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를 축복의 기회로 삼은 사람들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에스더 7:1-10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택한 에스더서는 페르시아 시대 즉 기원전 한 500년 전쯤에 있었던 일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던 많은 유대인들은 파사왕 고레스의 해방령에 의해 고국인 이스라엘로 돌아갔습니다만 그러나 바벨론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던 많은 포로들은 고국으로 돌아가는 대신에 이곳에서 정착해 살기로 결심을 합니다. 이렇게 고국에서 살지 않고 외국에 흩어진 유대인들을 디아스포라 즉 흩어진 유대인들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도 바울도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난 흩어진 유대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흩어진 유대인들 사회에서 일어난 민족의 위기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위기에 처한 유대인들
당시에 실권을 쥔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하만입니다. 이 하만이 얼마나 막강한 권세를 갖고 있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예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는, 왕의 모든 신하들이 왕의 명령에 의해 하만에게 절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왕이 절대 권력의 상징인 자신의 반지를 빼어 하만에게 맡길 정도로 신임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의 권력을 갖고 있었던 하만이었기에 자신에게 절을 하지 않은 모르드개를 죽일 뿐 아니라 모르드개가 속한 유대 민족 전부를 죽일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에스더 3장에 보면, 왕의 이름으로 쓰여진 하만의 조서가 각 지방에 전달되었는데 그 조서에는“모든 유대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막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민족이 죽임을 당하고 재산을 탈취당하는 위기 앞에 놓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음모와 죽음 앞에서 유다 민족은 큰 근심에 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민족의 위기 속에서 분연히 일어난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에스더입니다. 에스더의 활동은 이미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내용일 줄 압니다. 그런 에스더의 활동이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에스더는 이 하만의 음모를 왕에게 알리기 위해 왕과 하만을 초대해서 잔치를 베풉니다. 잔치가 무르익을 때쯤 기분이 제일 좋은 순간 왕은 에스더에게 묻습니다.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냐?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냐? 곧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시행하겠노라”이때 에스더는“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으며 왕이 좋게 여기시면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대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하고 간구를 합니다. 왕후의 생명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말에 왕이 얼마나 깜짝 놀랐겠습니까? 그래서 다시 노를 발하면서 말을 합니다.“감히 이런 일을 심중에 품은 자가 누구며 그가 어디 있느냐?”이때 에스더가 옆에 있는 하만을 지적하며“대적과 원수는 이 하만입니다.”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이 얼마나 혼란스러웠겠습니까? 자기가 가장 신임하던 하만이 왕후를 죽일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던 왕은 생각을 정리할 겸 찬바람이나 쏘이려고 후원으로 나아갑니다. 후원에 가서 정신을 차리고 돌아와 보니 마침 하만이 자기 목숨을 살려 달라고 왕후에게 애걸을 하는 중인데 그 모습이 왕에게는 좋게 보일 리가 없었습니다.‘저가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자 하는가?’하는 말을 끝으로 하만은 결국 끌려 나가 모르드개를 달려고 준비했던 15미터의 나무에 자신이 달려 죽게 된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삶은 사실 위기가 아닌 때가 없다고 할 정도로 위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잘못해서 위기를 겪기도 하지만 어느 때는 나하고 상관없이 위기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국가적인 위기를 겪기도 하고 가정적인 위기, 사업적인 위기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이런 위기를 우리가 어떻게 잘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위기라는 말은 위험한 순간이기도 하지만 한편 기회가 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그냥 가만히 있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회로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요셉에게 있어서 애굽으로 팔려가는 순간은 엄청난 인생의 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위기를 축복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다윗도 사울 왕에게 쫒길 때 엄청난 위기를 맞이했지만 그 위기를 잘 극복했을 때 이스라엘의 성군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계속적으로 찾아오는 위기를 축복의 기회로 만들어나가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적인 위기가 가정의 축복이 되는 기회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국가적인 위기가 국가적인 축복의 기회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위기를 극복하는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로 삼았던 사람의 예)
그러면 에스더는 어떻게 민족의 위기를 극복하고 축복의 기회로 삼으며 승리할 수 있었겠습니까?‘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내 생명을 내게 주소서’하는 에스더의 외침은 에스더가 민족의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 두 가지 측면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는, 개인적인 희생의 측면입니다.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에스더의 외침은 내 민족을 위해서 나 한 몸 희생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족의 문제를 내 문제로 삼고 민족을 위해 어떠한 일도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사실 에스더는 이런 위기 와는 상관없는 위치에 있었고 어떠한 어려움도 당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른 체 외면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자신의 안일과 안위만을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이 민족을 내게 달라고 간절히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바로 이러한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적극적으로 열심히 활동을 하셨습니다. 희생하셨습니다. 얼마나 적극적으로 인간의 구원문제를 해결하셨는지 그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고 그 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평안만을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어야 하고 영벌을 받아야 할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적극적인 사랑과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오늘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문제는 이러한 적극적인 책임의식과 희생적인 정신이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서도 제사장과 레위사람은 그를 못 본체 피하여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를 도우려다 어떤 화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냥 가버리는 모습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다른 사람의 일에 상관하지 마라. 못 본체 하라. 너나 잘 하라. 이런 것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처럼 회자되는 상황입니다만 여러분, 그런 자세를 가질 때 가정의 문제, 청소년의 문제, 미성년자에 대한 성 추행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위기가 축복의 기회가 될 수 없습니다. 적극적으로 민족의 문제를 내 문제로 받아들이고 그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자세와 희생적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하는 에스더의 자세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자세요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이 어떤 위기 속에 빠져있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이 어떤 위기 속에 빠져있습니까? 여러분의 사업상의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실의에 젖어있지만 마시고 이 민족을 내게 주소서 이 가정을 내게 주소서 이 교회를 내게 주소서 하는 에스더의 적극적이고 희생적인 자세를 가질 수 있기 바랍니다.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가정이 평안해지고 위기가 축복의 기회로 바뀌게 될 줄 믿습니다.
