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시대, 근대산업노동자의 삶
- 철도원 삼대/황석영/창비/2024
이 대 영
❚굴곡진 자신의 인생처럼, 옴팡진 그늘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 온 작가가 있다. 바로 황석영이다. 중국 길림성 장춘에서 태어나 6.25 전쟁, 베트남 참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북한 방문과 국가보안법 위반, 필화사건과 투옥 등 그와 관련한 몇몇 단어만 들어도 그의 삶이 순탄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황석영 작가의 소설은 바리공주 신화와 심청전으로부터 한국의 근현대사에 발생한 주요 사건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시공을 가로지르고 있다.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오래된 정원』, 『손님』 등은 그의 문학 이력을 대표하는 소설들이다.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는 영등포를 배경으로 손자 이진오의 관점에서 구한말부터 현대에 이르는 격동의 시대를 살다 간 철도노동자 삼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소설 『철도원 삼대』는 이백만, 이일철, 이지산 삼대의 철도노동자로서의 삶과 증손인 이진오의 파업투쟁기를 서사 골격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에는 식민지의 특수한 환경 속에, 작가의 유년기 추억이 깃든 영등포를 중심으로 신의주, 만주 장춘에 이르는 광역의 공간이 자리한다. 그리고 철도원 삼대의 가족사와 이들을 중심으로 한 동시대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기에 그 시간은 역동적이고 지루하며, 잔인하고 혹독하다.
가족사 소설의 성격을 지닌 만큼, 이 작품의 서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등장인물의 가계도를 이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삼대의 가계 구성은 철도국에서 선반 일을 하다 공방을 하는 증조 이백만, 주안 염전 인부의 딸로 두 아들을 출산한 후 셋째 임신 중 사망한 증조모 주안 댁, 철도 기관수로 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 중앙위원으로 활동 중 월북한 조부 이일철, 김포 중농의 막내딸로 소학교를 거쳐 방직공장에서 일했던 조모 신금이, 강 목수의 아내인 증조 고무 이막음, 황간에서 군무원 기관수로 일하다 의용군에 징집되어 스물한 살에 폭격으로 다리를 잃은 부 이지산, 이지산의 초등학교 동창인 모 윤복레,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이진오 등이다.
소설은 한양중공업 열병합발전소 굴뚝 난간에 텐트를 치고 농성 중인 이진오의 일상에서 출발한다. 그가 수년간 다니던 공장이 5년간의 투쟁 끝에 고용, 노동조합, 단체협약 승계를 전제로 새로운 회사로 매각되었으나, 새로운 회장은 적자경영을 이유로 노동자 전원을 해고하기에 이른다. 또한 어용노조를 출범시켜, 고용 승계 조건을 박탈하여 노조를 파괴하고 노동자의 비정규직화를 통해 공장을 고가로 처분하려는 불온한 의도를 보인다. 이에 사건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고공농성에 들어간 것이다.
이진오는 페트병 다섯 개에 죽은 사람의 이름을 각각 적어 놓고,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과거를 회상하며 시간을 견딘다. 증조할머니 주안댁, 할머니 신금이, 이발소 집 친구였던 작은 깍새, 금속노조 노동운동을 하다 파라치온 살충제 약을 먹고 죽은 친구 진기, 크레인 농성을 했던 영숙 누나 등이 그들이다. 작가는 이들을 환타지 기법으로 불러내 작품의 흥미성을 더한다. 여기에 이막음, 이일철, 신금이, 한여옥의 귀신을 보는 신통력을 더해 사회주의 노동운동의 서사가 주는 건조성을 상쇄한다. 특히, 죽은 주안댁이 나타나 떠내려가는 돼지를 건져 마을 사람들을 먹이고, 뗏목을 저어 공작창 노동자들을 살리고, 버드나무집에서 나무 위에 피난처를 지어 큰물을 피하고 있을 때 나타나 식구들을 구조하고 해방 직후 마루보시 공장 화재 시 신금이를 깨워 쌀과 밀가루를 가져오도록 돕는 등의 행위는 서사의 흥미를 배가시킨다.
