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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변신
강 신 재
1
창경원 담 밑을 사(四)가로 돌아가는 모서리까치 오자 나는 기운이 다 빠져 길가의 돌 위에 걸터앉았다.
“아가다, 아가다의 다리는 원 참……”
최애자씨가 그런 소리를 한 적이었지만 내 다리가 왜 어때서 안으로 굽었거나 말거나 몇십 리를 씽씽 오가고도 끄떡없는, 곰의 다리같이 튼튼한 생김새인데 지금은 매시시 남의 몸똥이 같기만 하다. 식사를 제대로 안 한 때문이지.
둘레가 차츰 어두워왔다. 여덟 시는 넘었을까. 잠자리가 걱정이다. 그리고 영양이 좋지 못하면 눈도 나빠진다던데…… 그런 생각을 하차니까 또 불현듯 화가 지밀었다. 올빼미 같다고 내 오묵한 눈을 흉보는 것들이 없지 않지만 얼마나 잘 보이고 건강한 눈알이라고. 사십 평생 안질 한번 걸린 일이 없다.
좀 쉬어서 체온이 내리니까 으스스 한기가 들기 시작했다. 오늘 밤은 추울 모양이다. 바람이 와삭거리며 낙엽을 쓸어 갔다. 못마땅하다. 집이니 방이니 제가끔 문을 닫아걸고 들어들 앉아서, 내가 누울 자리 하나 비워주지 않다니.
먼 곳에 등불을 밝힌 저택이 보인다. 저만큼은 크고 깨끗해야지만 나는 편안히 잘 수 있는데……
여러 사람네 집을 돌아다니며 살아보았지만 이번 있던 곳이 그래도 제일 마음에 든 편이다. 이제야말로 좋은 주인을 만났는가 싶었다. 장차 특별히 비위에 거슬리는 일만 생기지 않는다면 오래도록 살자고 마음먹었었다.
첫째 그 집에는 재미난 구경거리가 많았다. 일도 일이지만 사람이 무슨 낙이 있어야 사는 법이다. 밥하고 빨래하고 집 안 치우고 ㅡ그런 잡용만 가지고는 짜증이 나서 못 견딘다. 그 집에는 희한한 볼거리가 있었다.
둘째는 남자의 그림자라곤 없어 그 점이 내 맘에 흡족하였다. 하기야 주인 영감도 살아 있고, 은행에 다닌다는, 삼십이 넘은 아들도 있기는 하지만 내가 들어간 지 일 년이 넘는 오늘날까지 둘을 도합 서르나문 번이나 보았을까? 그러니 있으나 마나 매한가지이다.
나는 남자라는 것이 싫다. 뭐가 좋아 그들하고 같이 사는지 아무래도 알 수가 없다.
“아니, 그럼, 아가다는 애는 어떻게 났누?”
언젠가 주인마누라 최애자씨가 나를 놀렸지만 그때도 나는 큰 소리로 대꾸를 해주었다.
“시집을 갔으니까 어떡해요? 생겼으니 났지. 그래두 원 우린…… 사내가 어디가 좋다고 사죽들을 못 쓰는지…….”
비웃으며 혀를 차니까 최애자씨는 적이 내 얼굴을 건너다보며,
“법이 그러니까 그저들 사는 거지.”
한숨을 내쉬 었다.
“하지만 뭐 그다지 싫달 거야 또 있나?”
덧붙이고 비시시 웃는다. 육십이 멀지 않았건만 최애자씨는 아직도 고운 티가 남아 있었다.
고와도 소용이야 없다. 영감은 딴살림을 차리고 앉아, 고작 생활비나 주러 오곤 하는 뿐이니까. 그래도 같은 값에 나처럼 네모지고 억세게만 생긴 것보다는 본인 자신 기분이 좋을지는 모를 일이다.
애자씨 말에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우린 몰라요, 이래라저래라 성가시기나 하구. 사내 때문에 죽네 사네 하는 예펜네들 보면 어째 저럴까 이상스러 못 견디겠어.”
애자씨는,
“목통두 크기는. 말을 좀 가만가만히 하라구.”
하더니 새삼스럽게 내 나이를 물어 마흔세 살이라니까 젊어서도 그랬었느냐고 캐고 들었다.
젊어서고 무어고 나는 그렇고, 동시에 남자 곁에서 이러쿵저러쿵하고 있는 여자들도 눈꼴사납고 치사스럽 게만 보인다.
그러므로 사내들이 없는 이 집안은 십상¹ 내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셋째로 여기서는 나를 들볶을 사람이 없다.
들볶다니, 들볶일 멍텅구리는 또 어디 있을까마는, 어느 집이고 주장 잔소리를 맡아 하는 위인이 한 명씩은 있는 법이고, 이 집에서는 애자씨가 의당 그것을 말아 하게 마련인 모양인데, 나는 아예 첫머리에서 그 기를 쿡 꺾어놓고 말았다. 이러저러하게 해놓으라고 이른 일은 일부러 뒤로 미루어 하지 않았고, 재촉을 해도 못 들은 척 버려두고 버티었다. 아니, 내가 한 소리 못 들었느냐고 제법 언성을 높이기에 손이 나면² 하고 안 나면 못 하는 거지 왜 야단이냐고 갑절은 큰 소리로 내쏘았더니 질렸는지 잠잠해져 바라보기만 한다. 그래 나는 한마디 더 하였다.
“보면 알 일이지. 언제 내가 두 손 마주 잡고 놀읍디까? 가만 놔두면 해놀 텐데 괜히 떠들고 소란이네요.”
심화를 못 이겨 나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올빼미 같다는 눈이 더 흉측해졌을 것이다.
사실 나는 무슨 일에서고 누구의 지시를 듣는 일이 아주 질색이다. 가만있으면 혼자 다 알아서 척척 처리한다. 나만큼 일을 빨리 하고 잘하고 깨끗이 하는 인간은 드문 것이다.
몇 번 그런 따위 승강이가 있고 나서부터 최애자씨는 잔말을 하는 대신 오히려 나를 추어올리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아가다, 그저 우리 집에 오래만 살어. 내 양단 저고리도 해주고 다 해줄 테니.”
흥, 하고 나는 코웃음을 쳤다.
내가 낳은 계집아이 둘이 노고산동 막바지의 땅굴 속에서 굶으며 먹으며 중학과 국민학교에 다니고 있다. 거기에 쌀 나무를 대어야 하므로 돈은 필요하지만 울긋불긋한 옷을 나는 색싯적에도 탐내 한 일이 없다. 치사한 취미라고 여기는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최애자씨처럼 YWCA야 무슨 구호회야 자선 바자야 하고, 하루도 빼지 않고 밖으로 나돌아야 하는 사람은, 집안일에 더 간섭을 하려야 할 시간도 없고 또 나만큼 믿음직스러운 식모를 구하기도 어려울 테니까 내게 고개를 숙일밖에는 없는 것이다.
