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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객잔》
제11화 ― 청아의 고향 선물
다음 날 아침.
천하제일 객잔의 앞마당에는 청아가 고향에서 가져온 선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붉은 열매가 가득 담긴 대나무 바구니.
하얀 서리가 내려앉은 푸른 나무 상자.
황금빛 술병 세 개.
꽃무늬 비단 보따리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알까지.
연우는 앞마당을 가득 채운 짐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휴가를 다녀온 거야, 이사를 온 거야?”
청아가 허리에 두 손을 얹고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전부 선물이에요.”
“아버지가 객잔 식구들과 나눠 먹으라고 주셨어요.”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백노인이었다.
그는 황금빛 술병 하나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과연 훌륭한 분이시군.”
풍백이 술병을 힐끗 바라보았다.
“아직 뚜껑도 열지 않았는데 훌륭한 사람인지 어떻게 아나?”
“술을 보내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
“그건 어느 문파의 가르침이지?”
백노인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내 문파.”
그는 대답을 마치자마자 술병 하나를 소매 안으로 슬쩍 감췄다.
청아가 재빨리 달려들어 백노인의 소매를 붙잡았다.
“하나만 드리는 거예요.”
백노인의 움직임이 멈췄다.
“나머지 두 병은?”
“한 병은 주인님이 요리할 때 쓰는 거고, 다른 한 병은 손님들 대접하는 거예요.”
“나도 손님이다.”
청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돈을 내야 손님이죠.”
풍백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이다.”
백노인이 풍백을 노려보았다.
“너도 외상이잖아.”
풍백은 조용히 시선을 피했다.
두 노인이 서로를 노려보는 동안,
연우는 대나무 바구니에서 붉은 열매 하나를 집어 들었다.
어른 주먹만 한 열매는 표면이 불꽃처럼 붉었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자 따뜻한 열기가 전해졌다.
“이게 화염과라고 했지?”
청아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껍질은 아주 맵고 속은 달아요.”
“불에 살짝 구우면 더 맛있어요.”
연우의 눈이 반짝였다.
“구우면 맛있다고?”
설화는 그 표정을 보는 순간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설마 지금 요리하려는 것은 아니겠죠?”
그러나 연우는 이미 화염과 바구니를 들고 주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침 식사에 곁들여 보려고요.”
“처음 보는 식재료인데 괜찮겠습니까?”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요리할 수 있습니다.”
식탁 아래에 있던 묘묘가 연우를 올려다보았다.
“야옹.”
연우가 걸음을 멈췄다.
“왜?”
묘묘는 화염과를 바라보다가 앞발로 얼굴을 가렸다.
연우는 그것을 전혀 다르게 이해했다.
“걱정하지 마. 고양이도 먹을 수 있도록 안 맵게 만들어 줄게.”
청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묘묘가 겁먹었나 봐요.”
“야옹!”
묘묘의 울음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연우는 화염과를 깨끗이 씻어 화로 위에 올려놓았다.
치이익.
붉은 껍질이 달궈지면서 달콤하면서도 매콤한 향이 주방 안에 퍼졌다.
“향은 아주 좋은데?”
연우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열매를 뒤집었다.
설화는 주방 입구에 서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았다.
청아는 그 옆에서 발뒤꿈치를 들고 화로를 들여다보았다.
“조금만 더 구우면 돼요.”
“이 정도?”
“조금 더요.”
연우가 불을 키웠다.
화염과의 표면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지금인가?”
“조금만 더요.”
붉었던 불빛이 서서히 푸른색으로 변했다.
열매가 부풀어 올랐다.
묘묘의 귀가 번쩍 섰다.
“야옹!”
연우가 돌아보았다.
“배고프다고?”
그 순간이었다.
화염과의 껍질에 가느다란 금이 생겼다.
쩌적.
청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
설화가 물었다.
“왜 그러죠?”
청아는 잠시 고민하다가 천진난만하게 대답했다.
“너무 오래 구우면 터져요.”
연우와 설화가 동시에 화염과를 바라보았다.
“터진다고?”
퍼엉!
화염과가 폭발했다.
열매 속에서 붉은 불길이 용처럼 솟구쳤다.
화르르륵!
불길은 순식간에 화로를 넘어 찬장과 천장으로 번졌다.
연우가 국자를 들고 외쳤다.
“물!”
설화가 물동이를 들어 불길에 끼얹었다.
