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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임 라우데스 수녀님의 피정 강의 내용입니다. - 김 이사벨라 필기
<웰링턴 한인 카톨릭 공동체
요한 복음에 나오는 새로운 성전의 건축, 그리고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바꿔주시면 바뀌지 않는 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변해서 하느님께로 향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바로 성체를 모시는 감실이기 때문에 빛이 나야 하는
것 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부족함을 채워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목마름을 채워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웃을 통해 당신을 보여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오십니다.
기울어진 보트를 보십시오.
이 기울어진 보트처럼 하느님께서 키를 조성해 주십니다.
금방 쓰러져 바다에 빠질 것 같은 이 요트가 아슬아슬하게
항해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 속에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인도하고 계십니다.
두 그림 속의 점을 보세요.
어떤 것 같습니까?
분명이 이 두 점은 같은 크기이지만 남의 것이 언제나 커
보입니다.
하지만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의 눈으로 보면, 그리고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모두 똑같은 것입니다.
이 그림의 바탕을 보시면 한쪽은 하얀 부분이 많고 다른 한
쪽은 검은 부분이 많습니다.
이 많은 부분을 내가 메우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이 작은 부분을 큰 부분의 색으로 바꿀 때 쉽게 바꿀
수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작은 점만 손가락으로 가리면 됩니다.
이미 하느님께서는 우리 생 안에 이렇게 한 발자국을 올려
놓으셨습니다.(샌들 신은 발 사진)
나의 삶은 이렇게 여러 방면에서 자신의 일이 있을 것입니다.
각자 자기의 삶에 맞는 일을 어떻게 기쁘게 하느냐가 바로
행복한 삶입니다.
오늘 일일 피정의 주제는 인간 삶에 비춰본 십자가의 길 입니다.
제 1처: 예수, 사형선고를 받으시다.
구세주 예수님, 저희를
위하여 아무런 죄도 없이 극심한 모욕과 사형선고를 받으셨으니
죄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영원한 벌에서 저희를 구원하소서.
요즘 세상이 엄청나게 흔들리고 있지요? 지진이나 태풍등..
우리의 마음도 똑같아요. 막막한
사형선고를 받을 때와 같지요.
하지만 우리도 이런 어려움 속에서 아무 말 없이 거부 없이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사형선고를 받으신 예수님처럼이요..
제 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구세주 예수님,
저희를 사랑하신 까닭에 이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셨으니
저희도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모든 십자가를
기꺼이 지게 하소서.
십자가를 내가 왜, 하필
내가 왜 져야 하나 생각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십자가는 참으로 다양하지요.
부양가족에 대한 무거운
마음, 혼돈의 세상 속에서 나는 어느 길로 가야 하는가 혼란스러울 때
십자가를 받으면 해결의 열쇠가 됩니다.
십자가를 조금만 다듬으면 바로 잠겨진 문을 열수 있는 열쇠가
되니까요.
십자가는 이미 내게로 온 것입니다.
조금 버겁기는 하지만 빨리 받아들이고 나면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제 3처: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구세주 예수님,
무거운 십자가에 눌려 넘어지시는 고통과 모욕을 당하셨으니
저희가 언제나 주님을 변함없이 섬기며 죄에 떨어지는
일이 없게 하소서.
내가 넘어지지 않고서는 내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넘어지고 나면 내 모습이 머리 속에 스쳐 지나가게 됩니다.
병원에 입원하거나 쓰러졌을 때, 인간적인 기력이 약해졌을 때 하느님께서 들어오실 구멍이 생기게 됩니다.
제 4처: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을 묵상합시다.
구세주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님,
괴로운 십자가의 길에서 서로 만나시어 사무치는 아픔을
겪으셨으니
저희 마음에 사랑을 북돋아 주시어 주님과 성모님을
사랑하는 데에 장애가 되는 모든 것을 물리치게 하소서.
우리에게 엄마는 해결사입니다. 힘들 때의 위로처 이죠. 목소리만 들어도, 흔적만 있어도, 생각만해도, 사진만
보아도 어려운 일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가장 어려울 때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고 가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힘들어하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해 줄지 모르던 엄마의
모습, 바로 이웃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곁에 내게 용기를 주고 위로해 주는 이웃이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제 5처: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 짐을 묵상합시다.
시몬이 주님을 도와 십자가를 졌으니 저희도 주님께서
맡겨주시는 십자가를 날마다 기꺼이 지고가게 하소서.
혼자 힘으로는 않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웃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웃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내 삶 속에 이웃이 여럿이 때로는 단 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내 십자가는 이웃으로 인해 가벼워 질 수 있으며 나 역시
다른 사람의 십자가를 도울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제 6처: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을 묵상합시다
나쁜 무리가 주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주님을 업신여기며
모욕하였듯이 저희도 죄를 지을 때마다
주님의 얼굴을 더럽히는 것이오니 통회의 눈물로 주님의 얼굴을 씻어드리게 하소서.
나를 측은히 여기는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나에게 고마운 이웃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나를 귀찮게 하는 것이 나를 도와주는 것입니다.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제 7처: 기력이 다하신 예수님께서 두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저희를 위하여 두 번째 넘어지시는 고욕을 당하셨으니
주님을 한결같이 섬기지 못하고
다시 죄에 떨어져 주님의 사랑을 저버리는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다시는 세속과 육신의 간교한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서로 도와주려고 내게 오는 이웃이 있습니다.
