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투리’와 ‘서울 말’
나는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충청남도 홍성에서 살았고, 고등학교 때에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 올라오면서부터 서울말을 배웠다. 충청도 사투리를 쓰면서 놀림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그 후 지금까지도 내가 하는 말은 대화를 하든지, 강의를 하든지, 방송을 하면, 듣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언제나 정해져 있었다.
“고향이 충청도이지요?”
“예”
“어쩐지, 말투가 충청도 말투라서 . . .”
‘허허, 나는 서울말, 표준말을 하려고 했는데’ 상대방에게는 그렇게 안 들리는가 보다. 하기야 맞는 말씀이다. 원래 중학교 때까지, 대개 10살 전후까지는, 현지 말을 정확히 배울 수 있지만 그 후에 아무리 열심히 배워도 고향 사투리의 흔적이 있다고 한다. 물론 10살 전에 이사했어도 그곳에 꾸준히 살아야 하고 현지인들과 말을 많이 해야 한다. 이사 갔어도 집안 식구들과 고향 말을 한다든지 다른 곳으로 왔다 갔다 하면 고향 말이 기본이 되고 현지 말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게 된단다. 외국어도 마찬가지이다. 10살 전후에 외국에 가서 현지인들과 어울려 살면 정확한 현지어를 배울 수 있지만, 그 후에 이동하면 현지어를 정확하게 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서울의 보성고등학교 1학년 국어 시간에 민병교 선생님께서 내 발음을 교정해주신 기억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거지’를 ‘그지’라고, ‘헌옷’을 ‘흔옷’이라고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 온 학생들에게 발음을 고쳐주셨다. 표준말이라고 하였지만 내 고향에서 쓰는 말투와 같았다. 아! 서울말, 아니 그런 발음이 서울말이고 표준말인가 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고, 그런 말이 서울 사투리란다. 아하, 서울에도 사투리가 있나 보다. 내가 안성에서 잠깐 살았던 적이 있다. 거기서도 놀랐다. 현지인들의 말투가 거의 내 고향 말투이었다. 홍성 말투와 안성 말투는 별 차이가 없었다. 그것만이 아니라 안성에서 원주-안성-홍성-당진을 다니는 버스 노선이 있었다. 아하, 그게 아마 근대화 이전의 생활권을 잇는 교통로였던가 보다. 그러니까 충청도 말이나, 경기도 말이나, 서울말이나 같은 말이 많은 것은 당연한가 보다.
요즈음 인터넷이나 매스컴에서 서울 사투리란 말이 많이 나오고 연구도 많다. 몇 가지만 언급해 보고자 한다. 먼저 표준어, 표준말, 비표준어, 사투리, 방언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생각해 보자. 국립국어원 표준어규정, 제1항에 “대한민국의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원칙으로 한다.”로 정의되어 있다. 비표준어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되지 않은 한국어 낱말’로서 사투리, 방언, 문화어, 고려말 등을 포함한다. 사투리와 방언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엄밀히 따지자면 사투리는 ‘어느 한 지방에서만 쓰는, 표준어가 아닌 말’이다. 방언은 ‘한 언어에서, 사용 지역 또는 사회 계층에 따라 분화된 언어’이다.
표준어는 대한민국 국립국어원에서 규정한다. 대한민국 표준어 규정의 기원인 조선어학회에서 만든 원안에서는 '표준말은 대체로 현재 중류 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한다.'로 되어 있었으나, 여러 차례 개정하여 “대한민국의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원칙으로 한다.”로 되어 있다. 표준어의 규정에서 ‘표준어’, ‘교양’,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 ‘원칙’ 같은 단어는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으며 논란도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서울말을 안 쓰면’ 교양 없는 사람도 될 수 있고 지방 차별도 될 수 있다. ‘표준말’도 ‘비표준어’와 말결을 맞추어 ‘표준어’로 했으며, ‘표준어’로 지정되지 못하는 북한의 ‘문화어’도 있다. 현대에 두루 쓰이는 서울말이어서 서울 사투리는 배제되고, ‘원칙’이란 말은 원칙에 벗어나는 예외도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표준어 같지 않은데도 의외로 표준어’인 단어도 있고 ‘표준어인데도 비표준어 같은 것’도 있어서 표준어도 살아있는 문화적 생물과 같은 것이다.
