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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빌립보서 4장 10-23절
제 목 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9]
여러분에게 천 오백년 된 나무의 사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자료를 찾다가 이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정말 엄청난 크기였습니다.
이 나무는 그 긴 시간동안 추운 겨울을 견디고 더운 여름을 견디며 성장했을 것입니다.
새들이 와서 둥지를 틀고, 벌레들이 득실거려도 꿋꿋하게 견디며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기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나무는 살기 위해서 시련을 견딘 것뿐인데 사람들은 크게 성장한 나무를 아끼며 죽지 않도록 보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무가 어렸을 때는 누군가 벌레를 잡아주기를 바랬고, 새들을 쫓아주기를 바랬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열매를 맺어도 그 작은 열매를 기뻐하며 눈길을 주는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첫 번째 겨울을 맞이했을 때 죽을 힘을 다해 추위를 견뎠습니다.
겨울이 지나자 싹이 나오는 고통을 감당해야 했고, 여름이 되자 내리쬐는 태양을 감당하기 힘들어 가지들이 말라 죽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무는 자신이 살 수 있는 길은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려 물을 찾는 것뿐이라는 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또 다시 겨울이 찾아왔을 때 겨울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매년 겪어야 하는 시련이라는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매년 춥고 더운 시련이 그를 기다렸고, 감당하기 힘든 폭풍과 홍수가 그를 힘들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어떤 혹독한 겨울이 오고 말라버릴 것 같은 태양이 내려쬐어도 나무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 모든 외적 고통을 이겨낼 힘이 그에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굵은 아름드리나무는 폭풍이 칠 때 작은 나무들보다 더 큰 바람을 맞지만 곁에서 성장하고 있는 작은 나무들이 폭풍에 뽑혀 나가지 않도록 굵은 가지로 덮어주는 여유까지 생겼습니다.
폭풍은 큰 나무를 미친 듯이 몰아치지만 잔가지가 부러질망정 넘어지지 않는 큰 나무로 성장했기에 우뚝 서서 버틸 수 있었습니다.
긴 세월과 혹독한 시련과 깊이 내린 뿌리가 그의 능력이 되어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힘들었을지, 얼마나 포기하고 싶었을지 그것은 나무만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세월의 흔적을 가득안고 마음껏 자태를 뽐내는 거대한 나무를 보며 사람들은 감탄했습니다.
이 나무를 어떻게 하면 끝까지 지킬 수 있을 것인지 고민을 하며 보호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뿌리를 내리고 성장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나무처럼 하늘을 향해 곧게 성장하면 모두에게 소중히 여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하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땅속에 깊이 내린 신앙의 뿌리는 보이지 않지만 그 뿌리 때문에 하늘로 높이 솟은 여러분의 믿음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을 보일 때 소중히 여김을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안에서는 영적으로 평안하지만 세상에서는 분명 큰 나무처럼 어려운 시련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안식을 주고 싶은 곳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이기 때문에 육을 가지고 사는 한 고난이 있습니다.
인생이 힘겹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누구나 겨울을 맞을 것이고 뜨거운 태양을 만날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중에 더러는 뿌리를 내리지 못해서 말라죽는 나무도 있을 것이고, 폭풍을 견디지 못하고 뿌리 채 뽑히는 나무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험난한 세상의 길을 걸어가는 것도 힘겨운데 성도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말씀의 뿌리까지 내리고 지켜야 하기 때문에 더욱 담대하게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세상사람들처럼 세상에만 뿌리를 내리는 것은 모래에 심겨진 나무처럼 폭풍이 불면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은 옥토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어떤 폭풍속에서도 굳게 서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은 이 진리를 알지 못합니다.
겉으로 보면 모든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같기 때문입니다.
사후세계는 그의 육신을 벗어야만 영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성령과 함께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누구나 인생은 힘겹습니다.
이런 시련을 이기고 성장한 나무를 사람들이 보호하는 것처럼 아름드리로 성장한 성도는 하나님께서 보호하십니다.