촤아악!
그러나 불은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물을 먹은 불길이 더욱 크게 치솟았다.
설화의 얼굴이 굳었다.
“물이 통하지 않습니다!”
청아가 손뼉을 쳤다.
“맞다!”
“화염과의 불은 물을 좋아해요.”
연우가 다급히 외쳤다.
“그걸 왜 이제 말해!”
그는 커다란 솥뚜껑을 들어 불길을 덮었다.
그러나 불꽃은 솥뚜껑의 가장자리에서 혀를 내밀듯 계속 피어올랐다.
풍백이 주방 밖에서 부적 한 장을 꺼냈다.
“이럴 때를 대비해 준비한 진화부가 있지.”
그가 부적을 불길 속으로 던졌다.
펄럭.
부적은 불에 닿자마자 흔적도 없이 타 버렸다.
풍백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습기 제거 부적이었던 모양이군.”
설화가 차갑게 말했다.
“쓸모가 없군요.”
“부적도 때와 장소를 타는 법이지.”
불길이 천장까지 치솟으려는 순간,
청아가 볼을 크게 부풀렸다.
그리고 불을 향해 힘껏 숨을 내뱉었다.
후우우.
황금빛 바람이 주방을 휩쓸었다.
거세게 타오르던 불길이 작은 촛불처럼 줄어들더니,
마지막에는 화염과의 껍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푸슉.
주방 안에는 검은 연기만 남았다.
연우는 새까맣게 그을린 솥뚜껑을 내려다보았다.
설화의 머리카락 끝에도 검은 재가 묻어 있었다.
그러나 청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방긋 웃었다.
“이제 먹으면 돼요.”
연우가 새까맣게 탄 화염과를 젓가락으로 찔러 보았다.
껍질이 바스러지며 안에서 황금빛 과육이 드러났다.
달콤하고 고소한 향기가 퍼졌다.
연우는 조심스럽게 한 조각을 맛보았다.
그의 눈이 커졌다.
“맛있다.”
설화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객잔을 태울 뻔했는데도요?”
“위험한 음식이 원래 맛있더라고요.”
백노인이 주방 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술안주로 좋겠군.”
청아가 얼른 남은 화염과를 끌어안았다.
“할아버지는 안 돼요.”
화재 소동이 진정된 뒤,
연우는 두 번째 선물을 꺼냈다.
하얀 서리가 내려앉은 푸른 나무 상자였다.
상자를 객잔 안으로 옮기자 주변 공기가 서늘해졌다.
연우가 두 손을 비볐다.
“이건 빙하어라고 했지?”
“네.”
청아가 신이 나서 설명했다.
“요계 북쪽의 얼음 호수에서만 사는 물고기예요.”
“국을 끓이면 아주 시원하고 맛있어요.”
풍백이 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죽은 물고기 맞지?”
“아마도요.”
“아마도?”
청아는 상자 옆에 귀를 대었다.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용하니까 자는 것 같기도 하고요.”
연우가 상자 뚜껑에 손을 올렸다.
묘묘가 식탁 위로 뛰어올라 털을 곤두세웠다.
“야옹!”
묘묘는 연우의 손등을 앞발로 눌렀다.
설화가 말했다.
“열지 말라는 것 같습니다.”
연우는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요리사로서의 호기심이 묘묘의 경고보다 강했다.
“살짝만 볼게.”
그가 뚜껑을 열었다.
끼이익.
새하얀 냉기가 상자 안에서 흘러나왔다.
그 안에는 푸른 수정처럼 빛나는 비늘을 가진 커다란 물고기가 누워 있었다.
연우가 감탄했다.
“정말 예쁘게 생겼네.”
그 순간,
빙하어의 눈이 번쩍 떠졌다.
철퍽!
물고기가 상자 밖으로 튀어 올랐다.
입에서 새하얀 냉기가 폭풍처럼 쏟아졌다.
콰아아!
객잔 바닥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얼음은 탁자 다리를 타고 올라가 벽과 창문까지 뒤덮었다.
연우의 눈썹과 머리카락에도 하얀 서리가 내려앉았다.
설화는 검을 뽑으려다가 얼어붙은 바닥에서 미끄러졌다.
“꺅!”
그녀가 뒤로 넘어가려는 순간,
연우가 재빨리 팔을 뻗어 설화의 허리를 붙잡았다.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설화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연우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아요?”