‘서울 사투리’라고 말하는데 이는 구체적으로 서울에서 적어도 서울 토박이로 3대 이상을 거주했던 사람들이 쓰는 말이다. 그런데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서울 토박이(3대이상 서울살이, 6대이상은 진짜 토박이)의 인구가 그다지 많지 않다(2005년 4.9%). 사실 3대 서울 토박이라면 옛 한성부 때부터 성내(사대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도 문헌에 따르면 사대문 안 사투리와 성저십리(城底十里, 조선 시대 당시 한성부에 속한 성외(城外) 지역으로, 한성부 도성으로부터 4km(10리) 이내의 지역이다. 오늘날의 서울특별시 강북구, 동대문구, 마포구, 서대문구, 성동구, 성북구, 용산구, 은평구, 여의도 일대와 종로구, 중구 일부, 광진구 일부, 중랑구 면목동이 이에 해당) 사투리 간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교통이 오늘날같이 좋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어쨌든 서울 사투리라고 하더라도 옛 서울 토박이의 말이 있겠지만 넓은 의미에서 서울 토박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 사투리가 경기 사투리와 겹치고 충청도 사투리와 겹치는 것이 많이 있는 것이다
다음에는 서울 사투리라는 것의 주요한 특징을 몇 가지를 아래의 표와 같이 정리해 본다.
대표적 서울말투
<영화배우 서울 토박이 한석규의 말투>
“으른이 마알씀을 허시면 그릏구나 허구
딱 허니 알어듣구 일어너야지”
표준어의 정의를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이라고 했다. 우리가 헷갈리기 쉬운 것이 '표준어와 서울말과 서울 방언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아주 다르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옳다는 말도 아니다. 더욱 표준어가 아닌 서울 사투리라는 것도 충청도 방언과 같은 것이 많이 있다. 그래도 서울만의 사투리는 있다. 결론적으로 아래와 같이 정리하고 싶다.
표준어≠서울 방언≠서울 사투리
서울 사투리 (≒충청도 사투리)≠서울 말
표준어 서울 사투리 |
어휘 | 꺼풀/우리들 | 껍질/우덜 |
자음 |
장음과 단음의 구별 | 눈이 온다(白雪) | 눈이 아프다(眼) |
역구개음화 현상 | 김치 | 짐치 |
‘ㅎ’구개음화 현상 | 형님 | 성님 |
경음화 현상 | 효과 | 효꽈 |
어두 경음화 현상 | 조그맣다 | 쪼그맣다 |
(ㄹㄹ) 쌍리을화 현 상 | 하려고 | 할려구 |
모음 |
장모음 ㅓ의 음색 | 거지/헌옷 | 그지/흔옷 |
이중모음 단모음화 현상 | 별로야 | 벨로야 |
저모음 고모음화 현상 | 그렇지 | 그릏지 |
전설모음화(前舌母音化) | 창피해요 | 챙피해요 |
모음 조화의 파괴 | 지금 바빠 | 지금 바뻐 |
모음동화,ㅣ모음 역행동화 | 남비 | 냄비 |
ㅣ모음 순행동화 | 비어서 | 비여서 |
독특한 접속사 | 그런데 | 그른데 |
정확한 발음 | (ㅐ, ㅔ), (ㅚ, ㅙ)를 정확히 구분 |
[자료: 심의섭, 곰곰이 생각하는 수상록 2, <집콕, 방콕, 폰콕 단상>, 한국문학방송, 2021.02.25: 3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