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시85:1-9
.제목:부흥을 갈망하는 자
이번 주부터 부흥에 관해 3번에 걸쳐 시리즈로 말씀을 전파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부흥을 갈망하는 자’. 다음 주에는 ‘부흥을 경험하는 자’ 그리고 9월 첫째 주에는 ‘부흥을 주도하는 자’라는 제목입니다.
먼저 오늘 이 시간이 그 첫째 시간으로 제목이 부흥을 갈망하는 자입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는 백성들과 함께 자기 조국이 번영하기를 원합니다. 사업가는 그의 사업이 번창하기를 원합니다. 농부는 한 해 경작한 토지의 소출이 풍작이 되기를 원합니다. 학생은 자신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가 향상되기를 기대합니다. 몸이 아파 입원해 있는 환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몸이 회복되기를 갈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부흥은 이런 것들과는 개념이 다릅니다. 이 부흥에 대한 배경을 잘 표현한 글을 소개합니다. 니키 검블이 쓴 ⌜부흥의 본질⌟이라는 책에 기록된 일부분입니다.
독수리는 날지 않습니다. 날아간다는 것이 날개를 쳐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가는 것을 의미한다면 말입니다. 다른 새들은 그렇게 날아가지만 독수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독수리는 선천적으로 바람의 흐름을 구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수리는 적당한 바람이 불 때까지 다른 장소로 가지 않습니다.
적당한 바람이 불면, 단지 공중에 떠서 바람에 몸을 맡길 뿐입니다.
독수리는 날개를 칠 필요가 없습니다.
독수리는 같은 자리에 날개를 고정시킬 수 있습니다.
독수리가 하는 일이란 바람을 타는 것뿐입니다.
다른 새들은 폭풍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폭풍을 겁내지 않습니다.
폭풍 때문에 독수리는 더 높이 더 높이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수리 같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악물거나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봉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열심히 일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는 뜻입니다. 성령의 바람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으로 봉사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분별하여 그 목적과 함께 행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자신의 무질서함을 축복하시도록 애쓰는 것이 아니다는 뜻입니다. 부흥이 올 것이라는 확신은 하나님의 약속, 즉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을 부흥시키는 하나님'으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하나님만이 진정한 부흥을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부흥의 본질’ , 니키 검블 저)
부흥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람들이 하면 오랜 시간 걸려 해도 될 수 없는 일을 강권적으로 주관하신다라는 내용입니다
이 점에서 부흥이란 단어를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부흥을 말할 때 얼른 떠올리는 것은 단순히 숫자적으로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부흥의 정의도 아니고 목적도 아닙니다. 부흥이란 찬양과 부흥2000이란 찬양이 오래전에 발표되고 맨 처음 불리워질 때의 감격은 지금도 다를바 없습니다.
<‘부흥’찬양- ♬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그러면 이와같이 갈망하는 부흥이란 어떤 뜻일까요?
구약에서 유일하게 우리말로 부흥이란 단어가 기록되 있는 곳이 합3:2입니다. 하박국은 1장에서 왜 악인이 의인을 삼키고 공의가 짓밟히는 것을 방관하십니까 등을 호소합니다. 2장에 이르러 하나님의 응답은 때가 있다 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온 천하는 여호와 앞에 잠잠하라고 하시자 3장에 와서 하박국은 하나님이여 이런 주의 일을 수년내에 부흥케 하소서라며 기도하면서 구원과 기쁨과 감사로 바뀌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히브리어의 부흥이란 단어는 ‘하야’라는 말로 ‘숨쉬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떤 숨을 쉬는 것인가 하면 호흡하기 힘든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산소 호흡기를 통해 숨쉴 수 있게 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영어의 리바이벌(Revival)은 두단어의 합성어로써 다시 살다가 되는 것이고 이와 같은 단어로 소생하다, 부활하다의 뜻으로 해석됩니다. 이 단어가 바로 오늘 시85:6에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본문의 부흥을 말씀 드리기 전에 교회사적으로 부흥이란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를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몇가지를 잘 들으시면 부흥이 왜 중요한가를 다시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캠벨모건은 ‘부흥은 하나님 편에서 잘못된 것을 부수고 새롭게 지어 올려 드리는 질서의 현장이다’ 고 했고 마틴 로이드 존스는 ‘부흥이란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 아들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즉 예수님이 교회 생활의 중심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또한 세계적인 청교도 개혁신학자 제임스 패커(James I. Packer) 박사의 부흥에 대한 정의입니다 “성령과의 동행”(Keep in Steps with the Spirit)이란 책에서 “부흥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를 소생시키는 일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하나님의 교회에서 멀리 옮기시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마음에 찾아오시는 일이며,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혜의 주권을 드러내심”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즉 패커 박사는 부흥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19세기 미국부흥운동의 주역 찰스 피니는 그의 유명한 저서, <부흥론>(Lectures on Revival)에서 “부흥은 하나님을 향한 죄인들의 각성과 회심을 낳는 그리스도인의 첫 사랑의 회복이다”고 정의합니다.
