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 경안천~곤지암천길(광주역~초월역)답사걷기??▶
♣개 요♣
♣광주시 경안천~곤지암천길(광주역~초월역)답사걷기 코스정보♣
♣상세설명(오늘은 경강선을 이용하여 여강길을 답사갈때에 궁금한 경안천과 곤지암천을 걸어 보렵니다)♣
♣곤지암(昆池岩)은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에 있는, 조선 선조 때의 명장인 신립 장군에 얽힌 전설이 있는 바위입니다. 연못은
소하천인 노곡천으로 연결돼 곤지암천, 경안천을 거쳐 한강으로 흘러듭니다.
바위와 연못의 존재는 곤지암(한자는 崑池巖→昆池岩으로 변화) 명칭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전하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막 일어났을 때만 해도 조선 조정은 대수롭지 않 게 여겼다. 신립(申砬)을 도순변사로 임명하고 신립이 싸움터로
떠날 때 선조는 친히 칼을 하사하면서 격려하였다. 그러나 신립이 이끄는 병사들의 수는 몇 백 명에 불과할 정도로 조정에서는 전쟁에
대한 준비도 없었고 왜군을 무시하였던 것이다.
신립은 전쟁터에 나가면서 걱정이 많았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훈련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왜군과의 싸움 경험이 전혀 없었고 더구
나 적의 능력을 알 수가 없어 착잡한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병사들을 이끌고 충주에 도착하니 종사관 김여물(金汝)이 조령에 진
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신립은 “적은 이미 고개 밑에 도착해 있으니 새재(조령)에서 싸우는 것은 위험하다. 더구나 우리 병사들은 훈련
이 안 되었으니 사지(死地)에 갖다 놓기 전에는 용기를 내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며 평지에 배수진을 칠 것을 명하였다. 김여물은 새재
를 점령하여 지키거나 높은 언덕을 이용하여 역습하자 고 주장했으나 신립은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충주의 달천(達川)을 등지 고 탄금
대(彈琴臺)에 진을 쳤다.
왜군이 조령을 넘어 진을 치니 그 수와 위용은 가히 놀라울 지경이었 다. 신립은 몸소 군사를 이끌고 적진을 돌파하려 했으나 적이 너무
강해 뜻을 이룰 수 없었고 오히려 양 측면에서 적의 협공을 받게 되었다. 신립은 탄금대 진으로 후퇴한 후 조정에 알리는 글을 남긴 후
김여물과 함께 적진으로 돌격, 10여 명을 죽이고 두 사람 다 강에 투신하여 죽었다. 싸움에 겨우 살아남은 일부 병사들이 신립의 시체를
이곳 광주로 옮겨 장사지냈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묘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고양이를 닮은 괴이한 모양의 커다란 바위 하나가 있었는
데 누구든 말을 타고 이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말굽이 땅에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니 어쩔 수없이 말에서 내려 걸어갈 수 밖에. 그
러면 땅에 붙었던 말굽도 떨어지고, 다시 말을 타면 또 붙고. 그러던 중 한 장군이 근처를 지나다가 이 이야기를 듣고 신립의 묘에 찾아
가 호통을 쳤다. 왜 지나는 사람들을 괴롭히느냐고 핀잔한 것이다. 그러자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고 천둥이 치면서 바위의 윗부분에 벼
락 이 떨어졌다. 벼락에 바위가 쪼개져 괴이한 모습은 없어지고 그 옆에 연못이 크게 생겼으며 괴이한 현상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
다고 한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곳을 큰연못바위-곤지암이라고 불렀다고.
교통
갈때:태평역(분당선)이매역(경강선)광주역
올때:초월역(경강선)이매역(분당선)태평역아래 지도을 클릭하시면 크게 확인할수 있습니다.
굉주시 경안천 곤지암천 걷기__20190122_0838.gp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