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이기는 힘
이대영
❙욘 포세의 소설을 읽다 보면 다소 당혹감을 경험한다. 전통적 서사에 익숙한 독자들은 욘 포세 또는 최근 유행하는 소설을 읽으면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서사나 문체가 생경하다. 일본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백화점의 기적≫과 ≪녹나무의 파수꾼≫, 국내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와 ≪소년이 온다≫, 정은궐의 ≪홍천기≫, 천명관의 ≪고래≫ 등이 그러하다. 또한 최근의 베스트셀러 소설은 백화점, 세탁소, 편의점 등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 소설이 주류를 이룬다.
이러한 영향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욘 포세의 영향도 일부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의 창작법에 대한 독자의 호불호에도 불구하고, 욘 포세는 금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그는 노르웨이 극작가 및 소설가로 사뮈엘 베케트, 해럴드 핀터의 뒤를 잇는 현대 연극의 대가로 인정받고 있다.
1959년 노르웨이의 해안 도시 헤우게순에서 태어나 하르당게르표르에서 성장한 그는 장편소설 <레드, 블랙>(1983)과 소설 <보트 창고>(1989년)로 주목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주로 바다 또는 해안을 공간으로 한다. 그는 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 ≪보트하우스≫, ≪3부작≫, ≪멜랑콜리아≫, 희곡 <어느 여름날>, <가을날의 꿈>, <겨울>, 동화 ≪오누이≫ 등을 통해 국내에 소개되고 있다.
❙≪3부작≫은 연작 소설로 <잠 못 드는 사람들>, <올라브의 꿈>, <해질 무렵> 등 세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좀 더 상징성 있는 제목을 붙일 수도 있었을 텐데, ≪3부작≫이라는 제목이 오히려 어색하게 다가온다. 이 소설은 공간과 시간의 혼재에도 불구하고 중심을 이루는 서사는 아슬레와 알리다의 아름다운 사랑이다.
1부 <잠 못 드는 사람들>은 바이올리니스트인 아슬레와 임신한 아내 알리다가 고향 뒬리야를 떠나 벼리빈에 도착하여 겪는 정착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2부 <올라브의 꿈>에서 아슬레는 올라브로, 알리다는 오스타로 개명하여 아들 시그발과 함께 살아가는 내용이다. 3부 <해질 무렵>은 올라브를 기다리던 오스타가 뒬리야에서 오슬레이크를 만나 딸 알레스를 낳고, 알레스의 집에 나타난 죽은 오스타가 바다로 나가 죽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품 속 인물과 사건을 이어주는 중심 단어는 음악, 가난, 운명, 사랑 등이다. 시그발과 실리야, 아슬레와 알리다의 만남을 이어준 것은 음악이었다. 음악은 가난과 더불어 대물림이라는 운명으로 이어진다. 시그발과 아슬레 그리고 손자까지 이어지는 바이올리니스트의 대물림은 가난과 운명 때문이다. 알리다는 농가 출신으로 세 살 때 아버지가 집을 떠나 그에 대한 기억이 없다. 아슬레는 보트하우스에서 살던 아버지가 폭풍으로 바다에서 실종되었으며 열여섯 살 때 어머니 실리야마저 사망했다. 음악은 그들 가슴에 자리한 깊은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힘이 있기에 두 사람은 인연을 맺는다.
피할 길이 없거든, 너 역시 연주자가 될 테니까, 그가 말했다 그리고 아버지 시그발은 그건 이런 거란다, 내가 연주자이고 연주자가 되어야 한다면, 그렇다면 그건 원래 그랬던 것이고, 나는 좋은 연주자였으며 연주를 하는 한 나는 이미 뛰어난 연주자였던 게지, 그리고 네가 연주자가 된다면, 그럼 넌 이미 연주자가 인 게야, 거기엔 조금도 다른 여지가 없어, 네가 연주자가 된다면, 네 아들 역시 마찬가지야, 그건 놀랄 일이 아니란다. 내 아버지인 늙은 아슬레와 할아버지인 늙은 시그발 두 분 모두 연주자셨으니까, 연주자가 되는 건 우리 가문의 운명이야, (p.48.~p.49.)
