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머니는 올해 60세이다. 어머니는 대학을 다니다 결혼을 하셨는데, 학교 다닐 땐 똑똑하다는 소리도 들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성격이 급하고 고집이 센 데 비해 어머니는 원래 조용하고 내성적, 소극적인 분이었다. 치매 이전에 특별한 병력은 없었으나 편두통이 심해 진통제를 자주 먹었다.
자식은 딸 여섯을 두었는데, 지금은 남편, 그리고 미혼인 세 딸과 함께 살고 있다. 나는 셋째딸로,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어머니를 주로 보살피기 시작한 지는 일 년 반 남짓 된다.
치매 발병 시기는 5년 반 전쯤으로 생각되는데, 그땐 10여 년간 살던 동네(방배동 단독주택)에서 멀리 떨어진 곳(상계동 아파트)으로 이사를 간 시기이다. 1989년 봄, 아버지가 지방 근무를 하게 되어 집도 썰렁하고 겁도 나고 해서 우리가 서둘러 이사를 가게 되었다. 결혼해서 30여 년간을 가정을 건사하느라 한시도 쉴 새가 없었던 어머니는, 아버지의 지방 근무에다 줄줄이 자식들 뒷바라지하다 막내까지 대학에 들어간 터라 갑자기 할 일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우리 형제들도 각자 밖에서 바쁘게 활동하기 시작한 때라 어머니는 말할 상대도 없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게 된 것이다. 그것도 낯선 공간 속에서……. 어머니는 성격이 유하셔서 친구, 이웃들과 잘 지내는 편이지만, 당신 스스로 적극적으로 마음을 열어보이는 쪽은 아니었다.
치매 초기엔 우울증으로 시작되었는데, 낮에 혼자 있을 땐 많이 울기도 하셨던가 보다. 그리고 건망증이 심해지셨다. 오래 전부터 물건이나 돈 등을 어디 놔두고는 잘 못 찾는 등 건망증이 있어 가족들이 한바탕 북새통을 치르고 찾곤 했다. 그렇지만 예전엔 산 물건을 가게에 놓고 온다든지 해서 나중에 기억하고 찾으러 가는 정도였는데, 이젠 금방 물건을 사오고도 안 사온 줄 알고 또 사러 가는 식이었다.
한번은 전에 살던 동네(방배동)에 놀러 갔다 오다가 지하철에서 헤맸는지 한 시간이면 될 거리를 두어 시간 만에 돌아오신 적도 있었다.
목욕 후 뒤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젖은 팬티를 항상 목욕탕 구석에 놔두어서 몇 번이나 주의를 주었지만 계속 같은 식이었다.
그 밖에도 아파트 문 잠그고 여는 것, 세탁기 등 간단한 가전제품 사용도 잘 못하고,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을 구분하지 못해 부엌 수세미로 휴지통을 닦는가 하면, 밥풀이 묻어 있는 그릇에 쌀을 같이 담가 놓거나 반찬도 이물질이 들어가는 등 지저분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화를 내며 말했지만 고쳐지지 않아 나중엔 아예 집안일을 못하게 했다.
버스 타면 서너 정거장인 언니네 집도, 내리는 곳을 지나칠까 염려스러웠는지 20∼30분 걸어서 가셨다. 또 그 동까지 찾아가서도 집을 잘 못 찾아 관리실에서 인터폰으로 연락이 오곤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근무지인 지방에도 몇 번 내려갔지만, 차를 제대로 타지 못하거나 차표를 잃어버리거나 하니 스스로 겁이 나서 움직이지 않으려 했다.
이렇게 이상한 행동이 일어났는데도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또 어머니 스스로 당신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고 신경질만 부렸다. 그러다가 이사간 다음해(1990년) 여름 결정적인 일이 일어났다. 언니와 같이 치과에 가서 치아를 새로 맞췄는데, 찾으러 갈 땐 혼자 다른 치과에 가서 떼를 쓰는 바람에 그 치과에서 다시 맞춰 줘서 끼고 온 것이었다. 그것도 며칠 후 처음 간 치과에서 연락이 와서 알게 되었다.
그때서야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집 근처 정신과에서 진찰을 받았는데, 노이로제나 신경성 증상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한 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가서 사진을 찍는 게 낫겠다며 원자력 병원을 소개해 줬다. CT촬영을 했고 '알츠하이머'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의사는 치료약이 없다며 영양제류의 약을 주면서 한 달에 1∼2번 오라고 했다. 하지만 환자가 병원에 가기 싫어하고 뾰족한 수도 없어 몇 번 가다 그만두었다. 그러니 처음엔 치매인 줄 모르고, 나중엔 알고도 치매에 대한 지식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어머니는 아무런 보살핌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 다음해(1991년) 2년 전세 계약도 끝나고 아버지도 퇴직하실 때가 되어 다시 옛날 집으로 돌아왔지만, 우리들의 가느다란 희망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병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다지 기쁜 기색도 없었고, 지금 생각하니 또다른 혼란을 준 것 같다.
