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면의 밤
불면의 밤이 많아지고 있다.
오빠의 병환 소식을 들은 뒤,
그렇게 기다리던 문단에서도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서로 상반된 두 상황을 동시에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서인지
요즘 나의 생활은 음 하나가 깨져 버린 악기 같다.
불협화음이 들리는 듯 불안하면서도
연주를 앞둔 단원들처럼 설레는 마음도 있다.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묘한 심정이다.
아무도 깨어 있지 않은,
새벽으로 가는 시간.
내가 두드리는 자판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무렵이면
온종일 끙끙대며 가슴속에 담아 두었던 답답한 마음을
일기장 위에 술술 풀어놓는다.
내 가슴속에는 아직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이야기들을 언제쯤이면 일기장이 아닌
독자들에게 막힘없이 모두 쏟아낼 수 있을까.
그날이 언제쯤 올지는 나 자신도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꼭 그런 날이 오리라고 믿는다.
시간은 어느새 새벽 다섯 시를 훌쩍 넘긴다.
자리에 누워 보아도 뒤척일 뿐 잠은 오지 않는다.
다시 일어나 서성이다가 요즘은 자주
‘시와 음악’의 문을 두드린다.
아무도 보이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반가운 이들의 흔적을 만나기도 한다.
인사를 건네기도 하지만
때로는 모른 척 조용히 지나칠 때도 많다.
그들이 남긴 흔적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댓글도 달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음악도 듣는다.
그러다 어느새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잠이 들 때가 허다하다.
요즘은 거의 매일 그렇다.
일찍 출근하는 큰아이가 일어나
나를 깨울 때까지…….
그렇게 잠들어 있는 나를 보며
아들은 엄마의 건강이 걱정된다고 말한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아들에게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어 보인다.
“괜찮아. 낮에 자면 되지.”
그러나 아들은 건강을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조금 자라고 말한다.
혼자 대충 아침을 챙겨 먹고
출근하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 미안해진다.
평소에도 잘 챙겨 주지 못했는데,
이제 와 새삼스럽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늘 바쁜 척 살아온 나는
아이들에게 자상한 엄마가 되어 주지 못했다.
집안일과 바깥일, 두 가지를 모두 잘 해낼 만큼
넉넉한 능력이 내게는 없었다.
결국 집안일보다 바깥일에
더 많은 마음과 시간을 쏟으며 살았다.
엄마의 알뜰한 보살핌을 받아야 할 나이에
밖으로만 나도는 엄마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그리운 존재였을까.
바깥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을 내버려 둔 날이 많았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그것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며
원망 한마디 하지 않았다.
참 착한 내 아이들이다.
사업을 정리하고 집에 들어앉은 지도
벌써 여섯 달째다.
그런데도 특별히 달라져
아이들을 살뜰히 챙기는 법 없는 무심한 엄마이기는
바쁠 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아마도 타고난 내 성품인가 보다.
어버이날,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안고 들어오는
아들의 손에는 선물 꾸러미도 들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이 찡하도록 감격스러웠다.
제대로 호강 한번 시켜 주지 못하고 키웠는데도
아이들은 오히려 이 엄마에게
키워 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나는 정말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을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가슴 아파한들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인데 어쩌겠는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피할 수 없는
오빠의 병이라는 슬픈 현실은
내가 살아온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잠 못 이루는 밤이 더욱 늘어간다.
더 늦기 전에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조바심과
오빠와의 이별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마음의 준비도 해야 하지만
생각이 많아진 요즘에는 마음 놓고 잠을 잘 수도,
편안하게 밥을 먹을 수도 없다.
그저 초조한 마음뿐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무거운 짐을 모두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갈 날도 오겠지.
어느새 아들의 퇴근 시간이 가까워진다.
챙겨 주지 못한 아침이 마음에 걸려
저녁이라도 따뜻하게 차려 주고 싶다.
가까운 슈퍼에 나가
반찬거리라도 사 와야겠다.
2003년 5월 19일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