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차
운율, 음성의 효과를 노리자
2. 김소월의 반복
반복을 통한 음악성 실현은 김소월의 주요한 창작방법입니다. 그는 우리 전통 민요의 율조를 아주 정교하게 요리할 줄 아는 시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김소월은 현대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대중적인 공감과 학문적 매력’을 가진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입니다.¹⁸⁾ 평이한 언어와 간결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 울림을 주는 그의 시에는 반복의 원리가 특징적으로 나타납니다.
김소월에 대하여 백철¹⁹⁾은 당시 문학사조에서 멀리 떨어져 “지방적인 시정을 노래한 데 특징”이 있으며, 그의 시가 “정형시적 율조를 중시하는 작법을 배웠다.”고 하였습니다. 정한모²⁰⁾는 그가 생래적인 민요 시인이었으며 시 창작에서 전통적인 음율에 바탕을 두고 이를 의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조남현²¹⁾은 그가 지극히 평범한 언어자원을 가지고 반복과 지명의 사용을 중요한 창작방법으로 삼았다고 하였습니다. 이희중²²⁾은 소월의 창작방법을 어법선택의 방법, 형태구성의 방법, 배경설정의 방법으로 분석하기도 하였습니다.
김소월의 시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창작방법의 특징은 반복입니다. 스승인 김억에 의해 ‘민요시인’으로 불리기도 했던 소월은 시 창작방법을 민요에서 계승하였습니다. 민요에 나타나는 반복의 특징이 그의 시에 나타나는 것입니다.²³⁾
반복의 방법은 연과 행 또는 어구나 단어의 반복을 통해 의미를 강조하거나 음악성을 실현하는 방법입니다. 소월은 반복의 방법을 빈번히 사용하였는데, 그 가운데 명작인 「진달래꽃」과 「산유화」는 동일한 형태의 연을 반복하여 한 편의 시를 완성한 것입니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김소월, 「진달래꽃」 전문
이 시는 7.5조의 음수율을 채용하고 있습니다. 7.5조가 현대시에서 많이 채용되고 있는 이유는 전통 율동(리듬)인 3음보나 4음보의 율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1연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는 7.5 조이지만 3음보와 4음보의 두 가지 율성을 구비하고 있습니다. 7.5조는 2음보 율격을 지니지만, 1, 2행은 7음절과 5음절이 각기 행으로 배열되어 변화를 부린 것입니다. 그러나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처럼 3음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또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처럼 4음보로 볼 수도 있습니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김소월, 「산유화」 전문
외형이 4연 16행의 이 시는 1연과 4연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물론 통사구조는 같지만 1연의 ‘피네’와 4연의 ‘지네’로 내용은 다릅니다. 꽃이 피는 것과 지는 것을 노래하기 위해 피다/지다 어휘만 달리 쓰고 다른 시어들은 동일하게 사용한 것입니다. 꽃 피는 것이 꽃 지는 것으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섭리를 나타낸 것입니다.
머리와 꼬리가 서로 관련이 있는 수미상관식 외형을 갖추고 있는 이 시는 생성과 소멸의 순환원리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2연과 3연은 순환의 흐름 속에 꽃의 존재양식을 드러내고 있으며 반복뿐만 아니라 형태에 대한 세심한 배려로 균제미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1연과 4연은 행 배열이 동일하고, 2연과 3연은 형태상 대칭이 됩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도 1, 2연과 3, 4연이 대칭이 됩니다. 연의 반복뿐만 아니라 외형상 대칭과 내용상 전개 등 고도의 시적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3음보(음수율 3/3/4)의 전통 율격에 의해서 시어들이 조직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3음보를 때로는 한 행으로, 때로는(1연과 4연처럼) 2행으로, 때로는 3행(2, 3연처럼)으로 배열하여 변화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작품으로 하여금 낯설게 하기의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전통 율격이나 표준 언어는 도식화되어 있어 독자에게 낯익은 것입니다. 그러나 전통 율격이나 표준 언어를 파괴하여 낯설게 하면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게 됩니다. ‘낯설게 하기’란 예술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지요.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에게 율동(리듬)은 낯설게 하기의 산물이었습니다.