설화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차갑게 얼어붙은 객잔 안에서 연우의 손만 이상하리만큼 따뜻했다.
그녀는 황급히 몸을 바로 세웠다.
“괜찮습니다.”
“얼굴이 빨간데요?”
“추워서 그렇습니다.”
풍백이 얼어붙은 수염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추우면 보통 얼굴이 하얘지지 않나?”
설화의 차가운 시선이 날아왔다.
풍백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빙하어는 바닥에서 펄떡일 때마다 냉기를 뿜어냈다.
백노인은 황금빛 술병을 품에 넣으며 다급히 외쳤다.
“술이 얼기 전에 저놈부터 잡아라!”
연우가 빙하어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러나 얼음 위에서 발이 미끄러졌다.
“어어?”
연우는 팔을 휘저으며 앞으로 미끄러졌다.
빙하어도 반대편으로 미끄러졌다.
한 사람과 한 물고기가 객잔 안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청아는 손뼉을 치며 웃었다.
“주인님이 잡는다!”
“물고기가 도망간다!”
설화가 이마를 짚었다.
“구경하지 말고 도와요!”
청아는 얼음 위로 가볍게 뛰어올랐다.
“잡았다!”
그녀가 두 손으로 빙하어를 붙잡았다.
그러나 빙하어가 몸을 세차게 비틀었다.
청아와 빙하어는 함께 바닥을 미끄러지다가 백노인의 탁자 아래로 들어갔다.
쿵!
탁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백노인은 술잔만큼은 놓치지 않았다.
“어린것들이 객잔을 다 부수는군.”
묘묘가 한심하다는 듯 꼬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바닥으로 뛰어내려 빙하어 앞에 섰다.
묘묘의 황금빛 눈동자가 빛났다.
“야옹.”
작은 울음이었다.
그러나 빙하어는 그 자리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거칠게 펄떡이던 꼬리도 얌전히 내려앉았다.
청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묘묘가 물고기랑 이야기했어요?”
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먹어도 되냐고 물어본 것 같은데.”
묘묘가 연우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한바탕 소동이 끝난 뒤,
빙하어는 다시 푸른 상자 안으로 돌아갔다.
청아가 상자 위에 부적을 붙이자 객잔을 뒤덮었던 얼음도 조금씩 녹기 시작했다.
연우는 바닥의 물을 닦으며 말했다.
“다음부터는 선물에 설명서를 같이 받아 와야겠다.”
청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설명서가 뭐예요?”
“열면 안 되는 것과 구우면 안 되는 것을 적은 종이.”
청아는 잠시 생각했다.
“아버지가 뭐라고 말씀하시기는 했는데…”
“뭐라고?”
“잘 기억이 안 나요.”
설화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연우와 청아는 남은 선물들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향긋한 달빛버섯.
밤마다 혼자 노래를 부른다는 풍령초.
기분에 따라 색이 변하는 요계 비단.
그리고 먹으면 하루 동안 귀가 길어진다는 토끼과자.
연우는 토끼과자를 집었다가 조용히 내려놓았다.
“이건 손님에게 내놓으면 안 되겠네.”
풍백이 과자 하나를 슬쩍 집어 들었다.
“맛만 보면 괜찮겠지.”
청아가 말릴 틈도 없이 풍백은 과자를 입에 넣었다.
바삭.
모두가 풍백을 바라보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풍백이 여유롭게 웃었다.
“보아라. 역시 내 공력에는 이런 요술이 통하지—”
뿅.
풍백의 머리 위로 하얀 토끼 귀 두 개가 솟아났다.
객잔 안에 침묵이 흘렀다.
백노인이 가장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청아는 풍백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도사 토끼다!”
“도사 토끼!”
풍백은 양손으로 토끼 귀를 누르며 외쳤다.
“나는 천기를 읽는 도인이다!”
백노인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
“천기를 읽기 전에 당근부터 찾아야겠구나.”
묘묘도 탁자 위에서 만족스러운 듯 꼬리를 흔들었다.
남은 선물을 거의 정리했을 무렵이었다.
연우는 꽃무늬 비단 보따리 아래에서 작은 검은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손바닥만 한 상자의 뚜껑에는 황금빛 짐승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왕관을 쓴 채 두 날개를 펼친 영수.
청아의 뒤에 나타났던 황금빛 짐승과 닮은 문양이었다.
연우가 상자를 들어 올렸다.
