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의 대상 (습1:1-6)
초점: 죄악 청결
요 약
여호와의 날은 심판의 날이다. 이 심판은 객관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초림과 성령 강림과 재림을 시사한다. 주관적으로는 성도에게는 지금도 죄를 척결하시는 은혜의 날이요, 현재도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공의의 나타남이요, 궁극적으로는 세상 끝 날에는 악인을 벌하시는 심판의 날이다. 이 날의 가장 큰 특징은 성도의 옛 사람에 속한 것은 철저히 멸하심이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의 욕망도 믿음 소망 사랑도 변화시켜 주신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이 날이 속히 임하도록 사모해야 한다.
(본 문)
1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아의 시대에 스바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었더라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3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 내가 사람을 지면에서 멸절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4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거민 위에 손을 펴서 바알의 남아 있는 것을 그 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 5 무릇 지붕에서 하늘의 일월성신에게 경배하는 자와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와 6 여호와를 배반하고 좇지 아니한 자와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를 멸절하리라(습1:1-6)
(강 해)
오늘은 구약 성경 스바냐에서 말씀을 드립니다. 본서는 선지자 스바냐가 여호와께 받은 예언입니다. 1절에 나와 있듯이 스바냐는 유다왕 요시야 때의 선지자입니다. 스바냐서의 주제는 "여호와의 날"입니다.
그럼 여호와의 날이란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가? 무엇을 가리키기에 이렇게 소선지서의 상당 부분이 이 여호와의 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가? 문자적으로는 바벨론을 통해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그 날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좀 더 본질적으로 이 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의 날이요 또한 성령 강림의 날이며 우주적으로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말4:5에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랬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초림을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에 대하여 마12:18에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했습니다. 여기 성령을 줄터이니 심판을 알게 하리라는 말씀을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심판은 자기 백성의 죄악을 제하시는 은혜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이 그토록 외쳤던 여호와의 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통해서 이미 임했고 또 우리에게 적용되기 위해서 성령으로 임하고 있으며 장차는 온전히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굽의 열 재앙이나 계시록의 인재앙 나팔재앙 대접재앙이나 바벨론의 멸망들의 두려운 말씀도 신령한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죄악을 청산하시는 엄청난 은혜를 암시하는 내용입니다.
스바냐 1장에 여호와의 날에 대한 묘사만도 12가지의 혹독한 묘사가 있는데 그러기에 이 은혜는 우리에게 더욱 복된 것입니다. 이렇게 현재적인 관점이 중요한 것은 성경이 존재하는 이유가 현재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추측이지만 천국에 가서는 성경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장차 나타날 우주적인 정화는 우리에게 소망은 될지언정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직접적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현재가 없이는 미래도 없을 것입니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서 오늘 본문은 전 우주적인 심판이 선포되는 내용입니다. 본문은 이 심판의 대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이 본문은 성령이 임하시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 정화의 역사가 나타나는가를 말씀해 줍니다.
1. 성령이 임하시면 모든 것이 변하게 됩니다.
2-3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 내가 사람을 지면에서 멸절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자연에 있는 모든 것이 그 심판의 대상이라고 말씀합니다. 본문은 노아 홍수를 연상시킵니다. 창세기 6장을 보시면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창6:7)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이처럼 이 우주에는 부정이라고는 찾아볼 수없을 만큼 온전한 정화가 존재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전에 제가 노아 홍수를 성령 세례와 충만의 관점에서 말씀 드린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말씀은 성령이 임하시면 전 인격적인 변화를 시사합니다. 한 개인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면 그만큼 은혜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때 인격 전체가 온전히 변화합니다. 그 변화란 인격 속에 악의 속성이 사라지게 됨입니다. 그래서 사4:4에 "이는 주께서 그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보니까 사람 짐승 새 고기와 아울러 거치게 하는 죄나 악인들에서 나타나듯이 선한 것과 악한 것 모두가 심판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을 아울러 진멸하신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느냐? 우리 인격의 여러 부분에서 옛창조에 속한 것은 의롭든 악하든 다 제거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깊이 유념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대상에는 노아 홍수 때는 그대로 두었던 물속의 고기까지도 그 대상입니다. 이는 가령 그것이 재능이나 타고난 하나님이 주신 은사적 장점일지라도 그것이 옛창조에 속한 것이라면 처리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은혜생활하면 옛날에 소질 있고 잘했던 것 못하는 수도 있고 그러나 또 다른 놀라운 진짜 소질들이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이처럼 성령이 임하시면 예수 영접하여 중생하여 신분이 바뀌고 권세가 바뀌고 지성만 아니라 감정도 의지도 바뀌고 재능도 개성도 인격의 모든 속성이 바뀝니다. 이런 은혜인데도 우리가 무관심한다면 큰 죄악이 될 것입니다.
