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사소하지 않은
클레어 키건/소설『이처럼 사소한 것들』/다산책방/2026
이 대 영
❙우리에게 거시사보다 미시사 또는 일상성이 더 가치 있고 흥미롭게 다가올 때가 있다. 왜냐하면 거시사는 사기(史記)의 모양새를 갖추지만, 미시사 또는 일상성은 ‘우리’의 삶을 오롯이 담은 그릇이기 때문이다. 클리어 키건(Claire Keegan)은 우리가 일상에서 간과하기 쉬운 사소한 일이나 감정을 포착하여 그것의 소중함을 메시지로 전한다. 그는 ‘사소함’이란 단어의 의미가 무색하게 사소함의 가치를 각인시키는 작가다.
작가는 이미 소설 『맡겨진 소녀』에서, 생경한 환경을 대하는 소녀의 순수함과 아픈 감정을 추스르는 어른의 원숙함을 사랑으로 빚어내 우리의 시선을 모은 바 있다.
아일랜드 출신인 작가는『푸른 들판을 걷다』,『너무 늦은 시간』,『남극』 등의 소설로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 그의 소설은 뭉클한 언어가 소외되는 현실에서 독자의 감성을 두드리는 매력이 있다. 이 소설도 그러하다.
❙소설「이처럼 사소한 것들(Small Things Like These)」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1985년 겨울,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뉴로스를 배경으로 한다. 뉴로스 타운에는 사람을 만나고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광장이 있고, 근처에는 배로(Barrow) 강과 부두가 있다. 강 건너 언덕 위에는 검은색 대문을 단 수녀원이 있고, 그 옆에 세인트마거릿 학교와 기숙사 건물이 있다. 수녀원 정원에는 호랑가시나무를 비롯한 관상목과 크고 오래된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이 소설에는 뉴로스의 거리풍경과 시민들의 생활을 통해 심각한 경제 불황에 처한 아일랜드의 상황이 그대로 묘사된다.
시내에는 “떠돌이 개가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물을 찾고, 튀김 봉지와 빈 깡통이 비바람에 이리저리 날려 구르고, 느지막이 술집에서 나온 남자들이 비틀비틀 집으로 걸어가는” 풍경의 연속이다. 실업수당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추운 집에서 외투를 입고 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자들은 아동수당을 받으려 우체국에서 줄을 선다.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런던이나 뉴욕으로 떠난 시골 목장에는 젖소를 돌보는 사람조차 없다. 뉴로스에서는 조선소가 폐업하고 비료공장 등 산업체에서 감원 및 해고가 이어지며 상점들마저 문을 닫기 시작했다.
작가는 1980년대 아일랜드의 심각한 경제 불황과 높은 실업률로 어려움을 겪는 실태를 담담하게 서술한다. 여기에 검은 배로 강, 흐릿한 별, 떠돌이 개, 굴러다니는 빈 깡통, 까마귀 떼 등은 우중충한 도시 이미지를 드러내는 소재들이다.
빌 펄롱은 베로강 부두 근처 야적장에서 석탄과 목재를 파는 30대 후반의 남성이다. 그에게는 아내 아리린과 다섯 명의 딸이 있다. 비록 혹독한 시기이지만, 그는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이 잘 커서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학교인 세인트마거릿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뒷바라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
필롱은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미시스 윌슨'의 도움으로 그녀의 집에서 자라 가장이 되었다. 필롱은 크리스마스 풍경을 보며 미혼모의 자식으로 놀림의 대상이 되곤 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당시 사회는 미혼모를 '타락한 여인'이란 낙인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자신과 어머니의 삶을 돌본 윌슨 부인에 대한 고마움을 필롱은 잊지 않는다.
어느 날, 필롱은 석탄을 배달하기 위해 수녀원을 방문한다. 이곳 수녀원은 직업학교와 세탁소도 운영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곳 직업학교가 일종의 모자 보호소로,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가난한 집 출신의 미혼모들이라고 했다. 이들은 속죄하는 의미로 노동에 종사하고, 아이들은 외국으로 입양되어 수녀들이 돈을 챙긴다고 했다. 필롱은 집에 돌아와 수녀원 경당에서 만난 마루를 닦던 아이들과 자물쇠로 채워진 문, 담에 박혀 있는 유리 조각 등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다. 필롱은 수녀원에서 본 것을 아내 아일린에게 말하지만, 그는 냉정함을 유지한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p.56.)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p.57.)
