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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강해(13) 점이 아닌 선을 보라(사울과 사무엘의 첫 만남)
본문 : 삼상 9:1-17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백성>
사무엘의 나이가 많아 두루 순례하며 다닐 수 없게 되자, 두 아들 ‘요엘’과 ‘아비야’를 보조 사사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두 아들을 행태는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연상케 했습니다. 그들은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했습니다.
그들의 타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각 성읍의 장로들이 사무엘에게 나아와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8:5)하고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요구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로서의 ‘이스라엘’의 고유한 특징을 포기하겠다는 뜻입니다. 주변의 다른 나라들처럼 사람이 왕이 되어 다스리는 왕정제도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요구를 못마땅하게 여긴 사무엘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사무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도 서운한 감정을 내비치십니다.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8:7).....
하나님은 그들의 감추어진 욕망을 이미 꿰뚫고 계셨습니다.
역사가 계속되는 한 그들의 왕에 대한 요구는 끊이지 않을 것을 알고 계셨기에.....
어느 시점에 와서는 왕정제도를 허락할 계획을 품고 계셨습니다.
그 순간이 바로 지금이라고 판단하셨던 것입니다.
<사울에 대한 소개>
오늘 우리가 살펴 볼 9장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는 사울과 사무엘의 첫 만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1절은 사울의 가정적인 배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절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며 베냐민 사람이더라.”
주목해 보아야 할 대목은 그의 아버지 기스가 ‘유력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 하나는 재산이 많다는 뜻입니다.
- 다른 하나는, 당시 사회적 가치관에 비추어 존경 받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룻 2:1).
두 번째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그가 ‘베냐민 지파’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야곱의 열 두 아들 중 막내 베냐민의 자손입니다.
창 49:27절을 보면 야곱이 아들들에게 기도해 줄 때 베냐민에게는 ‘물어뜯는 이리’라고 한 것처럼 실제로 이후에 베냐민 자손들은 무인(武人)의 피가 흘러서 인지 전쟁을 잘하는 호전적인 지파가 됩니다.
우리가 지난 번 사사기를 강해할 때 살펴보았듯이,...
한 레위인의 첩을 윤간하여 죽게 만든 기브아 사건(삿 19:22-30)으로 인해 .....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과 전쟁을 벌여 600명의 장정 외에는 전멸하였습니다(삿 20:1-48).
다행히 다른 지파로부터 아내를 얻어 지파의 명맥은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이스라엘 가운데서 극히 작은 지파에 불과합니다(삿 21:1-24).
두 번째, 2절에서는 그의 외모에 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2절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기스에게 아들이 있는데, 이름이 ‘사울’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가장 왕다운 준수한 외모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준수하다’는 말은 훌륭한 풍채와 몸가짐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더군다나 키도 다른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꿈꾸던 왕의 용모를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항상 주변에 살고 있는 이방국가들과의 끊임없는 전쟁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을 대신하여 앞장서서 싸워줄 싸움 잘하는 건장한 왕을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훌륭한 장군 타입의 왕을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 이런 국민적 요구에 사울왕은 아주 적합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외모만 갖추었다고 왕이 될 자격이 갖추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과 달리 먼저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삼상 16:7).
그래서 성경 기자는 사울이 가지고 있는 내면적인 아름다움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내면의 성품을 알리기 위해 한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합니다.
<3-4절>
3절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그의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한 사환을 데리고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하매
4절 그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하고 사알림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그 곳에는 없었고 베냐민 사람의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하니라.”
사울의 아버지가 암나귀들을 잃어버렸습니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가 여러 마리를 잃어 버렸습니다. 당시에 나귀는 귀한 재산이면서 운반과 교통의 수단이었습니다.
기스는 사울에게 집에 있는 사환 한 사람과 동행하여 .....암나귀를 찾아오라고 명합니다.
사울은 아버지의 말에 순종합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합니다. 각처를 두루두루 돌아다니며 암나귀를 찾아다녔습니다.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과 사알림 땅과 베냐민 전 지역을 샅샅이 뒤지며 찾았습니다.