2. 성령이 임하시면 욕망의 변화가 찾아오게 됩니다.
4절에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거민 위에 손을 펴서 바알의 남아 있는 것을 그 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 했습니다.
여기 바알의 남아 있는 것이란 바알 숭배의 잔재가 좀 남은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바알을 이 지상에서 흔적조차도 없게 사라지게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럼 바알이 뭡니까? 욕망의 신입니다. 인간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만든 종교가 바알종교입니다. 그래서 이 종교는 인간의 모든 욕망 충족을 그 목표로 합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날에 이 바알의 잔재마져도 사라지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이 임하시면 이런 종교적인 이방신을 물론 마음의 탐욕까지도 사라지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갈5:16에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했습니다. 이 성령을 좇는다란 성령 충만 받을 때 성령이 앞서 행하사 말씀대로 살아지게 되는 현상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그마림과 그 제사장이란 먼저 그마림이란 '우상숭배하는 자들'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그 제사장들'은 놀랍게도 여호와의 제사장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여호와를 향한 자기 본연의 사명을 망각하고 우상 숭배에 가담한 것입니다. 이것들까지도 진멸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것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탐욕이 존재하는데 은혜로서 그 탐욕마져도 처리하심을 가리킵니다. 마치 아합왕 시대에 이스라엘이 여호와와 바알을 겸하여 섬긴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은혜 받지 못하면 믿는다는 이름만 있지 하나님을 구하지 않으며 타락한 제사장들처럼 욕망을 구하는 삶이 됩니다.
참고로 이스라엘의 타락의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타락은 선지자들과 제사장과 왕의 타락에 있습니다. 선지자의 타락이란 오늘날로 말하면 말씀의 타락이요, 제사장의 타락이란 기도의 타락이요, 왕의 타락이란 마음의 타락입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왕이 타락하면 그 때는 끝입니다. 이처럼 마음이란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마음의 타락은 말씀생활과 기도생활이 타락할 때 옵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만 잘 되어진다면 마음은 타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선지자의 타락이란 말씀을 사모하지 않거나 변질된 말씀을 믿는 것이요, 제사장의 타락이란 기도하지 않거나 기도는 하되 잘 살고 잘 먹는 육신의 욕망을 위한 것을 가리킵니다. 이 말씀과 기도가 잘 되면 마음은 거룩해집니다. 왜냐하면 딤전4:5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신령한 것에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서 말씀과 기도는 항상 강조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은혜가 임하면 마치 두 마음을 품은 제사장이 심판됨 같이 이 두 마음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겔11:19-20에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죄악에 갈등하지 마시고 은혜의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3. 은혜를 받으면 믿음 소망 사랑도 변화되어집니다.
5-6절에 "무릇 지붕에서 하늘의 일월성신에게 경배하는 자와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와 여호와를 배반하고 좇지 아니한 자와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를 멸절하리라" 했습니다.
여기 네 종류의 사람들이 소개됩니다만 내용별로 간추리면 약 세 종류의 사람입니다. 내용별로 분류하면 먼저 지붕에서 하늘의 일월성신 즉 해와 달과 별들에게 경배하는 자는 무엇을 가리키느냐 소망의 변질을 가리킵니다. 또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는 사랑의 변질입니다. 왜냐하면 여기 말감은 자식을 태워 바치는 몰렉신으로 극도의 헌신을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배반하고 좇지 아니한 자와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란 행위가 없는 것이므로 믿음의 변질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멸절하여 주신다는 것은 성령으로만이 비로소 믿음 소망 사랑의 온전한 신앙의 사람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을 하지만 은혜 받기 전에는 온전한 신앙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전에는 분문의 배경과 같이 각인의 심령은 온통 우상과 완악함으로 가득한 심령일 수밖에 없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는 이 날이 있었으므로 놀라운 변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불신앙도 죄악도 사라지고 연약함도 인색함도 사라지고 의와 진리와 사랑의 거룩한 심령들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여호와의 날이 와야 합니다. 그래서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은혜의 날이로다 했습니다. 이 은혜의 심판을 거부하면 진정 고통받는 날이 올지 모릅니다. 우리 모두 더 이상 죄악에서 방황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시는 귀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