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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건하게 하시기를
살후2:16-17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을 위한 중보기도입니다.
그런데 이 두 절을 통해 우리는 중요한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을 동격으로 표현>.....
앞서 말씀 드렸습니다만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에 보낸 편지는
신약성서 가운데 가장 먼저 쓰인 글들입니다(51년 경).
아직 복음서도 쓰이지 않은 때이니 바울의 편지는
기독교 신앙의 표준이 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에 대한
분명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16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주’와 ‘그리스도’로 분명히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 하나님을 동격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살전1:1, 3:11).
원어에서 주어 복수임에도 단수 동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고백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분명한 고백>....
그리고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분명한 고백이 담겨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하나님의 능력이나 성품이 아니라 우리와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고백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분이십니다.
16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사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의 배경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깔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더라면 창조 이후 인간은
살아남아 있을 리가 없습니다.
멸망을 해도 벌써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더라면 그리스도도
오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괜히 힘들게 당신의 하늘 보좌까지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더라면 그리스도
안에서 겪는 고난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저 자신의 길로 가 멸망하도록 내버려 두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이기에 책망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은혜의
사건의 배경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롬5:8절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우리와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고백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분이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위로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16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성도님들은 무엇으로 위로를 받으십니까?
우리는 다 연약한 사람들이기에 위로가 필요합니다.
믿는 사람들도 어떤 때는... 나쁜 생각을
가질 수도 있으며, 어떤 때는 낙심할 때도 있으며,
어떤 때는 힘들 때도 있습니다. 이때에 사람들은
위로가 필요합니다.
어떤 때는 가족이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돕는 배필로 하와를 만드셔서 서로 위로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범죄의 원인 역시 그 가족으로
인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족의 위로는 꼭 필요하지만 영원한 위로는
되지 못합니다. 언젠가는 늙고 병들어 떠나게 됩니다.
어떤 때는 친구가 위로가 됩니다.
마음에 꼭 맞는 친구가 있으십니까?
항상 성도님들의 넋두리를 들어주고....
성도님들의 편을 들어주는 친구가 있습니까?
그러면 행복합니다. 위로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도 가룟 유다가
있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에게도 위로와 힘이 되어주는 많은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골4:10-11>
10절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11절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그러나 동시에 그를 괴롭게 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딤후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4-15절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15절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심지어는 반려견이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모아 놓은 재산이 위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위로는 되지 못합니다.
한 순간에 날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위로’가
되어 주시는 분이십니다(고후1:3-4, 7:6).
특히 보혜사 성령님을 예수님을 대신하여
보내주심으로 우리의 위로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보혜사란 우리의 위로자, 중보자, 돕는자,
상담자, 탄원자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 성령님의 오심을 명두에 두시고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14:16-18>
16절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절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한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일시적인 위로자가 아니라 영원한 위로자가 되십니다.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실 뿐만 아니라 ...
우리가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우리와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고백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분이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위로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소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16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위로’가 현 상태에 대한 것이라면 ‘좋은 소망’은 장래의 것입니다
(딛2:13 ‘복스러운 소망’, ‘벧전1:3 ’산 소망‘.)
‘좋은 소망’이 무엇인지 이미 14절에서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살후2:14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 한 마디로 ‘부활의 소망’, ‘영생의 소망’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그 뜻을 더욱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지금 비록 고난과 박해를 앞에
두고 있지만 견딜 수 있는 것은...
‘좋은 소망’, 곧 부활과 영생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 너무 쉽게 변질된다는 것입니다.
가난을 미덕으로 삼던프레몽트르 수도원의
재정이 마침내 바닥이 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수도원의 뾰쪽 탑이 무너져 내리고 창문들은
깨어져 나갔지만, 그런 것을 손볼 여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더욱이 깨어져버린 종마저도 다시 살
형편이 되지 못해,.....
신부님들은 나무로 딱따기를 쳐서
기도시간을 알리곤 했습니다.
마침 그 수도원에는 고셰라는 이름을
가진 수사가 있었는데,......
