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4:1-12
찬송가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1-6절)
지난 새벽, 룻기 3장에서는 보아스를 향해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룻의 모습의 그려졌었습니다. 룻은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임을 밝히며 자신을 받아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룻을 받아 줄 더 가까운 친척이 있다고 합니다. 이말이 룻의 요청을 회피하기 위한 말인지, 아니면 아내로 맞이하기 위한 포석인지 미묘합니다. 이제 룻기의 이야기는 클라이막스에 다달했습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앞으로 등장할 두 남자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1-4)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 보아스가 그 성읍 장로 열 명을 청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하니 그들이 앉으매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 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
오늘 본문에서는 두 남자가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아무개이고 한 사람은 보아스입니다. 이 아무개는 보아스보다 엘리멜렉에게 더 가까운 친척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나오미를 위해 기업을 무를 책임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잘 알았던 보아스는 그에게 기업을 무를 것인지를 물었고 이 아무개는 무르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기업을 무른다는 것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밭을 다시 매입하여 나오미가 기업을 가질 수 있도록 돌려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나오미를 위해 죽은 남편의 밭을 다시 사줘도, 늙은 나오미는 자식 없이 죽을 테니 그 밭은 나의 것이 되겠구나!’ 그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충분히 남는 장사였습니다. 아무개는 이 기회를 붙잡기 위해 들떠있었습니다. 그때 보아스가 말합니다.
(5, 6)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아무개가 생각하지 못한 지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나오미의 며느리 룻이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기업을 무름으로써 엘리멜렉의 밭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밭은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었습니다. 룻을 아내로 맞이하여 생긴 자녀에게 고스란히 물려줘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계산기를 두들겨 봐도 자기에게는 유익이 없고, 오직 엘리멜렉의 가문에게만 좋은 일 해주는 꼴입니다. 그래서 아무개가 말합니다.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그리고 이렇게 또 말합니다.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자신에게 기업을 무를 책임이 있음에도 이 아무개는 자기 희생을 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님들. 사실, 이 아무개의 모습은, 바른 사랑을 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또한 그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룻은 사사시대를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없던 시대, 그래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이 복인 줄 알고 살았던 시대가 사사시대 였습니다. 자기 스스로 주인이 되어 미래를 책임지려 했던 그 시기에! 아무개로 대표되는 인간의 깊은 내면 속의 욕망은 무엇입니까? 이웃과 친척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책임져 주심과 채워주심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님들. 혹시 우리도 성도라는 신분의 옷을 입고 있지만, 하나님을 믿지 못해,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름 없는 아무개와 같은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당장은 유익이 없고 손해를 보는 것 같아 보일 지라도! 그 길에는 주님의 확고한 은혜의 약속! 세상이 알지 못하는 하늘의 복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주시는 주님의 약속을 힘입어, 순종의 인생을 살아내시는 저와 우리 교우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7-12절)
(7, 8)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의 신을 벗는지라
아무개는 자기의 기업에 손해가 날 것을 예상하고 나오미의 기업 무르기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거부의 의사표시를, 이스라엘의 전례를 따라 그의 신을 벗어 명확히 드러냅니다. 이 장면을 고스란히 목격한 나오미와 룻은 어떤 심정이겠습니까? 면전에서 거절당해야만 했던 그녀들의 마음을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이 이스라엘 중에, 두 과부를 구원할 이가 정령 없는 것입니까? 역시 자신의 인생은, 기쁨의 ‘나오미’가 아닌, 슬프디 슬픈 ‘마라’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만을 재확인하는 순간으로 끝나는 것입니까? 그런데, 바로 그 때였습니다.
