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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강해(13)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본문 : 살전 3:1-5
<참지 못하여>....
뜻하지 않게, 유대인의 핍박으로 데살로니가를 떠나게 된 바울은 ....
마치 어려움에 처한 어린 자식과 놔두고
피신한 어머니와 같았습니다.
자신은 피신했지만 자기 대신 야손과 몇몇
성도들이 붙잡혀 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이 전한 복음으로 인해 고초를 당하고 있는
성도들을 두고 피신한 바울의 심정이 어떠하였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다시 찾아가 그들과 대면하여....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세우기를 소원하였습니다.
그래서 2장 17절에서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길을 막아’ 사실상
재방문이 어려워졌습니다.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오히려 그들을
보고 싶어 하는 바울의 마음은 점점 더 불살라 올랐습니다.
그 마음이 오늘 본문 1절에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1절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생각하고.”
5절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이니.”
자신이 떠난 후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들이 과연 믿음을 지키고 신앙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는지에 대한 그의 관심을 거의 억누를 수 없는 정도였습니다.
그는 데살로니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꼭 알아야만 했습니다.
<디모데의 파송>...
그래서 바울은 신실한 일꾼을 데살로니가에
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2절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디모데는 바울이 1차 선교여행 당시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습니다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을 기록한 사도행전
14장을 보면, 바울이 루스드라를 방문해
복음을 전한다. 이때 제자들이 많이 생겨났는데,
디모데도 그 가운데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 후 디모데는 성령 안에서 많은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아마도 그의 어머니 유니게와 외할머니
로이스의 믿음의 영향을 크게 받았음이 틀림없습니다.
그 후 바울이 제 2차 전도여행을 시작하면서
다시 루스드라를 방문하였는데 그 때 이미
디모데는이미 그 주변 믿음의 형제들에게
인정을 넘어 칭찬을 받는 상태였습니다.
그런 디모데를 만난 바울은 무척 기뻐했을 것입니다.
더욱이 바울의 2차 선교여행에 동행하면서,
바울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영적 스승인
바울로부터 사도적, 선교적 삶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지극 정성으로 섬겼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를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라고 칭찬합니다(고전16:10, 빌2:19-22).
여기서는 형제라고 표현했지만 훗날 디모데에게
개인 편지를 쓸 때는....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딤후1:2),
“하나님의 사람”(딤전6:11)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를 믿고 사랑하고 신뢰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바울의 입장에서 그런 디모데를
자신을 돕는 자로 꼭 곁에 두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1절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생각하고.”
바울과 실라만 남고 디모데는 데살로니가로
기꺼이 파송하였습니다.
이것은 바울로서는 큰 희생입니다.
한 사람이 아쉬운 선교여행입니다.
마음이 맞는 동역자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얼마나 힘이 됩니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
바울은 언제나 자기 자신의 안위나 바람보다
언제나 성도들의 안녕을 우선순위에 두었습니다.
이는 주님의 일꾼이 본받아야 할 삶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목회자들은 교회가 목회자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목회자가 교회를 위해 있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디모데의 파송 목적>............
바울은 디모데는 데살로니가 교회로 파송한
분명한 목적을 이렇게 밝힙니다.
첫째,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믿음을 굳건하게 하고
위로하기 위함입니다.
2절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사실 바울이 자신들을 두고 떠났다는 사실 때문에
믿음이 식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상심할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마음을 헤아렸습니다.
위로의 가장 빠른 길은 심방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직접 갈 수 없어 디모데를 심방자로 보낸 것입니다.
예, 디모데의 첫 번째 역할은 그들을
심방하여 약해진 믿음을 굳건하게 하고,...
상한 심령을 위로하여 새로운 소망
가운데 격려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는 데살로니가 교회로 파송한
분명한 목적을 이렇게 밝힙니다.
첫째,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믿음을
굳건하게 하고 위로하기 위함입니다.
둘째,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입니다.
3절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데살로니가 교회는 현재 환난을 당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과거나 미래의 일이 아니라 현재의 일입니다.
아직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했는데,
눈앞에 환란이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흔들리겠죠.
왜 예수 믿는 사람에게 복이 아닌 환란이 오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3절b와 4절에서 성도에게 마땅히
환난이 있을 것을 말씀합니다.
3절b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4절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환난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 주님도, 모든 사도들도
세상에 의해 거절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빛으로 오셨으나 자기의 악한 행동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 어둠의 세력들이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 뿐 아니라 자신을 따르는 성도들도
박해를 받을 것을 예견하셨습니다.