다음에는 동일 행의 반복을 통해 율동을 형성한 사례를 보겠습니다. 아래 시는 동일 시행의 반복을 주로 이용한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서름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김소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전문
술어인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를 각 연의 말미에 동일한 형태로 반복하여 예전에는 알지 못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서경과 서정을 시 구조 안에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1, 3연은 서경을, 2, 4연은 서정을 반복하며, 2연에서는 ‘사무치게 그리’워서 4연에서는 ‘서름’이 된 내용상 전개방식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래 시 「엄마야 누나야」는 행의 반복과 함께 첫 행과 마지막 행이 동일한 대칭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전문
김춘수는 이 시를 “메시지가 없고 정서만 있”는 순도가 높은 시이며, “과부족이 없는 시”라고 상찬하였습니다. 반복을 통해 ‘절묘한 균형’을 갖추고 있는 이 시는 반복에서 나오는 음성적 효과를 노리고 있습니다. 이 시는 마지막 행을 없애버리면 균형이 무너지는 비참을 맛볼 수 있습니다.²⁵⁾
다음은 통사구조 반복입니다. 소월의 시에서는 연과 행뿐만 아니라 통사구조가 반복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래 시는 동일한 통사구조뿐만 아니라 동일한 어구를 두 개의 연에 걸쳐 반복적으로 적용한 실례입니다.
꽃촛불 켜는 밤, 깊은 골방에 만나라.
아직 젊어 모를 몸, 그래도 그들은
「해 달같이 밝은 맘, 저저마다 있노라」
그러나 사랑은, 한두 번만 아니라, 그들은 모르고.
꽃촛불 켜는 밤, 어느러한 창 아래 만나라.
아직 앞길 모를 몸, 그래도 그들은
「솔 대같이 굳은 맘, 저저마다 있노라」
그러나 세상은, 눈물날 일 많아라, 그들은 모르고.
- 김소월, 「꽃촛불 켜는 밤」 전문
1행에서 만남의 장소는 깊은 골방이었다가 2행에서는 어스러한 창 아래로 바뀌며 시상이 전개됩니다. 여기서는 반복뿐만 아니라 어구가 대응되기도 합니다. 1연과 2연은 물론, 각 연의 3행의 대화체, ‘깊은 골’'과 ‘어스러한 창 아래’의 장소, ‘해 달’과 ‘솔 대’ (소나무와 대나무)의 자연어 등이 그렇습니다. 그의 시 「먼 후일」에서도 통사구조의 반복현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엔 「잊었노라」
- 김소월, 「먼 후일」 전문
위 시에서는 ‘~면 ~잊었노라’는 통사구조를 반복하면서 시상을 변화시킵니다. 소월이 민요에서 계승한 반복의 방법은 그렇게 세련된 창작방법이 아닙니다. 그러나 절박한 내용의 강조와 반복되는 구절이 환기하는 운율을 통해 음악성을 성취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동일 어휘의 반복입니다.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
- 김소월, 「금잔디」 전문
첫 연에서 세 개의 행에 걸쳐 반복되는 낱말 ‘잔디’는 묘사의 대상을 강조하거나 부각시킬 뿐만 아니라 음율적 기능을 겸하고 있습니다. ‘금잔디’ ‘심심산천’의 반복은 외경의 정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와 ‘봄이 왔네 봄날이 왔네’는 통사구조의 반복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 시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 「접동새」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접동
접동
아우래비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는 오랍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산저산 옮아 가며 슬피 웁니다.
