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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⑬ 용산감리교회 2024년 2월 25일
꼭 필요한 탄식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2)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
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7:18~25)
지난달에 설교를 시작 할 때 “제가 오늘 탈선을 좀 하겠습니다”하고서 본문과 관계 없는 이야기를 조금 한 일이 있습니다.
기억하세요?
오늘도 탈선을 좀 하겠습니다.
본문과 관계 없는 이야기를 먼저 조금 하겠다는 것인데요, 이런 것은 사실은 참 망설여지는 일입니다.
그래도 유익할 줄로 알고 하겠습니다.
질문을 하나 하려고 하는 데요, 어제가 정월대보름이었습니다.
오늘 예배 후에 윷놀이를 하지요.
질문, 북한에서도 정월대보름에 이런 민속놀이를 할까요? 하지 않을까요?
정답, 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심해서 제약이 있지만 전통적인 풍습을 잘 지키고 있습니다.
한걸음 더 나가서 북한은 정월대보름이 법정공휴일로 되어 있습니다.
북한 달력을 보면 정월대보름이 빨간색으로 인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 ‘정월대보름’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북한은 설, 정월대보름, 청명, 단오, 추석이 모두 법정공휴일로 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날들을 배격했습니다.
유교 문화의 잔재이다, 미신적 요소가 있다,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맞지 않는다고 하면서 단속했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부터 서서히 풀기 시작했습니다.
민족의 전통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저는 그 과정을 살피면서 ‘아, 남한과 북한의 바탕에 같이 깔려 있는 민족의 고유한 전통은 무시할 수 없구나’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또 실감나게 깨달았습니다.
지금 남북관계가 매우 험악합니다.
북한의 통치자는 남한과 북한은 하나가 아니다, 둘이다, 교전상대국이다, 주적이다, 통일 필요 없다, 자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말해야 할 사정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고, 남과 북은 하나입니다.
이렇게 바탕에 살아있는 고유한 전통도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통일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니까요.
우리는 하나님이 통일을 주실 줄로 믿고 북한선교 열심히 해야 힙니다.
이것을 말씀 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탈선을 했습니다.
예배 뒤에 정월대보름 윷놀이, 즐겁게 하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배, 둘째는 전도, 셋째는 교육, 넷째는 봉사, 다섯째는 무엇일까요?
교제입니다.
헬라말로는 ‘코이노니아’라고 합니다.
교제, 참 중요합니다..
모두가 좋아하는 찬송이 있지요.
“사랑하는 주님 앞에 형제자매 한자리에/ 크신 은혜 생각하며 즐거운 찬송 부르네/ 내 주 예수 본을 받아 모든 사람 내 놈 같이/ 환난 근심 위로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세”(220장)
또 “주 믿는 형제들 사랑의 사귐은 천국의 교제 같으니 참 좋은 친교라”(221장)라는 찬송도 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조심하면서 지내느라고 성도들과 좀 거리감이 있었습니다.
작년에 강화도에 여름 수양회 가서 같이 먹고 같이 자고, 창화리 일몰도 같이 보면서 그 거리감이 많이 좁혀졌습니다.
‘아, 내가 용산교회 교인이 되었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월대보름 윷놀이, 성도의 교제에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로마서 강해, 이제 로마서 7장 전체를 살필 차례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율법과 죄의 문제를 결혼 관계에 비교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7장 가운데서 끝의 두 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라는 말씀을 집중적으로 살피려고 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오호라” 한자의 ‘오(嗚)’’는 ‘탄식소리 오’입니다.
‘호(呼)’는 ’부를 호‘입니다.
슬픈 일이 있을 때나 안타까워 탄식할 때 쓰는 말입니다.
“오호 통재(痛哉)라” “오호 애재(哀哉)라” 하기도 하지요.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는데 “오호라”는 헬라어 ’탈리포로스(ταλίπωροϛ)‘를 번역한 것입니다.