“청아야, 이것도 선물이야?”
청아는 상자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것도 있었어요?”
탁자 위에서 졸던 묘묘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상자에 새겨진 문양을 본 순간,
검은 털이 천천히 곤두섰다.
묘묘는 탁자에서 뛰어내려 상자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앞발로 연우의 손등을 눌렀다.
연우가 물었다.
“열지 말라고?”
설화는 상자의 문양을 자세히 살폈다.
“요계 왕가의 인장입니다.”
청아가 놀라 물었다.
“누나는 그걸 어떻게 알아요?”
“마교의 고문서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설화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요계의 왕이 직접 봉인한 물건에만 새기는 문양이죠.”
연우가 청아를 바라보았다.
“네 아버지가 요계의 왕과 가까운 분인가?”
청아는 잠시 고민했다.
“아주 가까워요.”
“얼마나 가까운데?”
“매일 같이 밥을 먹어요.”
풍백이 토끼 귀를 누르며 중얼거렸다.
“가족인가 보군.”
청아가 해맑게 대답했다.
“네. 우리 아버지가 요계의 왕이니까요.”
객잔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설화가 천천히 청아를 바라보았다.
“그럼 당신은 요계의 공주…”
청아가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정확하게는 왕자예요.”
연우가 청아를 위아래로 바라보았다.
“왕자였어?”
“요계에서는 왕의 자식을 모두 왕자라고 불러요.”
청아는 자랑스럽게 가슴을 폈다.
“저는 요계의 막내 왕자예요.”
연우는 검은 상자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청아가 뒤늦게 손뼉을 쳤다.
“맞다!”
“아버지가 연우 주인님께 꼭 전해 드리래요.”
“나한테?”
“네.”
“절대로 잃어버리면 안 되고, 아무에게도 빼앗기면 안 된다고 했어요.”
청아는 묘묘를 바라보았다.
“묘묘가 보면 전부 알 거라고도 했어요.”
모두의 시선이 검은 고양이에게 쏠렸다.
묘묘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연우가 상자에 손을 대자 황금빛 문양이 환하게 빛났다.
우우웅.
상자가 스스로 열렸다.
딸깍.
그 안에는 작은 황금 열쇠 하나가 들어 있었다.
손잡이에는 두 마리 용이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었고,
열쇠 몸통에는 오래된 문자가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황금 열쇠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연우의 품속에서 천(天)의 나무패가 떨리기 시작했다.
연우가 나무패를 꺼냈다.
나무패와 황금 열쇠는 서로를 부르듯 동시에 빛을 냈다.
설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다른 봉인의 열쇠입니까?”
묘묘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열쇠는 천 년 전,
요계의 왕이 천검성군에게 맡겼던 물건이었다.
그리고 천검성군이 봉인의 숲으로 떠나던 날,
묘묘가 직접 요계로 돌려보낸 물건이기도 했다.
‘왜 이것을 다시 보낸 거지?’
‘설마 봉인이 그만큼 약해진 것인가?’
연우가 황금 열쇠를 들어 올렸다.
열쇠에 새겨진 문자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청아가 황금빛 글자를 살피며 천천히 읽었다.
“천 년의 약속을 지키는 자에게…”
“요계의 문을 여는 열쇠를 맡긴다.”
그 아래에서 더욱 오래되고 복잡한 문장이 나타났다.
청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이건 너무 오래된 글자라 모르겠어요.”
연우가 묘묘를 바라보았다.
“묘묘는 알지?”
“야옹.”
“청아 아버지가 네가 보면 알 거라고 했다는데?”
묘묘의 몸이 움찔했다.
연우는 황금 열쇠를 묘묘 앞에 내려놓았다.
“지금까지 모른 척한 것은 넘어가 줄게.”
“이것만은 알려 줘.”
묘묘는 연우의 눈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마침내 황금 열쇠 위에 앞발을 올렸다.
황금빛이 크게 번쩍였다.
요계의 문자가 하나씩 인간의 글자로 바뀌기 시작했다.
천검성군을 절대로 봉인의 숲에 보내지 마라.
객잔 안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연우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흑월은 분명 봉인의 숲으로 오라고 했다.
그곳에서 연우의 과거와 천 년 전의 죄를 모두 알려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요계의 왕은 정반대의 경고를 보내왔다.
봉인의 숲에 가지 말라고.
풍백이 황금빛 문장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한 사람은 과거를 보러 오라 하고.”
