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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적 욕망과 파멸의 서사
- 천명관 장편소설 『고래』/문학동네/2023
이 대 영
❙ 문학예술은 사회와 수요자의 요구에 따라 변화, 발전해간다. 멀티미디어 시대의 디지털 대중은 기존의 미학에 대한 개념과 영역을 다양하게 확장하고 있다. 전통적 글쓰기는 장르에 따른 미학적 규칙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었지만, 디지털 대중에게는 이미 그러한 규범은 식상한 것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기존에 익숙한 선조적 시간성과 기하학적 공간보다는 AI가 만들어내는 초월적이며 창조적인 시공에 더 매료된다. 그러기에 문학도 장르 중심의 문학적 관행과 수사학적 표현에 대한 답습을 버리고 다양한 형태의 장르를 실험하고 있다. 시에서의 스마트 폰과 디지털카메라의 일상화로 시도된 디카 시, 포토 포엠, 포토 에세이, 그래픽 포엠, SNS 포엠 등이 그 예이다.
시간의 절약성을 강조하는 대중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시 장르는 두 줄 시, 또는 다섯 줄 내외의 짧은 시로 독자의 감정을 자극한다. 순간적인 시상을 문자와 사진으로 결합하거나 풍자와 해학 반전을 통해 독자를 즐겁게 한다. 만화로 시의 내용을 압축하기도 하며, 사진으로 문자가 가지는 이미지의 한계를 극복하기도 한다.
이는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서사의 시간성과 공간성, 인물 창조, 배경 묘사, 시점 등의 개념은 와르르 무너지며, 문학 이론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일본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백화점의 기적』과 『녹나무의 파수꾼』, 국내 김초엽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정은궐의 『홍천기』 와 같은 작품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과거의 죽은 인물을 수시로 소환하거나 소설의 시간을 미래로, 공간을 지구 밖 행성으로 설정하여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천명관의 장편소설 『고래』는 다양한 수식어를 접두사로 첨기할 수 있는 소설이다. 내용적 측면에서 괴기, 환상, 엽기 등이 그것이며, 변사체, 판소리 사설체 등의 문체적 특징을 보인다. 이 소설은 인물, 문체, 시점, 사건 등 모든 면에서 과거와 현대의 서사 문법이 혼용되어 있다. 그러기에 전통 서사 문법에 익숙한 독자들은 작품을 읽어 나가기가 사뭇 낯설다. 더욱이 평론가들은 이 소설을 문학상 후보로 거론하는 것에 찬반 의견을 달리하기도 한다. 그만큼 실험성이 강하다는 이야기다.
❙ 장편소설 『고래』는 노파, 애꾸눈 딸, 금복, 춘희 등 여성의 삶을 다룬 이야기이다. 정확히 말하면, 노파와 그의 딸, 금복과 그의 딸 춘희를 주요 인물로 한다. 전통적인 서사에서 흔히 발견되듯, 이들 여성 인물은 타자화된 여성이다. 그러나 봉건적인 서사물에서 발견되는 순종적 이미지와는 다르다. 이들은 자신이 꿈꾸는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일탈을 서슴지 않는 비정상적 여성이다.
국밥집 노파는 평대의 기차역 근처에서 국밥집을 하던 박색의 여인이다. 그는 얼굴이 박색인 탓에 시집 간 지 하루 만에 소박을 맞고 대갓집에 들어가 그 집 외아들 반푼이의 시중을 들며 생활한다. 그러던 중, 반푼이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이유로 그 집에서 쫒겨나고, 그 후에 반푼이를 보복 살해하고 도주하여 금복을 출산한다. 딸이 일곱 살 되던 해, 인삼밭을 하던 부농의 집에서 일하던 그녀는 목욕을 싫어하는 딸을 부지깽이로 휘두르다가 눈을 찔러 애꾸가 되게 한다. 노파는 마을에 철도 공사가 시작되면서 목도꾼 곰보 사내와 정을 나눴지만, 사내가 열세 살 된 딸과 정사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그를 부엌칼로 살해 후 매장한다. 그런 후 꿀 두 통을 받고 벌치기 노인에게 딸을 넘기는 엽기적인 여인이다.