다시 이사온 지 얼마 안 돼 파마를 했는데, 집에 잠깐 와 있다 풀려고 가서는 그 미용실을 못 찾아 머리를 만 채 한참을 헤매다 그냥 돌아오셨다. 그날 일찍 퇴근하여 어머니랑 같이 몇 시간을 찾다가 그냥 돌아왔다. 그런데 그 이튿날 혼자 나가시더니 그 집을 찾았는데 아가씨들이 달려들어 반지를 빼갔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거길 다시 찾아가자 하니 또 그 집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집에서는 변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휴지로 변을 닦지 않고 물로 씻었음) 대야나 세면대 같은 곳에 항상 변이 묻어 있었다.
방배동에 되돌아오고 나서도 거의 혼자 집에만 있었고 겨우 가까운 이웃에 가는 정도였는데, 한번은 문 닫긴 그 집 앞에서 서성이고 있길래 찻길 맞은편에서 "엄마!" 하고 불렀더니, 불안하던 차 반가웠는지 나만 보고 길을 막 건너오시는 것이었다. 언덕길인데다 불시에 나타난 사람이라 차는 옆도 보지 않고 엄마 바로 앞을 쌩 하며 스쳐지나갔다. 정말 한순간이었고, 그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아버지가 퇴직하고 집에 계시게 되면서는, 남편한테 아내로서 제대로 해주지 못하니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깔끔한 성격이라 더듬한 걸 싫어해, 엄마가 전화 온 것도 제대로 전해주지 못하니까 아예 전화도 받지 말도록 했다. 그래도 친구들 모임에는 가끔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모임 장소까지 모셔다 드리곤 했는데, 그때도 돈 계산을 못 하니 가까운 친구가 대신 해주었단다.
그동안 아버지는 서울대 병원, 경희대 한방병원에 가서 환자의 증상을 얘기하니 하나같이 부정적, 절망적으로 얘기하더란다. 그래 약도 쓸 생각 하지 않고 포기하고 있던 차, 아는 사람 소개로 치매를 전문으로 본다는 백상 한의원에 엄마를 모시고 갔다(1992년 7월).
의사 선생님이 치매를 많이 이해하고 있고, 처음엔 좀 호전되는 것 같기도 하여, 1주일에 2번 주사도 맞고 한약도 타오고 몇 개월 꾸준히 다녔으나, 우리한테는 큰돈이고 별로 나아지지도 않아 결국 6개월 만에 포기했다.
1993년 3월에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다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는데, 이때 뇌파, MRI 등을 찍었다. 2∼3년 전 원자력 병원에서는, CT촬영에서는 두드러진 뇌의 위축이 없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MRI 결과 뚜렷한 뇌의 위축이 보인다고 했다. 그곳에서도 약은 별 필요가 없다 하고 북부노인종합복지관 내 '치매탁노소'를 소개해 주었다.
탁노소가 결혼한 언니네 집 가까이에 있어 그곳에서 다니기가 나을 것 같아 모셔놓고 주말에는 집으로 모셔왔다. 그런데 그게 또 큰 실수였다. 이집 저집 왔다갔다하면서 엄마는 꽤 혼란스러웠을 테니까.
3∼4개월 언니네 집에 있을 동안 큰소리로 우는 적이 많았고, 밤에 깨어 집안을 왔다갔다했으며, 집안 구석에 오줌을 싸놓기도 했다고 한다. 혼자 시집간 딸네 집에 보내진 기분이 어땠을까? 우리는 편리하다는 생각만으로 쉽게 결정지었지만, 조금이라도 엄마 입장에서 생각했다면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
결국 집으로 모셔와, 먼 거리지만 매일 집에서 차로 모셔다 드리고 모셔 오고를 1년여 했는데 올 봄부터는 탁노소 이용도 어렵게 되었다. 처음 탁노소에 갈 때만 해도 너무 말없이 조용하고 소심해서 걱정이었는데, 이제는 성격이 거칠어져서 소리를 지르고 다른 사람과 함께 프로그램에 전혀 어울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탁노소를 이용할 동안 우리는 많이 편했지만, 워낙 사교적이지 못한데다 집을 못 찾아갈까 두려워했으니 오히려 엄마한테는 중압감을 더해 주었을 것이다.