이진오의 고공농성 행위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작은아버지에 이은 노동운동이다.
노동 투쟁은 원래가 이 씨네 피에 들어 있다. 너 혼자 호강하며 밥 먹자는 게 아니구, 노동자 모두 사람답게 살아보자 그거 아니겠냐? (pp.110~~111.)
증조할아버지 이백만에서 할아버지 이일철과 아버지 이지산을 통해 그에게 전해진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삶은 지루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지속된다는 믿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늘을 살아낸다.”(pp.206~207.)
그때에는 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약한 이들이 이기게 되어 있다. 너무 느려서 답답하긴 했지만.(p.564.)
신금이나 윤복례의 발화 또한 이 씨 삼대의 신념과 다를 바 없다. 느리게 진행되지만 언젠가 모든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 속에 그들은 오늘의 시련을 이겨내는 것이다.
철도원 삼대의 주변 인물이 전개하는 사회주의 노조 활동은 한국의 근대 산업노동자들의 삶을 성찰하는 시간을 부여한다. 또한, 이들 노동자의 생존권 투쟁이 결국 항일운동과 맥을 같이 하며, 해방 이후 미군정하에서 생존권 투쟁에 나섰던 노동자들이 반공이데올로기에 밀려 빨갱이로 매도되었던 불온한 시간을 되돌아보게 한다.
열다섯 살에 가출해
신문 배달, 봉제 보조, 시내버스 안내양을 거쳐
태산중공업 최초의 여성 용접공이 된 사람
스물여섯 살에 해고되고, 대공분실 세 번 다녀오고
감옥 두 번 살고, 오 년 수배 생활을 하다 보니
머리 희끗한 쉰셋의 나이가 되어 있더라는 사람,
한국 근현대사 노동자 민중의 수난사를
자신의 온몸에 빈틈없이 새겨넣은 사람
절망의 크레인 위에서도
이 평지의 누구보다 밝고 활달하고
유머러스했던 사람.(pp.406~407.)
이전에는 여러 사람이 전염병에라도 걸린 듯 스스로의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다.
그러나 이제 그들을 무너뜨리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절망이었고, 그것은 일상이라는 무섭고 위대한 적에 의해서 조금씩 갉아 먹힌 결과였다. 집회에서 헤어지면 그들은 모두 혼자가 되었다.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도 그들 각자가 혼자가 되었다. 세계란 원래가 우주처럼 무심하다. 괴괴하고 적막하고 고요하다. 무료하고 가치 없는 일상이 그들 모두를 무너뜨렸다. 해고는 살인이다.(p.202.)
의견이 있는 노동자는 이 땅에서는 언제나 빨갱이가 된다. 수걱수걱 주는 대로 몇푼 받고 일만 직사하게 하면 착한 백성이라고 한다, 노예라고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 작은 오빠가 말한다.(p.415.)
작가는 영숙을 통해 노동력을 착취했던 기업과 구속과 고문으로 이를 옹호했던 국가가 한 선량한 노동자를 어떻게 죽음으로 몰고 갔는가를 보여준다. 열다섯 살에 가출해 신문 배달, 봉제 보조, 시내버스 안내양을 거쳐 태산중공업 최초의 여성 용접공이 된 영숙이 해고와 수감생활을 거쳐 무기력한 인간으로 무너지는 과정은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영숙 오빠의 발화대로 의견이 있는 노동자는 빨갱이가 되었던 불온한 시대였다.
이 소설의 또 하나의 특징은 사건 전개에 필요한 역사적 사실과 노동운동을 서술함에 수반되는 정보와 묘사의 구체성이다. 물론,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듯, 전직 철도기관사, 노동운동가, 노동운동사, 한국철도사 등에 힘 얻고 있지만, 치열한 작가 의식 없이는 창작 전개가 쉽지 않은 일이다. 굴뚝 농성장의 묘사와 그곳에서의 일상, 영등포 역전 중심가와 샛말 전경 묘사, 치안본부 대공분실의 고문 실태, 기관차의 구조 및 운영방식 등이 소설의 리얼리티를 견고히 한다.