“미시즈 윌슨이 당신처럼 생각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 안 들어?” 필롱이 아일린을 쳐다보았다. “그랬다면 우리 어머니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p.57.)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거기 일에 관해 말할 때는 조심하는 편이 좋다는 거 알지?(p.105.)
아이린과 필롱 그리고 식당 주인인 미시즈 케호의 대화 속에서, 우리는 가톨릭교회의 절대적 권위와 휭포, 정부와 대중의 외면, 그리고 지향해야 할 방향성을 찾을 수 있다. 아일랜드 사회에서 막대한 권위를 행사하던 교회는 당시에 법적으로 금지된 이혼과 낙태법을 이용하여 미혼모와 아이들의 인권과 노동력을 착취했다. ‘막달레나 세탁소’와 같은 시설이 그것이다. 이 시설은 가톨릭교회가 아일랜드 국가와 함께 운영하고 지원하는 곳이기에, 그곳의 부조리를 아는 많은 이들조차 침묵하고 비리를 묵과했다. 이 소설에서는 수녀원의 세탁소가 이를 대신한다.
필롱이 수녀원을 다녀온 후 자책하는 것은, 단지 한 소녀의 구원과 관련한 문제만은 아니다. 필롱은 그들을 통해 자신이 살아온 삶을 반추하며, 어떻게 살아갈까를 고민한다. 그리고 우리 역시 필롱과 함께 선택의 고민 앞에 서게 된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사회적 멸시를 받으며 성장한 필롱에게 수녀원에 갇힌 사람들은 결코 타인이 아니다. 필롱은 그가 ‘운 좋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과 어머니를 돌봐주었던 미시즈 윌슨의 사랑이 있었음을 상기한다. 그리고 아버지임을 숨기며 그를 후원해주던 농장 일꾼 네드가 있었음을 기억한다.
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미시즈 윌슨이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결국 그곳에 가고 말았을 것이다.“(p.120.)
필롱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지극히 ‘사소한 것’임을 안다. 그러나 그 사소함이 모여 그를 변화시키고 성장시켜 오늘의 그가 있음을 안다. ‘사소함이 모여 삶을 형성한다는 것’ 이것이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필롱은 결국 수녀원으로 향해 자신의 아이를 찾아달라던 맨발의 여자를 구해 집으로 향한다. 그러면서 그는 ‘대가를 치르게 될 테지만’이라는 전제 속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고 느낀다. 필롱의 그 벅찬 기쁨이 곧장 우리에게 달려오는 것 또한 이 소설의 매력이다.
❙나는 이 소설이 시적이라든가 언어의 구조가 섬세하다는 평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원본과 번역본, 언어의 차이는 있겠지만 ‘~고’로 이어지는 복문의 이어짐과 섬세한 느낌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단조로운 일상의 움직임과 분위기, 다양한 사람들의 평범한 대화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의 현실을 재현하며 사회적 문제를 상기시키는 서사의 힘에는 공감한다.
여하튼, 이 소설이 독자의 이목을 끄는 것은, 사소함에 가치를 부여하고 손해를 감수하며 부조리에 맞서는 주인공의 도덕적 실천에 있다. 성장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자신이 받은 사랑은 결국 망설임을 압도한다, 그러한 사랑은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작은 배려와 관심으로 이루어진다.
누군가에게 세상으로 걸어 나갈 문을 열어준다는 일, 그것도 권력에 맞서 위험을 감수하며 도덕적 의지를 실천하는 일은 부조리한 사회를 바로잡는 단초가 된다. 미시즈 윌슨이 필롱의 삶을 바꾸듯, 필롱이 한 소녀의 인생을 바꾸듯, 우리의 작은 실천은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의 사소함이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지, 어떤 일을 이루어나갈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이제, ‘하찮다’라거나, ’사소하다‘라는 단어가 자꾸 목에 걸린다. 그것은 이미 사소하지 않은 단어가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