마지막 한 사람만 더 소개한다면 스코틀랜드 헤브리디스의 부흥 주역이었던 던컨캠벨(1898-1973)은 ‘부흥은 하나님으로 충만한 공동체’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정의를 종합해 보면 부흥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입니다.
무엇보다도 부흥이 일어나던 때에는 반드시 회개와 성결과 겸손과 중보기도하는 통곡과 하나님과 그 말씀을 사모하는 강한 열망이 따랐습니다.
이 점에서 오늘 본문을 통해 왜 우리는 부흥을 열망해야 하는지를 보겠습니다.
1)회복시키기 때문입니다.(Restore)(1,3,4절-돌이키다))포로에서(1절), 죄에서(2절), 진노에서(4절)
여러분을 얽매고 있는 사슬이 무엇입니까? 예수님 밖에서 아직도 잃은 것을 찾으려하는 분이 있지 않나요? 그러나 예수님 밖에서는 회복이 안됩니다. 이는 마치 비행기 안과 밖의 차이와 같습니다. 비행기안에서는 가장 쾌적한 분위기와 안전한 비행중에 음식도 먹고 잠도자고 책도 보고 대화도 나누고 원하는 곳을 자유롭게 다닐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리창 하나사이를두고 그 밖은 비행기가 정상고도로 비행중일 때 밖의 온도는 평균 영하50도 이상입니다. 다시말해 살수가 없습니다. 주님 안에 사는 것과 밖에 사는 것의 차이가 그렇습니다.
2)돌아오는 것입니다(Return,Repent. 8절 망령된데로 돌아가지 말찌로다-주님께 돌아오라)
“말씀을 가지고 돌아와야 한다.” (호14:2)는 하나님 하시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 이번 부흥회에 말씀에 붙들려 헐떡일 만큼 되시기 바랍니다. 시119:131입니다.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열망)함으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3) 주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 일어납니다(Rejoice . 6절)
부흥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왜일까요?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상실하고 이런 저런 죄에 짓눌려 살다가 집단적으로 새로워지는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능력을 상실하고 세상적인 출세를 지향하며 살다가 만신창이가 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고 다시 살려 다시 새롭게 (Renew)하십니다.
이번 부흥회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흥은 개인적인 죄악만이 아니라 지역에 숨어 활동하는 죄 집단적인 죄, 민족의 죄를 진멸하는 부흥이 일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YES!부흥’의 저자인 프랭크 다마지오(Frank Damazio)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삶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만 제외하고는 어떤 방법이든지 다 사용하려고 하는 것 같다. 초자연적 사고 구조는 학문의 영역에서는 낯선 것으로 회피되어 왔다. 이 세대는 기독교 신앙을 '어마어마한 거짓말' 혹은 '고상한 사기' 정도로 여긴다. 우리 문화는 하나님을 모욕하고 성경을 전설쯤으로 평가절하하고, 천국과 지옥을 하나의 신화 정도로 생각하면서 영원에 관한 일들을 거부한다."고 지적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세상을 거부하십시오. 죄를 거부하십시오, 한 푼어치의 돈 때문에 주님을 거부했던 삶에서 돌이켜서 주님께 정면으로 안기십시오. 그 잘난 친구의 의리정도만도 못한 주님과의 친분관계를 다시 정리하고 주인 설정을 바로 하십시오. 이 부분이 잘 안되고 있거든 이번 부흥회에 여러분 인생을 거십시오. 한순간의 선택이 여러분 평생의 운명를 바꾸시도록 말입니다.
이 놀라운 존재혁명이 부흥회를 통해 일어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