나는 저녁 여덟 시가 되면 일손을 멈추고 안방에 들어가 앉아 텔레비전을 본다. 며느리나 애자씨와 함께 보는 때도 있지만 혼자 구경하는 일이 더 많다. 그리고 아홉 시에는 잔다. 졸음이 와서 기구³는 안 올리지만 가슴에 십자는 잊지 않고 긋는다. 내세에는 기어이 좋은 데로 가야 하겠기 때문이다.
내 널찍한 방은 내게 아주 알맞고 편안하다. 땅굴 속의 질척거리는 가마니 뙈기 위에서 자는 우리 계집애들이 저희끼리 못살겠다고 가끔 우는소리를 해오지만 나는 그 잠자리를 첫째 참을 수없어 돌아가지 않는다.
아침이면 수도에 호스를 끼어 들고 돌아가며 집 안팎의 타일을 닦아내고 빨래를 하고―나는 물을 가지고 점벙대기를 아주 좋아한다―부엌 일은 밥 끓이는 것과 설거지만을 맡아 한다.
그 정도면 내 힘에 꼭 알맞고, 피곤하지도 않으므로 내가 그렇게 정한 것이다. 그리고 이 집 사람들과는 함께 살 만하다고, 평생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는 것이었다.
2
가끔 애자씨와 며느리가 한바탕씩 충돌을 하는 일이 있다.
물론 상소리가 오가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싸움은 싸움이다. 원인은 그때그때 어디서 불거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노상 이 집 안 근본에 깔려 있는 일들이었다.
그날 애자씨는 부녀회관 신축 축하 파티에 갔다 오면서, 수입품인 바나나를 한 아름, 그리고 아직 계절도 아닌 수밀도를 한 바구니나 사 가지고 들어왔다.
“우리 난아 좀 어떠냐? 응, 아가다, 난아가 좀 나았어?”
허겁지겁 묻는다.
그처럼 마음이 쓰이면 옆에서 시중이나 들 일이지 저물도록 싸돌아다니다가는 해 질 무렵이면 갑자기 걱정이 되는가 하고 일부러 대꾸를 안 하였다. 마누라는 과일 꾸러미를 내주며 얼른 씻으라고 손짓을 해대고 난아의 방으로 동동걸음을 쳐 갔다.
저절로 빙그레 웃음이 난다
저렇게 둘도 없는 듯 법석을 하는 난아가 자기 없는 새 집안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한번 구경을 하면 아마 기절을 해 자빠질 것이다.
“난아야 엄마가 왔다. 감기 기운이더니 열이 좀 내렸냐?”
애자씨는 악어 핸드백을 내던지고, 비취와 다이아가 번득이는 손으로 누워 있는 난아의 이마를 어루만지면서 마치 어린아이에게처럼 말한다.
난아는 푸시시 일어나 앉으며 멍한 눈초리를 벽에다 던졌다. 나이를 따지자면 서른 살이나 먹은 노처녀였다.
“저녁 먹었니?”
“아아.”
입으로는 대답하고 고개는 설설 옆으로 내젓는다. 애자씨는 나를 돌아보며 답을 기다렸다.
“먹었지 그럼, 굶겼을까요?”
퉁명스럽게 나는 말하였다.
사실은 난아가 맛이 없어 그러는지 밥을 한 숟갈 입에 넣었다가는 상 위에 패 뱉고 또 뱉어놓고 하는 것이 미워, 어차피 안 먹으려거든 일거리나 만들지 말라고 빼앗아버렸더니 에엥 울음을 터뜨리고 쓰고 누웠던 것이지만 고자질을 하는 법은 없으니까 그저 그래두면 간편한 것이다.
“난아야, 바나나랑 복숭아랑 먹어라. 아가다, 어서 씻어 오라구.”
난아는 투명하게 희고 가는 손끝으로 반듯한 이마를 짚으면서 역시 먼 곳을 보는 듯한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았다.
곱게 생긴 색시였다. 얼굴을 볼 적마다 신기할 지경이다.
몸매도, 어깨가 나부죽⁴ 매끄러운 것이 크지도 작지도 않고, 알맞추⁵ 찐 살은 아기 볼처럼 부드러운 분홍색이다. 거기다 말을 할 때의 목소리는 오죽 맑고 고울까.
그 짓만 하지 않는다면 참말이지 나라도 혹할 만하였다, 서른 살이라지만 아무리 보아도 스물두셋을 넘은 것으로는 여겨지지 않었다. 스물두 살에 그렇게 되고부터는 나이까지 거기서 멈춰버린 게라고 애자씨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쟁반에 과일을 담아 들고 가니까 애자씨는 성급하게,
“자 어서 먹어라 먹어라.”
하고 재촉을 해대었다. 파티에 갔던 치마를 걷어 안지도 않고 펑덩 주저앉아, 지금은 온갖 세상일은 다 잊은 듯, 금테 안경을 쓴 콧등에 땀방울을 띄우고 있는 마누라는, 이런 때는 별수 없이 제 나이만큼 다 늙어 보였다.
난아는 귀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가 않는지 여전히 옴짝을 하지 않았다. 불란서 레이스라나 하는 연두색 치마저코리를 걸치고 그야말로 넋을 잃고, 까만 구슬처럼 밝은 눈동자로 벽만 보고 있다.
“응 얘야.”
하고 애자씨는 그 몸을 잡고 흔들었다.
난아는 별안간 두 무릎을 세워 오그려 붙이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재빠른 말씨로 중얼대기 시작했다. 그 왼손 무명치에 낀 루비라던가 하는 새빨간 구슬이 퍽 예쁘다.
내 약혼반지 내놓으라고 야단야단을 해서 애자씨가 비싸게 주고 사다 주었다는데, 그 물건은 애자씨의, 말라서 나뭇가지 같은 손에 끼고 있는 반지들과는 달리, 언제나 아주 깨끗하고 고와 보이는 것이었다.
“중현씨가 그러면 니는 몰라요.”
“나도 갈래요, 집을 빠져나와서 갈 테야요. 가면 되겠죠.”
“싫어요. 꼭 붙잡으세요. 손을 꼭…… 네? 어머니가?”
갑자기 난아는 손을 뿌리치며 얼굴을 들더니 꽥 하고 듣기 싫게 소리를 질 렀다.
“뭐? 그런 년은 죽으라고 해! 그런 악마는. 이년! 최애자란 네 이년!”