(9, 10)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두려워 떨던 두 여인 앞에,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가 되기로 선언합니다. 그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두 여인을 위해 그들의 기업을 다시 회복시켜 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문이 다시금 일어 설 수 있도록 후손들도 책임져주겠다는 약속 합니다. 앞서 3장에서는, 보아스의 태도가 미온적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자신보다 더 가까운 친척이 있다며 룻과 거리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룻과 나오미는 보아스의 진심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 그의 마음이 어디를 향했는지를 명확히 알게 됩니다. 룻을 향한 그의 마음은, 흔들리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확고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 지도록 보아스는 이 문제를 치밀하고 신중하게 접근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님들. 보아스의 이 결정은 사실, 세상의 관점에서 본다면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바보같은 결정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가 룻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기업을 무르는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업을 무르는 것은 자신과 자신의 가문에는 아무런 유익이 없고, 오직 손해만 끼칠 뿐입니다. 그렇기에 대부분은 사람들은 형제를 위해 혹은 멀거나 가까운 친척을 위해 기업을 무르는 일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기쁨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나오미와 룻의 기업을 무르는 자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그녀를 향한 사랑이! 주판을 뒤엎게 만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님들. 룻을 향한 보아스의 눈먼 사랑은,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그래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이 시대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끊임없이 계산하길 좋아하고, 아무도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기를 즐겨하지 않는 이 땅으로! 우리 주님이 내려 오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그 눈먼 사랑으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해 기업 무를 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신 것입니다. 룻과 나오미처럼, 확정적 비극을 맞이했어야 할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유일한 소망이요, 우리의 영원한 기업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 은혜를 온 마음으로 인정하며 붙잡고 사시길 소망합니다.
(11, 12)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이제 보아스와 룻은 사랑으로 한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이 아름다운 사건을 두고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축복을 해줍니다. 첫째로 이 가정이 라헬과 레아처럼 큰 민족의 어머니와 같은 복을 누리길 빕니다. 둘째로 보아스가 이스라엘에서 유력하고 유명하게 되기를 빌었습니다. 룻을 향한 그의 헌신과 결단이 이스라엘 사회에서 귀감이 되길 바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보아스의 가정이 베레스의 집처럼 되길 원한다고 합니다. 베레스는 유다와 다말 사이에 태어난 자식입니다. 룻과 다말, 둘다 희망도 소망도 없는, 가문이 끊어질 위기에 처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길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두 여인을 통해 다윗의 집이 세워집니다. 더 나아가 이들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게 되었다는 점을 비추어 볼 때, 이 두 여인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참여한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님들. 우리의 인생이 때로는 나오미처럼, 룻처럼, 세상에서 버려진 것 같은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상황과 환경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외면하고 거절하는 것 같아 보여도, 그러나 그때! 우리의 손을 붙잡아주시고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영원한 기업으로 물려주시는 우리 주님이 계십니다. 이 시간, 세상을 이기신 주님을 꼭 붙잡으며 믿음의 경주를 포기하지 않도록 기도하며 나아가십시다. 오늘 하루도 주님과 함께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저와 우리 모든 100주년기념교회 교우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 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긍휼이 아니면 누가 우리를 주목하겠으며, 주님의 사랑이 아니면 누가 우리를 공급할 수 있으며,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어떻게 하루를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와 사랑 때문인 줄 믿습니다. 우리 안에 세상에 실망하고 낙심하여 홀로 눈물을 훔치는 쓰디쓴 마라와 같은 인생을 사는 자가 있다면 이 시간 만나주옵시고 위로하여 주셔서 다시금 기쁨의 나오미로, 찬송과 감사가 넘치는 인생으로 변화시켜 주옵소서. 우리의 영원하시고 유일한 기업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친척의 기업을 무르는 것은 형제 자매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오늘날 내가 기업을 무를 사람은 누구입니까? 왜 그렇습니까?
2.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지 못한 아무개는 이름조차 후대에 알리지 못하였습니다. 말씀앞에 순종하지 못하고 주저했던 적이 있습니까? 아무개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3.보아스는 룻을 아내로 맞이할 때 감정에 휩쓸리거나 인간적인 계산을 하기보다 규례를 따라 신중하게 일을 진행시켰습니다. 이로 볼 때 그리스도인에게 요청되는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4.우리를 위해 영원한 기업을 선물로 주신 주님 앞에 어떤 삶을 살 것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 김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