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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동역자가 되라
골로새서 4:7-18
7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8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9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11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12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13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14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16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17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18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신앙인의 삶의 특징은 그리스도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의 삶입니다. 특히 교회 중심의 삶은 그리스도 중심, 성경 중심의 신앙을 몸으로 실천하는 모습입니다. 물론 이 때 말하는 교회는 그리스도 중심이요 성경 중심적인 참된 교회를 의미합니다. 즉, 복음 중심이며 성경 중심인 교회에서 교회를 중심하여 삶을 사는 것이 모범된 신앙 생활을 살아가는 비결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내가 속한 나라와 가정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속한 교회입니다. 교회는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요 영혼의 안식을 얻는 곳으로서 영원한 멸망과 구원이 결정나는 곳이며 또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살아계신 주 여호와 하나님의 편에 서는 것도 교회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나아가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자라날 수 있는 힘을 얻는 곳도 교회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영혼 구원이 얼마나 중요하며 또한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내려오는 풍성한 꼴을 먹으며 평안을 누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아실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업터를 위한 좋은 자리와 교육을 위한 대학, 그리고 직장을 위해서는 어디든지 전국, 나아가 온 세상을 찾아 헤매입니다. 하지만 참된 교회를 찾아 이사를 다니며 온 마음으로 교회를 소중히 여기는 자들은 많지 않습니다. 지금 이 땅에는 배교에 속한 교회도 많고,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지 않는 교회도 많으며 나아가 이단 교회들도 많은데 아무 교회나 다니는 사람들이 사실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말씀을 알고 복음을 접하게 되면 바르고 참된 교회를 소중히 여겨 온 마음을 다해 바른 교회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바른 교회에서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 생활을 할 때 그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일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며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자라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바른 교회에 속한 성도들의 말과 행동과 가치관을 통해 주께서 택한 자들이 주의 교회로 모이게 됨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거듭남의 역사와 함께 신자들의 영적 성장은 그리스도와 성경 중심인 교회를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의 삶을 진단해 봅시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마음과 시간과 경비를 주로 어디에 사용하고 있습니까?
성도의 우선권은 무엇보다 먼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는데 있어야 합니다. 이때 성도들이 가장 큰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게 주의 몸된 교회입니다. 그 이유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의 나라와 주의 뜻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해 세우신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대하는데 있어서 자기 기분을 따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기분이 나쁘다고 하여 교회를 멀리해서도 안되고 기분이 좋다고 해서 무분별하게 교회를 섬겨도 안됩니다. 우리는 오직 더욱 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바른 교회에 대한 꿈을 꾸며 그러한 교회를 중심으로 하여 살아가면서 그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이 확장될 수 있도록 수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일꾼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골로새 교회를 세우기 위해 희생하고 노력한 일꾼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복음으로 인하여 바울을 만났던 사람들인데, 이들 모두는 교회를 사랑하였고 복음을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하였던 사람들입니다. 이에 바울이 몇몇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두기고(7-8절), 오네시모(9절), 아리스다고(10절), 마가(10절), 유스도(11절), 에바브라(12절), 누가(14절), 데마(14절),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15절), 눔바(15절), 아킵보(17절) 등이 있습니다.
먼저 두기고에 대한 바울의 소개를 들어봅시다.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골 4:7-8).
두기고는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보내는 골로새서를 전해 준 사람입니다. 두기고는 에베소에 보내는 바울의 편지도 전달한 사람입니다. 에베소서 6장 21절과 22절을 보면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리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리리라. 우리 사정을 알리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그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엡6:21-22)고 증언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중요한 편지를 보낼 때 아무에게나 심부름 부탁을 하지 않습니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을 통해 중요한 서신을 보냅니다.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전하는 바울에게 있어서 그 서신을 두기고에게 부탁했다는 사실은 두기고는 바울이 가장 신뢰할 수 있었던 사람이란 뜻입니다. 즉, 두기고는 바울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고 바울의 사역을 돕는 자였습니다. 바울은 그를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군이요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고 소개합니다.
