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1.
보길도에서
해남 땅끝항 여객선터미널이다. 땅끝 갈두항에서 노화도 산양진항까지 편도 승선권을 발권했다. 담양의 소쇄원(瀟灑園)과 영양의 서석지(瑞石池), 완도 보길도의 세연정은 우리나라 민가에서 만든 3대 정원이다. 서석지는 계절마다 찾아가서 세세히 둘러봤고 소쇄원도 아름다운 정원이라 구석구석이 눈앞에 선하다. 보길도 세연정(洗然亭)은 해남 땅끝에서 배 타고, 차 타고 한 시간을 가야 답사할 수 있는 곳이다. 윤선도는 13년을 보길도에 머물렀다. 그리고 <어부사시사> 40수를 남겼다. 고산 윤선도의 정원으로 떠날 준비는 완벽하다.
동풍이 건들 부니 물결이 고이 인다.
돛 달아라. 돛 달아라.
동호를 돌아보며 서호로 가자꾸나.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앞산이 지나가고 뒷산이 나아온다.
돛은 필요도 없다. 세상이 변해도 아주 많이 변했다. 카페리호에 차를 싣고 출발한다. 동풍인지 북풍인지 알 수 없으나 땅끝전망대에서 점점 멀어진다. 40여 분 후에 노화도 산양진 항구에 닿았다. 보길도 윤선도 원림까지는 승용차로 10분 정도 더 달려야 한다. ‘2025. 완도 방문의 해’라서 입장료는 반값을 할인받았다. 오늘이 그 첫날이라 기어코 마음에 내키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진다. 106년 전, 일본의 불의한 지배에 항거해 독립을 선언한 날이다.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하노라”
명승 제34호로 지정된 곳이다. 판석보를 설치하여 계곡물을 막았고 연못에는 혹약암, 사투암으로 불리는 거대한 바위가 놓여 있다. 세연정으로 오르는 길에는 연못을 가로질러 비홍교를 설치하였다. 남동향으로 총 아홉 칸짜리의 팔작지붕 정자다. 겨울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정자의 중앙에는 온돌을 깔았으며 북동쪽 가운데 칸은 높이를 달리하였다. 신발을 벗고 오른 정자의 나무 바닥은 무수한 관광객의 흔적으로 반질거린다. 정자에서 내려다보이는 연못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웅장하다.
산 중턱에 동천석실이 보인다. 흐린 하늘에서 궂은비가 내린다. 우산을 받쳐 들고 오르는 길은 동백나무가 즐비하다. 맑은 날이면 동박새 지저귐을 들으며 자연의 오묘함을 이야기했을 텐데 아쉽다. 한 칸짜리 조그만 동천석실 처마에서 비를 피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스럽다. 내려다보이는 보길도 부용동은 안개에 반쯤 덮여 무릉도원을 연상하게 한다. 격자봉, 망월봉, 광대봉은 안개 뒤에 숨어 모습을 허락하지 않는다. 자연의 힘에 어찌 맞서겠는가. 날이 더워지기 전에 꼭 다시 올 것으로 예견되어 진다.
비바람이 몰아친다. 큼직한 돌을 올려 망끝전망대라 적었다. 보길도 글자 조형물 옆에 솟대 하나가 서 있다. 조형물 앞에 주차하니 비도 바람도 잠시 멈춘다. 솟대 꼭대기에 앉은 오리 세 마리 때문이라 여겨진다. 나의 희로애락을 살펴 사진 몇 장 정도는 찍을 수 있도록 솟대가 배려했으리라.
보길도 남쪽 끝자락에 왔다. 보옥공룡알해변은 해안선을 따라 공룡알 모양의 동글동글한 돌들이 까맣거나 노랗다. 비에 젖어 더욱 짙어진 돌들은 딸랑 두 가지 색으로 나뉘었다. 오십년지기 친구는 엄청난 집중력으로 돌 위에 돌을 세운다. 무게 중심을 찾는 기술이 탁월하다. 방풍림으로 심어진 동백나무숲으로 들어서니 수십 송이의 동백꽃이 바닥을 붉게 태웠다. 이제 시작이다. 나무와 바닥을 붉게 물들이는 동백의 계절이 다가온다. 삼월 중순이 넘어서면 남도땅 어디에서도 동백에 푹 빠질 수 있으리라.
기러기 떠가는 저편으로 못 보던 산 보이네.
이어라. 이어라.
낚시질도 하려니와 취한 것이 이 흥취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석양이 비치니 뭇 산이 수놓은 비단이로다.
욕심은 끝이 없나 보다. 보길도의 바위와 대나무, 소나무, 물과 달까지 전체를 소유했던 고산의 삶에서 나는 욕심이란 단어를 찾았다. 이 모든 것들이 고산만의 세상이었다. 하고 싶은 것들만 하고 살겠다던 나의 오만함이 무서워진다.
첫댓글 오빠야 이제 작가다
헉!.... 진짜 작가들이 화냅니다.
늘 "반성하며 살아야 겠다." 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잘 적는다
내가 보기에 시보다 수필이다
어~~~ 저는 시인입니다라고 하고픈데... 클났습니다.
사실 수필문예대학 한 번더 다니면 좋겠는데 기회를 살피고 있습니다.
김미화도 데리고 가야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