산골 소녀 금복은 생선 장수를 따라 도시로 나간다. 금복은 우람한 체형의 ‘걱정’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나, 걱정이 통나무 작업 중 중상을 당한다. 장애인이 된 걱정은 의처증으로 금복을 폭행하기까지 한다. 금복은 칼잡이를 만나 동거하게 되지만, 이를 알게 된 걱정은 바다에 투신자살한다. 이 장면을 칼잡이가 지켜보게 되고, 그가 걱정을 살해했다고 오인한 금복은 칼잡이를 살해한다. 이에 자책한 금복은 거지들과 떠돌이 생활을 하던 중 임신을 하고, 마구간에서 걱정을 닮은 딸 춘희를 출산한다.
금복은 죽은 노파의 국밥집을 사서 평대에서 다방을 연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에 국밥집 천장이 좌우로 갈라지며 죽은 노파가 숨겨둔 돈다발이 쏟아진다. 국밥집 노파가 세상에 복수하기 위해 모은 돈으로 애꾸는 딸도 발견하지 못한 돈이다. 금복은 이를 밑천으로 ‘평대벽와’라는 벽돌공장을 세우고 운수사업을 시작한다. 그녀는 평대에서 인연을 맺은 사내 ‘문’의 조언으로 고래 모양의 극장을 세운다. 금복은 죽은 노파의 원혼에 복수를 당하며 결국 창부를 만나 몰락하게 된다. 또한 고래극장에 화재가 발생하여 많은 사람이 사망한다.
춘희는 전쟁이 끝나가던 해 겨울, 거지 여자 즉 금복에 의해 마구간에서 출생한다. 그는 덩치가 큰 벙어리로 의붓아버지 문(文)에게서 벽돌 굽는 법을 전수한다. 그러나 저능아인 그녀는 8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화재 방화범으로 오인, 교도소에 수감 되어 스물일곱에 벽돌공장으로 귀환하여 뱀과 개구리를 생식하는 등 엽기적인 생활을 한다. 그는 이곳에서 어릴 적 벽돌공장에서 만난 소년이 트럭 운전사가 되어 재회하여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사내는 춘희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떠난다. 춘희는 그 후, 벽돌을 구우며 슬픔을 극복하고, 죽은 후 대극장을 만든 건축가에 의해 그녀가 만든 벽돌이 발견되고 ‘붉은 벽돌의 여왕’이라 칭해진다.
반푼이를 살해한 노파, 곰보 사내와 칼잡이를 살해한 금복, 뱀과 개구리를 생식하며 코끼리 점보와 교감하는 춘희의 캐릭터는 강렬하다. 작가는 이들의 심리에 내재한 욕망을 기제로 서사를 전개한다. 즉, 부와 성적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이들의 광기 어린 집착은 살인과 방화라는 비극으로 종결된다. 부와 신분과 성의 영역에서 타자화된 존재들이 지니는 사회적 분노와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는 결국 폭력과 성애의 집착으로 이어진다. 타자화된 상황이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항존하는 사회적 현상이다. 금전적, 제도적으로 타자화된 인물이 암울한 상황을 극복해가는 과정이 독자들에게 심리적 쾌감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비록 부정적, 폭력적인 방법이더라도 독자들은 이에 개의치 않는다. 그만큼 미학의 도덕성을 지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문체 또한 파격적이다. 익숙했던 문체를 과거의 시간에서 퍼 올려 낯설게 하는 소설이다. 괴기하면서도 엽기적인 서사의 진행에 작가가 개입하여 너스레를 떨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한다. 바로 판소리 내지, 변사체의 문법이다.
여담이지만 이즈음 마을 아이들 사이에 나돌았던 괴이한 소문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희대의 사기꾼이자 악명 높은 밀수꾼에 부둣가 도시에서 상대가 없는 칼잡이인 동시에 호가 난 난봉꾼이며 모든 부둣가 창녀들의 기둥서방에 염량 빠른 거간꾼인 칼자국이 집에다 종류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괴물을 한 마리 키우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p.112.)
