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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2:1~2(256)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 2024. 4. 21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의 ‘성모의 곡예사(The Juggler of Our Lady)’라는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프랑스 루이 황제 시대에 바르나베(Barnabé)라는 무명의 곡예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장터에서 낡은 양탄자를 깔고 온갖 묘기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한푼 두푼 돈벌이를 하던 떠돌이 곡예사였습니다.
이 도시 저 도시를 떠돌아다니며 열심히 재주를 부려 보았지만, 손안에 들어오는 돈은 많지 않습니다. 그의 생활은 항상 가난에 찌들렸고 늘 배고픔의 굶주림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종일 비가 내려 거리에서 재주를 부릴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를 꼬박 굶은바르나베는 비를 피하기 위해 하룻밤 묵을 곳을 찾다가 한 수도사를 만납니다. 수도사에게‘저도 하나님을 섬기고 싶습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저의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곡예사의 진실한 고백에 감동된 수도사는 그를 수도원으로 데리고 가서 머물게 합니다.
바르나베가 수도원에서 본 수도사들은 나름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원장은 하루 종일 라틴어 성경을 읽었고, 어떤 수도사는 가죽에 성구를 새기고, 몇몇 수도사들은 성화를 그렸고, 또 몇몇 수도사들은 돌로 석상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성화나 석상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서 팔아 돈을 장만합니다.
이런 수도사들의 모습에 바르나베는 자신의 무지와 무능력을 한탄합니다. 자신은 라틴어 성경도 읽지 못하고, 멋진 그림을 그리거나 가죽을 만드는 손기술이 없었기에, 수도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우 크게 낙심하고 상심을 합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드릴 최선을 찾았습니다. 언젠가부터 바르나베가 밤에 수도원 예배당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궁금히 여긴 원장이 어느 날 밤 수도사들과 함께 예배당 창문을 통해 그를 엿보게 됩니다.
아무도 없는 예배당에서 얼굴에 하얀 분칠을 하고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바르나베가 예배당 중앙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온갖 재주를 부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거룩하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당 안에서 곡예를 부리는 이런 모습에 대해, 수도사들은 불경한 행동이라 생각해서 경악을 합니다.
그리고 한 수도사가 곡예사의 행동을 제지하려고 예배당 문을 박차고 들어갔지만, 그를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르나베가 재주를 끝내고 땀을 흘리며 얼굴을 들고 하늘을 향해‘하나님, 기쁘시지요?’라고 말합니다. 그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발생합니다. 하늘로부터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는 음성이 들립니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내용일까요? 성경을 읽는 것도 좋고, 자신이 가진 능력을 활용해서 돈을 버는 것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나만의 재능과 달란트를 통해서 하나님은 기쁨을 받고 영광을 받기를 원하신다는 말입니다.
내게 없는 것을 가지고 불평하면서 원망하기 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것을 원하신다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바라보면서 나를 비교하고, 그리고 자신을 낮추어 비하하는 것은 결단코 올바른 모습이 아닙니다.
오늘 설교의 본문은 로마서 12:1-2절입니다. 로마서는 전체가 16장으로 이루어진 그리 길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로마서를 구분할 때 두 부분으로 구분합니다. 첫 번째는 1장부터 11장까지이고, 여기에는 기독교의 기본 교리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12장부터 마지막 16장까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그에 맞는 삶을 살 것을 권면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더 쉽게 말하면 앞부분은 교리이고 뒷부분은 실천이라 보면 됩니다. 기독교의 골격이 되는 교리와 뼈를 더 튼튼하게 지탱해주는 근육과 같은 것이 실천입니다. 사람의 몸을 지탱하는 뼈도 튼튼해야 합니다.
지난주일 낮 세분 권사님이 나누시는 대화에서 골다공증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뼈에 구멍이 뚫리게 됩니다. 그래서 뼈에 마치 스폰지처럼 미세한 작은 구멍이 만들어집니다. 그 결과 나이 드신 분들이 넘어지면 더 쉽게 뼈가 부러지고, 한번 부러진 뼈는 더 잘 붙지 않아서 젊은 시절과 달리 더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권사님들을 위시해서 뼈가 더 약화되지 않도록 운동과 음식으로 잘 조절해야 합니다.