넘어져 있는 우리를 위해 도와주는 이웃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줘야 도움이 될까를 생각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각자의 방법으로 하자면 조금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날 위해 오시고 계시는데 나는 부담스러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 빽이 있음을 잊지 말고 용기를 얻어서 일어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일어날 수 있을 때 주위의 손길을 알게 됩니다.
제 8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을 묵상합시다.
저희 죄로 상처를 받으시고 온몸이 헤어지셨으니 저희에게
풍부한 은총을 내리시어
지난날에 지은 모든 죄를 뉘우치며 주님의 품을 찾아
들게 하소서.
약한 우리를 기쁘게, 행복하게
해주려고 여러 사람, 이웃, 가족이 합쳐서 내가 기쁘게 살게
하기 위해 위로해 주시고 계십니다.
십자가 안에서 이웃들과 함께 하고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제 9처: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무거운 저희 죄에 눌리시어 세 번이나 무참히 넘어지셨으니
그 수난의 공로를 저희에게 나누어 주시어 저희가 이미
지은 죄에서 다시 일어나게 하소서.
거꾸로 세상을 보면, 엎어져서
세상을 보면 더욱 아름답게 보입니다.
아주 비참하게 넘어진 후에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집을 세울
수 있게 됩니다.
고층건물을 재건축이 힘들지만 작은 건축물들은 쉽게 다시 지을
수 있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상상도 못하는 내 모습을 찾아주시려고 하십니다.
제 10처: 예수님께서 옷 벗김 당하심을 묵상합시다.
병사들이 난폭하게 주님의 옷을 벗길 때에 살이 묻어나는
극도의 고통을 당하셨으며
죄수로 군중 앞에 서시는 모욕을 당하셨으니 저희가 모든 죄를 벗어버리게 하소서.
벗은 몸 이것은 나의 진실입니다. 누구도 벗겨내지 못하는 나만의 것, 나의 보물입니다.
내 위선을 다 벗겨내고 나면 나는 보석이 됩니다.
제 11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을 묵상합시다.
알몸으로 십자가에 못박혀 달리셨으니 저의도 주님과 같이 몸과 마음을 희생제물로
봉헌하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여 육신은 움직일 수 없지만 모든 것은 움직입니다. 모든 이의 마음, 공기와 자연이 움직이는데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새로운 모습으로 나를 발견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제 1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저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셨으니 저희도
십자가에 못박혀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주님을 위하여
살게 하소서.
구세주 예수님, 혹시라도
영원히 주님을 떠날 불행이 저희에게 닥칠 양이면
차라리 지금 주님과 함께 죽는 행복을 내려 주소서.
십자가에 박힌 예수님을 소문처럼 듣는 사람, 자세히 보는 사람, 의학적으로 규명하자는 사람 등등 여러 모습이
있겠죠.
제 13처: 제자들이 예수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을 묵상합시다.
주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품에 안으신 성모님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도 성모님 품 안에서 효성스러운 자녀로 살다가
마침내 그 품 안에서 죽게 하소서.
십자가로 죽은 나무는 산 나무입니다.
예수님의 피와 땀이 나무를 자라게 한 것입니다.
제 14처: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
돌무덤에 묻히신 구세주 예수님,
저희가 주님의 죽음을 생각하며 언제나 깨끗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사랑의 성체를 받아 모시게 하소서.
우리는 뿌려졌으므로 나는 세상의 거름이 되었으며 그랬기 때문에
이웃이 꽃을 피우거나 내 자신이 꽃필 수 있게 됩니다.
이 거름으로 지금은 안보이지만 나름대로 멋진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 15처: 부활 하신 예수님
예수님의 부활은 바로 내 부활이며 이 부활은 인생의 상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나무>
나무를 생각해 봅시다.
내가 다른 사람이 쉴 수 있게 열매를 맺게 해 주는지, 하느님 안에 뿌리를 내리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우리가 그늘이 되어주고 있는지 꽃을 피우는지, 열매는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각자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희생과 상처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느님 안의 성흔 입니다.
웃 가지는 쳐내야 합니다.
삶의 가지를 칠 때 섭섭하고 아까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쳐내야 합니다. 일
속에서 기도 속으로 가지를 쳐주면 본 모습으로 되돌아 갈 수 있습니다.
너무 산만한 가지 속에서는 내가 자랄 수 없습니다.
나무가 잘 자라려면 한해 걸러 쉬는 것이 필요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앞에 거룩하게 서려면 정화되어야 합니다.
正化 :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게 정화(바를
정, 될 화)되어야 합니다.
복잡한 마음은 바른 것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바른 마음을 안다면 샛길로
가더라도 하느님께서 다시 일어서게 해 주십니다.
定化 : 내 마음이 정해져야 합니다.
외부에서의 칭찬과 평가보다는 내부에서 내가 결정해서 정진하면 행복이 있습니다.
靜化 : 복잡한
세상 속에서 자신에게 가장 조용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인생의 틀을
만드는 것은 다 틀리더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잔잔한 파도 그림)
인생은 잔잔한 파도처럼 눈에 보이지 않고 움직이는 것 같지
않지만 하느님과 나와의 교류가 있고 또 그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 하느님과의 관계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쌓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지진으로 인한 자연 파괴, 변화되는 세상 속에서 내 마음의 열쇠로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가 속한 곳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로 최고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첫댓글 이사벨라자매님~ 복습하는 시간을 주어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