팔레스타인 중앙부에 위치한 산간 지대가 ‘에브라임 산지’입니다.
이곳의 대부분은 에브라임 지파의 영토였으며 일부는 베냐민 지파에게 속했습니다.
그는 찾을 때까지 며칠이고 성실하게 순종하는 타입이었습니다.
이 에피소드를 통하여 사울의 내면적인 아름다움, 곧 순종심과 책임감을 강하게 드러냅니다. 하나님이 택할만한 아름다운 내면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효심이 남달랐습니다.
5절 “그들이 숩 땅에 이른 때에 사울이 함께 가던 사환에게 이르되 돌아가자
내 아버지께서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 하니.”
암나귀를 찾아 다닌지 사흘이 지났습니다(20절).
당시 산지에서 숙식하는 것은 맹수의 습격에 노출되는 것이므로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사울은 이제 아버지가 자신들에 대하여 걱정할 것을 고려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나귀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사울의 분별력과 극진한 효성을 증거해 줍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자세라고 하겠습니다.
여기까지가 사울의 외적, 내적 됨됨이에 대한 에피소드입니다.
<사환의 헌신>....
이 때 그와 함께하던 사환이 제안을 합니다.
<6-10절>
6절 “그가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읍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가 갈 길을 가르쳐 줄까 하나이다 하는지라7절 사울이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우리가 가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드리겠느냐 우리 주머니에 먹을 것이 다하였으니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도다 무엇이 있느냐 하니
8절 사환이 사울에게 다시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내 손에 은 한 세겔의 사분의 일이 있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려 우리 길을 가르쳐 달라 하겠나이다 하더라
9절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
10절 사울이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네 말이 옳다 가자 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성읍으로 가니라.”
아마도 그들이 있는 곳이 사무엘 선지자의 고향 ‘에브라임 산지의 라마’였던 것 같습니다.
사무엘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있던 사환은 이 성에 ‘하나님의 사람’이 계시니 ...
우리가 가서 우리의 갈 길을 묻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사무엘을 ‘하나님의 사람’이란 호칭한 것은 사환이 얼마나 사무엘을 존경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호칭은 모세(신 33:1)와 훗날 엘리야(왕하 1:9)와 엘리사(왕하 8:2)에게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러자 사울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다며 망설입니다.
당시 선지자에게 가기 위해서 예물을 정성껏 준비하는 것은 흔히 있었던 일입니다.
이 때 사환이 한 번 더 나섭니다. 자신에게 “은 한 세겔의 사분의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겔은 무게 단위로 한 세겔은 약 11.4g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한 세겔의 사분 일’은 2.9g에 해당합니다. 저는 이것이 오늘날의 가치로 얼마인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사환이 지니고 있던 것의 전부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이것을 사울을 위해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리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이름 없는 사환’을 주목해 봅니다.
그는 그저 따라만 다니며 심부름만 해주는 수동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주인을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곧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최선을 다하는 것을 모든 것이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잠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16:33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또 사환이 상전을 위하여 자신의 소유를 아끼지 않는 헌신적 자세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사환의 헌신이 없었다면 사울은 사무엘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이름 없는 사환’을 통해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한 경쟁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자기 힘만으로 무언가를 이루려 하는 현대인들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소개하는 역할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맡았습니다.
또한 전도는 입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에 따르는 본을 보일 뿐 아니라 물질적인 헌신도 필요함을 깨닫게 해 줍니다.
저와 성도님들이 우리 시대의 ‘이름 없는 사환’이 되어 많은 사람을 주께로 인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간섭하심 – 점이 아니라 선을 보라>.....