이번 여름은 정상적인 사람도 견디기 힘든 더위였는데, 어머니는 탈수 증상까지 일어나 힘없이 픽 쓰러지곤 했다. 평균 38°이상의 발열이 5∼6일 계속되고 배도 아프다 하고 오줌을 거의 못 누길래 근처 병원에 갔더니 방광염이라 했다. 스스로 표현을 못 하므로 말 못하는 어린애와 같이 미리 보살펴야 하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환자가 아플 만큼 아픈 다음에야 혼란스러워하며 난리를 쳤다.
그 후 인천 은혜병원에 가서 약(신경안정제)을 타왔는데, 그 약을 복용하고는 환각 상태에 빠져 밤에 잠도 자지 않고 헛소리를 하고 낮에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막 질렀다. 지금은 그런 증상은 많이 없어졌으나 이전보다 화를 많이 내고 야단을 치거나 뜻없는 소리를 반복하기도 한다.
그리고 1년 전쯤부터 어깨(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증상이 가끔 나타났다 없어지곤 한다. 한번 증상이 나타나면 4∼5일 지나야 없어지는데, 처음에는 그 사이가 멀더니 요즘은 아예 기울어져 있는 날이 더 많다. 오른쪽으로 몸이 기울어지는가 하면 왼쪽으로 기울어지는 날도 있고, 고개가 앞으로 푹 숙여져 모서리에 쿵쿵 박고 다니는가 하면, 몸이 뒤로 제껴져 허리가 부러질 정도가 되어 진땀을 흘리면서도 바로 하지 못한다. 이런 증상이 생기면 환자도 기분이 나쁘고 일상생활 원조하기도 힘든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올여름을 지나면서 기능이 확 떨어져 그나마 억지로라도 유지시켰던 일상생활도 점점 하기 힘들어졌다. 음식물을 앞에 놓고도 먹는 방법을 몰라 안 먹을 때도 있고, 양칫물을 삼키는가 하면 반대로 마실 물을 그냥 뱉기도 한다. 변을 보는 중에 변기에서 벌떡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애를 먹는다. 기분좋게 하던 목욕도 이즈음에는 겁을 내고 잘 하려고 하지 않는다. 또, 일어났다 앉았다 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눕는 방법을 몰라 쭈그리고 앉아 졸 때도 있으며, 춥다고 하면서도 옆에 있는 이불을 덮을 줄 모른다.
그 동안의 병의 경과를 살펴보니, 어차피 병은 걸린 거고 그 후에 제대로 간호하지 못한 것이 병을 악화시킨 것 같아 지난 실패의 요인을 정리해 보았다.
환자로서는 감당할 수 없이 환경이 자꾸 변했으며 오랜 시간 혼자 있게 한 점, 정상인의 기준으로 보아 잘 안 된다고 못하게 하거나 비난함으로써 하고자 하는 의지(자신감)을 잃어버리게 한 점, 그리고 집안에서도 엄마를 가운데 놓고 가족끼리 큰소리가 오고갔기 때문에 그것도 병을 악화시키는 큰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치매에 대해서 무지하고 무관심했던 지난날이 후회스럽고 자책이 된다.
(1994년 가을)
* 위 글은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치매가족회에 나갈 때
수기를 부탁받아 회보에 낸 글입니다. 주변에 혹시 치매에
걸린 분이 있다면 도움이 될까 싶어 글 올립니다..
첫댓글오랜전 얘기 이지만, 또한 불과 얼마전 얘기 인것도 하네요... 언니 어머니 모습을 봐서 그런걸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이겨낸 언니를 기억하기 때문에 그런거 겠죠... 그러면서 저도 철이 드나봐요.. 그래도 건강히 살아계시는 부모님께 잘 해드려야 한다는 생각으로요... 언니 우리 혜정이랑 만나요...
첫댓글 오랜전 얘기 이지만, 또한 불과 얼마전 얘기 인것도 하네요... 언니 어머니 모습을 봐서 그런걸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이겨낸 언니를 기억하기 때문에 그런거 겠죠... 그러면서 저도 철이 드나봐요.. 그래도 건강히 살아계시는 부모님께 잘 해드려야 한다는 생각으로요... 언니 우리 혜정이랑 만나요...
언니...
치매 가족들이보면 여러면에서 참고가 되겠구나. 우리 지난 세월은 한치도 헛된것은 없다고 믿는단다. 여릿하지만 너르게 나누는 삶으로 살게되기까지 이런 일들이 있었던거지? 새삼 어머님의 명복을 빌고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