- 김소월, 「접동새」 전문
극존칭의 평서형 종결법인 ‘~ㅂ니다’를 사용한 이 시는 존대형 어미와 ‘오오’ 감탄사 등 어법상 다채로운 변화를 시도한 흔적이 보입니다. 가만히 읽어보면 3음보의 이 시는 점층형식으로, 첫 연의 경우 3음보 하나가 한 연을 구성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시상이 전개되면서 점점 더 많은 3음보 진술들이 한 연을 구성하게 됩니다. 첫 연의 3행은 ‘접동’의 반복을 통해 음성적 표현의 효과를 노리고 있습니다.²⁶⁾
지금까지 평이한 언어와 간결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 울림을 주는 소월 시의 창작비밀이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소월의 시 창작방법의 특징이 반복에 관점을 두고 있으며, 또 반복은 여러 가지 유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이처럼 시에서 반복은 내용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음성적 효과를 노려서 시의 서정성을 한층 고양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반복은 우리 민요에서 쓰이던 소박한 형태의 시 형식이며, 소월은 이를 계승하여 자신의 시 창작방법으로 주로 사용한 것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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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이선영 연세대 명예교수(국문학)가 1895년부터 1999년까지 발표된 남북한 문학 관련 저서, 논문, 평론 7만 3천 5백 41편을 연대, 장르, 저자별로 정리한 '한국문학논저 유형별 총목록'(한국문화사, 전7권)을 완간하였다. 완간하면서 이를 토대로 작성한 논문 ‘20세기 한국문학에 대한 전문가의 반응’에 의하면 전문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20세기 한국문인은 이광수, 이상, 김소월, 염상섭, 채만식, 한용운, 서정주, 김동인, 정지용, 김동리 순이며, 문학작품은 '님의 침묵(한용운), 토지(박경리), 삼대(염상섭), 날개(이상), 청록집(박두진 등), 무정(이광수), 고향(이기영), 광장(최인훈), 무녀도(김동리), 탁류(채만식) 순이다. 여기서 시인만 순서로 본다면 이상(소설과 겸), 김소월, 한용운, 서정주, 정지용, 윤동주, 김수영, 조지훈, 박목월, 이육사, 김춘수, 김기림, 임화(평론과 겸), 박두진, 백석, 이용악, 신동엽, 고은, 김지하, 신경림 순이며 선호 시작품은 님의 침묵, 청록집, 오감도(이상), 화사집(서정주) 순이다.
19) 백철, 「소월의 시문학사적 위치」, <문학예술》 1955년 12월호.
20) 정한모, 「근대 민요시와 두 시인」, <문학사상> 1973년 5월호.
21) 조남현, 「소월시의 언어와 결」, <문학사상> 1987년 2월호
22) 이희중, 「현대시의 방법 연구」, 월인,2001. 이 글에서는 이희중의 논문을 주로 참고하였다.
23) 오세영은 한국 민요의 구조를 크게 두 가지인 반복과 병치의 원리로 설명했다. 반복은 형태상, 내용상, 어법상의 반복으로 나누었고, 성격에 따라 단순반복과 변화반복으로 나누었다. 병치는 점층적 병치와 대립적 병치로 나누었다. (오세영, 『한국낭만주의시연구』, 일지사, 1980, 47~55쪽 참조)
24) 이 시는 3/3/4조의 자수율을 근간으로 하는 민요의 말결이다. 민요의 말결이란 민요조를 말하는데 그것은 형식에 제한되어 내용을 담았다는 표현이 아니라 전통적 율조를 바탕으로 정감을 표현했다는 것을 뜻한다. (김선학, 현실과 언어의 그물, 고려원, 1988, 34쪽 참조)
25) 김춘수, 『김춘수 사색사화집』, 현대문학, 2002, 14~16쪽 참조.
26) 김억은 「접동새」를 인용하여, 이 시는 ‘시재를 전설에서 가져다가 시작’한 것이며, 이 시인이 ‘용어에 대한 관심’이 컸던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는 동시에,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음조미’를 나타나는데 탄복할 바이라고 하여 소월의 반복에 대한 창작방법상 특징은 이미 오래전부터 평자들에 의해 밝혀지고 있다고 하였다. (김억, 「소월의 추억」, 『소월시전집』, 성공문화사, 1978, 265~269쪽 참조)
2024. 2. 17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