이후의 사울과 사무엘의 첫 만남까지는 ‘하나님 간섭하심’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11-17절>
11절 “그들이 성읍을 향한 비탈길로 올라가다가 물 길으러 나오는 소녀들을 만나
그들에게 묻되 선견자가 여기 있느냐 하니
12절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있나이다 보소서 그가 당신보다 앞서 갔으니 빨리 가소서
백성이 오늘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므로 그가 오늘 성읍에 들어오셨나이다
13절 당신들이 성읍으로 들어가면 그가 먹으러 산당에 올라가기 전에 곧 만나리이다
그가 오기 전에는 백성이 먹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제물을 축사한 후에야 청함을 받은 자가 먹음이니이다 그러므로 지금 올라가소서 곧 그를 만나리이다 하는지라
14절 그들이 성읍으로 올라가서 그리로 들어갈 때에 사무엘이 마침 산당으로 올라가려고 마주 나오더라 15절 사울이 오기 전날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되
16절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되었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노라 하셨더니
17절 사무엘이 사울을 볼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다스리리라 하시니라.”
마치 하나님께서 미리 짜 놓으신 듯 한 정확한 타이밍이 연속적으로 일어납니다.
사울이 사무엘을 만나러 성읍의 비탈길을 오를 때, 마침 물 길으러 오는 소녀들을 만나서
사무엘의 정확한 위치를 제공받습니다. 소녀들은 오늘 마침 선견자가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앞서 성읍에 막 왔으니 빨리 가라고 말해 줍니다.
또 사울과 사환이 성읍에 들어서니 마침 산당으로 올라가려는 중에 사무엘과 우연히(?) 마주칩니다.
‘산당(바마 : במה)’이란 문자적으로 높은 장소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이전에
그곳 원주민들은 높은 곳에 자신들의 우상을 섬기는 산당을 지어 그곳에서 제사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정복 정착 시 산당을 훼파하라고 명하신 까닭이 바로 그 때문입니다(민 33:52).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이 건립되기 전까지 산당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장소로 종종 이용되었습니다(왕상 3:4, 대하 33:17). 성소가 있던 실로가 블레셋에 의하여 훼파가 된 상황에서 산당에서의 예배는 불가피했을 것으로 보입니다(삼상 7:17).
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을 자’를 만나게 될 것을 예고하고 주십니다.
‘기름을 붓는다’는 말은 제사장이나 선지자 또는 왕을 세울 때 행하던 의식입니다.
이는 사울이 사무엘에게로 나아간 일이 결코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었음을 증거합니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치밀한 섭리 속에 일어난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만 타이밍이 맞지 않고 비껴나가도 사울과 사무엘의 만남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치 무슨 퍼즐을 맞추어 나가듯 순간순간이 정확하게 들어맞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오늘 9장의 에피소드 전체가 한편의 퍼즐 그림과 같습니다.
암나귀가 집을 안 나갔다든지..., 나갔어도 한 마리만 나갔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유력한 집안’이기 때문에 귀한 아들을 보내지 않고 사환만 보냈을 것입니다.
또 사울과 함께 간 사환이 ‘하나님의 사람’에 대해 몰랐거나, 아니면 대단히 수동적인 사람이었다면 사울을 사무엘에게로 이끌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 선견자를 만나기 위해 마을로 속히 들어갈 때 소녀들이 사무엘이 산당에서 제사 드리는 바로 그 타임을 정확하게 알려주어 만나게 한 것 등등....
여기서 어느 하나라도 조각 그림이 빠지거나 어긋나면....
사울과 사무엘의 만남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 모든 일이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
하나님의 정확한 섭리와 계획안에 일어난 것임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이런 사건 하나하나를 조각으로만 떼어 놓고 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고난의 의미를 해석하지 못합니다. 이것을 연결해서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큰 뜻을 봐야 합니다.
마치 여러 개별적인 점이 서로 연결되어 ‘선’을 이루듯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끝까지 살펴야 합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요셉의 삶이 그렇습니다. 요셉은 17세에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의 상인들에게 팔려 갑니다. 그리고 시위 대장 보디발의 집의 노예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러나 요셉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최선을 노력을 다하였습니다. 결국 그의 성실성과 책임감을 인정한 보디발은 그를 가정의 총무로 세웠습니다.
