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가을, 킬리만자로를 올랐던 일이 어느덧 29년 전의 추억이 되었다. 그러나 적도 아래 만년설을 이고 선 그 거대한 산과 그곳에서 느꼈던 감동은 지금도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오래된 기억의 서랍을 열어 그 여정을 7회에 걸쳐서 다시 따라가 본다.
《킬리만자로의 혼(魂)》
이평우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명예교수
<프롤로그>
킬리만자로(Kilimanjaro)!
케냐 남쪽 탄자니아 땅, 적도 바로 아래 남위 3도에 자리하면서도 만년설을 이고 있는 아프리카 최고봉. 해발 약 6,000m에 이르는 이 산은 평지 위에 홀로 우뚝 솟아 있는 산(free-standing mountain)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꼽힌다.
언제부터인가 킬리만자로는 내게 단순한 산이 아니었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태는 물론, 산이 지닌 상징성까지 더해져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세계에는 수많은 명산이 있지만, 내게 킬리만자로는 순례자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었다. 언젠가 반드시 한 번은 올라야 할 산, 오랫동안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꿈의 산이었다.
기회는 준비하는 사람에게 찾아온다고 했던가.
연구년을 맞아 나는 아프리카 최남단 도시인 케이프타운(Cape Town)의 의과대학에서 1년간 연구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킬리만자로는 더 이상 꿈속의 산만은 아니었다. 물론 거리로는 여전히 멀었다. 케이프타운에서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국제공항까지 비행기로만 6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적어도 도전할 수 있는 위치까지는 다가온 셈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결심뿐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품어온 킬리만자로 등반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여행사를 통해 알아보니 10월이 등반의 최적기라고 했다. 현재 진행 중인 연구 일정과 앞으로의 계획을 고려하여 10월 12일부터 18일까지를 등반 기간으로 정했다.
곧바로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에 있는 아프리카 전문 여행사를 통해 킬리만자로 등반팀에 참가 신청을 했다. 이어 등산 장비를 점검하고 부족한 물품을 구입했으며, 황열병과 콜레라 예방접종을 받고 탄자니아 비자도 준비했다. 출발을 앞두고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마무리해 나갔다.
본격적인 산행은 10월 12일 일요일 아침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다. 따라서 하루 전인 11일 토요일, 케이프타운을 떠나야 했다. 연구실에서 진행 중이던 일들과 등반 준비를 모두 그 이전까지 마쳐야 했기에 출발을 앞둔 한 주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특히 출발 이틀 전에는 케이프타운 의과대학 대강당에서 열린 임상학술집담회(Clinical Meeting)가 있었다. 의과대학 교수와 의사 300여 명이 참석한 자리에서 나는 이곳에 온 뒤 두 달여 동안의 연구를 통해 새롭게 밝혀낸 질환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강연하기로 되어 있었다.
다행히 발표는 성공적이었다.
연구 성과에 대한 기쁨과 안도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는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킬리만자로를 향해 길을 나서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산행은 단순한 등반이 아니었다. 연구자로서의 작은 성취를 스스로 축하하는 뜻깊은 기념 등반이기도 했다.
첫댓글 이런 것도 인연인가 보오. 내가 남아공에 처음 갔던 것은 유럽 및 아프리카 사업 평가단(청와대)으로 수삼일간 갔었고(1977.5.30-6.30), 그 후 몇 차례 갔었는데 이 박사처럼 킬리만자로 등반은 그저 나이로비에서 멀건히 쳐다봤던 것 뿐이어서 아쉽습니다. 그 후 기회를 보았으나 어영저영하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는 엄감생심인것 같소.
Visiting Professor(lecture), South Africa, University of The Witwatersrand University, (Inter-Korea Study, Korea-USA alliance, Korea economic development, Africa-Korea relations; Undergraduate and graduate course), 2013.9.7.~2013.10.3.
연합뉴스, <인터뷰> 남아공 대학서 첫 한국학 강의 심의섭 교수, 2013.09.30
https://v.daum.net/v/201309302209117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