그가 하는 일이란 고작 젖소 두 마리를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가난에 찌들릴대로 찌들린
수도원의 재정 상태를 늘 가슴 아프게 생각하던
고셰 수사는 수도원장의 허가 하에, 젖소 돌보던
일을 중단하고 ‘불로장생주’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어릴 때 자기를 키워 준 양부모가 불로장생주의
전문가였기에, 그때 어깨 너머로 배운 것을 기억해 가면서
6개월 동안 밤낮으로 애쓴 결과, 마침내 고셰 수사는
불로장생주를 빚는 데 성공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고셰 수사가 빚은 불로장생주는
프랑스 전역으로 불티나게 팔려 나갔고,...
가난에 찌들리던 프레몽트르 수도원은
하루아침에 돈방석에 앉게 되었습니다.
수도원의 건물은 웅장하게 고쳐졌고,
뾰쪽 탑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졌습니다.
그 모든 것이 고셰 수사 덕분이었습니다.
그 빛나는 공적으로 인해 고셰 수사는
신부님의 서품을 받게까지 되었습니다.
수도원의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신부님들이 모두 모여 경건하게
저녁미사를 드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누군가가 뛰어들어 괴성을 지르며
혀 꼬부라진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술을 마셨던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 자기 자리를 찾지도 못하고
비틀거리는 고셰 수사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불로장생주가 잘 빚어졌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매일 그 술을 시음해보다가,
그만 알콜 중독자가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경건하게 미사를 드리던 다른 신부님들은,
술주정을 하는 고셰 수사를 향해...
'사단아 물러가라!'고 외치면서 그를 밖으로
끌어내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신부님들은 다시 경건하게 미사를 계속했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 수도원 원장은 고셰 수사에게
앞으로는 성당 출입을 삼가고....
주조장에서 불로장생주만 빚으면서 거기에서
혼자 기도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마음씨 착한 고셰 수사는 수도원장의 명령을 따랐습니다.
매일 술을 빚고 그 술을 시음해 보면서 주조장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도원장이 주조장을 찾아 왔을 때,
고셰 수사는 수도원장에게 눈물로 간청했습니다.
이제 술을 그만 만들겠으니,
예전처럼 젖소 돌보는 일을 하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수도원장은 고셰 수사의 간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그리고는 자비로운 주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지실 것인즉,...
아무 염려 말고 소신껏 수도원을 위해 열심히
불로장생주만 빚으라고 도리어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고셰 수사는 계속해서 술을 빚었고,
그 술은 날마다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갔고,
수도원은 쉴 틈 없이 돈을 긁어모았습니다.
그리고 매일 미사가 끝날 때에 수도원장은
이렇게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 수도원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사랑하는
고셰 신부를 위해 기도합시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미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고셰 수사를 위하여 간절히 축복기도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기도소리를 들으면서
고셰 수사의 영혼과 육체는 ....
주조장 안에서 서서히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상은 프랑스의 작가 알퐁스 도테가 쓴
'고셰 신부의 불로장생주' 란 꽁트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이 지녀야할
본래의 목적(소망)을 상실할 때, .....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 사람들과
아무런 차이가 있을 수 없다는 것....
오히려 이 세상 사람들보다도
더 추해질 수 있다는 것이.......
알퐁스 도테가 이 꽁트를 통해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불로장생주를 통한 현실적인 이익과 편리함이.....
그들의 마음에서 ‘좋은 소망’을 빼앗아 가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부활과 영생의
‘좋은 소망’이 여러분의 마음에 가득하십니까?
아니라면 무엇이 명료했던
‘좋은 소망’을 빼앗아 갔습니까?
마지막 날까지 ‘좋은 소망’을
잘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맺는 말씀 – 굳건하게 하시기를>,,...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마음을 담아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17절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선한 일과 말’은.......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
그리고 좋은 소망을 주신 은혜에 답하기 위해
우리 성도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사명을 뜻합니다.
인간 행동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어귀입니다(골 3:17 참조).
그리스도인다운 행실을 뜻하는 말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함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와 사랑이 무엇인지 온전히 기억할 때....
우리는 끝까지 변질되지 않고 영적인 싸움을
싸울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37절에서....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선언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하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혜사’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서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변질되지 아니하고
주님의 선한 일꾼으로 끝까지 굳게 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