먼저 “사랑을 받는 형제”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누군가가 다른 어떤 사람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는 때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두기고에 대해 형식적으로 ‘사랑을 받는 형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진심으로 이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즉, 두기고는 바울과 매우 특별한 관계에 있던 사람입니다. 두기고는 바울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형제였으며 또한 여러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형제였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에게 복음 사역자인 제가 특별한 사랑과 감사를 느끼는 것처럼, 바울은 두기고를 향해 특별한 감사와 사랑을 느꼈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 바울은 두기고를 “신실한 일꾼”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 뜻은 '믿을만한 봉사자'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일꾼’이라는 말은 원어로는 ‘디아코노스’인데 집사라는 뜻을 지닌 영어 단어 ‘deacon’이 이 헬라어에서 나왔습니다. 그 원어의 뜻은 봉사자입니다. '봉사자'라는 말은 돈이나 어떤 댓가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감사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자가 ‘신실한 일꾼’, 즉 ‘디아코너스’ 또는 ‘집사’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 모두가 ‘집사’가 되기를 원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보혈에 대한 감사한 마음 때문에 주의 몸된 교회를 섬기며 봉사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교회를 섬기는데 있어서 다른 동기가 있으면 안됩니다. 다른 동기를 가진 자들은 보통 당을 지어 교회를 파괴하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를 섬기나니”(롬 16:18). 하지만 바울이 보기에 두기고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복음 사역의 일을 맡아 감당하는 자였습니다. 따라서 복음 및 주의 교회를 섬기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신실한 봉사자였던 것입니다. 두기고는 아무런 조건 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빚진 심령을 가지고 복음 전파 및 하나님 나라를 위해 교회 일을 맡아서 신실하게 섬기던 집사였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목회를 하면서 발견한 것은 주의 나라의 일을 믿고 맡길 ‘신실한 일꾼’들이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교회를 섬기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보혈에 대한 감사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임을 발견하였습니다. 즉,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 받고 싶은 마음, 목사에게 인정 받고 싶은 마음, 교회 공동체 내에서 권력과 이득을 취하고 싶은 마음 등이 주된 동기인 것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기분에 따라 봉사의 자세가 하늘로 올라갔다고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 중에는 잘못된 성품과 기질 탓도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깨닫지 못했거나, 또는 하나님 나라가 그들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자들은 돈과 명예와 지위와 연관된 문제라면 발벗고 나설텐데, 순수하게 복음을 위해 봉사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주님의 교회에서 ‘신실한 일꾼’으로 서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점이 참으로 안타까운 것입니다.
그러나 두기고는 바울이 진심으로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훌륭한 봉사자였습니다. 앞으로 우리 모두가 두기고와 같이 주께서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봉사자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아무런 대가나 보상 없이 오직 단 한가지 이유, 즉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감사하며 사랑하는 그 마음 하나로,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봉사하는 그러한 ‘디어코너스’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바울이 두기고를 표현할 때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뜻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성령 충만한 상태를 말합니다. 두기고는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바울과 함께 복음 사역을 이루어 가는 동역자였습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기름부어 따로 세우신 복음 사역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 중심, 그리스도 중심, 그리고 교회 중심을 강조하기 마련입니다. 구원 받은 주의 백성들은 이러한 주의 종들과 함께 동역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며 복음 사역자와 동역할 수 있게 된다면 이는 하나님이 대단히 큰 축복을 베푸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두 번째로 소개하는 인물은 오네시모입니다.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9절).
오네시모 역시 두기고와 같이 '신실하고 사랑받는 형제'였습니다. 오네시모는 골로새 교회에 아주 잘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는 그의 주인 빌레몬 때문에 소문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무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로마 감옥에서 사도 바울을 만나 복음을 듣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빌레몬서에 오네시모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빌 1:10-12). 바울은 오네시모를 가리켜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 복음을 전하여 얻은 영적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되 아버지의 심정을 지닌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 4:15). 바울은 복음을 통하여 영적인 자녀들을 낳았습니다. 오네시모 역시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의 교회의 지체가 된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오네시모는 구원을 받기 전에 무익한 사람이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손해만 끼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빌레몬의 노예였지만 선한 주인을 속이고 도망친 불의하고 무익한 노예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변화하였습니다. 바울이 그에 대해 증거합니다.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다"(몬 1:11). 바울은 오네시모의 구원 전과 구원 후를 말합니다. 구원 받은 후의 오네시모는 바울에게 "신실하고 사랑받는 형제”였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구원을 받은 자의 특징은 하나님의 나라에, 가정에, 교회에, 사회에 유익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과 주의 나라에 요긴한 존재가 되는 것이 복음으로 인한 변화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오네시모에게 나타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변화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 특히 우리 주인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 유익하고 하나님 나라에 요긴한 주의 신실한 자녀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은 또 다른 두 사람을 더 소개합니다.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골 4:10-11).
마가 요한은 마가복음을 썼기 때문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는 바나바의 조카입니다. 마가의 어머니와 삼촌 바나바는 하나님 나라에 소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초대 교회가 마가의 가정 때문에 설 수 있었습니다. 그 덕에 마가는 바울의 1차 선교여행에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브로에서 배를 타고 밤빌리아로 갈 때 마가는 밤빌리아에서 선교여행을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 후에 바울과 바나바가 다시 제2차 선교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이때 바나바는 마가를 다시 데리고 가자고 주장하고 바울은 극렬하게 반대합니다. 결국 이 문제로 바나바와 바울이 갈라서게 됩니다(행15:36-39). 그러나 먼 훗날 바울은 마가 요한을 버리지 않고 그를 다시 불러 복음 사역에 중요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딤후4:11).