무서운 형상을 하고, 열 손가락의 손톱을 세워가지고 애자씨의 얼굴을 할퀴려고 달려든다.
“이거나 먹어! 이러지 말구.”
나는 바나나를 하나 들어 난아의 눈앞에 대고 찌걱찌걱 껍데기를 벗기기 시작했다.
난아는 나를 흘깃 보더니 다시 얼굴을 가리고 입속의 말을 중얼댄다. 음성이 잦아든 듯 낮은 데다 어찌나 빠르게 주워섬기는지 쇠쇠거리는 소리밖에는 들리지가 않았다.
“자 어서.”
하면서 나눈 그 한쪽 손을 당겨 내리고, 달싹거리는 입술에다 바나나를 바벼대며 밀어 넣었다.
“먹어, 자.”
“그러지 말어, 아가다.'’
최 애자씨는 다 죽어 가는 소리를 내더니 방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저리 가자, 내버려두고. 아가다……”
나는 악어 핸드백을 들고 애자씨의 뒤를 따라 나왔다. 난아의 주절거림은 조금 높아졌다. 중현씨, 꼭 안아주세요, 라느니 가면 싫다느니 안 보고는 못살겠다느니 하며 또 몇 시간이라도 쑹얼쑹얼 끈덕지게 계속할 것이다.
실지로 성한 여자와 성한 남자가 그 꼴을 하고 있다면 오죽 치사스럽고 더러워 보일까마는, 난아가 혼자 그러고 있는 것은 재미가 난다.
최애자씨의 넋두리도 볼 만은 하였다.
“아이그 내가 어찌다 내 딸을 저 지경을 만들어놓았을까?”
“누가 안다우? 그래 논 사람이 알지.”
애자씨는 내 소리는 못 들은 체하고,
“그 애 말이 맞지, 내가 죽어야 해.”
치마저고리를 벗어 휘딱 내던지고는 두 다리를 뻗고 앉아 무릎을 두들겼다.
“아 왜 모든 게 영감님 탓이라믄서요?”:
하고 나는 애자씨의 애통하는 모양이 우스워 빙긋거렸다.
“거야 틀림없지. 그눔으 영감이 방탕이 끊일 날 없이 내 속을 썩이니까 내가 딸을 사내놈에게 내줄 생각이 났겠어? 죽으면 죽었지 혼사는 못 시키겠다고 버텼을밖에.”
“그래 결과가 좋기도 했쉬다. 남 시집가고파 못 견디겠다는 걸 독신으루 늙으라구 생으루 방에 감금을 시켰으니…….”
애자씨는 내가 비꼬아대어도 화를 낼 기력도 없어,
“우리 난아가 너무 얌전한 탓이지. 그저 너무 얌전했던 탓야. 그렇잖고 극성스럽고 못된 계집애 같았어봐. 가두지 않아 별짓을 했어도 사내놈한테 끌려가고 말았지.”
“글쎄 거 그렇게도 사내라는 게 좋을까? 난 난아 참 곱게 생겨서 맘에 드는데, 저렇게 사내를 좋다고 야단인 건 이해를 못 하겠어.”
“이해 못 하겠음 말어. 성하지두 못한 애를 가지구…….”
애자씨는 더럭 고함을 질렀다. 나는 빈들거리며 딴소리를 하였다.
“하기야 왜 세상에는 그런 영감님만 있답디까? 금실 좋게 잘들 사는 내외간도 얼마든지 있습디다.”
“아가다도 그렇 게 의좋게 살았으니 신랑 생각이 간절하겠군.”
최애자씨는 입이 쓴 듯하였다.
“죽었으니 망정이지 딴 짓이야 몰랐죠. 그래도 난 간절히 생각 나지도 않아.”
하고 나는 실지대로 말하였다.
마누라는,
“말은 바른대루 내가 젊어선 누구에게 그다지 빠지는 축은 아니었다구. 공부도 일본 동경까지 가서 남 할 만침 했지, 얼굴도 미인 투표에 나가라는 권고를 여러 번 들은 정도는 되었으니까…… 그리구 오죽 정성을 들여 자기에게 하느라고 했을까. 헌데 그눔의 영감쟁이가…… 생각만 해도 이가 갈리지. 난아를 저렇게 해논 건 그 첨지야, 그렇구말구.”
향수내 나는 대마직 손수건에다 핑 하고 코를 푼다. 눈알이 발개진 것이 울음이 나온 모양이었다.
그러는데 샛문이 열리고 며느리가 들어섰다.
“어머니, 들어오셨에요?”
졸린 것 같은 목소리로 느릿느릿 말한다. 노상 선하품을 하고 있는 인상이고 생김새도 부옇게 살집이 좋아 무척 호인다워 보이는 것이 특징이었다.
젖먹이를 끼고 누웠었는지는 몰라도 언제나 저 있고픈 만큼 실컷 지체를 하고 나서, 인제 오세요? 하고 나오는 것이었다.
바나나와 수밀도의 더미를 흘깃 보다니.
“어유, 비싼 걸 사 오셨네.”
하며 옆에 앉는다.
애자씨는 나를 쳐다보았다. 왜 빨리 갖다 치웠다가 난아를 주지 않고 여태 벌여 놔두었느냐고 꾸짖는 눈치였다. 며느리는 아랑곳 없이(내게도 물론 아랑곳이야 없다) 바나나를 한 개 뚝 무질려 떼더니,
“어디 나두 맛이나 좀 봐야지.”
그러고는 나머지를 밀어놓으며,
“어머니도 드셔요.”
자기가 사 오기라도 한 것처럼 권한다.
뱃심 좋은 데가 있었다.
가끔 며느리의 친정에서 먹을 것이 오는 일이 있다. 세 집안이니까 들어오는 것도 많고, 버리느니보다 나으니까 그렇겠지만 풍성풍성 손은 컸다. 그런 터수에 바나나 몇 개쯤, 난아 준다고 사 온 것인들 못 먹을 게 무어냐, 그렇게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애자씨는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러나 안경 속의 눈알에는 가시가 돋아났다.
며느리는 한바탕 꾸역꾸역 먹고 나더니 말하였다.
“어머니 찬값 좀 주고 나가시곤 하셔요. 냉장고 속이 텅텅 비었는데, 오늘 저녁만 해도 뭐 먹을 거 있어요?”
“아 왜 아범이 주지 않더냐?”
“아범이라뇨?”
하고 며느리는 오뚝하게 흰 코를 치켜들었다. 그녀는 남편에 대해서 지독히 무관심하였다. 얼마를 집에 안 들어와도 질투의 티를 보이는 법이 없다. 경멸하고 숫제 수에 치지도 않는 것처럼만 여겨지는 것이었다.