“탈리포로스”는 깊은 절망에서 나온 비통한 외침, 심연에서 부르짖음’이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다윗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아주 친했지요.
사무엘상 18장에는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했다고 거듭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요나단이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다가 전사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와서 그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슬펐겠습니까?
이때 다윗이 지은 조가가 사무엘하 1장에 실려 있는데 거기에 “오호라”라는 말이 세 번 거듭해서 나옵니다(1:19, 25, 27).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제일 먼저 나온 한글성경은 1887년에 나온 『예수성교전서』입니다.
중국 선양(沈陽)에서 나왔는데 로스라는 선교사가 중심이 되어 발간했기 때문에 보통 ’로스역‘이라고 말합니다.
로스역은 이 말을 “내 슬픈지라”라고 번역했습니다.
1880년대에 어떻게 이렇게 실감나게 번역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집니다.
그때는 한글을 별로 사용하지 않을 때입니다.
정부는 1894년에 일어난 갑오개혁 때부터 한글을 공식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교회는 그 이전부터 이렇게 한글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들고 기독교가 보급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1997년에 나온 『공동번역 성서』는 이 말을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1993년에 나온 『표준새번역 성경전서』는 이 말을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새한글성경』이라고 올해 말에 전체가 나올 예정인 성경이 있습니다.
신약과 시편만 미리 나왔는데요(2021년), 『새한글성경』에서는 이 말을 “나야말로 얼마나 비참한 사람입니까!”라고 번역했습니다.
여러 번역이 아주 비통한 탄식을 표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바울은 왜 이렇게 비통하게 부르짖고 있을까요?
건강 때문입니까?
비울은 건강의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여기에 대해 고린도후서 12장 7절에서 ’하나님이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눈도 나빴지요.
로마서는 더디오라는 사람이 받이썼습니다.
로마서 끝장인 16장의 22절에는 더디오의 이름이 나오지요.
“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그래도 건강 때문에 이런 탄식을 한 것은 아닙니다.
돈이 없었기 때문입니까?
바울은 장막을 만들어 그 수입으로 선교활동을 했습니다.
사도행전 18장에 바울이 고린도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와 함께 일한 일이 기록되어 있는데 3절에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비량(自備糧)으로, 자기가 스스로 양식 문제, 비용 문제를 해결하며 선교하는 분을‘텐트 메이커(Tent Maker)’라고 부릅니다.
천막 만드는 일로 어느 정도 수입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넉넉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이런 탄식을 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입니까?
죄의식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죄인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할까?하는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로마서 7장에는 ’죄‘라는 말이 참 많이 나옵니다.
열한 번이나 들어 있습니다.
14절에서는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라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18절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참 뼈 아픈 말들입니다.
23절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나,
25절 뒷부분의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도 그렇습니다.
율법은 무엇이 죄인지를 조목조목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율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7장 전반부에는 그런 내용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그러니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비통하게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또 묻습니다.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하기 위해 지금까지 여러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것은 바울만의 탄식입니까?
아닙니다!.
내가 해야 할 탄식입니다.
내가 더 심하게 해야 할 탄식입니다.
로마서 7장에는 ’나‘ ’내‘라는 말이 참 많이 나오는데 이것은 바울 자신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편지를 받아 읽는 로마교회 교인들, 나가서는 이 시대의 우리 모두 하나, 하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우리’라는 말도 여러 번 썼습니다.
이 시대 사람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죄의식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는 죄인인데, 그래서 멸망할 수밖에 없는데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깨닫고 그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을 뒤집으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죄 때문에 멸망을 당한다는 것이 됩니다.
처음에는 그저 이웃이 가자고 하니까 교회에 나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재미 있어서 나오기 시작한 분들도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라고 하더라도 교회생활을 하는 가운데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을 ‘회심’이라고도 합니다.
감리교회는 요한 웨슬리의 회심을 빼놓지 않고 기념하고 있습니다.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라고도 합니다.
