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권력의 작동]
명제 9ㅡ'평판'도 공동체를 지탱하는 권력이다ㅡ하지만 '폭로권력'으로 남용되기 쉽다
동물의 세계에서
청소놀래기는 손님물고기의 몸에 붙은 기생충을 먹고 산다. 그런데 이 물고기는 가끔 기생충 대신 손님의 살점을 물어뜯는 유혹에 빠진다.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이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다른 손님물고기들은 이 배신을 목격하면 그 청소놀래기를 다시는 찾지 않는다. 심지어 그 장면을 본 적 없는 물고기조차, 다른 이의 회피 행동만 보고 같은 청소놀래기를 피한다. 소문이 관찰을 뛰어넘어 퍼지는 것이다.
케냐의 버빗원숭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들은 표범·독수리·뱀에 각기 다른 경보음을 내는데, 어떤 개체가 포식자도 없이 거짓 경보를 반복하면 무리는 그 개체의 그 경보음만 골라서 무시하기 시작한다. 같은 개체가 다른 경보를 내면 무리는 다시 귀를 기울인다. 평판은 처음부터 무차별적 낙인이 아니라, 누가 무엇에 대해 얼마나 믿을 만한지를 정밀하게 기록하는 장부였다.
청소놀래기는 손님이 지켜보고 있을 때는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평판이 이빨보다 먼저 행동을 통제한다. 그러나 그 장부가 무너져 항목을 가리지 않고 통째로 낙인이 찍히는 순간, 원시적 면역은 마녀사냥의 씨앗이 된다.
▷ 버빗원숭이의 '불신뢰 신호' 연구. 도로시 체니와 로버트 세이파스가 케냐 암보셀리에서 수행한 현장 연구로, 로버트 새폴스키가 저서 《Behave》에서 소개하며 널리 알려짐.
1. 뜻풀이
독일 사회학자 하인리히 포피츠는 권력을 행동권력(직접적 강제)·도구적권력(상벌의 매개)·권위적권력(자발적 복종)·데이터권력(정보의 우위)의 네 유형으로 분류했다.
평판권력은 이 넷 중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는다. 권위적 권력에 가장 가깝지만, 권위가 지위에서 나온다면 평판은 오직 타인의 판단이 누적된 결과에서만 나온다. 시선만으로 작동하는, 포피츠의 분류표 바깥에 있는 힘이다.
평판권력이란 타인의 평가를 만들고 유통시키는 힘이다. 명제8이 물리적 강제로 복종을 끌어내는 권력이라면, 평판권력은 시선만으로 복종을 끌어낸다. 매를 들지 않아도, 재판을 열지 않아도, "저 사람은 신의가 없다"는 한마디가 곳간의 문을 닫고 혼처를 끊고 자리를 빼앗는다.
이 권력은 국가보다 오래되었고, 국가가 무너진 자리에서도 살아남는다. 다만 이 권력은 누가 낙인을 찍을 권리를 쥐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갖는다. 공동체 전체가 나눠 쥐면 자율규제가 된다. 소수가 독점하면 폭력이 된다. 강자가 약자의 언어를 탈취하면 억압의 도구로 뒤집힌다. 같은 힘이 누구의 손에 있느냐에 따라 면역이 되기도 하고 자가면역질환이 되기도 한다.
2. 관중과 마키아벨리의 생각, 그리고 다른 주요 인사들
관중은 형벌보다 부끄러움을 앞세웠다. 《관자》 목민편이 말하는 예의염치(禮義廉恥)는 법전이 아니라 평판의 언어다. 형벌은 몸을 벌하지만 염치는 얼굴을 벌한다. 관중에게 다스림의 요체는 백성 스스로 부끄러움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 즉 평판이라는 자율 감시망을 세우는 것이었다.
마키아벨리는 이 평판을 군주의 자원으로 뒤집었다. 《군주론》은 군주에게 실제로 어떤 사람인가보다 어떻게 보이는가를 관리하라고 가르친다. 명성(fama)은 군대만큼 중요한 통치 수단이다. 관중이 평판을 백성의 자율규제 장치로 보았다면, 마키아벨리는 평판을 군주가 조작하고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다. 이 둘의 거리가 곧 평판권력이 밟아온 역사다 — 아래로부터의 자율 감시가, 위로부터의 이미지 조작으로 뒤집히는 과정.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이 흐름의 근대적 완성태다. 프로이트의 조카였던 그는 대중의 무의식적 욕망을 조작해 여론과 소비를 동시에 설계하는 '홍보(public relations)'라는 산업을 창시했다.
