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조선시대 훈련도감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① 조선 전기 임시기구로 설립되어 임진왜란을 계기로 상설기구화 되었다.
② 포수(砲手), 살수(殺手), 사수(射手)로 구성되었다.
③ 급료를 지급하는 상비군 제도였다.
④ 명나라 척계광이 저술한 기효신서의 영향으로 설치되었다.
⑤ 1881년(고종 18) 군제 개혁으로 별기군이 설치되면서 폐지되었다.
정답: ①
* 훈련도감에 대하여
임진왜란 초기에 어이없는 패전을 경험한 조정에서는 새로운 군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왜군을 물리치는 데 효과적인 편제와 군사 훈련 방식을 모색하였다. 그 결과, 유성룡의 건의로 훈련도감이 설치되었다(1593).
훈련도감의 군병은 포수(조총).사수(활).살수(창칼)의 삼수병으로 편성되었는데, 이들은 명의 척계광이 지은 ‘기효신서’를 참고하여 조련되어지며, 장기간 근무를 하고 일정한 급료를 받는 상비군으로서, 의무병이 아닌 직업 군인의 성격을 가진 군인이었다(장번급료병).
개항 후 개화정책의 일환으로 훈련도감을 대체하여 신식군대로 별기군을 설치하고, 5군영을 무위영과 장어영의 2영 체제로 통폐합하였다(1881).
① 비변사는 조선 전기에 여진족과 왜구에 대비하기 위해 임시 회의기구로 설치되었으나(1517),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점차 상설화 되고 구성원이 3정승(도제조 겸임)을 비롯한 고위 관원으로 확대되었고(전.현 의정, 공조를 제외한 5조 판서, 대제학, 5군영 대장, 4도 유수), 그 기능도 군사 문제뿐 아니라 외교, 재정, 사회, 인사 문제 등 거의 모든 정무를 총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