그러나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한 이유로 모략을 받아 감옥에 갇히고 맙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좌절할 만도 한데, 요셉은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감옥에서도 인정받아 그 안의 제반 작업을 책임지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몽해주어 감옥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바로의 곁으로 돌아간 ‘술 맡은 관원장’은 그를 잊어버렸습니다.
이후 무려 2년 가까이 흘렀지만 성경은 그의 원망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인내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때 드디어 기회가 왔습니다.
애굽 왕 바로의 꿈을 해석할 자가 없자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해 낸 것입니다.
그는 바로의 꿈을 정확하게 분별해냈고, 그 후 애굽의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요셉의 삶을 하나하나의 조각으로만 해석하면 긍정적인 내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맞춰 나가면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하심을 보게 됩니다.
훗날 가나안에 흉년이 들어 형들이 자신을 찾아와 머리를 숙여 절할 때에서야 비로소...
‘아! 이게 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라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기에게 일어났던 하나하나의 사건을 모아 전체 그림을 본 것입니다.
그 때는 몰랐는데 그동안 살아 왔던 하나하나의 사건을 연결해서 보니 형들이 나를 팔아넘긴 것도 하나님이 하셨고, 종살이하고, 감옥살이 하며, 온갖 고생을 다 한 것은 형들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삶이 그렇습니다.
때로 우리에게 이해하지 못할 고난의 때가 온다 하더라도 그것만 보고 좌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잘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가 있음을 믿고 믿음으로 전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화가 변화여 복’이 되고,....
‘재가 변화여 화관’이 되는 역전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지나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15-17절>
15절 “사울이 오기 전날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되
16절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되었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노라 하셨더니
17절 사무엘이 사울을 볼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다스리리라 하시니라.”
두 가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첫째, 1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지목하시면서 ‘왕’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지도자’라고 하셨습니다(16절).
분명히 백성들은 왕을 달라고 했고 하나님께서도 응답하셨는데..., 정작 왕을 주시면서도.....
그를 가리킬 때에는 ‘지도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백성이 하도 졸라서 주기는 주는데 실제로 ‘왕’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갓 지도자나 방백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왕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훗날 사울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자 하나님은 그를 폐하셨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지도자를 세우신 이유와 목적이 분명합니다.
“내 백성”이라는 표현이 반복됨을 볼 수 있습니다(4회). 이는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의 표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백성입니까? 40년간 이들을 이끌고 광야에서 목회한 모세의 표현을 빌면 ‘목이 곧은 백성’(신9:6)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배방하기를 끝없이 한 백성입니다.
그리고 그 후로도 몇 세대가 바뀌었지만 그들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들은 하나님의 왕 되심을 거절하고 인간으로 왕을 삼아 달라고 요청한 바 있습니다(8:5).
얼마나 괘씸합니까? 한 번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전히 “내 백성”이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그들을 위해 지금 사울을 지도자로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 하나님께 세움 받은 지도자는 하나님을 왕으로 삼고,.....
오직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백성을 위해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가 같은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마음을 기억할 때 오늘 우리는 하나님 사랑을 이 땅에 전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님들 !
오늘 우리는 사울을 택하셔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시는 하나님의 치밀한 섭리를 보았습니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별개의 사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가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소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사’는 계속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믿음으로, 겸손히 이루어가야 할 것입니다.
“점이 아닌 선을 보시기 바랍니다. 면이 아닌 공간을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점(면)에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거의 본능적으로 아주 작은 일은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속고 있는 부분이 ...........하나님은 크고 그럴듯한 일과 사건 속에서만 하나님을 발견하려고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작은 일상 속에서도 늘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와 성도님들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
큰 그림으로 보면 소소하고 의미 없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톨스토이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지금 현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현재이고,.....
지금 현재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여러분들 앞에 있는 사람이고,....
지금 현재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성경적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성도님들과 함께 하시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성도님들이 만나는 사람,.....
지금 현재 성도님들이 하고 있는 일이 가장 소중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 속에서 최선을 다함으로...
선하신 하나님 뜻을 이루어드리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