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고긴 하지만서두 카페지기 님과의 약속도 있고 하여 글을 올립니다. -_-;;
his daylight
무대 위의 카리스마
연극배우 안석환
7년만의 재공연으로 관심을 모은 연극 <남자충동>의 주인공 안석환. 18년 경력의 베테랑 배우답게 탄탄하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연기와 카리스마로 좌중을 휘어잡은 그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연극배우로 다시 한 번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열렬한 환호와 찬사 속에 공연은 끝났지만, 그의 변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드라마와 영화, 연극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새로운 페르소나를 펼쳐 보일 것이므로.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배우의 변신은 무죄라고 말이다.
“내 이름이 석환이여, 안석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디 말여. 그기 찰리 채플린이여. 내가 찰리 채플린 영화는 다 봤지라. 찰리 채플린! 휴머니티가 살아 있는 그 연기! 나의 정신적 지주여, 모델이여. 배우는 말여 자고로 변신이 생명이여. 변신하지 않는 배우는 배우가 아녀. 끊임없이 변신하는 배우! 고거이 내 꿈이여.”
동숭아트센터가 마련한 연극열전의 네 번째 작품 <남자충동>의 주인공 이장정의 어투로 연극배우 안석환을 소개한다면 아마도 이와 같지 않을까. 이장정은 오랜 무명의 설움에 시달리던 그를 연기파 배우 안석환으로 거듭나게 한 배역이니, 그가 창조한 페르소나의 어투로 그를 소개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리라. 게다가 초연 당시 백상예술대상, 동아연극상, 젊은예술가상 등 연극계의 굵직굵직한 상은 모조리 그의 품에 안겨준 기특한 캐릭터가 아니던가.
“<남자충동>을 처음 무대에 올린 게 1997년이니까 7년 만의 재공연이네요. 감회가 남다르죠. 이 작품을 재공연하기 위해서 4년 전부터 무지하게 노력했으니까요. 핸드폰에 ‘남자충동’이라고 써놓고 다닐 정도였어요. 이번에 연극열전의 하나로 무대에 올리게 되어서 참 다행스럽고 반갑고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7년 전에 상을 너무나 많이 받았고 칭찬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과연 그만큼 잘 할 수 있을까 부담스럽기도 했고요. 이미 7년 전의 체력이 아니고 또 7년 전의 얼굴이 아니니까요.(웃음)”
다행스럽게도 7년간의 기다림을 건너온 <남자충동>은 그에게 또 한 번의 잊지 못할 기억을 남겨주었다. 3월 12일부터 4월 18일까지 한 달여에 걸친 공연기간 동안 7년 전에 버금가는 열화와 같은 박수와 환호를 온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알 파치노를 닮고 싶은 ‘얼치기 조폭’ 이장정의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진한 목포 사투리로 토해내는 희극적인 대사와 눈물이 날 만큼 우스운 상황 속에 숨겨진 진한 페이소스로 젊은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초연 멤버가 모두 뭉쳐 환상의 호흡을 연출해낸 것도 공연을 성공으로 이끈 요인이지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악한을 설득력 있게 연기한 안석환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가 관객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던 것이 적중했던 셈이다.
“장정이라고 하는 사람은 사실은 악한이에요. 사랑받을 수 없는 역할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팔 자르죠, 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폭력밖에 없어요. 가족을 건사한답시고 하는 일은 폭력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왜 사랑을 받냐 하면 그 당위성을 연기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모든 행위가 전부 다 가족을 위해서라는 것 때문에 연민을 느끼시는 것 같아요. 아마도 자신의 사리사욕 때문에 폭력을 휘둘렀다면 ‘저런, 나쁜 놈’ 하며 욕하셨겠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987년 극단 연우무대의 <달라진 저승>으로 연극계에 발을 들여놓은 안석환은 <갑오세갑오세>(1988)의 전봉준 역으로, <칠수와 만수>(1990)의 만수 역으로 차근차근 발판을 다져갔다. 그리고 600회 이상 공연에 빛나는 <고도를 기다리며>(1994, 1995, 1997, 1999)의 에스트라공 역으로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며 관객들과 안면을 익혔다. 이후 <거미 여인의 키스>(1995), <이 세상 끝>(1996)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연극계를 이끌어갈 차세대 주자로 성장하기에 이르렀지만, 무언가 한 가지가 부족했다. 그 한 가지를 채워준 게 바로 <남자충동>(1997)이었던 것이다. 각종 연극상을 15개나 휩쓴 화제작으로 코믹한 조폭물을 대중문화의 인기 코드로 부각시킨 이 작품은 그를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배우로 만들어주었다. 그 후로는 승승장구였다. 1인 5역을 맡은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1998), <이 풍진 세상의 노래>(1998), <아트>(2003) 등을 통해 연극계의 대들보로 자리매김했고, <넘버 3>의 넘버 원, <텔미썸딩>의 검시관 등 영화 쪽에서도 개성 있는 조역을 맡아 자신이 가진 끼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하면 된다>, <아유레디?>, <선택> 등의 영화에선 당당히 주역을 거머쥐기도 했다.
“전 재수가 좋은 사람입니다. 참 행복한 사람인 게 주변에서 도와주시는 분들, 좋은 분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지요. 처음 연극 시작할 땐 막막했죠. 제가 경영학과 출신인데 회사생활 하다가 회사생활은 싫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장사하는 일과 연극을 조금 해봤다는 것 말고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장사는 그 나이에는 하기 싫었고 그건 어느 때라도 할 수 있는 것 같았고, 연극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아버지께 5년만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5년 아니라 8년이 지나도 누가 알아봅니까? 지금이야 젊은 친구들이 ‘작품 한번 같이 해보고 싶어요’ 내지는 ‘저는 언제나 무대에 설 수 있을까요’ 질문도 하지만, 그때는 그런 질문자의 모습이 바로 저였겠죠.”
