성대골어린이도서관이 마중물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잠깐 성대골어린이도서관의 3월 활동 내용을 엿보도록 하자.
요즘 성대골도서관을 추진하면서 모인 가족들에게는 또 다른 과제가 생긴 것 같다. 동네를 넘어 지구를 걱정하고 대안을 찾는 일, 그리고 지역에 초등학교를 만드는 일이다. 엄마들이 모이니까 자연스럽게 교육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이 싹텄고, 동네에 초등학교가 없어 멀리까지 걸어다녀야 하는 아이들의 교육권을 주장하며 구청과 교육청을 오가며 애쓰고 있다. 이 모임은 곧 ‘방과후학교’로 독립해 활동한다고 하니 정말 빠른 시간에 지역 조직이 인큐베이팅 된 셈이다. 성대골은 지금 무급 관장과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수많은 후원자들이 어우러져 하루 하루를 만드는 기적을 만끽하는 중이다. 이런 건강한 에너지가 유지될 수 있도록 도서관 운영을 위한 기본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지원이 다른 족쇄가 되어 성대골 공동체를 진부하게 만들어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그들의 진화는 무죄다.
마을에 사람이 있다
우리나라 작은도서관운동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지역에 책문화가 있는 주민 사랑방을 만들어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작은도서관은 정보 접근성을 높이고, 지역주민의 요구에 맞는 정보를 편리하게 제공하는 기능을 기본으로 주민 커뮤니티 센터로서의 특성이 중요하게 강조되는 도서관이다.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운동은 이미 오래 전부터 풀뿌리 자치운동에 참여해온 시민운동과 지역에 뿌리를 내린 주민운동조직에서 다양한 형태로 시도해왔다. 작은도서관운동에서 방법과 수단이었던 작은도서관이 이제 그 정체성을 분명히 한다면 마을 만들기가 당연한 과제인 목적론적 공간이 되리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어떤 이름의 옷을 입든지 사람이 소중하고 사람을 살리고 삶의 주인으로 세우는 과정이 바로 가장 중요한 가치임을 작은도서관이나 마을 만들기 모두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공유선_㈔한국어린이도서관협회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