시간은 어디론가 훌쩍 건너뛰어 유난히 덩치가 큰 계집아이가 한 거지 여자에게서 태어나던 순간으로 이동한다. 장소는 얼굴이 똑같이 생긴 쌍둥이 자매가 운영하는 술집 마구간.(p.125.)
이후 금복은 삼 년간이나 전쟁통을 떠돌며 기적처럼 목숨을 이어가지만, 당시에 있었던 전쟁의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고 훗날 다른 자리를 기약하기로 하자. 독자여, 부디 이해해주시길! 그것은 이 책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며 더 많은 지면과 오랜 시간, 그리고 고통을 감당할 용기와 눈물이 필요한 일이므로.(p.130.)
이것은 한 자 어긋남 없는 금복의 말이다. 그러니 독자 여러분, 표현이 다소 상스럽더라도 부디 이해하시길.(p.227.)
이런 점들에 궁금증을 가진 독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모두 이야기꾼이 될 충분한 자질이 있다. 왜냐하면 이야기란 바로 부조리한 인생에 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을 설명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p.310.)
이제 이야기는 기나긴 시간의 바다를 훌쩍 건너뛰어 이십 년 뒤의 한 건축가에게로 우리를 안내한다.(p.392.)
독자 여러분, 밀려오는 졸음을 쫓고 조금만 더 들어보시라. 우리는 이제 드디어 기나긴 여정의 끝에 도달해 있다(p.403.)
이 같은 판소리 사설, 혹은 변사체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물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이 용이하다. 몇십 년의 서사 공간을 뛰어넘는 스토리의 여백에 작가가 개입하여 넉살 좋게 사설을 늘어놓으며 다시 이야기의 판을 깐다. 또한, 사건의 엽기성과 괴기성, 우연성을 전통적인 서사체를 소환하여 현대소설 이론으로 작품을 힐난하려는 독자들의 무장을 해제한다. 그리하여 독자들이 오직, 스토리 중심으로 독서를 하도록 유도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등의 용모나 행위 또한 엽기적이다. 야쿠자인 칼자국이 목숨을 걸고 사랑했던 나오꼬와의 결혼을 위해 손가락을 세 개나 자르는 행위, 오백 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살덩어리로 전락한 걱정과 그의 자살, 금복의 칼자국 사내 살해 사건, 애꾸눈 딸의 노파 살해, 꿈 혹은 환상으로 나타나는 죽은 자들의 등장, 오래전에 죽은 걱정의 모습을 닮은 춘희의 탄생, 다섯 살 나이인 춘희가 모루로 사내를 살해하는 행위, 벌떼를 몰고 다니는 죽은 노파의 애꾸눈 딸, 죽은 코끼리 점보와 춘희의 대화, 수련과 약장수의 엿장수 생매장 살인 사건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장편소설 『고래』가 가지는 문체적, 내용적 특성은 스토리의 핍진성 부재라는 단점을 노출한다. 소설 속에 인물들의 재회와 우연성은 수시로 일어난다. 금복이 천장이 무너져 얻게 되는 죽은 노파의 지전 뭉치, 금복과 생선 장수의 재회, 춘희와 공장에서 팔씨름하던 사내와의 재회 등 영화나 만화에서 나옴 직한 장면들이 연출된다. 그러기에 사회 또는 역사적 사건은 단순히 시간적 배경을 제시하는 선에서 서술된다.
금복이 세상을 떠난 지 이태가 되던 해 여름, 나라엔 큰 전쟁이 있었다. 남쪽과 북쪽으로 나뉘어 싸우게 된 그 전쟁은 이후 삼년이나 지속되었다. -중략- 남쪽 사람들과 북쪽 사람들은 미칠듯한 증오에 휩싸여 서로 수백, 수천 명씩 한꺼번에 학살했다. 그들은 한 상대를 한 군데 몰아넣고 죽창으로 찌르거나 구덩이에 산 채로 매장했다.(p.129.)