성장한 나무가 이제 막 땅에 심겨진 어린 나무앞에서 폭풍을 막아주는 것처럼 성숙한 성도는 영혼구원을 위한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명이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부탁하신 사명입니다.
세상의 폭풍은 한 그루의 나무라도 뽑아 버리려고 하지만 성도들은 그리스도안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헌신하는 과정을 통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게 되는데 이것은 경험에 의해서 배우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동일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깨닫는 지혜이기도 합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은 배가 불러도, 배가 고파도, 풍부와 궁핍에 처해도 그 상황을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능력은 바로 그리스도안에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자기에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바울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풍파가 몰아쳐도 결국 이 짧은 생이 끝나면 하나님나라에 가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이기 때문에 의연하게 믿음을 지키며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도들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바울의 고백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원하는 것을 갖고 싶을 때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고백을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지 못하면서 교회만 다니면 노력하는 것 없이 무엇이든지 이루어주실 것이라는 생각은 철저한 인간의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자들의 믿음과 지식과 능력을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육적인 열심히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기도와 선한 행위를 하나님께서 보실 때 노력하는 것으로 보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난과 연단이 있을지라도 복음을 전하겠다는 믿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인내했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니 그 인내까지도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거친 파도를 보면 두렵고 떨리지만 자신이 그 위를 날고 있는 새처럼 세상바다와 상관없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바울은 세상위를 날고 있는 새처럼 세상속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세상에서도 긴 세월을 살아온 어른들은 모든 것을 경험합니다.
당장 죽을 것처럼 힘든 시간도 겪어보고,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행복한 순간도 만나지만 뒤돌아보면 그 모든 것이 인생속에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기차처럼 머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마음이 앞서서 당장 눈앞에 있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뿌리를 내리는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놓치면 다시는 못 잡을 것 같고, 지금 갖지 않으면 다시는 소유하지 못할 것 같지만 눈으로 보는 세상은 모두 헛된 것이며, 뿌리를 깊이 내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뿌리를 내려야만 세상을 능히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성숙하지 못한 성도는 세상의 젊은이와 같습니다.
내가 교회 일을 다 감당하는 것 같고, 내 의견이 모두 옳은 것 같아서 내 뜻대로 해야 할 것 같고, 다른 성도들이 하는 일은 답답하게만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은 말씀안에서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목적을 어디에 두고 일을 하느냐에 따라 그 성도가 성숙한 성도인지 아니면 연약한 성도인지 구분이 되는 것이지 일을 빨리 많이 했다고 해서 교회가 그 사람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든 하나님의 목적과 동일한 영혼구원을 위해서 일해야만 훗날 하나님을 만났을 때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세상사람은 이렇게 마실 물이 많은데 설마 그리스도에게 뿌리를 내리지 않았다고 해서 말라죽겠느냐고 말하겠지만 심판의 강렬한 태양이 내리쬘 때 세상의 시냇물이 모두 마르게 되면 그리스도의 풍성한 물에 뿌리를 내린 나무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생명의 물에 꿋꿋하게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사람이 바로 사도바울입니다.
여러분도 바울처럼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인생을 믿음으로 세워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나무중에 예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수 있도록 십자가가 되어준 나무가 가장 귀한 나무일 것입니다.
그 나무는 예수님의 뒤에서 주님을 묵묵히 받치고 하나님의 섭리에 동참하며 모든 것을 감당했습니다.
성도들은 고난의 자리에서도 주님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 흔들림 없이 설 수 있는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하늘에 소망을 둔 사람은 이 세상이 헛되고 헛된 안개와 같은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비록 고난이 올지라도 내 곁에 있는 연약한 성도를 돌볼 수 있는 여유와 평안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14-15절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빌립보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바울은 빌립보교회가 처음사랑을 회복하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복음의 시초라고 한 것은 바울이 빌립보에서 마게도냐로 떠날 때가 선교여행 초반이기 때문에 빌립보교회 외에는 다른 어떤 교회도 그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을 도왔던 빌립보교회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세상의 모든 힘을 배설물로 버린 바울의 사명에 동참한 유일한 교회였습니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길을 떠나는 바울에게 이들의 사랑은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매를 맞아가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을 때 빌립보성도들은 바울이 굶지 않고 춥지 않도록 쓸 물건을 보내주었습니다.
