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자하고 매달리는 신앙
함석헌
나더러 먼저 말을 하라는 지명을 받아서 좀 주저하는 마음도 있습니다마는, 아마 그것은 또 50년 전 송 선생님과 함께 우치무라 선생님의 문하를 드나들며 신앙의 지도를 받았던 친구들 중에 오늘까지 살아 남아 있는 사람은 이번에 오늘 모임을 위해서 일부러 멀리 현해 탄을 건너 오신 마사이케 선생을 제외하고는 내가 단 하나요, 또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하신 것 같아서 고맙습니다. 사양할 것 없이, 각별히 순서나 논리를 생각하지도 않고, 생각나는 대로를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선 무엇보다 이렇게 모여 아무 거리낌이나 가로막힘이나 의심하는 눈치 없이, 전부터 알거나 모르거나 걱정할 것 없이, 서로 열린 마음으로, 인간답게 서로 얼굴을 대하고 말을 할 수 있어서 한없이 감사 합니다. 사나운 추위에 움츠리다가 어디 아랫목에라도 들어간 듯한, 불볕 속에 찌들다가 어느 나무그늘 밑에라도 가 앉은 듯한, 사막 속을 헤매다가 잠깐 오아시스라도 찾은 듯한 느낌입니다. 이 나라는 사막같이 인정이 말라 버렸습니다. 이 사회는 여름날 같이 도리가 시들어 버렸습니다. 이 민족의 마음은 겨울 밤같이 믿음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 가도 숨을 쉴 수 없고, 사지를 펼 수 없고, 말 한 마디를 할 수도 들을 수도 없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이 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얼마나 행복한 시간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한 사람의 겸손하고도 꾸준한 신앙을 통해 하나님이 내리시는 은혜입니다.
믿음 안에서 한다면 어떤 상태에서거나 불만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인간으로서는 세상 형편이 이렇게 된 것을 보고 인생의 석양에 자못 슬픔을 느낌니다. 그런 지금의 나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골목의 어린이들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골목길을 드나드노라면 이구석 저구석에 모여 노는 어린이들을 봅니다. 잠깐 그 눈동자를 들여다봐 주고 그 손을 만져주면, 그저 좋아서 "할아버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하고 옷깃에 매달립니다. 그때는 나는 내 나이를 잊고, 내 실패의 일생을 잊고, 도둑 굴같은 이 사회도 다 잊습니다. 코는 흘려도 그들 속에는 하늘 숨이 드나듭니다. 손에 흙은 묻었어도 피는 묻지 않았습니다. 그 눈은 아침 이슬처럼 반짝입니다. 내가 숨을 거두는 순간 이 땅 위에서 또 한 번 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 애들의 얼굴일 것입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하신 예수의 말씀을 정말 좀 실감나게 느끼기 시작한 것은 근래 이 골목길에서 입니다. 그런데 내가 50년 동안 송 형과 사귀어 오며 느끼는 것은, 언제 보나 이 골목의 어딘지 친구들 같은 점이 어딘지 늘 있는 점입니다.
하는 일에 뭔가 좀 합일이 잘 되지 않는 일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서로 “네 마음 내가 안다, 내 생각 네가 모르겠냐?” 하는 식이어서 아니 됐다는 반성의 말을 한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등 밑이 어둡다는 격으로 것은 모르는 일이 많습니다. 가깝거니 하고 서로 묻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도, 송 형의 자세한 것을 모릅니다. 어떻게 자라났는지, 살림은 어떻게 해 가는지, 물어 본 일도 없습니다. 사실 이것은 좋기도 하지만, 또 잘못된 점도 있는 일입니다. 신앙은 아무리 같다해도 성격과 사상, 일 처리하는 방법이 다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그 나름으로도 다 괴롬, 슬픔, 의혹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일을 알아주어야 친구요 사귐이란 그것하자는 것인데, 신앙이라는 크고 중대한 것에서 같기 때문에 그것을 소홀히 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 점에선 지금 이 자리에서라도 사과를 드려야겠습니 다. 그러나, 구체적인 송두용을 몰라도 한 가지만은 알고 증거할 수 있습니다. 송 선생은 변덕이람 참 번덕이 있는 분인데, 그래서 직업을 몇 번을 바꿨고(정말로는 직업을 못 가졌다 해야 옳겠지요), 이사를 몇십번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날껏 그 믿음만은 변치 않고 일관해 왔습니다. 이것은 언젠가 그 자신이 그렇게 고백하는 것을 들은 일도 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은 스스로 자신은 결코 그렇게 생각 아니합니다마는, 적어도 남이 보기에는 몇 번을 변했습니다. 다섯 번 변했다고 한 사람도 있습니다. 마는, 다섯 번은 아니라도, 변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송 형은 이미 동경서부터 오늘까지 일직선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언젠가 쓰가모토 선생이 "신앙 이란 놓치지 않는 것이오.”