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섯 번째 편지 |
해안 따라 걷기
제주도는 바다의 섬이다. 제주도를 떠올리면 바다가 먼저 다가오고 한라산이 새겨진다. 제주도의 세찬 바람이나, 물질하는 해녀나 현무암 검은 돌들도 바다와 어울려져야 제 모습으로 보인다. 바다 안의 제주도는 바다와 어울려 산다. 그래서 제주도에 가면 바다를 찾고 모래밭을 거닐고 해안도로를 따라 걷고 싶어 한다. 제주도가 곧 바다이기 때문이다. 해안 따라 걷기 1코스는 광치기 해변에서 시작한다.
올레 열풍이다. 이제 올레는 제주도를 대체할 고유명사가 되었다. 이 열풍은 제주도를 벗어나 내륙으로 상륙했고 산이고 바다고 들이고 간에 점령군이 되어 거침없이 진격하고 있다. 우리 역사상에 이렇게 온 나라와 온 국민들이 단숨에 열풍에 휘몰 되어 본적이 또 있었을까? 요새 주말이나 피크 철에 제주도를 가려는 사람은 외국에 나가는 것 보다 더 예약하기 힘들어 한다. 그만큼 제주도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고 그 사람들 대부분은 올레길을 걷기 위해 찾아 온 사람들이라 여기면 된다. 이제 제주도를 먹여 살리는 올레가 된 것이다. 올레는 지정된 코스를 따라 걷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걸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걸을 것이다. 많은 부분이 해안을 따라걷지만 대개는 들로 마을로 중산간으로 드나들어야 한다. 이는 다양한 제주도의 참 모습을 알리기 위해서 구간마다 특성있는 답사지를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올레 코스를 벗어나 온전히 해안을 따라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많은 부분이 올레코스와 겹쳐지지만 때로는 전혀 모르는 길을 걸어야 할 때도 있어 어려움이 많을 것도 안다. 길이 막힌 곳이면 바닷가로 내려가 거친 현무암 돌이나 바위를 타고 넘어야 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제주 절경들은 해안 따라 펼쳐진다. 구릉과 단애와 검은 현무암과 푸른 숲이 어우러진 절경들은 대개 해안에 자리하고 있다. 이름 난 절경은 아니어도 스치듯 지나갔던 제주도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알려면 해안을 걸어 보아야 한다. 나는 조금은 힘들어도 해안 따라 걸으며 곳곳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모습들을 내 나름대로의 시각으로 남기고 싶다. 1코스, 성산서 온평까지
성산일출봉
| 그렇게 출발한 첫 코스가 성산서 온평까지 제 1코스이다. 물론 여기서 말한 코스 설정은 내 자의적으로 정한 것임을 참작해 주기 바란다.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해서 5만분의 1 지도를 참작하고 GPS를 이용해 제주도를 돌며 거리를 계산한 뒤, 대략 19~20개 구간으로 나누고, 구간 당 거리를 15~18km 정도로 설정했다. 물론 걸으며 수정 보완해야 함은 물론이다. |
성산 광치기 해변입구에서 출발한 첫 코스는 아름다운 광치기 해변과 성산의 기묘한 조화로부터 시작한다. 사진기를 가진 이면 누구나 한 번은 찍어 보고 싶은 영주 10경 중 첫 번째 인 성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이생진 시인은 그리운 성산포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그리고 이렇게 이어 불렀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수직의 해벽을 세우고 하염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온 몸으로 받아드리는 성산을 슬픈 존재로 보았나 보다. 그 성산이 광치기해변 남색 물 건너에 서서 섭지꼬지까지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섭지꼬지 해안을 따라 돈다. 나이 먹은 해녀들의 물질도 만나고 고래들의 율동도 볼 수 있는 길이다. 그러나 이제 섭지꼬지는 추억 속의 그리던 곳이 아닌 철저하게 망가져 버린, 인간의 탐욕을 뒤집어 쓴 오욕의 현장이 되고 말았다. 노란 유채꽃밭 너머로 보이던 성산의 아름다움은 지난 날 사진 속에 남아 있을 뿐 어디에도 없다. 해녀, 그 고단한 삶
| 운이 좋으면 고래의 춤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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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거닐었던 그 넓은 띠 풀잎과 억새밭과 노란 유채, 그리고 부드럽던 흙길은 시멘트와 돌과 인조목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인하와(이병헌) 수연(송혜교)의 러브씬으로 드라마의 열풍을 몰고 왔던 ‘올인’의 촬영지가 성산을 가로 막고 있다. 사람들은 부드러운 곡선과 빼어난 자연 경관보다 인위적이고 서구적인 촬영세트장에, 푸른 바다 해풍과 해조 냄새보다 커피 향에 젖어들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무분별한 개발의 현장을 뒤로 하고 그래도 아직은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 돌며 신양해수욕장으로 행한다. 돌담 안에 노란 유채꽃이 곱다. 한번 사진 찍는 데 1000원이란 문패를 보는 순간 그나마 따뜻하던 가슴에 찬물을 끼얹는다. 참으로 삭막하다. 섭지꼬지 유채는 겨우 이 모양이다
| 한 번 찍는데 일금 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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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양해수욕장을 돌아 신양포구에 다다르면 온평까지는 바다와 한 뼘도 벗어나지 않는 해안길이다. 푸른 바다와 밀려오는 하얀 파도가 정겹고 건너 성산이 길동무가 되어준다. 가슴이 탁 트인다. 나지막한 구릉 푸른 숲엔 간간이 서구적 멋진 집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바다로 들어오는 외적을 막기 위한 환해장성
| 모퉁이를 돌자 검은 석성이 버티고 서 있다. 환해장성이다. 제주도는 어느 해안가고 배를 대기가 쉬워서 적선이 접안할 수 있는 곳이 많다. 처음엔 삼별초가 제주도에 들어온 것을 막기 위해 쌓은 것이지만 세월이 지나며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한 기능으로 변해 갔다. 환해장성을 뒤로하고 모퉁이를 돌면 혼인지의 마을 온평이다. 해안도로 1코스 끝 점이다. |
총 거리 16km, 5~6시간 정도 걸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