‘제2의 탄생’이라고도 합니다.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곤고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망의 몸에 매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벗어났습니다.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진심으로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지쳤을 때, 낙심했을 때도 그래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라는 탄식이 나올 때 믿음을 새롭게 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하는 환호성으로 바뀔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좀 긴 예화를 하나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와 신학교를 같이 졸업한 분 가운데 해군 대령이 한 분 있었습니다.
원래는 북한군 해군 대위였는데 1965년 12월 연평도 부근으로 배를 저어서 귀순을 한 분입니다.
그때는 북에서 오는 분을 ’귀순용사‘라고 부르며 대대적으로 환영했습니다.
동급생들이 ’아니 1년 반 전까지만 해도 북한군 장교였던 분이 어떻게 신학교에 들어왔지?‘
모두 궁금하게 여겼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분의 이름은 이필은인데 사병으로 입대했다가 해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고속경비정 정장이 된 분입니다.
그리고 김일성군사대학을 졸업하고 귀순할 때 해군기지 작전참모로 있던 엘리뜨 장교였습니다.
대화를 통해서, 학교 예배 시간의 간증을 통해서 그분이 어떻게 예수를 믿고 신학교에 들어왔는지 자세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북한의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귀순을 했습니다.
대한민국 해군대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술에 젖어 살았다고 합니다.
외롭지요, 자기가 귀순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처형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지요, 귀순할 때 같은 배에 타고 있던 부하 두 사람을 사살한 일이 자꾸 생각나지요, 그래서 술로 그런 괴로움을 이기려고 했답니다.
신경안정제(누미날)도 많이 먹었다고 합니다.
어느 토요일에 술에 만취되어 잠들었다가 교회 새벽 종소리에 깨었다고 합니다.
그때는 교회에서 얘배시간마다 초종, 재종을 쳤지요.
그 종소리가 자기를 호령하는 것 같이 들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날 처음으로 종소리가 들려온 교회에 나가 뒷자리에 앉았다고 합니다.
자기는 그때까지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는데 목사님의 설교가 전적으로 죄인인 자기 하나를 놓고 하는 것 같이 들렸다고 합니다.
그때 귀순자들은 여러 곳에 가서 반공강연을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강연을 하게 되어 그 교회에 깄습니다.
목사님 댁에서 시작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는데 여섯 살 난, 목사님 딸이 ’아저씨, 나 노래 하나 불러도 되요?‘ 하더랍니다.
’아 좋다‘고 하니까 그 딸이 노래를 부르는데 가사가 이랬습니다.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죄만 짓다가 오늘 저녁 죽으면 어찌하리오
유황불이 펄펄 끓는 지옥으로 이를 갈며 슬피 울며 끌려 가겠네
나오라 예수 앞으로 천당의 영생복 너에게 주리니 예수 믿으소
그 노래를 들으며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곤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탄식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일들을 겪는 가운데 상관(중령)의 전도로 영락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차차 마음의 평안을 찾고, 술과 담배를 끊게 되었고, 성경을 열심히 읽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찌르는 말씀들이 많았는데 특별히 잠언서 28장 13절의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는 말씀이 크게 다가 왔다고 합니다.
이 분은 내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겠다고 하고서 수유리에 있는 영락기도원에 들어갔습니다.
사병 한 사람을 데리고 가서 “나는 내 죄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여기에서 나가지 않을 테니 그리 알고 있으라”하고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찬송가 273장을 크게 불렀다고 합니다.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로 시작되는 찬송인데 그때 사용하던 합동찬송가로는 249장이었습니다.
3절 가사가 이렇지요.
나 죄에 매여 고달파 이제 옵니다
주 크신 사랑 받고자 주여 옵니다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주여 나를 받으사 맞아주소서
찬송 부르고 기도하는 가운데 자기가 지은 죄가 하나 둘씩 생각나기 시작했습니다.