아직도 영감에 대한 원한이 가슴에 사무쳐 날마다 밖으로 쏘다니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어쩌다 영감이 집에 들르는 날에는 꼭 한바탕씩 싸움을 벌이고야 마는 애자씨는 그런 며느리를 무던해서 좋다고 생각을 해야 할지 교만하다고 미워해야 할지 종을 못 잡는 눈치 같았다.
―네까짓 거 네 맘대로 하려므나. 남편에게는 그런 태도로 임하고 있는 그 여자에게 소중한 것은 그럼 무엇일까 추측해보면, 네 살과 두 살의 두 사내애와, 맛있는 것을 먹는 일과 단잠을 자는 일 등으로 여겨졌다.
바깥일에 별로 취미가 없고 계를 한다고 밀려다니지도 않았다. 어린애와 미식 (美食)과 안일로 만족하고 있는 것이었다.
“돈은 왜, 가용을 쓸 만큼도 안 주고 가더냐?”
하고 최애자씨는 감정 상태가 평온치 못하던지라 뾰족한 음성을 내었다.
며느리는 여전히 느리고 조는 듯한 투로 응수하였다.
“요담 만나건 물어보셔요. 얼마를 주었는가.”
그리고 치마폭을 털고 일어서며,
“반찬 없는 밥을 거지 죽처럼 끓여 먹고 디저트 하나는 근사하네.”
바나나와 수밀도의, 반은 아직 셀로판지에 싸인 것에 흘깃 눈총을 주고 몸을 돌렸다.
“아니 너 그거 얻다 대고 하는 핀잔이냐?”
“핀잔이라뇨?”
“빈정거리는 것 아냐?”
“어째서 그렇게 들리실까?”
그녀는 제 방으로 가버렸다. 뿌여스름하고 덩치가 큰 여자는 꼭 뭉게구름과 마주 앉았던 것 같은 느낌을 남기는 것이었다.
애자씨는 쌔근덕거렸으나 교양 있는 사람이라 더 언성을 높이지는 않았다. 싸움치고는 싱겁게 끝났지만 그 뒤에 애자씨가 심화를 못 삭여서 안절부절못하는 양은 내게는 재미스러웠다.
혈행을 좋게 하고 피부를 곱게 만든다고 날마다 거르지 않는 목욕도 집어치우고 자리에 누워 한숨만 눌러 깨문다. 눈알은 독이 올라 발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난아는 주절대다가 엎어져 잠이라도 들었는지 기척이 없다. 며느리도 제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내게는 기분 좋은 조용함이 집안에 가득 차 있었다. 퉁탕거리고 오락가락하고, 큰 소리로 말을 하고, 산 사람답게 움직거리는 것은 나뿐이니까.
아직 날은 채 저물지 않았지만 나는 모든 문을 잠가 걸고, 노할머니 방이나 들여다보기로 하였다.
부엌 뒤로 나가서 광에 붙은 그 방은 원은 식모 때문에 지은 것인 모양이지만, 어두컴컴하고 습기 져서, 나보고 있으라면 대번 싫다고 할밖에 없이 생겨 있었다.
그러나 노할머니에게는 그만하면 충분하다.
떠들어도 시끄러운 소리가 안 들리구, 냄새도 이쪽까지는 오지 않고, 노인네 자신은 어두운지 축축한지 분간도 못 하니까 거기면 족한 것이다.
망령 난 늙은이는 언제 구경하여도 심심치가 않았다. 해괴망측한 생각을 해내고, 해괴망측한 지저구⁶를 저지르며 허구한 날을 보내고 있으니까.
점잖고 품위 있게 생긴 자그마한 늙은이는 웃을 때 몹시 애교가 있는데 때때로 나를 보고 김대감 댁 마님이라고 부르면서 절을 하는 일도 있었다.
3
날이 새어, 애자씨가 또 펄펄 나가버리고 나니까, 며느리는 냉장고 문을 열고, 과일을 바구니째 꺼내다가 실컷 두들겨 먹었다. 내게도 주고, 아들아이에 게도 주었으나 자기가 숱하게 먹어치웠다.
“나중 찾거든 난아 주었다고 그래둬.”
그리고 웃으면서 몇 개 남은 것을 도로 갖다 넣었다.
하기는 어제 입에다 틀어넣어도 먹지 않던 바나나를 난아는, 아침 가보았더니, 한 송이 열댓 개는 붙었을 것을 다 먹어치우고 없었으니까, 난아가 그처럼 입에 맞아 해치웠노라고 해도 애자씨는 곧이듣고 오히려 좋아할 일이었다.
난아는 여남은 시 되니까 휘청휘청 결어 마루로 나왔다.
어젯밤 무엇을 하였는지 ―혹은 아침녘에 그랬는지 ―연두색 레이스의 통치마가 앞폭이 아래까지 쭈욱 찢어져 있다.
상아로 다듬은 것 같은 모양 좋은 맨발을 보이면서 우두커니 허공을 향해 서 있다.
“여태 뭘 하고 있었어? 일껏 빗겨논 머리는 그 꼴을 해갖고……”
며느리는 빙그레 웃으며 시작하였다.
애자씨는 나들이를 가기 전에 난아의 머리를 빗기고 조반을 먹는 것을 보고 떠난다. 상태가 특별히 좋지 않아 새벽같이 발작이 일어나지만 않는 한 늘 변하지 않는 절차였다.
오늘 난아의 파마한 머리는 유달리 헝클리고, 속치마는 몹시 구긴 데다 일부분은 젖어서 몸에 밀착된 것이 엷은 헝겊 속으로 들여다보였다.
“응, 그새 무슨 짓을 했어? 한 번 더 해봐.”
며느리의 두툼한 손은 난아의 어깨를 잡아 자기 쪽을 향해 세웠다.
난아는 나약한 미소를 머금고, 살피듯 올케를 쳐다본다. 그런 때는 참 애처로워 보였다. 남자를 홀린다 홀린다 하지만 이런 눈길이나 입모습이 바로 사내들을 혹하게 만드는지 모를 일이었다.
“응, 거기 앉아서, 어디 해봐. 어서어서. 내 맛있는 거 줄게……”
기운으로 마루에 주저앉힌다.
난아는 여전히 나약한 시선인 채 가만히 있다. 나는 마루를 쓸던 손을 멈추고 한 다리 끼었다.
“틀렸어. 제가 마음이 나야지 그 뭐 아무 때나 그러는 건가? 흐흐흐…….”
“젠장 무엇도 멍석 펴면 안 한다더니만.”