오늘 본문은 아리스다고와 마가와 유스도는 바울의 ‘위로’가 되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 세 사람을 소개할 때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아리스다고와 마가, 유스도는 할례파에 속하는 유대인이었습니다. 할례를 자랑하던 유대인들은 노골적인 반기독자(反基督者)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은 바울과 함께 고통을 나눌 정도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이야말로 바울에게 특별한 위로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은 할례파 유대인으로써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저주받은 자로 알고 있던 할례파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들이 나오게 되었으니 얼마나 큰 위로였겠습니까? 어떻게 이러한 변화가 가능합니까? 오직 복음 때문입니다. 그들 역시 바울처럼 복음으로 인해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이 된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때문에 이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동역자들”이 된 것입니다. 이들은 할례파 유대인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복음을 위해 헌신된 동역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바울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 사람입니다.
이제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여성 한 분을 소개합니다. 그 이름은 눔바입니다. 바울은 눔바를 소개하면서 골로새교회와 인접해 있는 라오디게아의 교회를 언급합니다. 라오디게아는 골로새로부터 약 20km 떨어진 곳입니다. 15절을 보면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라고 말합니다. 그 당시 교회는 지금 우리처럼 교회 건물이 없었습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대부분의 교회는 가정에서 모이는 교회였습니다. 빌립보의 루디아의 가정 교회(행16:15, 40), 고린도의 가이오의 가정 교회(롬16:23),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가정 교회(고전16:19), 마가 요한의 가정 교회 등등입니다. 또한 바울의 편지로 볼 때 골로새에는 눔바의 가정 교회 외에 다른 여러 가정 교회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네시모의 주인이었던 빌레몬의 집에도 가정 교회가 있었습니다(몬1:2).
아무튼 라오디게아에 눔바라는 여성의 집에 가정 교회가 있었습니다. 눔바가 누구인지 그 정보는 이 구절 밖에 없기 때문에 자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눔바라는 여성은 자기 가정을 개방하고 그 장소를 예배처소로 사용하게 하였습니다. 이 일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눔바와 같은 거룩한 열정을 가진 성도가 자기 가정을 교회에 내어 줌으로 인해 오늘날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게 되는 그루터기들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가정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초석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되면 눔바처럼 하나님 나라에 영원히 기억되는 복된 가정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믿음에서 떨어지는 아킵보에게 경고합니다. 물론 사랑에서 나오는 경고입니다. 17절을 보면,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아킵보는 빌레몬의 가족이었습니다(몬1:2). 아킵보는 바울에게 "함께 병사된 자”라고 불릴 정도로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기에게 맡겨진 직분을 잘 감당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가장 짧은 말로 아킵보에게 충고합니다. “주 안에서 받은 직문을 힘써 이루라.”
정리합니다. 신앙 생활의 비결은 그리스도 중심의 교회, 성경 중심의 교회에서 교회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섬기는 것이 신앙 생활의 비결입니다.
그래서 개혁주의는 직분을 매우 귀중하게 가르쳤습니다. 그 이유는 복음의 역사는 교회의 직분을 통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이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성경은 교회의 직분을 은혜의 방편으로 선포합니다.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딤전 3:1). 이 말씀을 보면, 교회의 직분을 잘 감당하는 자에게 두 가지 은혜가 약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아름다운 지위를 얻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자신만이 아는 하나님과의 깊은 체험의 비밀, 믿음의 담력, 믿음의 비밀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즉,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잘 섬기면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 믿음이 크게 자라난다는 뜻입니다.
오늘 바울이 언급한 이 사람들은 영원히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그들의 영광이 영원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새하늘과 새땅이 이 땅에 완전하게 임한 후에도 이들의 이름은 영원토록 기억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나이는 어떠한지, 용모와 외모는 어떠한지, 공부를 얼마나 했는지, 돈을 얼마나 버는지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평가하시는 단 한가지는 그들이 얼마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그러기에 주의 복음을 위해 어떻게 주의 나라와 주의 몸된 교회를 섬겼는가 하는 것입니다.
교회 내에서의 섬김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다른 방법으로도 주께 사랑의 표현을 할 수 있지만, 절대적으로 반드시 주님께 사랑의 표현을 해야 하는 곳은 바른 복음을 전하는 교회입니다. 그리스도 중심, 성경 중심의 삶을 산다는 것은 성령으로 충만한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교회를 중심으로 산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한국 땅에서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를 시작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 때문에 여신 이 복된 교회에 크신 축복과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이 위대한 일에 동참하는 여러분들과 가정에 영원한 영광이 주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두 구절을 우리 모두에게 드립니다. 첫째는, 야고보서 5장 19-20절입니다. 다 함께 읽읍시다.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그러나 돌아서게 하여 어디로 가게 할 것입니까? 그 영혼을 붙들고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할 수 있는 참된 교회가 없다면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일은 완성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구절은 다니엘 12장 3절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많은 사람들을 참된 교회로 인도하는 것은 하늘의 별처럼 영원히 빛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나온 바울의 동역자들처럼 오직 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의 몸된 교회를 중심으로 섬기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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