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11월에 샘물지에 기고했던 묵상글)
별을 바라보며
자정이 넘은 한 밤중에 보일러실로 내려가던 중 갑자기 정전이 되었다.
어둠 속을 더듬어 겨우 연탄을 갈고 밖으로 나와 고개를 들어보니 무수한 별들이 머리 위에 떠 있었다.
여름 밤 바닷가 백사장에 누워서 아이들과 함께 보았던 것처럼 영롱하지는 못했지만
별이 보이지 않는 서울의 하늘에 익숙해 있어서인지 신기한 마음이 들어 한참 바라보았다.
소녀시절, 부엌이나 사랑방으로 드나들거나 세수를 하고 손만 씻으려 해도
신발을 신고 마당으로 내려서야 했던 한옥 식 가옥에서 살았을 때는
하늘이 집안 한 가운데 있어 저녁 식사 후면 툇마루에 걸터앉아 별을 헤곤 했었다.
별을 헤는 마음은 늘 신비로웠는데 그것은 한없이 넓은 공간과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아득한 시간에 대한 경외심이었다.
일 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돈다는 빛의 속도로 몇 십 년, 몇 만 년, 아니 수 억 년을 달려와 비로소 내 눈에 감지되고 있는 별들의 반짝임….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커다란 이 우주도 어쩌면 더 큰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작은 소립자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하니
상상을 초월하는 광대한 세계 앞에서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하늘을 쳐다보는 일이 차츰 줄어들었고,
밤에 별이 뜬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사는 날들이 많아졌다.
평소에 잊고 살았던 밤하늘을 다시 만나게 되는 때는
산이나 바다를 찾게 되는 여름휴가나 어쩌다 서울을 떠나 시골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을 경우이다.
만리포에서였다고 기억된다.
이글이글 불타던 한낮의 태양이 져버린 뒤 우리 가족은 저녁바다를 보기 위해 숙소를 빠져 나왔다.
찰싹거리는 파도에 발을 적시며 해안선을 따라 한참 걷다가
모래사장에 발을 펴고 앉아 쉬게 되었을 때는 칠흑 같은 어둠이 바다 위를 덮고 있었고
그 위로는 수없이 많은 별들이 손에 잡힐 듯 한 거리에서 휘황하게 빛나고 있었다.
쏟아질 듯 한 별들의 아름다움에 취해 자리를 뜨지 못하고 하늘을 쳐다보면서
아이들에게 우리와 저 별까지의 거리가 사실은 얼마나 멀고 먼 것인가를 이야기 하다가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몇 만 년이다, 수 억 년이다 하는 말도 시간 속에 살고 있을 때의 이야기이지
육신을 벗어나 영적인 존재가 되면 길고 짧은 시간도, 멀고 가까운 거리도 모두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육신의 껍질을 벗어버린 영혼은 새나 나비처럼 창공을 훨훨 날아 신나는 우주여행을 하게 되지 않을 까?
이런 공상을 해 보았던 바닷가에서의 그 날 밤 이후로 몇 해 지나서 한 가지 재미있는 글을 읽게 되었다.
우리 본당 신자들 사이에서 한 동안 많이 읽혀졌던 ‘펄시·콜레’박사의 [내가 본 천국]이라는 책이다.
콜레 박사는 아마존 정글에서 활동하고 있는 개신교 선교사로서
천국에 가보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혀 7년 동안 밤낮으로 결사적인
기도를 하던 중 탈혼이 되어 5일 반 동안의 천국 여정에 오른다.
사람이 죽으면 바로 천국에서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콜레 박사는 말한다.
천국은 지구의 80배나 되는 거대한 별이라는 것이다.
육체를 빠져 나간 그의 영혼은 지면으로부터 이륙하여
우주선의 비행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하늘로 치솟아
달과 태양을 지나고 화성과 목성을 거쳐 태양계를 벗어나
수억의 무수한 별들이 있는 우주 공간을 계속 달렸다고 한다.
땅에는 육로가 있고 바다에도 배가 가는 길이 있듯이
천국으로 향하는 특별한 길이 우주 공간에 마련되어 있어 그 길을 통하여 천국까지 도달했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예수님도 승천하실 때 그 길을 이용하셨고,
루르드에서, 파티마에서 발현하셨던 성모님도 구름을 타고 그 길로 내려오셨던 것일까?
마찬가지로 나의 아버지와 작은 오빠도 그 곳을 거쳐 하늘로 올라가셨을까?
결혼 후 10년 가까이 책이라곤 전혀 들여다보지 않고 살다가
어느 날 내 스스로 서점을 찾아가서 구입한 책이 심령과학 서적이었다.
이를테면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 [사후 세계], [영계 여행] 같은 것들이었다.
아현 성당 묘지에 작은 오빠를 묻고 내려온 후 하루 이틀 날이 자날수록
며칠 전까지 있던 사람이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점점 이상하게 느껴졌다.
오빠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오빠의 몸은 차디차게 굳은 채로 땅 속에 누워 있지만 그의 고결했던 정신,
다정했던 마음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어느 누구 못지않게 옳고 선하게 살았음에도 그가 겪은 가난과 고독,
오랜 세월 동안의 병고에 대한 보상은 어디에서 누구한테 받아야 하나?