며느리는 소리 안 나게 웃고 찬간 쪽으로 걸어갔다. 오늘은 닭찜을 하는지 곰국을 안쳤는지, 아무튼 그런 것의 맛을 보러 간 것이다. 음식 만드는 데는 하여간 정성이었다. 나는 내가 만들기는 성가셔서 싫지만, 잘 먹기는 좋아하므로(또 영양도 생각해서) 며느리의 수선을 나쁘지 않게 여기고 있다.
미닫이에 기대놓았던 빗자루를 다시 잡는다.
난아가 어떻게 하고 있다가 나왔는지, 가끔 실지로 목격을 하는 나와 며느리는 환히 짐작을 할 수 있다.
그녀는 중현이라는 그 옛날의 애인이 선히 눈앞에 보이는 모양으로, 안고 쓰다듬고, 그 밖의 온갖 몸짓을 혼자 하는 것이었다. 입으로 옮길 수 없는 망측한 수작도 마구 지껄여댄다. 그런 때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때리며 말려도 막무가내였다.
‘원 저렇게도 지랄일까? 그렇다면 애자씨 말마따나 도망을 가서라도 중현이하고 살았어야 옳을 노릇이지…….’
중현이라는 사람을 본 일도 없었지만 이름이 하 귀에 익어, 아는 사이같이 여겨진다. 그러나 난아가 그 사내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일은 무언지 나를 흐뭇하게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저리루 비켜나, 여기 쓸게.”
나는 일껏 다정스럽게 말하였으나 난아가 움쩍도 하지 않으므로 짜증이 나 빗자루로 툭툭 쳤다.
며느리가 찬간에서 나오면서 걸레를 철썩 던져 보낸다.
“어서 거기 훔쳐, 미친갱이. 맛있는 거 처먹기만 하지 말구.”
그런 소릴 하는 때에도 며느리는 오히려 호인다운 유화한 얼굴로 눈웃음을 치고 있고, 목소리도 예사 때나 다름없이 부드러웠다.
난아는 올케의 말에 잘 복종하는 습관이었으므로 곧 엎드려서 걸레질을 시작하였다. 얌전하게 치마폭을 여미고 앉아 싹싹 문지르며 나간다.
“에그 저거 어서 죽지나 않구 뭐 한다구 살아서 저럴까?”
“그러기 말이지 .”
나도 맞장구를 쳤다.
난아는 머릿속이 이상할 뿐 아니라 불결한 손으로 온갖 데를 만지고 긁고 하여 그런지 밤낮 여기저기 부스럼이 나서 피고름이 꿀쩍대고, 귀, 입속, 내장기관 할 것 없이 돌아가며 고장인 것이었다. 아프다고 울고 가렵다고 날뛰고…… 그래서 얌전히 입을 다물고 있을 때를 보면 뭣 하러 죽지 않고…… 생각이 더욱 짙어지는 것이었다.
언젠가 며느리의 이모라는 마누라가 왔을 때에, 애자씨는 마침 없었는데, 질녀가 시누한테 하는 것을 보고는 기겁을 하여, 그러면 못쓰느니라고 꾸지람 비슷이 타일렀다.
“아나, 뭘?”
하고 며느리는 태평스럽게 대꾸했다.
“그럼요, 모르니까 마찬가지죠.”
나도 옆에서 참견을 하였다. 난아 자신 아무것도 모르는데 이러나저러나 다를 것이 무엇이며 또 애자씨가 들을 턱도 없으니까 무방하다는 뜻이었다.
숙모라는 마누라쟁이는 자기의 조카딸보다 내 얼굴을 더 멀뚱멀뚱 건너다보았다.
그러더니 한숨을 쉬며,
“그 어려운 여고를 수석으로 졸업을 하고 대학도 둘째로 들었다는 색시가…… 아깝고 가엾어라.”
혼자 중얼중얼하는 것이었다.
흥, 하고 나는 그 말에야말로 코웃음을 쳤다.
대학 교육 아니라 그보다 더한 학문을 하였은들 그게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얼굴이 예뻐도 결국은 마찬가지고 교육을 받았어도 별수 없는 것이다. (우리 계집애들도 학교에를 다니고 있지만 이름자나 쓰고 셈이나 할 줄 알면 그만이지 더 다른 성과는 있을 리가 없다.)
천주님이 계셔서 보살피시니, 누구나 그저 뜻대로 태어나서 살다가 가는 것이다.
훔치지 말라고 하셨으니 나는 훔치지 않는다. 그 말은 성경에도 쓰여 있다지만 주교님과 파트리시야 수녀님에게서도 들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법률로 정해져 있으니 내가 만약 훔치면 어디로 달아난다는 건가? 그러므로 나는 정직하다.
정직히 살고, 기구도 올리고, 십자를 긋고―하여간 나는 나 할 일을 다 하고 살고 있으니, 내세에 가서 상은 있을지언정 벌을 받을 까닭은 없다.
사실 내가 남보다 못한 것이 무얼까? 내 책임을 다 못 한 게 무엇일까? 나는 내 힘에 알맞도록 일한다. 재가해 가는 여편네가 수두룩한데 그렇게도 안 했다.
같이 와 있지 않는다고, 앓는 때랑 계집애들이 우는소리를 하지만, 그래서 푸성귀 장사라도 하면서 한데 지내지 그러느냐고 충고를 해주는 동네 식모 같은 것들도 있지만 그것은 나는 싫어서 못 하겠다. 거처 자리, 먹는 것 등이 여기만큼은 해야지 더 고생스러워서는 나는 안 되는 것이다.
성당에 얼마 다니지도 못하고, 금요일날 음식을 가릴 수도 없지만, 그것은 직업상의 이유로 해서 그런 것이니까 별수 없는 노릇이다. 하기는 언제 어느 때고 미사 하러 간다고 떨치고 나서면 최애자씨가 별수 있을까마는, 그리고 음식을 가려 먹는 것은 내게 달렸겠지마는, 그러다가는 과로할지도 모르고, 영양 부족이 될 수도 있으니까 실행할 수가 없다.
나는 신체가 완강하고 병이라고 좀체 나는 편이 아니지만 어쩌다 어디가 좀 찌뿌듯하기라도 하면 아주 기분이 좋지 않고 역정이 난다. 그래서 그렇게 될 염려가 있는 일은 피해야 하는 것이다.
이야기가 빗나갔지만, 난아가 말끔히 걸레질을 하여 한동안 할 일이 없었으므로 나는 마루방에 앉아 며느리에게 수작을 걸었다. 마당의 화초 잎이 짙푸르게 무성하기 시작했고 선들선들 바람이 불고 있었다.
