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요9:1-12
1. 오늘 본문의 내용은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눈을 뜨는 표적을 체험한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셨습니다. 물론 제자들도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았습니다.
꼭 같은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맹인을 보시는 시각과 제자들이 보는 시각이 달랐습니다.
제자들의 관심은 이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인가 하는데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 부모니이까?"
제자들은 이 맹인이 당하는 고난의 원인을 죄의 결과라는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소위 인과응보 사상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20:5에 보면 십계명의 제2계명에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는 말씀에도 하나님의 형벌이나 축복이 그 부모에게 달려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에 반대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즉 에스겔 선지자는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겔18:20)고 하면서 부모의 죄 때문에 자녀가 벌을 받는다는 생각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죄 때문에 고통이 온다는 것은 당시 일반 사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전통적인 사상에 바탕을 둔 제자들의 생각을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9:3).
예수님은 다른 사람의 고난을 보면서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십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가 아무리 우리의 사명을 깨달아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 사명을 따라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명을 깨닫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그 사명을 깨닫고 실제적으로 그 일을 행하여야 합니다. 주어진 시간이 있습니다. 일할 수 없는 밤이 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으시고 진흙을 이겨서 맹인의 눈에 발라 주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맹인된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었습니다. 그랬더니 밝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치 엘리사 선지자가 나병에 걸렸던 아람 군대의 장관 나아만에게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고 말씀했던 장면을 연상하게 됩니다.
실로암 이란 연못은 베데스다 연못과 함께 예루살렘에 있는 두 개의 못 중에 하나입니다.
"실로암"이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매우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요6:57)라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0:21에 보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하셨습니다.
2. 오늘 본문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이 무엇입니까?
1)나면서부터 맹인 된 사람은 비단 길가에 앉아 구걸하던 그 사람만이 아니라 당시의 바리새인들도 영적인 맹인이라는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맹인 되었던 사람을 예수님께서 고쳐 주신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맹인이었던 사람에게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며 서로 분쟁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다시 맹인 되었던 사람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너는 그 사람을 어떠한 사람이라 말하느냐?" 그러자 그 사람은 "선지자입니다" 고 대답했습니다. 그 후에 그 맹인 되었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요9:35). 즉 네가 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느냐는 질문과 같습니다. 이 때 그 사람은 "내가 믿나이다"(요9:38)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두 눈을 뜨고서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을 믿지 못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영적인 맹인이었습니다. 바리새인중에 한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가 "우리도 맹인인가?"고 자문했습니다.
참 맹인은 누구입니까? 세상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맹인의 종류가 많이 있습니다. 육신의 눈이 보이지 않는 육신적 맹인이 있습니다. 글을 보면서도 글을 읽을 수 없는 문맹이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없는 영맹도 있습니다. 요사이는 컴퓨터를 못하는 사람을 콤맹이라고 합니다.
2) 예수님은 이 맹인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맹인에게 고난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고난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고난 자체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고난의 의미를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맹인의 고난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맹인에게 들려주신 말씀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죄 때문에 맹인이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난이 저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맹인에게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맹인에게 믿음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발라 주실 때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실 때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맹인은 지체하지 않고 실로암 연못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연못에서 씻고 눈이 밝아져 보게 되었습니다. 육신의 눈을 떠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맹인에게 참다운 믿음을 가지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선지자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표적을 행하신 근본적 목적은 바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고 그를 믿어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3. 우리는 어떻게 이 말씀을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습니까?
1)사람들은 고난, 고통의 문제를 생각할 때 누구 때문인가 질문합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과거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누구 때문에 이런 고통이 오게 되었는가를 찾아내려고 합니다. 분쟁이 있는 곳에 가면 모두가 누구의 잘못 때문인가를 찾고 고소하고 고발합니다.
요사이 한국에서도 누구의 죄 때문인가를 과거에서 찾으려고 하는 일 들 때문에 혼란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분쟁이 있는 곳이 사회든, 교회든, 가정이든, 혹은 개인적인 관계에서든지 우리는 누구 때문인가를 묻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 지를 찾아야 합니다.
맹인으로 탁월한 삶을 살고 있는 강영우 박사가 있습니다. 그의 책 「내 안에 성공을 찾아라」는 책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실명과 가난은 내 인생의 걸림돌이 아니었습니다. 성공의 디딤돌이었습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나는 가난합니다." "나는 배우지 못했습니다." "나는 장애인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이라 해서 모두 부자였던 것도, 명문학교를 졸업했던 것도, 육신이 강건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내 안에, 그리고 당신 안에 성공의 씨앗은 이미 심겨져 있습니다. 이제 당신 안의 성공의 씨앗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정성껏 가꾸십시오. 성공은 당신의 것입니다.
2)예수님은 우리가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에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요9:4)고 하셨습니다.
회개할 기회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회개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회개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헌신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헌금할 기회가 있습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일해야 합니다. 그 기회를 놓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일 할 수 없는 밤이 옵니다. 전도할 기회가 있습니다. 전도 할 수 없는 밤이 옵니다.
3)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는 말씀을 구체적으로 실천합시다.
실로암이란 "보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실로암 연못은 바로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는 말씀은 "내게로 와서 죄 씻음을 받고 정결케 되어 영적인 눈을 뜨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는 말씀이 이 맹인에게 복음이 되었습니다.
이 맹인은 이 복음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이 전해야 될 복음은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