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식 추어탕
추어탕은 한자어인 미꾸라지 추(鰍)자 때문에 가을 음식으로 착각하기 쉬우나, 1년 365일 어느 때라도 먹을 수 있고 요즘과 같이 더위가 맹위를 떨칠 때 기력을 회복할 수 있는 좋은 강장제이기도 하다.
더우기 미꾸라지는 산좋고 물좋은 곳이라면 우리나라 땅 어디서고 만날 수 있는 민물 어종이고, 각 지역마다 추어탕 요리 방법이 약간씩 다르기 때문에 지역별로 특색있는 맛을 즐겨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남도 추어탕의 대표 선수격인 남원식 추어탕,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는 것이 특징인 서울식 추탕, 맑은 시래기와 잡어를 갈아 넣은 경상도 청도식 추어탕, 충청도를 대표하는 금산 추부의 추어탕 그리고 부추, 미나리와 강된장으로 맛을 낸 강원도 원주식 등 지역별로 명칭과 요리법이 다르다. 게다가 앞으로 통일이 되면 황해도식, 함경도식 그리고 평안도식 추어탕 맛까지도 섭렵하는 것이 나의 소박한 꿈이다.
강원도 원주 복 추어탕집은 소형 가마솥에다 추어탕을 끓이고, 집에서 직접 담근 된장과 고추장 그리고 미나리, 부추, 표고 등으로 맛을 내어 또다른 '강원도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미꾸라지는 그 생김새가 독특하고 피부를 감싸는 특유한 점액질 때문에 유감주술적으로도 정력에 좋아 보이며, 뼈 째 갈아서 탕을 만들기 때문에 현대인에게 부족한 칼슘을 보충하는 데에도 한 몫을 한다. 하지만 추탕으로 통칭되는 서울식은 미꾸라지를 갈지않고 그대로 넣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매우 '그로테스크'하여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다.
간혹 제피가루 맛을 추어탕 맛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많은데 미꾸라지의 비린내를 없애기 위하여 넣는 제피가루를 조금 덜 넣는 것이 추어탕의 본 맛을 즐길 수 있다. 이는 물냉면에 식초와 겨자를 너무 과도히 넣어서 메밀 향을 죽이는 경우와 비슷하다.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 낚시를 좋아하셨던 아버님께서 낚시도구 대신에 큰 양동이, 채, 바가지 그리고 삽을 준비하는 날이면 우리는 아침부터 미꾸라지 잡으러 가는 날인 줄 알고 좋아했었다.
근교의 논둑 사이에 있는 도랑 흙을 삽으로 한번 뒤집으면 셀 수 없이 많은 미꾸라지가 꼼지락 거렸는데, 이 놈들을 바가지로 퍼담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물론 몇날몇일, 똑 같은 국이 식탁에 올라오는 괴로움이 부록으로 따라 왔지만 말이다.
아버님이 안계신 근래에는, 어머님께서 분가한 자식들이 보고 싶으시면 시장에서 미꾸라지를 사다가 경상도식 추어탕을 한 솥 가득 끓이신 뒤에 비상소집을 하곤 하셨는데, 요즘은 기력이 쇠하셨는지 '민방위훈련'이 뜸하시다.
빨리 기력을 회복하셔서 민방위 말년차 아들을 자주 소집하셨으면.....
원주 복추어탕집은 서울에도 같은 상호의 집이 강남교보빌딩 인근에 있다. 주인 아주머니에 따르면 동네 후배에게 그냥 상호를 같이 쓰자고 하셨다는데, 요즘처럼 상표권 때문에 소송도 불사하는 험악한 세상에 참으로 아름다운 우정이 아닐 수 없다.
메뉴: 추어탕 7000원 숙회 2만원 미꾸라지 튀김 1만원
강원도 원주시 개운동 406-13 (원주고등학교 앞에 있다.)
033-762-7989
- <닥터Q의 맛기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