관중이 백성의 자율규제를 세우려 했고 마키아벨리가 군주 개인의 이미지를 관리하려 했다면, 버네이스는 대중 전체의 평판 지형 자체를 설계 가능한 공학으로 바꾸어놓았다.
▷ 에드워드 버네이스 Edward Bernays, 1891~1995.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조카로, 대중심리를 이용한 홍보·선전 기법을 체계화해 '홍보의 아버지'로 불림. 저서 《프로파간다》(1928).
후한 말 사대부는 환관의 부패에 맞서 청의(淸議)로 인물을 평가하고 여론을 세웠다. 그러나 이 재야의 평판권력은 결국 당고지화(黨錮之禍)라는 대숙청으로 되돌아왔다. 권력은 낙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낙인의 생산권을 빼앗을 뿐이다.
▷ 청의(淸議). 후한 말 관료·환관의 부패에 맞서 재야 사대부들이 인물을 평가하고 여론을 형성한 정치 운동. 이에 대한 탄압으로 두 차례에 걸쳐 사대부들이 금고·처형된 사건을 당고지화라 한다(166년, 169년).
3. 역사적 사례
주홍글씨와 마녀사냥 — 낙인의 제도화와 폭력화
호손의 주홍글씨는 공동체가 죄를 몸에 새겨 넣은 것이다. 처벌은 형벌이 아니라 시선으로 완성된다. 조선의 향약이 둔 출좌목(黜座目)도 다르지 않다. 벼슬도 재산도 지켜주지 못하는 자리, 오직 이름 하나가 공동체 밖으로 추방되는 형벌이었다. 그러나 낙인이 재판 없이 번지면 마녀사냥이 된다. 세일럼의 여인들은 행위가 아니라 의심으로 화형대에 올랐다.
조봉암 사건 — 낙인이 법정을 삼키다
1956년 대선에서 216만 표를 얻어 위협적인 정치인으로 떠오른 조봉암을, 이승만은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위험분자"로 지목했다. 검찰은 공판이 열리기도 전에 진보당의 정당 등록을 취소시켰고, 수사기관은 "빨갱이 간첩"이라는 자백을 얻어내려 3주간 신문했으나 끝내 받아내지 못했다. 1심 재판장 유병진조차 훗날 "정적이라는 점을 고민한 끝에 형을 언도했다"고 고백했고, 그 자신도 빨갱이로 몰려 법복을 벗었다. 조봉암은 1959년 처형되었고, 무죄가 선고된 것은 52년 뒤였다. 낙인이 법정을, 그리고 법관마저 삼킨 것이다.
▷ 조봉암 曺奉岩, 1899~1959. 독립운동가, 초대 농림부 장관, 진보당 당수. 1958년 간첩 혐의로 기소되어 이듬해 처형됨. 2011년 대법원 재심에서 무죄 선고, 사법살인으로 평가됨.
사관의 후예들 — 기록되지 않는 권력
조선의 사관은 왕조차 통제하지 못한 독립적 기록자였다. 태종이 사냥 중 낙마한 일을 부끄러워하며 "사관이 알지 못하게 하라"고 명했으나, 사관은 그 명령이 내려진 사실까지 그대로 적었다. 실록은 왕의 사후에야 편찬되었고, 왕은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실록을 열람할 수 없었다. 조선의 왕들이 정작 두려워한 것은 칼이 아니라 이 기록, 즉 후대에 남을 자신의 이름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조선의 왕 못지않은 독립적 권력을 누리는 집단이 있다. 사법부다. 헌법은 법관에게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할 권한을 준다. 그러나 앞서 본 조봉암 사건처럼 훗날 재심으로 무죄가 확정된 오판들에서도, 그 판결을 내린 법관의 이름은 어디에도 공식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 국가가 배상금을 지급하고 재심 무죄가 선고되어도, 오판의 주역은 기록되지 않은 채 퇴임 후 전관예우 속에 승승장구한다. 법관이 법관을 심판하는 구조 안에서, 사법부는 스스로의 허물을 기록하는 백서를 만들지 않는다.
조선의 사관들이 왕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사초를 썼듯이, 이제 시민이 직접 사관이 되어 법관의 권력을 견제하는 기록을 쓰려는 시도가 '잘못된 판결 백서'다. 낙인이 없어서 위험한 권력도 있다. 기록되지 않는 권력은 두려움을 모른다.