“난아가 저렇게 이성 에게(나는 유식한 말을 쓰기를 즐겨한다) 미쳐 저러는 걸 봐도 식이 엄마는 아무렇지가 않아? 식이 아빠를 왜 좀 꽉 붙들지 못하고 이래? 그러다가 영영 뺏기고 말려구.”
며느리는 대답할 흥미조차 없다는 듯 옆에 있던 나무 그릇을 끌어당겨 낙화생을 까먹기 시작했다.
“먹어요, 아가다 아줌마도.”
나는 낙화생을 벗기며 좀더 짓궂게 파고들었다.
“응? 식이 엄만 참 이상해. 남들은 안 그렇던데?”
“아줌마는 잘 알 것 아냐? 남자는 싫다는 주장이니까.”
뭉게구름 같은 여자는 패패 하고 입술에 붙은 낙화생 속꺼풀을 뱉어냈다.
“나야 그렇지만 나는 특별이거든.”
“알긴 아는구먼.”
그러고는 비꼬는 것 같은, 어찌 보면 그냥 장난인 것같이 천진한 웃음을 눈에 담으면서 덧붙였다.
“별수 있어? 저나 나나 별수 있냔 말야. 별수 없이 자기는 돌아올 거고, 별수 없이 나는 기다릴 거고, 그렇지 뭐.”
난아는 모아 세운 무릎 위에 턱을 얹고 그 예쁜 얼굴로 잔디밭을 보고 있다. 또 중현이 생각을 하고 있는 거겠지. 그야말로 그 머릿속에는 그 청년 말고는 완전히 아무것도 없을 터이니까.
여자는 저런데 그래도 총각은 저렇지 못했길래 미치지 않았겠지?”
하고 나는 화제를 돌렸다.
“미치긴, 장가가서 아들딸 낳구 잘 먹구 잘 살구 있지.”
“저런 온.”
“아 그럼 그 남잔 오기 없답디까? 그쪽두 멀쩡한 집 아들인데 딸을 잡아먹기라두 하는 줄 알았던지 펄펄 뛰며 그악을 부리니 더럽고 아니꼽다고 가버릴밖에.”
“그야 그렇지 .”
며느리가 갑자기 어이없는 듯한 소리를 질렀다.
“어이구 맙시사. 저 어른은 또 왜 기어나오실까?”
그 시선을 따라 나는 뒤꼍 모퉁이로 눈을 돌렸다.
노할머니가 이 더운데 공단 조바위⁸를 쓰고 옥색 모본단 마고자를 입고 상글거리면서 아장아장 돌아 나오다가 우리들을 보고는 멈춰 선 것이었다.
어젯밤에는 장판지를 떼내어 포를 썬다면서 조각조각 가위질을 하고 있더니, 오늘은 아침 한나절 걸려 뒤주 물건을 끄집어낸 모양이었다.
“원천댁, 원천댁.”
하고 할머니는 가느다랗게 떨리는 늙은이 목청으로 나를 불렀다.
“김대감 댁 마님이 어쩌다 또 별안간 이 집 소실(少室)로 굴러떨어졌누.”
며느리가 두 다리를 주욱 뻗으며 말하였다.
“그 여자들이 나를 닮았었나?”
“누가 알어. 보았어야 말이지.”
빨빨 떨리는 노할머니 목소리는 다시 나를 불렀다.
“원천댁, 날 좀 보우.”
시앗⁹을 대할 때는 적이 맘이 복잡했었는지 노인네 표정은 억지로 웃는 것같이 아주 기묘하였다. 지체 있는 점잖은 여인답게, 늙은이는 내게 고갯짓을 해 보였다.
4
밖으로 걸어논 자기 방 문고리를 어떻게 벗겼던지 노할머니가 또 마루로 올라와서 아물거리고 다니는 바람에 잠을 깼다.
아니 나는 잠귀가 무뎌서 어지간히 잡아 흔들어도 깨는 습관이 아닌데, 눈을 뜨고 보니 바로 머리 위에 유리 단지가 박살이 나서 흩어져 있다. 요놈의 할망구가 단지를 훔쳐 들고 나가다가 내 머리 맡에다 팍삭 떨군 모양이다.
그래놓고는 고양이처럼 미닫이 뒤에 가 숨어, 아옹한¹⁰ 눈만 내놓고 살피고 있다.
나는 두말 않고 늙은이를 잡아끌어 뒷방에다 밀어 넣었다.
빌어먹을 할망구 때문에 잠만 설쳤다. 나는 어젯밤 텔레비전의 사극(史劇)을 보느라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 낮에는 한잠 푹 자고 나야만 하는 것이다.
혀를 차고 다시 대청의 화문석 위에 누웠다. 선들선들 지나가는 바람이 어느새 싸늘한 기를 품고 있다. 여름이 다 갔구나 하고 나는 마당의 오동나무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며 하품을 하고, 겹이불을 둘둘 다리에 말았다.
“으음―”
그런대로 내 처지에 흐뭇한 만족 같은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아 붙인다.
단잠에 막 곯아떨어졌는데 쿠당탕거리는 소리가 다시 나를 깨워놓고 말았다.
“에에이 시끄럽기는.”
식이란 얘녀석이 풀쩍거리는 거라면 한마디 소리를 지르면 도망을 쳐버리는데, 하고 엿들어도 어쩐지 기척이 그놈애 같지가 않다. 이불을 머리 위로 뒤집어쓰고 더 자려고 했다.
탕! 쿠당!
“이건 도무지 사람이 잘 수가 있나.”
투덜대며 일어나 앉았다. 귀를 기울이니까 소리는 틀림없이 난아 방에서 나고 있었다.
며느리는 무얼 하는지, 반대쪽으로 저만치 떨어져 있는 제 방에 들어앉아 얼씬도 않고, 담장 밑의 그늘이 서늘서늘하게 헤식어¹¹ 있었다.
“저 빌어먹을……”
복도를 따라 걸어가는 동안에 몽롱하던 머릿속은 개어버리고 난아의 광태에 대한 호기심이 솟아났다. 가끔씩 짬을 두고 쿠당탕 쿠당탕 하는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조금도 짐작이 가질 않았다.
미닫이 틈으로 눈을 대고 들여다본다.
난아는 다다미에 가 나동그라져 있다가 기척을 느꼈는지 바싹 몸을 응크리며 겁에 질린 쥐 모양 경계하는 태세를 취하였다. 가슴에다 베개를 부둥켜안고 있다.
그녀의 옆에는 조그만 책상이 끌어내 놓이고 그 위에 요를 개킨 것, 또 그 위에 방석까지 접혀서 얹혀 있다. 거기 올라섰다가 굴러 떨어지곤 하는 소리가 다다미방이니까 쿵당쿵당 울렸던 모양이다. 베개는 저와 함께 굴러 내린 것을 도로 얹으려고 하던 참이었던 듯했다.
