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Je les voyais comme je n’ai jamais vu personne et pas un détail de leurs visages ou de leurs habits ne m’échappait.
나는 사람을 보지 못한 것처럼 보았고 그들의 모습 혹은 그들의 의복의 세세한 부분이 나를 벗어나지 않았다.
(2) De temps en temps seulement, j’entendais un bruit singulier et je ne pouvais comprendre ce qu’il était. À la longue, j’ai fini par deviner que quelques-uns d’entre les vieillards suçaient l’intérieur de leurs joues et laissaient échapper ces clappements bizarres.
오직 때때로, 나는 기이한 소리를 들었고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마침내 나는 짐작하는 것을 통해서 노인들 가운데 몇 명이 그들의 뺨의 안쪽을 빨아들여서 기묘한 혀차는 소리가 나도록 하고 있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1)은 영안실에 노인들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뫼르소가 한 생각이다. 노인들의 세세한 부분 가운데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보았다는 것인데, ‘나를 벗어나지 않았다(ne m’échappait)’는 표현을 사용한다.
(2)는 노인들이 뺨의 안쪽을 빨아들여서 혀 차는 소리를 내는(échapper)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뫼르소는 자기를 échapper한 것이 없다고 했는데 이 노인들은 뫼르소가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échapper하고 있다. 뫼르소는 이 노인들의 세세한 부분 모두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Ils ne s’en apercevaient pas tant ils étaient absorbés dans leurs pensées. J’avais même l’impression que cette morte, couchée au milieu d’eux, ne signifiait rien à leurs yeux. Mais je crois maintenant que c’était une impression fausse.
그들은 그들의 생각에 몰두하고 있어서 그것에 대해서 깨닫지 못했다. 나는 그들 가운데 뉘어진 이 시신이 그들의 눈에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는 인상까지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은 그것이 잘못된 느낌이었다고 생각한다.
뫼르소는 이 노인들이 자기 어머니의 시신 앞에서 입으로 소리를 내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생각에 빠져 자기들이 소리를 내는지조차도 모르고 있는 것을 보고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으로서 취할 자세는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뫼르소는 이 일을 회고하고 있는 지금(maintenant)은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뫼르소 자신이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것과 이 노인들이 뫼르소에 의해서 이해받지 못하는 것을 같은 수준에 놓고 보게 된 것이다.
뫼르소의 언급은 곧 카뮈 자신의 언급으로 볼 수 있다. 카뮈는 실제로 이 양로원을 방문해서 지금 뫼르소가 겪은 일을 경험했었다.
‘카뮈는 형 뤼시앵의 장모가 사망하여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마랑고 양로원을 방문하는데, 이때 『이방인』에 사용될 세부적인 사항을 많이 얻는다. 예를 들어 양로원에서 죽은 노파, 그 죽음을 슬퍼하여 우는 친구, 시신을 안치한 작은 방, 매장지로 향하는 관을 따라가기 위해 들판을 가로질러 가는 노인, 뜨거운 태양에 녹아 시커먼 살이 쩍쩍 갈라지는 아스팔트 등이 그러하다.’ (최수철 『카뮈』 (arte, 2020) p.117)
그때 그 양로원에 가서 카뮈는 『이방인』에 묘사된 것과 같은 노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뫼르소와 같이 노인들의 저러한 행태를 이해하지 못했었다고 볼 수 있다. 노인들이 장례식에 참여해서 조의를 표하는 것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언행을 하는 것을 보고 카뮈 자신이 노인들의 언행이 적절치 않다고 보았지만 이 소설을 쓰는 시점에서는 자기가 잘못 생각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Mais je crois maintenant que c’était une impression fausse. 현재지세[crois]를 쓰고 지금(maintenant)이라는 단어를 덧붙여서 과거의 생각과 지금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것은 카뮈의 자기 반성의 결과로 볼 수 있다. 뫼르소 혹은 카뮈는 틀에 박히고 정형화된 일(une affaire classée)을 거부하고 있는데 자기 자신이 노인들을 그처럼 틀에 박히고 정형화된 관점으로 판단했음을 반성하고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고 있다.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각 사람들마다 나름의 방식이 있음을 더 폭넓게 인정하게 된 것을 보여주고 있다. 노인들의 저러한 행태를 비정상적이라고 판단한다면 질적으로는 카뮈 혹은 뫼르소가 거부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깨달음이 카뮈로 하여금 『이방인』을 쓸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모두를 인정하고 모두 각자에게 의미 있는 삶과 그 모습이 있다는 카뮈 자신의 '부조리의 철학'하고도 맞아 떨어진다. 카뮈가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낸 루르마랭에서 마을 사람들과 두루 친하게 지낸 것이 가식이 아니라 진심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카뮈의 자기반성적 태도와 모든 이의 모든 것을 인정하는 태도가 새로운 문학의 모습이고, 이 점이 모든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