그 운명이 어디에서 오는가 하면, 나는 슬픔이라고, 무언가에 대한 슬픔이거나 아니면 그냥 슬픔이라고 답할 게다, 음악 속에서 그 슬픔은 가벼워질 수 있고 떠오를 수 있게 되는 거고 그 떠오름은 행복과 기쁨이 될 수 있어, 그래서 음악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서 나는 연주를 해야만 하는 거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에겐 이 슬픔의 무언가가 남아 있는데 그게 수많은 사람들이 연주를 듣는 걸 즐기는 이유야,(p.49.)
가난과 그로 인한 슬픔, 그 슬픔을 잠재우기 위한, 그리고 생계 수단으로서 음악은 그들에게 운명처럼 대물림된다. 그래서 시그발은 아들 아슬레에게 “늘 버리고, 포기하고 다른 사람에게 베플어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보트하우스에서 쫓겨난 아슬레는 그에게 주어진 운명에 맞서기 위해 바이올린을 팔고 알리다와 항구도시 벼리빈에서 새로운 삶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들을 받아 줄 곳은 어디에도 없다. 이들이 운명에 맞서는 방법은 질서에 역행하는 방법뿐이다. 그러기에 아슬레는 알리다의 어머니와 보트하우스 주인, 그리고 벼리빈의 산파를 살해하고 그 죄로 교수형을 당한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 전개는 선조적이 아닌 혼재된 시간으로 나타나며, 그에 따라 인물 또한 실재와 환상으로 출현한다. 이를 연결하는 문학 기제는 희곡의 지문, 장면 전환 수법과 같은 것들이다. 이는 비단 ≪3부작≫ 뿐만 아니라 ≪아침 그리고 저녁≫ 등과 같은 여타의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더운물 더요 올라이, 늙은 산파 안나가 말한다
거기 부엌문 앞에서 서성대지 말고 이 사람아, 그녀가 말한다
네네 올라이가 말한다
이는 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의 서두 부분이다. 욘 포세의 소설은 마치 희곡 대본 또는 연극 상연을 염두에 두고 쓴 느낌을 준다. 그러기에 작가는 ‘꿈’, ‘잠’ 등을 통해 장면 전환을 빈번하게 시도한다. 그리고 대화에 이은 지문 형식의 서술을 통해 발화자를 각인시킨다. 문장 부호의 생략과 같은 비문 형식은 꿈과 잠을 통해 이어지는 의식 혹은 이미지의 흐름이 단절되는 것을 막기 위한 기제이다. 여기에 반복되는 어휘와 구절은 시적 리듬감을 살려 서사의 경직성을 완화한다.
≪3부작≫의 중심 서사는 아슬레와 알리다의 지고지순한 사랑이다. 이들 부부에게 벼리빈에서의 새로운 삶의 시도는 마치 사뮈엘 베케트가 ‘고도(Godot)’를 기다리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고도와의 만남이 없듯 벼리빈에서의 새로운 삶의 정착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운명과 연결된 ‘무익한 수난’과도 같은 행위이다. 그러기에 작가는 무익한 수난을 겪는 소외된 자들의 운명에 아름다운 사랑을 가미하여 한 편의 연극 같은 소설을 무대에 내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시적으로 이어가기 위해 아슬레의 살인을 복선으로 깔고 서사를 진행하다 작품 후반부에 오스가우트의 발화를 통해 구체화 된다. 그리고 새파란 진주로 장식된 황금 팔찌가 알리다에게 전해지고, 알리다가 바다를 향해 걸어감으로써 아슬레와의 영적 결합을 이루어 작품을 완성한다.
❙소설 ≪3부작≫은 두 번 이상 읽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생경한 지명과 인명, 유사한 이름, 비문과 지문 형식의 희곡체, 시간과 공간, 현실과 환상의 혼재, 반복되는 진술을 대하는 독자는 맥락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기에 시간과 공간을 결합하고 등장인물의 관계 설정을 통해 서사를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단순성을 특징으로 하는 미니멀리즘 작품의 매력은 이면에 자리한 내용을 재구성하는 재미를 오롯이 독자에게 넘겨준다는 점이다.
가난과 운명, 무익한 수난에 맞서 음악으로 슬픔을 승화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이어간 아슬레와 알리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운명을 이겨내려는 절박한 그들의 목소리를 다시 한번 새겨 본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린 어디서 살지.
아마도 문제없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