작가는 근현대의 사회주의 노조 활동을 상술하며, 이 같은 행동이 항일운동과 연결되며 이를 억압했던 일제와 이에 부역한 조선인의 행태를 고발하는 것에도 방점을 둔다. 일제 강점기 한국인 밀정을 대변하는 최달영 역시 가해자이며 피해자이다. 그는 집에서 돼지를 키워 옷에 밴 냄새 때문에 학교에서 교사에게 맞은 상흔이 있다. 구제역에 걸린 백순이를 도살한 후 돈사를 떠났던 마음 약한 청년이 양주장 밀주 고발을 통해 고등계 순사 보조가 되고 밀정이 되어 일제에 부역하는 과정도 일그러진 우리들의 초상이다.
작가는 소설 곳곳에 항일의식과 반미감정을 드러낸다. 철도 공사 과정에서의 토지약탈과 노동자 인권유린, 강제징용, 궁성요배, 창씨개명 등의 황국식민화, 해방 후 만주인들의 조선인 재산 약탈과 살해, 미군정의 횡포와 서민의 경제난, 남북분단의 고착화 등이 그것이다. 다만, 일본의 철도 사업에 따른 강제 철도 부지 수용과 피해 실태, 사회주의에 대한 다소 장황한 설명, 미커도형 기관차와 텐더형 기관차의 비교 설명, 오체투지 등 과도한 설명은 소설의 시간성을 지체하고 사건 전개의 핍진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같이 소설 『철도원 삼대』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철도노동자 삼대의 가족사를 서사의 골격으로 하고, 이들 주변의 인물을 통해 지난 했던 한국의 근현대사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 일제 치하 식민지 시대 우리 민족의 수난과 일제의 약탈, 미군정의 횡포, 신념을 목숨처럼 생각했던 사회주의 노동운동과 항일의식, 그리고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기업 횡포와 노동자들의 투쟁 등이 이 소설에 담겨 있다.
❚이 소설은 일제 식민지 시대와 해방, 그리고 6.25라는 근현대사의 큰 사건을 겪으며 살아 온 우리들의 이야기다. 그러기에 소설의 행간에는 일제 치하 식민지 노동자로 또는, 부역자로 다양한 삶의 방식을 선택하며 현실을 헤쳐나갔던 시간의 흔적이 묻어난다. 그 자취 속에는 눈물과 한숨과 같은 슬픈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있다.
사회주의 활동으로 옥사한 이철, 동생의 죽음으로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해 일경에 쫓겨 월북한 일철, 6.25 전쟁 중 황간터널 철로에서 전투기 사격으로 오른쪽 다리를 잃은 지산, 식민지 시대 온갖 핍박을 견뎌낸 이 땅의 민중들, 사회주의 노동운동을 통해 주권과 인권을 회복하려다 숨진 수많은 노동자 등 이들은 모두 오늘의 자유를 낳게 한 희생자이다. 작가는 그들이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은 것이다.
이 소설은 진오의 굴뚝 농성 400일 후 회사 측과의 합의에 따라 11명이 복직했으나 회사의 열악한 환경 제공으로 다시 굴뚝 농성을 이어갈 것을 결의하는 것으로 끝난다. 해방 후 주권이 회복되었으나 자본과 권력의 횡포로 이에 대한 노동자의 맞섬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굴뚝 또는 크레인의 농성장에는 비록 세상이 무심하고, 가로수보다도 못한 미물 취급을 받더라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사람다운 대접을 받으며 산다는 것이 이리도 힘든가를 생각하게 한다. 진정, 통섭을 통해 상생하며 사는 그런 세상은 요원한 것일까?
굴곡진 역사의 틈새에서 질식할 수밖에 없었던 소설 속 모든사람들에게 조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