그것은 좋은데 놀란 것은 그녀가 몸에 실오리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승이로 있다는 일이었다. 군데군데에 부스럼이 나 있다. 그것은 마치 왕파리가 여러 마리 붙은 것처럼 더럽고 징그러워 보였지만 또 그 비단 같은 살결이 그 때문에 더 희게 백설처럼 비치는 듯이도 여겨졌다.
숨을 죽이고 있으려니까 난아는 경계심을 풀었는지 상체를 일으키고 무릎으로 걸어왔다. 베개를 맨 위에 놓고 상 위로 기어오른다.
별별 꼬락서니를 다 구경하였지만 이처럼 완전한 알몸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만족스럽게 여기고 이 진귀한 구경거리를 눈이 빠지게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더 살이 쪄 있었다. 잘 발달한 신체였다.
난아는 상 위에 올라서더니 두 팔을 높이 뻗고 그래도 손끝이 닿지 않는지 풀쩍 뛰어올랐다. 다음 찰나에는 다다미에 쿵당 나동그라진다.
‘아하―’
하고 나는 납득이 갔다. 이 미친것은 자기의 오라비 ―하니까 며느리의 남편이고 이 집 아들인 은행원이 엊그제 사다 놓고 간 물약을 꺼내려고 하고 있는 것이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아들이 불쑥 여기에 들렀던 날 난아는 몹시 기침을 하고 열이 올랐었다.
“의사를 부르지요.”
“의사? 저 애가 순순히 보이려고 하나? 야단 난리를 쳐서 동네가 다 뒤집 힐걸.”
마누라 말에 아들은 잠자코 밖에 나가더니 약을 사 가지고 왔다.
“이거 독해서 분량을 넘으면 안 됩니다. 어따 감춰두고 시간 맞춰 먹이세요.”
“오냐.”
애자씨가 내게 지시한 대로 나는 한 숟갈씩 한 이틀 먹이고 난 뒤에 매번 들고 왔다 갔다 하기도 귀찮아서 병을 그 방 옷장 위에 얹어버렸다. 빗자루 끝으로 깊숙이 뒤쪽에 밀어붙이고 더 주지 않았다.
‘기침 그만한데 뭐.’
그걸 꺼내겠다고 저 야단이다. 상 위에 기어올랐다가는 벌렁 네 굽을 들고 나자빠지고 또 그렇게 하고……
더 무슨 다른 짓을 할까 기다려도 그저 그 노릇뿐이므로 나는 미닫이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게 무슨 꼴이야, 벌거벗고 흉한 줄도 몰라? 흉한 줄도.”
그러면서 나는 우두커니 마주 서 있는 난아의 야들야들한 몸 여기저기를 손가락으로 꾹꾹 찔렀다. 난아는 몸을 굼틀거리며 쭈그리고 앉는다. 그것을 보자 좀더 심술궂게 머리채도 잡아당기고 간지럼을 태웠다. 야들거리는 흰 고깃덩이는 연방 꿈틀꿈틀하였다.
“자 그럼 한 숟갈만 마셔. 그리구 옷 입어. 이게 뭐야 이게.”
물약을 한 모금 받아먹더니 난아는 방싯이 웃었다. 약이 달콤해 그런지 몹시 좋은 것 같다. 나는 문득 생각켜서,
“이봐 나 하라는 대로 하면 또 줄게. 이렇게 하고…… 옳지, 어서 시작해.”
나는 난아에게 그녀가 중현이 이름을 부르면서 가끔 하는 짓을 시키고 구경을 하였다. 약을 한 모금씩 먹이고……
한동안 그러다가 방에서 나왔다.
부엌에서 일을 하다 생각하니까 약병 단속을 허술히 해두었던 것 같다. 옷장 위에 올려놓긴 하였지만.
그러나 나는 보러 가지 않았다. 일을 하던 중간에 멈추고 가기도 성가셨고, 많이 먹겠음 먹으려무나도 싶었다. 위험하다지만 죽으면 대수랴. 살아보아야 좋은 것 싫은 것도 없는 인생인 것이다.
5
애자씨는 그날 밤 늦게 돌아왔으므로 난아의 이상을 맨 처음 발견한 것은 역시 나였다.
난아는 아까 그때서부터 달그락 소리도 없이 조용하더니 줄곧 잠만 자고 있었다. 배고플 때가 되어도 어적어적 일어나 나오지 않는다.
내버려두고 그만 자려다가 그래도 인정이 그렇지 못해서 가 들여다보았더니 숨소리가 걸그렁 걸그렁 하는 것이 어째 이상스럽다.
“난아! 난아!”
잡아 흔들어도 흐무럭거리기만 하고 눈을 안 뜬다. 나는 급히 방 안을 휘둘러보아 약병을 찾았다. 거무죽죽한 액체가 두 홉은 들어 있었을 병은 깨끗이 비어서 구석에 궁굴고 있었다.
“난아!”
더욱 난폭하게 흔들어본다. 흐느적거리는 것을 억지로 일어뜨려 앉히니까 눈은 안 뜨고 입 귀퉁이로 갑자기 침이 주룩 흘러내렸다.
“이봐, 내 말 들어. 이 약 내가 꺼내줬다고 그러지 말어. 그렇게 말했다간 혼내줄 테니까. 마루의 찬장에서 난아가 혼자 집어 내왔다고 그러는 거야. 알지?”
어떻게 해도 반응이 없어, 나는 역성을 내고 그녀를 밀어 던지고 나와버렸다. 애자씨가 돌아오더라도 아무 말을 하지 않으리라 하였다.
한데 마누라는 밤늦게 현관에 들어서자 부득부득 딸의 방에부터 달려가는 것이었다. 잘 거라고, 가만 놔두라고 일러도 듣지 않는다. 어떤 예감이라도 들어서였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얘가! 에그머니! 아가다, 아가다! 이리 좀 와!”
드디어 난리는 벌어지고 말았다.
전화질을 해서 의사가 오고 아들이 오고 한다. 며느리까지 머리가 푸수수해 일어나가지고 왔다 갔다 하였다.
토해내게 하고 밑으로도 쏟는 걸 받고…… 어째선지 나는 오히려 신명이 났다. 졸음도 잊고 바라지¹²를 해대었다.
난아는 그럭저럭 살아난 듯하였다.
말은 안 했지만 흔들면 가다가다 눈을 떴다.
