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찾으면 살리라!(암5:1-9)
하나님의 백성이 성소에 올라가는 이유는 죄 용서받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모스 선지자는 이와는 반대로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라(4:4)”고 합니다.
이 말은“성소에 가서 죄나 실컷 지어라”고 빈정거리는 것입니다.
이미 그들이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가 아니라
자신들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변질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1-23절에서, 모든 절기와 성회를 기뻐하지 않으며,
그들이 드리는 제사와 찬양조차도 하나님은 받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제사를 지낼 때, 하나님 뜻대로 살겠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찾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아모스 보다 20여 년 뒤에 활동한 이사야 선지자 때에도 그랬습니다.
이사야 1장에 보면,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자식을 길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도 임자가 알고 나귀도 주인을 아는데,
내 백성은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탄식하시면서,
백성들에게 ‘제발 내 앞에 나오지 말라.
너희가 와봐도 마당만 밟을 뿐이니,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말라.
너희가 아무리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그 후 약 300년 뒤, 말라기 선지자도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더러운 떡을 드리고, 눈멀고 병들고 저는 것을 제물로 드리고서는
왜 우리를 축복하지 않습니까?’ 라고 불평하고 있다고 하십니다.
‘너희들을 보고 싶지 않으니, 제발 너희들이 오지 못하도록 성전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너희를 저주하고, 너희 얼굴에 똥칠을 하겠다’
라고 하십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서 제사 드리는 것은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예배 드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사 드리러 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제물을 얼마나 가지고 왔느냐?’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너희는 그 동안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느냐?’라고 묻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없이 살았습니다.
출세를 위해서는 거짓과 탐욕과 죄악으로 가득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 앞에 나오면서는 귀한 제물을 가지고 와서
용서해 달라, 축복해 달라고 하니 가증스러울 뿐입니다.
그래서 축복은 커녕, 그들을 저주하고 심판하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교회오기 전에 어떻게 살다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예배 드리러 교회 오는 것은 헌금을 드리러 오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님을 보고 친구들을 만나러 오는 곳이 아닙니다.
자기를 자랑하거나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 나오는 곳이 아닙니다.
예배 드리러 오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려고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도, 손으로 만질 수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 마음으로만 느끼고 보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 고 가르쳤습니다.
마음이 깨끗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죄를 안 지으면 될까요?
그런데 누구도 죄를 안 지을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평생 죄를 짓고 살게 되어있습니다.
다만 죄 용서를 받을 뿐입니다.
매일 시를 읽고 노래를 부르면 마음이 깨끗해질까요?
아니면 매일 운동을 하면서 땀을 뻘뻘 흘리면 깨끗해질까요?
도대체 어떻게 하면 마음이 깨끗해져서 하나님을 볼 수 있을까요?
그것은 단 한가지,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는 회개의 눈물입니다.
자, 우리 다같이 따라 해 봅시다.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만나 볼 수 있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평안해지고 기쁨이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하루 하루가 유쾌하고 예배시간이 기다려집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떠했습니까?
다음 성경 말씀(7,10-13)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은 바른 소리하는 자들을 싫어했습니다.
의인을 잡아가두고, 약한 자들로부터 뇌물을 받으며,
가난한 자들을 밟고, 부당하게 세금을 걷었습니다.
이럴 때는 바른 말을 해야 하는데, 지도자들이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오직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고는 고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7절에, ‘공법을 인진으로 변하며, 정의를 땅에 던졌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원래 백성들을 이롭게 하는 것인데, 도리어 백성들에게
독초가 되고, 하나님의 정의는 사라져버렸다는 것입니다.
법이라는 미명아래 백성들을 힘들게 졸라매었다는 것입니다.
공법이란 이웃과 사회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는 말씀을 이루는 것입니다.
정의는 사람이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마음이요, 성품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이웃 사랑도,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오직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서만 열심히 살아갑니다.
이웃이 죽든지 살든지, 심지어는 부모형제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재산 상속을 받으려고 빨리 죽기를 기다립니다.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각자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볼 수 있기 바랍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4:12에서‘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고 하신 뒤 5장에서는 슬피 울고 계십니다.
왜 그럴까요? 2,3절을 읽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뒤에 여호와의 날, 심판의 날에 닥칠 재앙 때문입니다.
애곡을 지어 부르면서 마치 이스라엘을 처녀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아직 시집도 안간 처녀가 쓰러졌는데, 일어나지 못하고 죽습니다.
막강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갑자기 몰락한다는 것입니다.
천 명이 살던 성읍에 백 명, 백 명 살던 곳에는 열 명만 남습니다.
그날에 온 백성들이 ‘아이고! 아이고!’ 하며 울게 된다는 것입니다
벧엘과 길갈에 올라가 제사 드려도 이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유다의 브엘세바에 가서 제사 드려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떠난 어떤 종교적인 열심도 받지 않으십니다.
이는 우리가 교회에서 단지 주일 성수를 하며, 십일조를 드리고,
봉사하는 종교적 열심만으로는 결코 구원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14,15절에 ‘악을 버리고 선을 구하며 공의를 세우라’고 하십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는 사람이 교회 일에 열심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이웃의 어려움을 돌보지 못하면서 십일조를 잘 드린다고 자랑한다면
누가복음의 ‘부자와 나사로 비유’에 나오는 부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다면 선택 받은 이스라엘은 영원히 망할 수 밖에 없을까요?
4,8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피할 길을 열어 놓으십니다.
그것은 바로 ‘만군의 여호와이신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찾고 만날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가로막힌 담을 허물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담은 바로 ‘죄’입니다.
이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할 때, 용서해 주십니다.
여러분, 지금 아무렇지도 않다고요?
모든 것이 평안하고, 우리 나라는 지금 세계에서 무역규모 11위이고,
올림픽에서도 금메달 13개로 7위를 했다고요?
과연 그럴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오히려 당시 이스라엘이 지금의 우리나라 보다 더 강국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콧김만 불어도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흔들립니다.
한국의 교회, 정치인들, 그리고 공무원들을 보십시오.
국민들은 6개월 전이나 지금이나 똑 같습니다.
하나님은 어제도 오늘도 주무시지도 않고 졸지도 않고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대통령 한 사람이 바뀌니 모든 것이 거꾸로 돌아가버렸습니다.
도무지 이 나라가 하나님의 공법과 정의가 있습니까?
한국 교회 안에, 기업들 안에, 우리가 살고 있는 파주, 탄현,
대동리 안에, 예수님을 믿는 가정들 안에, 공법과 정의가 있습니까?
부자들에게 세금 좀 더 내도록 했더니 다시 법을 바꾸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는 점점 가난해지고, 부자는 점점 부유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오신 것은 ‘서로 평균하려고 오셨다’ 했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다고, 내 앞가림 하기 바쁘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런 중에 하나님 나라에 우선순위를 두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그 위에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들을 더하실 것입니다.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하나님 앞에 나와 죄인임을 고백하여 마음이 깨끗하게 합시다.
예배는 예배당에서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고 있느냐를 보십니다.
이웃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돌보는 삶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공법이 물같이, 정의가 하수같이’ 흐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의인 한 사람만 있어도 그 땅을 멸하지 않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