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나타나심의 은사가 풍성한 고린도교회에 바울이 성령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듯 성령세례를 받으라고 소리치는 한국교회도 성령론이
제대로 설명이 되어야 합니다. 그로인해 종말론이 혼탁해져 지금 이단도 아닌
사이비가 앞선 사기꾼에게 당하고 당하다가 자신이 이제 교묘하게 조합이
된 조잡스러운 교리를 앞세워 영혼 사기를 치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미혹이 될
사람은 미혹이 될 만한 이유가 있고 또 미혹이 되어야만 비로소 참교회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성령론이 잘 못 전해지면 교회론 기독론 구원론 끝내 성경론까지 흔들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바울이 말한 성령의 내주 역사 충만하게 하심의 비밀을 터득해야만 합니다.
고전2:12절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세상의 영과 하나님께로 온 영이 있습니다. 세상의 영은 미혹의 영입니다.
인간적인 지혜이며 철학의 속임수입니다. 근래에 들어와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통하지 아니하고도 영적 체험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들은 이것이 기독교의 교리처럼 극단적이지 않는 보편적이고 쉬운
일반적인 구원의 방법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매우 위험한 신앙입니다.
각종 명상센터가 바로 그런 곳입니다. 숨쉬기 몸 운동 또는 정신집중 등 말입니다.
그런 것으로 몸의 기운이 나와 신유 등의 현상이 나타나면 그게 성령의 역사인 양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직 성령을 통해서 그 분의 은혜를 알게 하십니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그리스도는 그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셔서 구원의 확증과 진보를 이룩하게 하십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지 못하면 다원주의와 범신론적인 이론으로
접근해 오는 세상의 잡다한 미혹의 영들을 물리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입장에서 보면 환호를 할 만큼 하나님에 대한 인간승리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 안에 죽고 다시 살아야 된다고 말하면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 안에 있지 않는 사람들은 다 싫어합니다.
오히려 진리로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핍박하기 까지 합니다.
13절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가르침은 발람의 교훈(계2:13)과 같으며
귀신의 가르침입니다(딤전4:1) 오직 성령의 가르침이 그리스도의 교훈입니다(요이9)
그러므로 신령한 자는 신령한 분별력을 가져야 하는 겁니다. 한국교회는
믿음을 강조하는데 반해 미국교회는 영분별을 믿음보다 우위에 두기도 합니다.
그만큼 영이 하나님께 속했는지를 분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그 첫 단계가
바로 그리스도가 그 안에 계심을 믿고 받아들이는지 여부에 따라 하나님께 속한
영인지 그리스도를 거역하는 적그리스도의 영인지 분별할 수가 있는 겁니다(요일4:2-3)
14절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그리스도인이라 하지만 육에 속한 사람 곧 혼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이건 아담(산 혼)의 계통을 따른 자연인의 생명입니다. 육체(비오스)의 생명이나
정신적인(푸쉬케) 생명 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영의 생명(조에)을 모르는 이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령을 미련하게 보고 그 역사를 깨닫지 못합니다.
아니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영의 세계엔 도무지 불능이며 불통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여부를 통해서 영과 육의 세계를 분변 곧 나눌 수가 있습니다.
사실 영적이라는 것은 성령을 좇아 사는 것이며 마귀적이라 함은
지극히 인간적이며 상식적으로 사는 것이 바로 마귀적인 겁니다.
그러므로 늘 깨어서 자신이 아담에 속해 있는가 그리스도 안인가 어느 쪽에
서 있는지 항상 점검을 해야 합니다. 이 또한 주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으로
인해 아담 안에 있던 내가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진 사실을 믿고 시인하는
자에게나 적용되는 것일 뿐 혼의 사람에겐 이 말씀이 마이동풍입니다.
15절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니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한다는 이 말씀은 자신이
재판장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속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의 지식을 뽐내고 남을 판단하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들에게 신령하다고 말씀하지 않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령한 사람이란 빛과 어둠과 생명의 사망의 경계를 알고 자신이 어둠과 사망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빛과 생명이신 그리스도 안에 옮겨졌음을 아는 자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보고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로드맵을
알고 있는지의 여부와 그 은혜의 보좌와의 거리를 재는 측량줄을 갖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신령한 자는 아무에게도 판단 받지 않고 어느 누구에게도 속지 않습니다.
장차 144,000에 든다 또는 증거장막을 세워 영생 불사한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에게 그리스도가 어디에 계시며 구원이 언제 일어나느냐고 질문을 합니다.
그건 이미 그들이 선 자리를 훤하게 들여다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두목보고는 그 사람 지금 죽으면 불 못이라고 말해 줍니다.
그건 그도 속고 속다가 미혹이 되어 그 미혹의 영으로 다른 이들을 미혹하는 겁니다.
종말에는 미혹의 영이 부정적이지만 않음은 미혹이 될 사람들은 미혹이
되어 함께 불 못에 들어가므로 천국의 쓰레기들을 소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쪽도 사망과 마귀와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가 맡은 일을 충성스럽게 일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분변하지만 미혹될 자는 미혹이 되는 겁니다.
16절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왜냐하면’(가르)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고 선언합니다.
누가 주와 하나 되어 주를 끌어 갈 수 있겠느냐 아무도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는 우리를
아는 영적인 상태에서 그 분과 교제하므로 우리의 문제가 서서히 없어지고
우리는 그 분 안에서 발전과 성장이 그에게 까지 이르도록 계속되는 겁니다.
첫댓글 하나님 나라의 언약에서는 종말론이 구원론을 앞선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경신학자인 게르 할더스 보스가 바울신학에서 남김 통찰이기도 합니다.
맞습니다. 성령론이 가장 중요한것은 기독론과 연관 되어 있기 때문 입니다. 성령받음은 곧 이미와 아직 의 긴장속에 있는 하나님 나라에 참여 하는것이며, 개인 종말론적인 측면에서도 모든것이 "Game over" 입니다.
제가 목사님글을 좋아하는것은 조직신학적인 논리적인 측면에서도 복음을 기술하고 있다는 점 입니다.
already와 not yet의 관점으로 성경을 보면 성경이 다 보입니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성하므로 대단히 귀한 선물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주께 영광을!
좋은 성경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