물론 바울은 장막 짓는 일을 스스로 하면서 돈을 벌었지만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돈을 번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방인에게 복음이 처음 선포될 때 여유 있는 사람들보다는 노예나 서민들이 복음을 영접했기 때문에 그들이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고 자기의 것을 나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빌립보성도들이 바울을 위해서 기꺼이 여러번에 걸쳐서 물질적인 도움을 주었다는 것은 그들의 신앙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안에서 큰 사랑을 베푼 성도들이 인간의 의를 버리지 못하고 의견을 달리하며 분쟁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던 바울은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보내어 처음 사랑을 회복하도록 권면하였습니다.
바울의 편지를 받은 빌립보성도들은 회개하고 하나가 되는 첫사랑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어쩌면 자신의 편지를 보고 그들이 회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편지를 통해 미리 칭찬하고 감사하며 축복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누군가에게 충고를 했을 때 그 사람이 분명히 내 말을 들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는 것은 대단한 기분 좋은 일이며 멋진 일입니다.
그만큼 상대에게 신뢰를 쌓아야만 얻을 수 있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상대에게 돌이키도록 회개를 촉구했을 때 상대가 즉시 돌이킨다면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겠지만 당장 순종하지 않아도 그 마음에 권면의 말이 남아서 계속 그를 괴롭힐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언젠가는 돌아올 수 있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여러분의 권면을 흘려듣거나 듣기 싫어한다면 여러분은 영적으로 성숙하기 위해서 더 노력해야 하고, 상대는 하나님께서 주신 한번의 기회를 놓친 불행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과거에 하나님만 바라보며 충성하신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성경도 열심히 읽고 기도도 열심히 했던 그 시간을 기억하고 열심히 해 보려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잘 안 되기 때문에 언제나 맘속으로 그 때를 그리워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연약한 육신을 쳐서 날마다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게으른 자리에 앉기 시작하면 절대로 영적으로 성숙할 수 없기 때문에 믿음안에서 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를 중단하고, 운동을 중단하고, 선한 행동을 중단하면 다시 열심히 하던 때로 돌아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일이나 세상일이나 스스로 열심을 내지 않으면 성장하지 않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이 다시 일어서도록 권면한 것입니다.
이처럼 영육간의 일은 겉으로 보이는 것은 똑같지만 마지막 맺는 열매가 영생과 영벌로 다를 뿐입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가 첫사랑을 회복하는 것이 바로 자신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봉사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1절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힌 상태이기 때문에 심히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성도들에게 짐이 지우지 않기 위해서 장막을 짓는 일을 했고 한번도 개인의 일을 위해서 도움을 청한 적이 없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어떠한 형편에 처했든지 나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들이 돕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먼저 밝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도왔기 때문에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미 바울의 신앙은 이 세상은 자신이 거할 나라가 아니라 하늘나라가 영원한 나라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어떤 환경을 만나도 하나님의 보호안에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빌립보교회가 지금까지 사마리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한 봉사중의 하나로 바울의 선교를 도왔기 때문에 다시 하나님께 충성하는 봉사의 자리로 돌아가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이 내가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한 말은 너무 힘들지만 견딜만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에게 육적으로 당하는 고통은 이미 고통이 될 수 없고, 그 고통마저도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한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해서 영혼들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이 받는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 바로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는 말입니다.
바울의 편지를 받은 빌립보교회는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선교를 위해 헌신하기로 하였습니다.