카헬만과 주병진 — 재판은 이겨도 낙인은 남는다
근대는 낙인 생산을 산업화했다. 신문과 방송이라는 소수의 문을 거치지 않으면 어떤 평판도 세상에 나갈 수 없었다. 이 독점은 21세기 들어 개인의 직접 발화, 이른바 폭로권력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 힘이 언론의 편집도, 사법의 재판도 건너뛴다는 데 있다.
독일의 기상캐스터 외르크 카헬만은 2010년 옛 연인의 강간 고소로 구금되었다. 이듬해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지만, 재판장은 혐의가 "약화되었을 뿐 사라진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공영방송으로도, 광고 시장으로도 돌아가지 못했다. 훗날 고소인의 허위 진술이 법원에서 확인되었어도 낙인은 지워지지 않았다.
▷ 외르크 카헬만 Jörg Kachelmann, 1958~. 스위스 출신 독일 방송 기상캐스터. 2010년 강간 혐의로 기소되어 이듬해 무죄 선고. 이후 언론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에서 승소.
같은 해 한국의 방송인 주병진도 성폭행 누명으로 신고 다음 날 구속되었다. 고소인이 스스로 얼굴에 상처를 낸 정황이 뒤늦게 밝혀지며 2년 만에 무죄가 확정되었지만, 방송 복귀까지는 십 년이 넘게 걸렸다. 재판은 몇 년이면 끝나도, 평판의 형기는 그보다 훨씬 길었다.
장경욱 교수 사건 — 약자의 무기를 강자가 되빼앗다
2013년 사학비리를 고발해 해직당한 수원대 장경욱 교수는, 저항을 멈추지 않자 2018년 학교 측으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발당했다. 검찰은 수업 중 정당한 지도 목적의 접촉이었다며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약자의 무기여야 할 폭로권력을, 강자가 언어만 빌려 약자에게 되돌린 사건이다. 낙인의 문법은 누가 쥐느냐에 따라 방향을 바꾼다.
▷ 장경욱, 수원대학교 교수. 2013년 학내 사학비리 고발로 해직, 이후 복직 소송 과정에서 학교 측으로부터 수차례 형사 고발당함. 2016년, 2018년 모두 무혐의·무죄로 종결. 하지만 인사위원회에서 미리 징계한 결과, 무죄임에도 복직소송에서 패소했다. '잘못된 판결'의 전형적인 사례다.
4. 종합정리
평판은 공동체의 면역계다. 청소놀래기를 감시하는 눈들처럼, 버빗원숭이의 정밀한 신뢰 장부처럼, 평판은 본래 외부의 위협 앞에서 공동체를 지키는 정교한 장치였다. 그러나 그 감시권이 소수의 손에 독점되는 순간 — 환관과 사대부, 국가와 빨갱이몰이 — 면역은 스스로의 조직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이 된다. 그리고 이 면역계가 게이트키퍼 없이 개인의 손에 돌아왔을 때, 새로운 문제가 열렸다. 언론권력에는 편집이, 사법권력에는 재판이 있었다. 폭로권력에는 아직 이에 상응하는 견제가 없다. 카헬만과 주병진은 재판을 이기고도 낙인을 지우지 못했고, 장경욱은 자신이 써야 할 무기가 거꾸로 자신을 겨누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관중이 세우려 했던 것은 면역이었고, 마키아벨리가 가르친 것은 그 면역을 역이용하는 법이었다. 오늘날 남은 과제는 이 면역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도 절차와 검증과 이의제기권이라는 세 겹의 옷을 입히는 일이다.
조선의 사관들은 이미 그 옷을 지어 왕에게 입혔다. 오늘의 시민이 '잘못된 판결 백서'로 그 옷을 법관에게 입히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명제 9. '평판'도 공동체를 지탱하는 권력이다ㅡ하지만 '폭로권력'으로 남용되기 쉽다. 버빗원숭이조차 개체와 항목 단위로 신뢰를 정밀하게 기록했으나, 인간의 낙인은 종종 그 정밀함을 잃고 무차별적으로 번져 자가면역질환이 된다.
조봉암은 낙인이 법정을 삼킨 사례이며, 카헬만과 주병진은 재판을 이기고도 낙인이 남은 사례이고, 장경욱은 약자의 무기가 강자에게 탈취된 사례다.
폭로권력에는 아직 언론의 편집도 사법의 재판도 없다. 이 힘을 없앨 수는 없다. 절차와 검증과 이의제기권이라는 옷을 입혀야 한다. '미투'의 악용을 막는 장치가 가동되어야 정상적인 여성인권의 보장도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