하신 말이 있어, 나도 그것을 이날껏 잊지 않고 가르침으로 삼고 있습니다마는, 송 형이야말로 놓치지 않는 분입니다. 언젠가 어려서 들은 재미있는 애기가 있습니다. 이떤 진실한 청년이 자기네 목사보고 “어떻게 하면 잘 믿을 수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목사는 가르쳐 주마하고 청년을 이끌고 높은 낭떠러지로 올라갔습니다. 그 끝에 소나무가 하나 서 있는데, 목사는 청년보고 “저 소나무에 올라가라.” 했습니다. 청년은 하라는 대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에 낭떠러지를 향해 뻗어 나간 가지가 있었습니다. 목사는 청년보고 그 가지로 나아가라고 했습니다. 청년은 무십지만 그대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두 손으로 그 가지를 잡고 매달려라!” 했습니다. 아래에는 몇십 길 밑에 시퍼런 물결이 굼실거립니다. 청년은 벌벌 떨면서도 아니할 수 없이서 그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렸습니다. 목사는 “이제 그 한 손을 놓아라”했습니다, 생명보다 더한 믿음을 물은 청년이 아니 할 수는 없습니다. 죽자하고 한 손을 놨습니다. 그랬더니 목사는 엄숙히 "이제 그 남은 손을 마저 놔라!” 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순종하고 진실한 청년인들 어찌 그것을 놓겠습니까? “목사님 살려주십시오.”하고 애원했습니다. 그거다! 하고 다시 목사는 청년더러 내려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송 형의 회덕에서부터 장봉도라는 외로운 섬에 이르기까지의 일생은 이 나무에 올라갔던 청년의 일 같은 것입니다. 목숨의 줄이 하나씩 하나씩 떨어져 나갔습니다. 많은 재산이 없이지고, 지위도 집도 다 떨이지고, 이제 푸른학원을 외손으로 잡고 만경창파의 바다 위 낭떠러지에 대롱대롱 매달렸습니다. 나는 그가 끝내 놓치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 살려 주소서!
언젠가 송 형 자신의 입으로 하는 말을 들은 일도 있습니다마는, 송 형에게는 부흥사가 될 수 있는 소질이 많습니다. 나도 서로 이야기하면서 “그래, 신앙이라고 해서 정말 우리도 무당노릇 해야 할까?” 한 일이 있습니다마는, 부홍회라고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보다 높은 것을 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송 형이 부흥사 식의 신앙가가 되려면 될 수 있는 소질을 상당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능히 아니 된 것은 장한 일입니다. 보다 높은 은혜를 구했기 때문입니다. 부흥에는 아무래도 인위적으로 하는 감정이 들어가기 쉽습니다. 보십시오, 젊어서 울린다 웃긴다 하던 부흥사도 늙으면 맥이 다 빠집니다. 생명은 참에 있지 흥분에 있지 않기 때문이요. 감정은 오래 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눈을 비비고 송 선생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디서 했는지는 지금 기억하지 못합니다마는 야나이하라(혹은 스카모토 선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 말씀에 우치무라 선생이 전도에 성공한 것은 그 신앙이 어디까지나 상식적인 신앙이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나는 그것을 참 좋은 교훈으로 지니고 있습니다. 언젠가 김교신 형과 서로 이야기하다가 우리는 찬물을 홀홀 뿌려가며 믿는 믿음이라고 했더니 그 말이 성서조선 어디에 아마 기록되어 있는 줄 압니다마는, 신앙은 물론 이성만은 아닙니다. 이성을 초월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나 초월은 해야지만 이성의 테스트에 통과도 못하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또 언젠가 우치무라 선생은 아제가미니 쓰카모토니 하는 그의 가까운 제자들을 놓고 하는 말씀 중에서 "자네들은 밤낮 성서 성서 하지만 나처럼 넓게 독서하지 않으면 않돼” 하면서 기쁨의 농담을 한 일이 있습니다. 농담만이 아닙니다. 신앙은 결코 흥분이 아니지만 또 교리만도 신학만도 아닙니다. 나는 늘 생각하는 일이지만 우리나라에는 훌륭한 직업적 전문 전도자는 있어도 기독교 인물이 없는 것이 흠입니다. 기독교 인물이란 다른 것이 아니고 신앙을 현실 생활 속에 실현하는 것입니다. 송 형이 목사가 되자면 얼마든지 됐을 것입니다. 그리고 상당히 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목사 되지 않은 데에 송 형의 용한 점이 있습니다.
죽자하고 매달리는 송 형 위에 하나님의 은혜의 자일(Seil,밧줄)이 내려올 것을 믿으면서 말을 끝맺겠습니다. 잘못 보았고 잘못 말한 것이 있으면 고쳐주시고 용서해 주심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송두용선생 신앙 50년기념회에서 하신 말씀 1975년 5월 3일
(송두용 선생은 1925년 5월 3일 21세때 우치무라 선생을 통하여 기독교에 입신하심)
신앙만의 생애 (일심사 1989.4월)
저작집30;없음
전집20;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