춘희가 재판도 받지 못한 채 십여 년을 미결감방에 수용된 예처럼 당시로선 그런 판결이 그다지 드문 일도 아니었다. 재판정은 그저 피고의 운을 시험하는 무대였을 뿐 정의와는 애초에 아무런 상관도 없었던 것이다. 장군의 시대는 대개 그런 식이었다.(p.311.)
장군은 정치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었다. 선거가 다가오면서 그는 자신이 다시 선출되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정적들은 더욱 거세게 그를 압박해왔고 민심은 그를 떠난 지 오래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자신이 죽을 때까지 집권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새로운 법률을 공포한 것이었다.(p.351.)
장군은 북쪽과 평화조약을 추진했다. 실제 속내야 알 수 없지만 장군이 보낸 특사들은 바쁘게 북쪽을 오가며 회담을 열었다.(p.393.)
6.25 전쟁, 박정희 군사정권과 불공정 시대의 전개, 장기집권을 위한 유신헌법, 7.4 남북 공동성명 등 소설의 시대적 배경에 자리하고 있는 굵직한 사회적 사건들은 희화화된다. 이같이 소설 『고래』는 기존의 소설 미학으로는 묵인될 수 없는 여러 가지 허접함을 노출하고 있다.
❙ 소설가로 칭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스토리 작가들이 있다. 또한, 자기가 쓴 시가 시가 아니라고 독자들이 비판해도 이를 수용하겠다는 시인들도 있다. 이들은 기존의 미학적 관념을 벗어나 자유로운 글쓰기를 구사하는 작가들이다.
소설 『고래』 또한 우리가 위에서 살펴본 대로 문체, 내용, 인물 창조, 사건 전개, 시간성과 공간성 등 많은 부분에서 기존의 소설 작법과는 차이가 있다. 노동요, 시, 금복이 건축가에게 보여준 건축설계도인 고래, 춘희가 그린 개망초, 여백, “몇 년이 흘렀다. 그녀는 홀로 벽돌을 굽고 있었다.”와 같은 사설을 통한 시간과 공간의 이동, 벽돌에 새겨진 춘희의 그림과 이를 시화한 시인의 시 등은 생소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문학상을 받고 화제작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디지털 대중들이 가지는 과감한 공간과 시간성의 생략, 그리고 전통적 서사문학이 지닌 치밀한 인과성과 핍진성의 요구를 묵살하는 과감함, 이에 따르는 스토리 구성의 자유로움이다. 이에, 스토리 전개에 묘사는 과감히 생략되며 오직, 흥미 중심의 서사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기에 우연성, 핍진성, 미학성, 역사성마저도 굵직한 서사에 묻혀버린다.
소설 『고래』가 많은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제작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주제의 선명성이다. 고래처럼 ‘큰 것’에 대한 동경은 타자화된 존재들에게는 우상 혹은 소유하고픈 동경의 대상이다. 금복이 산골을 떠나 부두에 처음 도착한 날, 그는 거대한 대왕고래에 큰 충격을 경험한다. 범접할 수 없는 힘과 크기를 가진 대왕고래에 대한 동경은 거구의 사내인 걱정을 택해 살림을 차리게 한다. 또한, 금복은 고향에서 그의 등을 떠밀던 바람의 정체가 원초적 성애의 욕구 실현을 위한 기운이었음을 발견한다. 큰 것에 대한 소유욕과 원초적 성애는 인간이 지닌 원초적 욕구이다. 작가는 지나친 부와 성애의 욕구가 결국 파멸을 가져온다는 상식적인 논리를 여러 인물을 통해 재현한다. 그리고 사설체를 빌어 훈시하거나 주제를 전달한다.
이제, 작가는 시 또는 소설의 규범적 장르 또는 미학적 특질과 수요자의 요구라는 두 가지 요소에 고민해야 한다. 많은 작가는 디지털 대중을 존중하면서도 미학의 규범을 저버리지 않는 딜레마에 오래도록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