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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디모데전서 6:11-16
1.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공포의 대상으로 느끼는 병 가운데 '치매'라는 병이 있습니다.
이 병은 암보다 더 무서운 질병으로 인식되어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임종이 가까워 오면서 걸리는 병이었지만 지금은 50대에도 많이 생긴다고 합니다.
치매라는 병이 무서운 것은 자기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배우자나 아들, 며느리도 알아보지 못하고 집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옳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를 알지 못하여 엉뚱한 일을 하는 것이 치매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치매에 걸리지 않고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날 육체적인 치매가 무서운 것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만 그러나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영적인 치매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누가 창조했는지를 모르거나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영적인 치매에 걸린 자들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 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로마서 1:21-23)
사람의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미련한 마음으로 어두워져서 창조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섬기지도 못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지배를 하고 이용을 해야 하는 피조물을 하나님처럼 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엉뚱한 짓입니까?
이것이 바로 영적인 치매에 걸려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입니다.
2.
오늘 우리 성도들도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 성도들을 향하여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교우 여러분, 이 표현대로 우리는 최고의 영광스러움과 거룩함으로 창조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사람인 줄 믿습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언급이 몇 번 나오는데,
먼저는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이자 출애굽의 영웅인 모세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리어졌습니다.(출33:1)
사무엘 상 9장 8절에서는 사무엘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호칭하고 있고, 열왕기상 17장에서는 엘리야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느헤미야서에서는 다윗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호칭하고 있는데요,
이런 사람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에게 붙잡힌바 되어 전적으로 헌신하는 하나님의 귀한 종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또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호칭이 얼마나 귀하고 영광스러운 것인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이 신약에 와서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구원을 입은 모든 성도들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말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고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대신 돈을 주인으로 섬겼고 마귀와 사탄을 주인으로 섬기며 사탄의 사람으로 마귀의 사람으로 살아갔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의 하나님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마귀와 사탄의 저주가 떠나게 되었고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리어진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얼마나 큰 영광인지 모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삼아주신 주님께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리어진 것은 축복이요 영광일 뿐 아니라 또한 우리에게 귀한 사명과 책임을 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름만의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고 우리의 삶과 행동에서 하나님의 사람다운 모습이 보여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의 황제였던 알렉산더 대왕이 한참 이름을 떨치고 있었을 때 그의 수하가운데 똑같은 이름을 가진 부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부하 알렉산더는 그의 삶이 그렇게 건실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근무 태도가 바르지 못했고 항상 말썽을 피웠고 술에 취하기 일쑤였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대왕 알렉산더가 어느 날 그 부하를 찾아와서 엄중하게 말을 합니다.
“네 이름을 바꾸든지 아니면 네 행실을 바꾸든지 하라.”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지 못하면 하나님에게 큰 누를 끼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게 되면 하나님은 큰 영광을 받으실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어질 것입니다.
3.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기대와 사람들의 기대를 채우면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먼저는, 피할 것을 피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가장 우선적인 일은 피할 것을 피하는 생활입니다.
사람에게는 가까이 해야 할 것이 있고 피해야 할 것이 있는 줄 압니다.
사람도 가까이 해야 할 사람이 있고 멀리 해야 할 사람이 있고요, 오락도 가까이 해야 할 것이 있고 멀리 피해야 할 오락이 있습니다.
음식도 그렇고 사업도 그렇고 책이나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잘 분별하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성경에 보면 피할 것을 피하지 못했다가 어려움을 당한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삼손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사였지만 가까이 해서는 안 될 여자를 피하지 못하고 가까이 하다가 두 눈을 뽑히는 안타까운 일을 당했고,
이스라엘의 유명한 성군이었던 다윗도 목욕하는 여인을 피하지 못하고 계속 쳐다보다가 큰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하와는 가까이 해서는 안 될 선악과를 가까이 하다가 선악과를 따 먹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도 피할 것이 참으로 많이 있는데,
오늘 사도 바울은 돈을 사랑하는 것을 피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고 믿음에서 떠나게 하기 때문에 악을 떠나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돈을 사랑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험에 빠진 사람들 가운데는 “나는 괜찮다. 나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교만한 생각을 갖다가 잘못된 길로 들어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나는 괜찮다’는 교만한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넘어졌고 삼손이 넘어졌고 하와가 넘어졌고 가롯 유다가 넘어졌습니다.
내가 안 넘어간다는 것은 교만한 생각일 뿐이요 자신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고 넘어짐의 앞잡이입니다.
교만하지 마시고 겸손하여 여러분들이 피해야 할 것을 피하는 지혜를 발휘하셔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경건한 삶을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좇을 것을 좇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앞부분에서 피할 것을 피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만 그런 소극적인 삶이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피할 것은 피하면서 아울러 좇을 것을 좇고 따를 것을 따르는 적극적인 삶이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람으로 합당하게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인생은 ‘내가 무엇을 좇느냐,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잠언 29장 19절에서 “방탕을 좇는 자는 궁핍함이 많으리라”고 한 것은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우리의 인격이, 우리의 삶이 결정됨을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좇아야 할 덕목은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입니다.
이런 삶을 살아갈 때 거기에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W.B 프리맨이 쓴 ‘기도’라는 책에 보면 열 살 정도 된 작은 소년이 브로드웨이 가의 신발가게 앞에 서 있었습니다.