그것을 본 바울은 자신에게 물질을 보내주었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다시 붙든 그들의 믿음에 감사하였습니다.
자녀들이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공부할 때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기쁜 부모의 마음과 같은 것입니다.
바울은 17절에 내가 빌립보교회에 봉사의 첫사랑을 회복하라고 말하는 것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교회가 분쟁을 그치고 하나님께 믿음을 드려서 축복받기를 구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마음은 어린 아들에게 작은 사탕 한 알을 받으면서 그 아들이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아버지의 마음과 같은 것입니다.
그 사탕이 아버지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탕을 통해서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는 아들을 보는 것이 너무 기쁜 것이고, 아버지가 사다준 사탕을 다시 내어줄 수 있는 그 마음이 기특하여 가장으로써 다시 힘을 내는 기쁜 마음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성도들이 보내준 물건을 보면서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회복한 것이 너무 기뻤고, 그들이 분쟁을 그치고 서로 화합했다는 것이 너무 기뻤습니다.
15절 주고받는 내 일에 참예했다는 것은 거래계좌를 말하는 것입니다.
거래계좌처럼 상업적인 용어를 사용한 것은 하나님안에서 사명에 따라 바울처럼 복음을 전하는 사람도 있고, 세상에서 물질을 버는 사람도 있으며, 복음과 영혼구원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은 주안에서 하나이므로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곤경에 처한 바울을 물질과 기도로 돕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주고 받는 즉 거래계좌라는 말을 사용한 것입니다.
이것은 목회자뿐 아니라 성도들 역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물질과 영적인 기도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빌립보교회가 바울이 쓸 물건을 보낸 것은 바울보다 복음을 위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바울이나 빌립보교회가 모두 주안에서 동일하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한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 역시 목사를 위한 것도 아니고 교회를 위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인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헌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받았기 때문에 진리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믿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와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헌신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하게 알고 헌신해야만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고, 올바른 믿음으로 인한 상급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19절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바울은 빌립보성도의 어려움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헌신하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육적인 필요를 채워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성도들은 믿음이 성숙한 만큼 육적인 축복을 통해서 더 많은 일을 감당하도록 도우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는 성도들이 물질로 인해 혹은 세상의 문제로 인해 복음의 길이 막히지 않도록 하늘의 맛나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을 바울은 만났기 때문에 성도들의 헌신이 상달될 것을 안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길어야 80을 사는 인생들은 빈손으로 세상에 왔습니다.
이 세상을 하나님께 빌려서 사용하다가 생을 마치면 빌려 쓰던 모든 것을 제자리에 놓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그토록 멋지게 살아보고 싶은 세상입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육신은 세상에 그대로 벗어놓고 영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곳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성도들에게 안개와 같은 세상과 바벨탑과 같은 인간의 의 때문에 서로 다투지 말고, 하나님나라 시민으로써 성숙한 모습을 보여 달라고 한 것은 그것이 축복안에서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을 떠나 돌아갈 사람들입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고, 어떤 이는 암흑속으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살았느냐에 따라서 육을 벗고 세상을 떠나는 순간 분명하게 갈라질 것이며, 후회하며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더라도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바울처럼 나를 돕는 것이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씀하실 수 있는 충성된 모습을 보이고 계십니까?
교회에 돈을 내라는 것이 아니라, 목사를 대접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찾아서 하시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진리의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말씀을 연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고, 여러분은 교회가 더 많은 영혼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달란트만큼 일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각자 하는 일이 달라도 하나님안에서 하나입니다.
이제 빌립보서 강해를 마치고자 합니다.
9번의 빌립보서 강해를 통해서 바울의 간절한 마음이 여러분에게 전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의 마음이 곧 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것을 안 빌립보성도가 믿음을 회복한 것처럼 9번에 걸친 강해를 통해 여러분의 믿음이 주안에서 회복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스도만 바라보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하나님께는 놀라운 축복을 받으시고 믿음안에서는 어린 신앙을 돕는 바울과 같은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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