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시의 새로운 장르 , 디카시
-그 미답의 지평과 정체성
2. 시대사적 환경과 인터넷 문학의 길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세계는 이제 현실과의 실험적 조우를 넘어 우리 삶의 세부적 영역까지 침투하는 명실상부한 사회적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인터넷 쇼핑, 인터넷 뱅킹, 재택 강의, 사이버 대학 등 온갖 상거래와 금융거래에서부터 유아교육과 최고 고등교육이 모두 가능한 인터넷 교육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이는 오늘날 현대인의 원활한 사회활동을 위한 일상적 아이템으로 기능한다.
그뿐이 아니다. 이웃사촌도 옛말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 우리는 수많은 '일촌'들과 인터넷상의 우정을 나눈다. 바야흐로 수천년을 일관해 온 인간관계의 패러다임이 인터넷으로 인하여 새 길을 열고, 그에 무관하거나 무심했던 사람들까지 이 상황으로부터 절연될 수 없도록 부지불식간의 압박을 받고 있는 중이다.
20세기 후반에 하나의 징조로 시작되었던 이 시대적 흐름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되었고, 문학의 경우에 있어서도 기존의 문학관 안에서 인터넷 상의 문학행위가 중요한 화두이면서 동시에 실질 세력으로 등장한 지 오래되었다. 다시 말하면, 인터넷 문학이란 대상을 두고 그것의 문학성이나 미학적 가치를 가늠하며 이를 문학의 본류에 편입시킬 수 있는가를 따지던 태도는 이미 오래 전에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한 형국이다.
인터넷 문학과 사이버 문학에 대한 연구 성과들을 꾸준히 축적해 온 소장 연구자들도 적지 않으며, 인터넷을 통해 대중의 인기를 구가해 온 아마추어 작가들의 작품이 베스트 셀러가 되어 서점가에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놀란 만한 일이 아니다. 이 유형의 문학이 양산되는 것은 하나의 문화현상 혹은 문학현상으로 자리잡았으며, 따라서 이제는 그 가치 여부를 논하는 기초 수준의 논쟁을 넘어서 이러한 문화현상을 어떻게 규정하고 이해하며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를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고찰해야 할 지점에 이르렀다.
그러나 인터넷 상의 사이버 문학, 하이퍼텍스트 문학, 디지털 문화 등이 과거의 문학 및 문화의 종말이나 완전히 새로운 문학 기술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문학적 패러다임의 새로운 이행 혹은 기존의 문학 이론에 대한 철학적 재해석의 성격을 갖는다. 문학이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양식으로 변화해 왔다는 것은 문학사의 기본 명제에 속하거니와, 이 새로운 문학의 유형 역시 그와 같은 문학사의 근본적인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철학, 물리학, 생물학, 공학 등의 분야에서 엄청난 변화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이른바 디지털 혁명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그 패러다임 전체의 변혁에 속하는 문제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인터넷 사이버, 하이퍼텍스트, 디지털 등의 개념과 적용에 관한 새로운 면모를 살펴보는 데 그치지 않고 이 분야와 관련을 갖는 철학, 기호학 등 일반 인문학적 연구를 병행하여 21세기의 시대정신에 걸맞은 문화적 시각을 확립하는 것이 요구되는 때다.
김종회교수의 디카시 강론 [디카시, 이렇게 읽고 쓴다] 중에서
2024. 9. 11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