맨발인 소년은 치아를 부딪칠 정도로 심하게 떨면서 진열장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측은하게 지켜보던 한 부인이 소년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꼬마야! 진열장을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는 이유라도 있는 거니?"
"저는 지금 하느님에게 신발 한 켤레만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중이에요."
부인은 소년의 손목을 잡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부인은 우선 여섯 켤레의 양말을 주문하고, 물이 담긴 세숫대야에 수건을 빌려 소년의 발을 정성스럽게 씻긴 뒤 양말을 신겨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부인은 신발 한 켤레도 사주었습니다.
그녀는 “네가 더 편안해지기를 바란다.”고 말한 후에 가던 길을 가기 위해 몸을 돌리려는 순간,
소년이 부인의 손은 잡고는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면서 이렇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아줌마가 하나님의 부인이에요?"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 받은 성도 여러분, 이런 신앙의 덕목에 얼마나 집중하며 그것을 추구하는 삶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문제는 이런 신앙의 덕목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추구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열심을 내지 않습니다.
힘쓰지 않습니다.
간절한 바람이 없습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세상도 좋고 하나님도 좋고, 물질도 좋고 믿음도 좋고, 신앙의 뚜렷한 목표가 없습니다.
목표가 없기에 집중하지도 못하고 열심을 내지도 못하고 그러니 결국 인격의 열매가 없는 명목상의, 이름만의 그리스도인들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계3:15) 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다운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애쓰고 힘써야 합니다.
열심을 품어 주님을 섬기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이 안타까운 말씀을 듣고 열심을 내서 신앙의 덕목을 추구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 인격을 쌓는 일에 힘쓰시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사도 바울은 신앙생활을 운동경기와 싸움으로 많이 비유하고 있는데요, 정말 신앙생활을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살기 원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 원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는 이유는 그것을 방해하는 악한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선민으로 살기 위해서 가나안 원주민을 다 몰아내어야 했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대적들과 싸워서 이기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육신의 욕심과 싸워야 하고 세상의 유혹과 싸워야 하고 악한 마귀와 싸워야 합니다.
유혹을 물리치고 악한 세력과 싸워 이길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성도들이 싸우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시험한 마귀는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며 "내게 엎드려 절하면 이 모든 영광을 네게 주겠다."고 유혹합니다.
그럴 때 주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희 하나님만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사탄을 호통 치면서 물리치셨습니다.
이렇게 싸워야 하는데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런 마귀의 유혹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타협을 한다는 것입니다.
무서워서 타협하고 귀찮아서 타협하고 좋은 게 좋지 않으냐 하면서 타협을 한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 말씀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에게는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울 왕을 죽여야 내가 산다는 인간적인 마음과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절대 건드릴 수 없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두 가지 마음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 두 가지 마음과 평생 싸우면서 인간적인 생각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길을 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사탄의 유혹에 대항하여 평생 싸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승리하여 인간 구원의 십자가를 질 수 있었습니다.
싸움의 특징은 내가 이기든지 아니면 내가 지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내가 이기지 못하면 상대방이 이기는 것입니다.
내가 지배하지 못하면 내가 지배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싸우지 않으면 내가 지는 것이고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싸우지 않으면 적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싸움이 아니라 믿음의 선한 싸움을 과감하게 싸우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도와주실 것이고 여러분들은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영생을 취하여야 합니다.
“영생을 취하라” 피할 것을 피하고 좇을 것을 좇으며 싸울 것을 싸워야 합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영생을 취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영생을 취한다는 말은 ‘영원한 생명을 굳게 붙잡으라.’는 말인데요,
이것은 그냥 확신하는 정도가 아니라 견고하게 붙잡고 그 영생의 삶을 실제적으로 누리고 살아가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영생의 삶은 우리가 죽어서 하늘나라에 갈 때만 누리는 그런 삶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누리며 살 수 있는 삶입니다.
그 삶을 누가 누리며 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주 예수와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입니다.
그런데 영생은 가지고 있으나 영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직도 세상적인 것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영생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구원받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선물로 받았음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도 영생의 삶을 누릴 수 있음을 믿으시고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시므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생을 소유할 뿐 아니라 영생을 즐기시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4.
서울대 의대학장을 지낸 김승진 박사의 수필집을 보면 어떤 환자가 치료받고 퇴원하면서 그림 한 점을 기증했다고 합니다.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고 값비싼 것이라 하여 그림의 내용은 잘 모르지만 벽에 잘 걸어 두었다고 합니다.
3년 뒤, 그 사람이 병원을 다시 찾았을 때 벽에 걸린 그 그림을 보자마자 화를 내면서 그림을 거꾸로 걸어둔 것을 책망했다고 합니다.
그 동안 수천 명의 사람이 병원을 다녀갔지만 그림이 거꾸로 걸려있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치매에 걸려 인생을 거꾸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창조자를 잃어버리고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대신 피조물을 하나님으로 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인생을 거꾸로 살아가고 있고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살다보면 자칫 우리가 그런 삶을 살아가기가 너무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오직’ 우리는 이 ‘오직’이라는 말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더라도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영적인 치매에 걸려 거꾸로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오직’ 우리는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피할 것을 피하고 좇을 것을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생을 취하는 삶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 아니라 점도 없고 흠도 없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 신랑 되시는 주님이 재림하실 때 기쁨가운데 주님을 맞이하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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