<요15:18-19>
18절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절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16:33b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바울은 주님의 소명을 받은 후 각 처에 다니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행14:21-22>
21절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22절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21:13(예루살렘으로 가려는 바울을 막으면
거기에 가면 큰 환난이 기다린다고 하니)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롬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필연적으로 환난을 받게 되어 있는 것은....
마치 태평양을 황해하는 선장과도 같습니다.
파도를 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선장은 풍랑을 만나면 자기와 승객들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배의 모든 짐을 내어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욘1:5, 행27:18).
환난 받는 그리스도인도 그 영혼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의 모든 욕심을 분토와 같이 다 버려야 합니다
(빌3:7-9). 그리고 가벼운 몸으로 달음질하여야 합니다(히12:1).
중국 속담에 “누군가 침을 뱉어도 닦지 말라,
조금 있으면 마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와 성도님들은 어떤 환란과 시험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환난을 허락하시는 이유>.....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환란과 시련을 허락하실까요?
첫째, 참 신자와 거짓 신자를 구별하기 위해서입니다.
평안할 때는 참 신자인지 거짓 신자인지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큰 시험과 환란이 오면 알곡과
쭉정이가 갈라집니다.
코리텐 붐 여사의 간증을 들어보면....,
붉은 혁명이 일어난 뒤 소련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목숨을 건 모험일 만큼
기독교에 대한 국가의 박해가 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몇 몇의 사람이 비밀리에 모여
조심스럽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느 날 몇 십 명의 교인들이 지하에 숨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갑자기 기관총을 손에 든 소련군 몇 명이
문을 박차고 달려들었습니다.
그 소련군은 “꼼짝 하지마라! 이 자리에서
너희를 즉결 처분하겠다.
그러나 단 한 번의 기회를 주겠다. 이제라도 예수를
배반할 사람은 즉시 나와라”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벌벌 떨던 몇 사람이 일어나 걸어 나왔습니다.
군인들은 그들의 등을 떠밀었습니다.
“어서 이곳을 나가라 만일 여기에서 어물거리면
너희도 죽여 버리겠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줄행랑을 쳤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군인들은 “더 살고 싶은 사람은
어서 나와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교인들은 공포에 질려
창백한 얼굴로 죽음을 각오한 채 기도만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군인들은
지하의 문을 닫고 쇠고랑을 채운 뒤,.....
손에 들고 있던 총을 내던지고 교인들을
얼싸안고 외쳤습니다.
“놀라셨죠? 용서하십시오. 우리는 혹시
우리를 감시하기 위하여 파견된 가짜 교인이
있을까봐 일부러 총을 들고 행패를 부린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모두 도망갔고 들킬 염려가 없으니....
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시다.” 그제야 그들은
안심하며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때에 참 신자와 거짓 신자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평안할 때도 제대로 신앙생활을 못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성도님들이 참 신자인지 아닌지는 환란 때에 드러납니다.
이렇듯 환란은 참 신자와 거짓 신자를 구별되게 합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환란과 시련을 허락하실까요?
첫째, 참 신자와 거짓 신자를 구별하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고난을 통해 연단을 받아 성도들의
믿음이 온전케 되기 위해서입니다.
유명한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한번은
훌륭한 조각품을 만들기 위해 커다란 대리석 덩어리를..
망치와 정으로 쪼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다가와서.....
“그 좋은 대리석을 이처럼 많이 깨어버리면
낭비가 아닙니까?”라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대리석이 깨어져 나갈 때에 비로소
조각은 살아나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의 심령도 깨어질 때만이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아가 깨어져 나갈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모습이 보이게 됩니다.
그러나 육이 깨어져 나가는 고통이 너무 커서
많은 사람들은 그러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대가 없이 신앙이 성장하지는 않습니다.
<약1:2~4>
2절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절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절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성도들에게 오는 환란과 시련은 결코
우연히 오지 않습니다.
공중에 나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저와 성도님들에게 오는 시험은 모두가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를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현실은 힘들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이 시험으로
우리의 믿음이 강건해 진다는 것을 알고...
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기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사도 베드로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벧전1:6-7>
6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절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벧전4:12-14>
12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절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절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님들 !
사람은 누구나 고난을 싫어합니다. 고난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고난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합니다. 위로가 필요합니다
(성도의 교제).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통해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이 믿음에 굳게 서고.....
주 안에서 위로를 받고............., 나아가 앞으로
다가올 더 큰 환난에도 믿음으로(기쁨으로)
이겨낼 수 있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성도님들이 !
예수님 오시는 그날까지,.... 믿음에 굳게 서서.....,
피차 위로하고,....
주님 때문에 당하는 환난이라면 기쁨으로 받아......
참 신자임을 드러내실 수 있기를 ....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