그는 지금의 상황을 ‘산등성이는 넘은 것 같다’는 말로 에둘러 표현했다. 심야버스 운전을 하며 핫도그 한 개로 배를 채우던 시절을 생각하면, 배곯을 걱정 없고 찾는 이도 많은 지금의 상황을 한 고비 넘은 것으로 생각해도 무방하리라. 그러나 변신에 대한 갈망과 배우로서의 욕심은 그를 현재에 안주하지 못하게 만드는 촉매제이다.
“제가 예술적으로 존경하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찰리 채플린입니다. 그분의 휴머니티는 정말 너무나 따뜻해요. 저는 그분의 연기를 따라가려고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분의 정신은 닮고 싶어요. 아무리 악역이라도 인간적으로 보이고 싶고, 그것 때문에 아마도 많은 분들이 기억해주시고 칭찬도 받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그는 악역마저도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인물로 그리는 배우다. 그러기 위해 그는 철저히 그 배역에 자신을 맞춘다. 다른 사람은 표현할 수 없는 오직 안석환만의 캐릭터로 재창조해내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까지는 극본에 나오지만, 버릇이나 몸짓이나 말투나 이런 건 배우가 만들어야 됩니다. 안 될 땐 별짓을 다하죠. 일례로 <거미 여인의 키스>라는 작품에서 게이 역할을 맡았을 땐 게이 바에도 갔어요. 이태원에 있는 ‘여보여보 클럽’이라는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그들의 말투, 걸음걸이, 왜 여성이 되고 싶은가 하는 것들을 관찰하는 거죠. <남자충동>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포의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서 목포에 직접 내려갔다 왔어요. 고작 2박 3일 동안 뭘 배웠겠냐만서도 안 보고, 또 그 정서를 모르고 표현하는 것과는 천양지차겠죠. 이를테면 얇은 막을 하나 걷어낸다고 해야 될까요? 모르고 하면 추상적으로 표현하게 되는데 알고 표현하면 달라진다는 겁니다.”
끊임없는 변신이 배우의 본분
연극으로 연기를 시작했고, 연극으로 이름을 얻은 그인지라 무대에 대한 곡진한 애정은 누구에게도 비할 바가 아니다. 때문에 <남자충동>으로 인기를 얻은 후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하다가도 항상 무대가 부르면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숱하게 반복했던 것이다. 18년간에 걸친 무대 인생에서 단 한 작품도 버릴 작품이 없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사실 희곡이라는 게 우리나라에 넘어왔을 때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버릴 만한 작품은 안 와요. 안 좋은 작품이 없는 겁니다. 연기자나 연출자나 전체 작업자가 제대로만 표현하면 다 사랑받을 수 있는 작품들이라는 거예요. 창작극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예요. 자기 캐릭터만을 위해서 해석하는 게 아니라 전체의 밥상을 어떻게 차릴 것인가를 생각하는 거죠. 그렇게만 하면 모든 작품이 사랑받는 작품, 좋은 작품으로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확고한 주관과 연기철학으로 똘똘 뭉친 연기자인 그는, 그러나 자신은 그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가진 직업인일 뿐 배우가 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저는 끊임없이 변신하는 배우, 노력하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변신하지 않는 배우는 배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후배들에게 ‘나는 안석환이란 배우에게 참 많이 배웠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연기든 인생이든. 그러기 위해선 되도록 모범을 보이고 말보다는 행동이 먼저 갈 수 있도록 해야겠지요. 여기에 제 연기가 보는 이로 하여금 ‘세상은 참 따뜻해, 살 만한 곳이야’라는 느낌을 전달해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우리 연극계의 보배로운 존재로 자리매김한 안석환. 그의 변신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머지않아 방영될 한중합작 드라마 <북경 내사랑>, SBS 드라마 <소풍 가는 여자>로 브라운관을 찾게 될 테고, 곧 영화와 연극에서도 새로운 캐릭터, 새로운 모습으로 팬들의 곁에 돌아올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그 빛나는 연기력과 연기에 대한 열정이 쉬이 소진되지 않기를, 그래서 20년, 30년 후에도 진정한 배우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기를 기원한다.
에디터 | 최혜정
첫댓글 고맙습니다...잘 읽었어요..근데.. 석환샘이 자신을 일컬어 "배우"라는 표현을 잘 안쓰시는데.. 이번엔 배우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던건지 갑가기 궁금증이 생기네요..ㅎㅎ 우리야.. 끝까지 배우라고 부르지만서도..^^
his daylight 무대 위의 카리스마 연극배우 안석환... 이 구절은 울까페를 위해 적으신건가요? 아님 정말 잡지에 그렇게 나가는건가요.. 아..좋아라.. 무대위의 카리스마 안석환..^^
제목을 일부러 '무대 위에 카리스마'라고 붙였어요. 카페에 대한 헌사라고나 할까요. 하하하. 글구 '배우'라는 말은 안하셨어요. 제가 그리 붙인 것이지요.
엥.. 언제 왔다갔다 하신데요?? 카페온에는 안뜨던디..ㅋㅋㅋ 감사합니다..카페에 대한 헌사!! 늠 좋아요!!
잘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ㅎㅎㅎㅎ..내가 저런 멋진 말을했나?.... 잡지폐인님! 고맙습니다...한가지 수정 할 것은, 제 운전면허가1종대형, 버스를 아르바이트로 몰려고는 해봤지만 실제로 몰아본 적은 없어요....핫도그는 점심식사....ㅋㅋㅋㅎㅎㅎ
저도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