“다른 사람은 절대로 가지 말라고 하는군.”
설화가 단호하게 말했다.
“흑월의 말은 함정입니다.”
“봉인의 숲에는 가서는 안 됩니다.”
연우는 황금 열쇠를 손에 쥔 채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천검성군이 정말 자신의 전생인지.
흑월이 말한 천 년 전의 죄가 무엇인지.
그리고 봉인의 숲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여인은 누구인지.
연우가 낮게 말했다.
“하지만 가지 않으면…”
“영원히 아무것도 알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설화가 즉시 대답했다.
“모르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낫습니다.”
연우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제가 죽을까 봐 걱정하는 겁니까?”
설화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고개를 돌렸다.
“객잔의 국수값을 아직 다 갚지 못했으니까요.”
연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이번에도 다음에 먹을 국수값입니까?”
설화의 귀가 살짝 붉어졌다.
“그렇습니다.”
풍백이 토끼 귀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이 객잔의 국수값은 목숨으로도 갚기 어려운 모양이군.”
설화가 그를 노려보았다.
“토끼 귀를 뽑아 드릴까요?”
풍백은 서둘러 입을 다물었다.
그날 밤.
모두가 잠든 뒤에도 연우는 잠들지 못했다.
그는 주방의 작은 등불 아래 앉아 황금 열쇠와 천(天)의 나무패를 바라보고 있었다.
창가에 웅크리고 있던 묘묘가 눈을 떴다.
은빛 안개가 피어오르며 검은 고양이가 긴 흑발의 청년으로 변했다.
묘묘는 연우의 맞은편에 앉았다.
“주인님.”
연우가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말해 줄 생각이야?”
묘묘는 대답하지 못했다.
연우가 황금 열쇠를 들어 올렸다.
“청아의 아버지는 왜 내가 봉인의 숲에 가면 안 된다고 한 거지?”
“그곳에 흑월이 있어서?”
“아니면 내가 잃어버린 기억이 있어서?”
묘묘가 낮게 말했다.
“두 가지 모두입니다.”
“그게 전부는 아니잖아.”
묘묘의 손이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봉인의 숲에는…”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연우의 머릿속에 봉인의 숲에서 들었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기다릴게요.
천 년이 걸리더라도.
연우가 물었다.
“그 여인은 누구야?”
묘묘의 눈빛이 아프게 흔들렸다.
“당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연우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알 수 없는 그리움과 통증이 동시에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런 사람이 왜 봉인되어 있지?”
묘묘는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바로 그때였다.
딸랑.
바람도 없는데 객잔 처마의 방울이 저절로 울렸다.
문틈 아래로 붉은 안개가 천천히 스며들었다.
탁자 위의 황금 열쇠가 홀로 떠올랐다.
열쇠 끝이 봉인의 숲이 있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붉은 안개 너머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약속을…”
“기억해 주세요.”
연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묘묘가 다급히 그의 앞을 막았다.
“가시면 안 됩니다.”
“저 사람이 나를 부르고 있어.”
“그것이 정말 그분의 목소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흑월의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붉은 안개 속에서 목소리가 다시 속삭였다.
“천검성군님.”
“시간이 없습니다.”
연우가 문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묘묘가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주인님!”
그 순간,
봉인의 숲 깊은 곳에서 거대한 균열음이 울렸다.
쩌저적.
산 전체가 희미하게 흔들렸다.
붉은빛이 숲 위로 솟아올랐다.
그리고 잠들어 있던 청아의 목에 걸린 작은 황금 방울이 스스로 울리기 시작했다.
딸랑.
딸랑.
방울 안에서 위엄 있는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천검성군.”
“봉인의 숲으로 가서는 안 된다.”
연우와 묘묘가 동시에 청아가 잠든 방을 바라보았다.
목소리는 더욱 무겁게 이어졌다.
“그 여인이 깨어나는 순간…”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당신은 다시 죽게 될 것이다.”
다음 화 예고
제12화 ― 요계에서 온 경고
청아의 황금 방울을 통해 요계의 문이 열린다.
문 너머에서 청아의 아버지이자 요계의 왕이 모습을 드러낸다.
천 년 전 천검성군이 봉인한 것은 재앙만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천검성군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의 영혼도 함께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묘묘는 요계의 왕이 모든 진실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연우는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를 분명하게 밝힌다.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제 눈으로 확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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