교리는 뼈와 같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교리가 흔들리면 사람의 뼈가 흔들리는 것과 같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뼈가 더 튼튼해지도록 몸을 잡아 주는 것이 바로 근육입니다. 그래서 의사들이 나이 드신 분들에게 걷는 것이나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근육운동을 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리에 대한 모든 말씀을 11장까지 다 마무리하고, 성도들의 실천하는 생활을 말하면서 1절 말씀을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1절 상반절 보십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바울은 성도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모든 자비하심’이라고 먼저 말합니다. 내가 이 땅에서 내 의지대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내가 가진 힘이나 내 의미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자비하심이 있기 때문에 오늘 우리 모두는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숨을 쉬는 공기도 하나님의 자비하심입니다. 대한민국 안에서 날마다 수 천건 발생하는 교통사고와 여러 가지 사건 사고 속에서도, 내가 하루하루를 큰 어려움을 겪지 아니하고 살아가는 것도 하나님의 자비하심 때문입니다.
저는 가끔 목양실에서 혼자 있을 때면,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이끌어 주셨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인생의 고비고비 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사랑이 지극하였고,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는 놀라운 능력이 한결같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마도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인생을 살아 오면서 내 힘과 내 생과 내 의지대로 살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나를 보호하고 이끌어 온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고백하는 것이 바로 올바른 신앙인으로 출발하는 첫 걸음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믿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를 권하노니’라고 말합니다. ‘권하노니(파라칼로)’인데 ‘곁으로 부르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곁으로 불러주시는 분입니다. 힘들어 하는 자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위로해 주는 분입니다. 눈물로 힘들어 하는 성도를 감싸 안아 주시면서 품에 안아 주시는 분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더 성실하게 주를 믿고 따르며 헌신하라는 것이 바울이 권하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나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산 제물로 드리는 실천의 모습입니다.
1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도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바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의 실천적 모습에 대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라’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의 ‘산 제물로 드리라’는 말은 ‘너희 몸을 살아 있는 희생으로 드려라(to offer your bodies as living sacrifices)’라는 뜻입니다.
구약시대 제사를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에게 제물로 드릴 짐승을 가지고 나오는 모든 자는 살아 있는 제물을 들고 왔습니다. 비둘기, 양, 염소 등을 살아 있는 것을 가지고 와서 성전에서 죽여서 제물로 드렸습니다. 내가 드리는 짐승이 나의 죄를 대신해 죽음으로서 나는 죄값을 치루는 것이 구약제사방식이었습니다.
이것이 신약시대로 넘어오면서 예수님께서 단번에 희생제물이 되셔서 나의 죄를 감당하시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기도만 하면 모든 죄사함이 이루어지는 결과로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내 자신을 살아 있는 제물로 하나님에게 드려야 합니다. 이미 죽어 버린 제물은 하나님이 받지 않습니다. 나의 신앙, 나의 생활, 나의 물질과 모든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살아 있는 제물이 됩니다. 이미 죽어버려서 썩어 냄새가 제물로 하나님에게 드리려고 하지 마십시오.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나의 시간과 물질, 내 몸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말하는 살아 있는 희생이요, 산제물의 의미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몸이 흠과 점이 없는 산 제물로 드려지도록 예배해야 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감독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동명이인에 해당되는 사람입니다. 사진을 보시면 알겠지만 이분은 장애를 가진 분입니다. 1989년도에 이 상을 받은 놀란 작가는 그의 자전적 소설 ‘시계의 눈 밑에서(Under the Eye of the Clock)’영국최고의 문학상인 ‘휘트 브레드 문학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놀란은 출생 시 산소 부족으로 인해서 뇌성마비를 갖고 태어납니다. 말을 할 수도,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오직 눈으로만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곤 놀런이 10살이 되던 해, 그에겐 특별한 의사소통 수단이 생기는데, 바로 작은 막대기 하나였습니다. 이마에 작은 막대기를 붙이고 키를 누르는 방법으로 타자를 칩니다. 타자지 한 장을 채우는 데 무려 12시간이나 걸리는 중노동행위입니다. 자신의 말대로 아무 쓸모없는 인간이었습니다.
‘아무 쓸모없다고 생각한 중증 장애인이 어떻게 글을 쓰면서 이런 큰 상을 받게 되었는가?’ 이 질문에 대해 놀란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과 주변 사람들이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주었기 때문입니다.” 쓸모없어 보이는 자신의 몸에서 하나님이 주신 재능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글을 적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고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통해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방법을 놀란은 알고 실행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나 주의 도움 받고자(찬214), 찬양이 있습니다. 1절 가사를 보면,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주 예수님께 빕니다. 그 구원 허락 하시사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라고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내 모습 이대로, 내가 가진 모습 그대로 하나님은 살아 있는 나를 산 제물로 받으시길 원합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믿음과 사랑, 헌신과 물질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쁨의 산제물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 세상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분별해야 합니다.
