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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설문대할망 신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동아시아 신화전문가이자 신화학자인 김선자의 「제주신화, 신화의 섬을 넘어서다」와 제주대 국문학과 교수인 허남춘의 「설문대할망과 제주신화」덕분이다. 제주도의 지형과 국토 형성에만 관여한 창조여신인 줄 알다가 천지를 분리한 창세신임을 알았다. 전지전능한 창세신이자 창조신이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로 죽는 모습에 의문과 함께 격분이 일었다.
김선자는 구비 전승이 경전 속으로 들어오면서 창세여신의 이름이 사라지는 현상과 가부장제의 확립으로 ‘부자연명제父子聯名制’(아버지의 계보로 이어지는 이름을 갖는 제도)가 생겨나고 돔바교(나시족)나 비모교(이족) 등의 종교와 정교한 문자로 쓰인 고전들이 확립되면서 남성 사제들의 계보가 시작되는 현상과 대비적으로 하니족이나 둥족 등 문자를 갖고 있지 않은 민족들이 오히려 창세여신의 이름을 고스란히 계승했다고 밝혔다. 허남춘은 설문대할망 신화가 쇠퇴하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변형됐고, 설문대할망의 '죽음'에서 여성 중심의 사회가 남성 중심의 사회로 변화된 역사적 변천 과정이라 설명했다.
따라서 나는 창조한 옛이야기 속 설문대할망 신화에서 창세신만 부각했다. 많은 연구자들이 제주를 만든 '창조여신'으로 설문대할망을 인정하며, 1980년 제주시 오라동에서 채록한 설화 등에는 설문대할망이 처음으로 세상을 만들었다는 창세적 요소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창세신화적인 면모와 배치되는 변이 이야기와 창작한 것으로 보이는 이야기는 의도적으로 뺐다. 예를 들어 오백 명의 아들을 두었다는 오백장군 이야기나 아들들을 위해 죽을 쑤다가 헛디뎌 죽솥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 심지어 큰 키를 자랑하려고 한라산에 있는 물장오리(오름)에 들어섰다가 끝없는 깊이에 빠져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들이다.
고인이 된 민속학자 장주근의 「한국의 신화」에도 설문대할망이 오백장군을 낳았다는 것을 변이 양상으로 보았고, 제주대 국어교육과 교수 현승환도 서귀포문화대전의 설문대할망 모티프 분석에서 여신이 오백장군의 어머니로 변이되면서 신이 아닌 인간으로 형상화되고, 오백 아들들은 자식으로서 효의 역할의 타당성을 드러낸다고 했다.
제주도 신화 연구의 선구자인 현용준 역시 장한철의 「표해록」을 거론하며 표류인들이 기원했던 ‘선마고’가 설문대할망과 동일 인물이라면 민간신앙의 대상인데, 오늘날에는 그러한 신격 요소가 두드러지지 않는다며 이상히 여겼다. 또한 제주도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던 설문대할망의 탄생 과정을 삽입하거나 설문대할망이 여신이기에 배필이 있을 거라는 추측으로 설문대하르방을 만들어낸 것, 제주도의 한 부인에게 오백 명의 아들이 있었고, 오백 명의 아들을 위해 죽을 쑤다 부인이 죽솥에 미끄러져 빠져 죽었고, 아들들이 통곡하다 바위로 굳어 오백장군 바위가 되었다는 오백장군 이야기에 설문대할망을 갖다 부친 것에도 의문을 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