나는 아무 걱정도 하지 않았다. 난아는 묻는 말에 좀체 대답을 하는 법이 없었고 올바른 대답은 더구나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다. 일러바칠 염려는 그래서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주위가 괴괴해지고 야기가 썰렁해서 담장 밖을 돌며 가는 야경꾼의 딱따기 소리도 구성지게 울려오는 즈음, 겨우 다리를 펴고 한숨 자려는 나를 아들인 은행원이 불러들였다.
난아가 뻗치고 누운 바로 그 방이었다. 머리맡에는 최애자씨가 굳은 표정을 하고 앉았고, 며느리도 부석부석 졸린 눈등인 채 끼어 있었다.
키가 자그마하고 똥똥한 은행원은 송곳같이 찌르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거기 앉으시오!”
방 귀퉁이를 가리키며 독기를 품고 으르땅땅거린다.
비위가 틀렸으나 약간 겁도 났다. 나는 남자는 싫은 것이다. 좋은 말을 해도 듣기 싫다는데 그처럼 을러대니 달가울 리가 없다. 나는 누워 있는 난아를 흘낏 살폈다. 가슴이 불룩불룩하고 숨결이 고르지 못한 것이, 눈은 감았으나 깨어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당신이 저 약을 먹게 했지요? 바른대로 말하쇼!”
나는 이거 크게 떠들며 맞서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아니 뭐요? 내가 뭣 하러 그걸 먹여요? 원 별소릴 다 듣네!”
“떠들지 말어! 어디다 두었었소?”
“아 마루에, 그릇장 속에요.”
“거짓말을 하는군. 얘기해야 소용없겠다. 어머니.”
그 사람은 최애자씨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나는 길길이 뛰었다.
“이러니저러니 할 것 없이 당자에게 물어봐요. 내가 퍼 멕였는가 아닌가, 물어보면 알 것 아뇨.”
그리고 나는 난아에게 덮쳐들어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일어나. 말을 해봐. 내가 이 약을, 이 한 병을 다 퍼 멕였는가 아닌가, 응, 내가.”
난아는 흐느적대면서 끼잉 하고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다. 나는 더 세게 잡고 흔들었다.
애자씨 아들의 손이 내 팔을 움켜잡더니 내 몸은 벽에 가서 꽝 소리를 내고 부딪혔다.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이게!”
“아니 아가다, 다 죽어가는 애를·…‥”
옆에서 애자씨도 소리친다.
나는 지고 있지 않았다.
“애매한 허물을 뒤집어씌우는데 그럼 가만있을까? 깨워서 물어봐야지. 자 말을 해. 지가 혼자 갖다 먹었나 누가 멕였나.”
나는 또 난아에게 달려들었다. 이렇게 되면 입을 빠개어서라도 제 말을 듣지 않고는 둘까 보냐고 기가 올랐다.
다음 순간 내 등에서 부드득 소리가 났다. 저고리가 찢어져 나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마루로 떠밀리어 나뒹굴고 있었다.
“저 인간, 당장에 내쫓아요. 저건 사람이 아니다.”
아들의 매섭게 가라앉은 말소리가 울렸다.
“월급 줄 것 있거든 주어서 지금 곧 내보내세요. 집안에 큰일 내겠습니다.”
“월급 줄 건 없다. 선금을 몇 달 치나 가져가서 외려 받아내야 한다.”
“그럼 됐습니다. 나가라 합쇼.”
최애자씨는 잠자코 있었다. 그것으로 나는 애자씨도 같은 마음인 것을 알아차렸다. 다만 시간이 시간인지라 나가라 소리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흥, 그렇지만.’
하고 나는 생각하였다. 날이 새어 아들만 돌아가고 나보아라. 내가 녹녹히 나갈 줄 알고.
나는 이 집이 마음에 들었다. 평생토록 있을 작정이다. 난아가 아무 증명도 못 해내는 바에야 내가 나가야 할 까닭이 뭐냐. 오늘밤 분풀이는 애자씨에게 톡톡히 해줄 테다.
“지금 밤 두 시라고요? 좋습니다. 네 시까지 지키구 앉았죠. 잠시도 더 보기가 싫습니다. 음흉한 생김새하구, 그게 성한 인간예요? 난아보다 더하죠. 난아보다두 뒷방 할머니보다도 더 돌았습니다.”
며느리도 애자씨도 대꾸가 없다.
‘오냐, 실컷 지껄여라.’
그런데 다음 찰나 나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저런 거 원은 경찰에 넘겨서 혼을 내줘야 하는데……”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고 무언가 곰곰 생각하는 말투였다.
나는 얼른 내 방에 가서 보따리를 챙겼다. (이때에도 나는 무엇 하나 훔쳐 넣지 않았다.) 소리 안 나게 뒷대문으로 가서 고리를 벗긴다.
난아가 대체 뭐라고 하였는지, 그 남자가 어떻게 알고서 나를 유죄로 모는지, 애자씨를 들볶아 알아내고픈 맘이 간절했지만,
경찰이라는 말이 소름 끼쳐서 모두 단념하였다.
골목을 내다보니 캄캄한 것이 바람은 쓸쓸하고 발이 내딛기지 않는다. 주춤하고 섰는데,
“얘야, 너 어딜 가니?”
고양이 같은 음성이 나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하였다.
뒷방 늙은이가 툇마루에 걸터앉아 있었던 것이다. 나들이옷을 차려입고 흰 수건을 손에 접어 쥔 것을, 희뿌연 어둠 속에서도 식별할 수 있었다.
“푸닥거리는 이제 끝났냐?”
오늘 방문을 밖으로 잠그는 것을 깜빡 잊었더니―그럴 새도 없었고―저러고 나왔다. 버려두고 가면 틀림없이 또 말썽거리를 저질러 놀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알 게 무어냐. 나는 뒷문을 훤히 열어젖혀놓고 골목을 빠져 나갔다.
밤이 깊어간다. 바람 소리도 조금씩 커졌다. 창경원 담 저편에서 낙엽이 날려온다.
생각해보아도 갈 곳이 없다. 조금이라도 건덕지가 될 만한 곳은 빼지 않고 찾아 다녔다. 돈암동에서 필동으로, 노량진으로, 마포로, 얼마를 걸었는지 알 수가 없다.
맘이 급해서 한 번은 택시를 탔지만 그 뒤는 돈이 없어 줄곧 걸었다. 내가 이게 무슨 고생일까. 영양 상태도 보나 마나 나빠졌을 게다.
사람들이란 어찌 악한지 모르겠다. 밥 한 숟가락을 권하기를 고렇게 어려워하고, 죽으면 모두 틀림없이 지옥에 갈 것이다.
당장 편안한 잠자리가 아쉽다. 역정만 난다. 이렇게 불편해서는 나는 못 사는 사람인데……
-끝-
2018년 6월 12일 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