이필은 대위는 대학노트에 만년필로 그것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 만년필은 대광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선물로 보내준 것이었습니다.
그때 많이 쓰던 빠이롯트 만년필이는데. 분홍빛 만년필 대에 “자유를 찾은 기념, 대광”이라고 새겨져 있었습니다.
강의시간에 노트 필기도 그 만년필로 했습니다.
어느 순간에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일을 그는 자기가 쓴 『선수를 남으로』라는 책 232쪽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의 이 무자비한 마음의; 어디서 그런 그칠줄 모르는 눈물이 솟구쳐 나오는지 나의 답담하고 불안에 안정마저 잊어버린
마음에 넘쳐흐르는 힘과 형천할 수 없었던 그 기쁨 또 용기와 용맹, 나는 처음으로 이러한 기쁨을 체험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난 과거 생활이 너무나도 죄악스러웠고 악에 찬 생활의 항로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비로소 북한
공산주의 치하에서 몸에 얽켰던 붉은 쇠사슬의 멍에를 벗어던졌을 뿐만 아니라 참된 자유까지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책에서 이 부분의 제목을 “참된 자유를 찾다”로 되어 있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얻는 자유가 참된 자유입니다.
이 세상에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참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나라에서 이필은 대위를 보고 남한에 왔으니 남한의 대학에서 공부를 더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북한군 해군장교였다가가 대한민국 해군장교가 되었으니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조선항공과, 배와 비행기에 대해 공부하는 학과에 가면 어떻겠느냐고 했습니다.
이필은 대위는 ’내가 북한군 해군장교었다가 대한민국 해군대위가 된 것도 변화이지만 공산주의자, 무신론자였다가 기독교인이 된 것이 더 큰 변화이니 저는 신학을 공부하겠습니다“해서 1967년에 연세대학교 신학과 2학년에 편입하게 되었습니다.
졸업을 하고 군대생활을 계속 잘 해서 해군대령이 되었고 정훈감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리에 북한군인이었다가 귀순을 해서 대령까지 진급한 분이 여러분이 있는데 한 부서의 책임자가 된 분은 이필은 대령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교회에서는 장로가 되었습니다.
어려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간이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귀순 직후에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이 원인이라고 본인이 직접 말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사모님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사모님이 아주 믿음이 좋은 분으로 나중에 전도사 생활도 했습니다.
이제 살기가 어렵게 되었을 때 군목님(안광춘 중령, 성결교)이 병실에 들어가서 마지막 문답을 했습니다.
“이 대령님, 아재 얼마 안 있어서 세상을 떠나시게 되었는데 세상을 떠나면 하늘나라에 가실 자신이 있습니까?”
이필은 장로는 마지막 힘을 짜내서 “군목님, 염려하지 마세요”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의 장례식에 저도 참석했습니다.
지금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으로 사망의 몸에서 건짐을 받을 수 없는 곤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어 그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환희의 송가를
불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알아도, ’별 것 아니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이 영원한 사망으로 연결되는 문제인데 별것이 아닙니까?
제가 7년 전에 폐렴으로 요단강을 거의 건너가 있다가 돌아온 일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감기인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그런 일을 겪었습니다.
죄의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은 그것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비통한 탄식입니다.
모든 사람이 해야 할 탄식입니다.
우리는 사람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힘써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전도입니다.
오늘은 사순절 둘째 주일입니다.
사순절은 우리는 이런 비통한 탄식을 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주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는 깨달음을 새롭게 하며 전도에 힘써야 하는 때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나는 사망의 몸에 매어 있었고 지금도 때때로 넘어지고 탄식하는 곤고한 사람인데, 건져주시고 힘 주시는 주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기에 힘쓰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곤고한 사람, 사망에 매여 있는 저희의 탄식을 들으시고 은혜, 능력, 은총으로 용서하여 주시고 보좌 앞에 나오게 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저희가 감사하며, 선을 행하며,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 하며 살기에 힘쓰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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