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1절에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살아 있는 제물로 자신을 드려야 된다고 말한 바울은 2절에서 구체적인 행동 지침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2절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하여 살펴 보아야 합니다.
1)‘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라는 말은 ‘이 세상의 패턴을 따라가지 말라’는 말입니다.
세상에는 흘러가는 흐름과 유행이 있습니다. 이 흐름과 유행을 구분하는 것을 통해서 젊은 세대와 늙은 세대로 구분합니다. 이제는 더 자세히 구분하여 십대와 20대, 그리고 30대와 40대를 구분합니다. 세상의 흐름과 유행을 잘 파악하여 신세대적인 생각과 삶의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도 본받아 마땅한 좋은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세상을 본받지 말고 따라가지 말라는 말은, 세상에서 통용되는 비신앙적이고 비성경적인 말과 행동에 휩쓸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유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언어 발달이 부쩍 성장하는 시기에 있습니다. 유현이가 어린이집에서 배워오는 말과 행동 중에서 부적절한 말과 행동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통제를 해도, 아이들이 먼저 호기심을 가지고 배우는 것은 세상의 험한 말과 행동들입니다.
왜 아이들이 먼저 그런 것에 눈을 뜨고 배우는 것일까요? 그것은 올바르지 못한 세상 것들이 달콤하고 쉽게 접근되기 때문입니다. 좋은 말과 행동은 일일이 가르쳐야 되지만, 험한 말과 행동은 한번만 접하기만 하면, 금방 적응되어 언행에 부적절함을 드러냅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가지고 있는 세상적 영향입니다. 주일날 교회 안에서 언행에서 거룩한 성도들의 모습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세상에 머물면서 왜 180도 바뀌게 되나요? 그것인 바로 사탄이 가진 세상의 영향력 때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산 제물로 드리려고 작정하고 행동하는 성도라면, 세상의 말과 행동을 본받는 자가 되지 말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말과 행동에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성도가 되길 축원합니다.
2)‘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라’여기의‘분별하다(도키마제인)’인데 ‘시험하여 알아내다’라는 뜻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명확하게 분별해서 행동하라는 말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항상 올바르게 본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하지 아니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성도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서는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는 사람은 분별함이 없이 눈치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인생을 살면서 눈치 없는 사람을 만나보셨을 것입니다. ‘저 사람은 다 좋은데 눈치가 없어서 곤란한 상황을 종종 만들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보셨을 것입니다. ‘눈치 없다’는 말은 분위기 파악 못하고, 상대 기분을 생각하지 않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상대방을 무시하면서 들어가고 나설 때를 올바로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눈치 없는 사람으로 밉상을 받게 됩니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눈치 없는 자가 되어서 곤란합니다. 하나님의 눈치를 보면서 눈칫밥을 먹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면서 자기 도취와 자기 열심에 빠져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망쳐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늘 옳고 그름을 분별해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성도가 되길 축원합니다.
복화술(腹話術)이란 말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사진을 한 장 보세요. 복화술 하는 장면입니다. 복화술은 입을 움직이지 않고 말하는 기술로서 사람이 인형을 가지고 연극을 할 때, 사람이 말을 하면서 마치 인형이 말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입니다.
찰리 맥카시(Charlie McCarthy, 1930-1978)는 근세기 최고의 복화술사였습니다. 어린 시절 맥카시는 목소리와 발음이 너무나 좋지 않아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외톨이로 지내게 됩니다. 그러던 중 10대 때에‘발성법’에 관한 책 한 권을 접하게 됩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소년은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기도합니다. 그리고 발성법 책을 보며 발성 연습을 하기 시작합니다. 날이 갈수록 목소리가 좋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마침내 소년은 당대 최고의 복화술사가 되어 미국 전역에 공연을 다니게 됩니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깨닫고 하나님에게 기도하면서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꾼 것입니다. 불평할 것과 감사할 것을 올바르게 분별한 결과 올바른 선택으로 인생이 바뀌 경우가 됩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내가 하나님만 바라보며 올바르게 행동하는 모습입니다. 내 말과 언행에 분별함이 있어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모습입니다. 여러분들의 말과 행동에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나는 모습이 되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행복한 4월의 모든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