둘째는 신앙적인 측면입니다.
에스더서는 성경에서 유일하게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이라는 말이 한 번도 기록되지 않은 책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그러나 에스더서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을 잘 기록하고 있는 책입니다. 역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언제나 함께 함으로 에스더는 민족을 구할 수 있었고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아도 보이지 않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부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만이 살려 달라고 간구하는데 에스더가 앉은 걸상에 엎드려서 간구를 하는데 그때 마침 후원에 나갔던 왕이 들어오다가 그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보는 즉시 화가 치밀어 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우연의 일치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들이 하나님의 세밀한 역사입니다.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하는 말 가운데 아주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다른 데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는 모르드개의 말은 하나님께서 다른 길을 통하여 구원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보여주고 있는 말입니다. 이 모르드개의 믿음은 에스더의 믿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신앙은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위기에서 구원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닥치는 위기를 잘 극복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자는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도우시고 나의 길을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한 사실 한 가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그의 삶을 지키시고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힘들다고 한 숨 쉬지 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우리의 길을 축복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둘째는, 악한 자를 대적해야 합니다.
하만은 인간적으로 왕 다음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르도개는 하만에게 무릎을 꿇지도 않았고 절하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 모르드개가 그렇게 하면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 줄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우상숭배였기 때문입니까? 살아있는 사람에게 절을 하는 것은 우상숭배가 아닙니다. 존경의 표시입니다. 당시 하만은 우상과 같은 그런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절을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만은 아각 사람 함무다다의 아들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아각이라는 사람이 중요한데요, 아각은 사무엘상 15장에 보면 사울 왕이 사로잡은 아말렉 왕이었습니다. 당시 하나님은 사울 왕에게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인하여 하나님은 그들을 벌하시기 위하여 진멸하라고 하셨는데 사울 왕이 그들을 진멸하지 않았다가 큰 어려움을 당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만은 아말렉의 자손이었다는 것입니다.
신앙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문제를 해결 받고 위기를 축복의 기회로 삼기 원한다면 우리는 어떻게든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이나 사람을 멀리하고 대적해야 합니다. 그러한 것들을 멀리하지 않고 대적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축복의 기회로 만들 수 없습니다. 요셉이 위기를 축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보디발 장군의 유혹을 물리쳤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유혹을 물리치지 못했다면 요셉은 결코 승리할 수 없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바벨론 포로의 위기를 축복의 기회로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우상 숭배의 유혹을 대적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이 위기를 축복의 기회로 삼기 원한다면 악한 모습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악한 생각, 악한 모습, 악한 사람, 악한 행동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악을 대적할 때 축복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당시 하만은 페르시아 제국의 2인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해 15미터의 높은 나무를 준비했습니다. 사실 페르시아 제국의 2인자가 유대인 모르드개 하나 죽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그의 계획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습니까? 그의 계획이 하늘의 뜻과 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인간이 자신의 지혜와 자신의 머리로 기가 막힌 계획을 세운다 할 찌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가 되지 않을 때 그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고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17세기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프랑스의 루이 16세와 그의 아내는 아주 악랄하기로 유명하였습니다.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습니다. 공화정을 시행하겠다는 로베스 삐엘도 이 일에 동참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결과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루이 16세와 그의 부인과 로베스 삐일이 그 단두대에서 이슬로 사라져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계획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환경에 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 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운 것도 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악한 것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고 위기가 축복의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면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겠습니까? 땅의 계획과 하늘의 뜻이 일치가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고 위기를 축복의 기회로 만들 수 있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에스더의 적극적인 희생이 결국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할 수 있었고 위기가 변하여 축복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었습니다. 내 민족을 내게 달라고 외쳤던 에스더의 외침이 오늘 우리들의 외침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11월 셋째 넷째 주일에 새생명 전도 축제를 개최하게 됩니다. 이 축제에 여러분 에스더와 같은 심정으로 내 민족을 내게 달라고 기도하시고 내 가족을 내게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 교회를 내게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며 노력할 때 하나님의 은혜로 가족이 주님께 나오고 가정의 문제가 해결되고 위기가 축복의 기회로 바뀌게 될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