죽음으로서 모든 것은 끝나고 마는가?
아니면 그 너머 또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는가?
개신교 학교에서 예배시간과 강의 시간에 영혼 불멸과 영생에 대해 자주 이야기 들었음에도
새삼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을 만나야만 믿어질 것 같아 위의 책들을 읽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종류의 책 읽기는 얼마가지 않아 중단 되었는데
그것은 두 사람 즉, 친정아버지와 동서의 충고 때문이었다.
“쯧쯧쯧! 어리석은 것.”
한번 읽어보시라고 갖다 드린 책을 펼쳐보시더니 아버지는 나를 나무라셨다.
죽음 이후의 문제는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혹 알고 있다 해도 설명 할 수 없는 것이다.
참선하는 스님 중에서도 무엇이 보인다고 하고,
영계를 오르락내리락 한다는 이들이 있는데 수도의 길에서 정도(正道)를 벗어나는 것으로 심히 경계하는 것이다.
이런 책에 흥미 갖지 말거라, 이렇게 말씀하셨다.
북아현동에 신혼살림을 차린 시동생 네 집에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갔었다.
무더운 날씨에 집안에 있기가 답답하여 서늘한 그늘을 찾아
동서와 함께 버스로 두 정거 거리에 있는 그녀의 모교이며 나의 모교이기도 한 학교로 산책을 갔다.
녹음이 우거진 캠퍼스는 마침 방학 중이라 조용하기 짝이 없었고
매미, 쓰르라미 소리만 어지러이 들렸다.
그날 나는 개신교 신자인 그녀에게 여러 가지 궁금했던 것을 많이 물어보았다.
그녀는 자기가 어떻게 해서 하느님을 만났고 그분이 자기를 어떻게 인도 하셨는지를 빛나는 얼굴로 말 해 주었다.
그녀의 눈은 내가 미처 보지 못하고 있는 훨씬 높고 훨씬 깊은 곳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나지막하고 조용한 음성으로 내게 말했다.
“형님, 그런 책 보지 마세요. 이젠 성서를 읽으세요.”
내가 죽음 저 너머 영원한 삶이 있다는 것을 믿게 된 것은 심령과학 서적을 읽어서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누리지 못했던 복이 저 세상에서는 오빠의 것이기를 바라는 염원 때문이었다.
그러한 바람이 지금까지 지상에서만 머물렀던 나의 시선을 천상으로 향하게 해 주었고,
상식적인 사고의 틀을 벗어나게 해 주었다.
그로부터 모든 사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되었으며 고통이 주는 의미를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오빠가 죽지 않고 어디엔가 살아서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나는 그 오빠를 기쁘게 해 주고 싶어 서둘러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천국이 우리가 쳐다보고 있는 저 많은 별들 중의 하나에 있는지,
아니면 전혀 다른 어떤 것인지는 내가 직접 가보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저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지복직관을 갖게 되고 사랑으로 충만한 천국,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 장애가 되는 요소들을 정화 시키며 천국으로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연옥,
하느님과의 영원한 이별인 지옥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교회로부터 배웠고 또 그것을 믿는다.
11월은 위령성월.
죽은 이들이 하느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해 주십사고 기도 하는 달이다.
우리가 기억하며 기도해 주는 이들 중에서는 벌써부터 천국복락을 누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우리의 기도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연옥 영혼들도 많을 것이다.
한편, 하느님을 떠난 괴로움 속에서 신음하면서
“제발 저들만이라도 이곳에 오지 않도록 경고 해 주십시오.……
그들은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찾아 가야만 회개 할 것입니다.(루까 16,28-30)”
하면서 살아 있는 우리들을 위하여 애원하고 있는 영혼도 없지 않을 것이다.
성서에서 아브라함이 부자의 그러한 요청을 거절 한 것을 보면
설혹 죽었던 사람이 살아 와서 말을 해 준다 해도 일시적인 호기심만 자극시킬 뿐
의심은 여전히 남게 마련이고 마음 깊은 곳이나 삶까지 변화 시켜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상하고 신비한 현상을 찾아다니는 것보다
차라리 가끔 별이 잘 보이는 교외에 나가 하늘을 쳐다보며
하느님이 지으신 광대무변한 세계 안에서 내가 얼마나 작은지,
사람의 한평생이 얼마나 짧은 지를 깨닫고 이생의 삶이란
‘스치는 바람결에도 이내 사라져 그 있던 자리조차 알 수 없는 것’(시편 103, 16)임을 깊이 생각해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첫댓글 지지난 주 예배시간에 목사님의 설교에 천국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어.
일반적으로 천국하면 먼저 공간적인 개념이 된다는 것이지. 형형색색의 꽃이 만발하고, 맑은 물이 흐르고, 새들이 우짖이고.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곳.
국가의요소가 영토, 국민, 인데 누가 다스리느냐 다시 말해 어떤 정책으로 영위되느냐에 따라 나라가 다르듯이
천국이란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천국임으로 그 곳이 어느 곳이든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으면 천국이다라는 요지였어.
내가 있는 곳이 어디든, 어떤 상황에 있던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는 곳이 천국이라는 설교에 크게 공감했었어.
당신 발을 내려다 보지 말고 고개를 들어 별을 바라보라.
(스티븐 호킹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