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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국 '리즈 대학'(University of Leeds) 동남아시아 역사학과 조교수로서 동남아시아 식민지 역사 전문가 조나단 사하(Jonathan Saha)가 2017-9-15 자신의 블로그(https://colonizinganimals.blog/)를 통해 공개한 것으로서, 2017-9-17 호주국립대학(ANU) 온라인 저널 <뉴만달라>(New Mandala)에 다시 실리기도 했다(http://www.newmandala.org/rohingya-limits-history/). 로힝야족 인종청소 사태와 관련하여, 현재 한국의 온라인상에서는 한국어가 유창한 미얀마인들을 비롯하여, 한국인 중 이슬람 혐오주의자, 극단적 민족주의자 등이 가세하여, 미얀마 정부와 미얀마 민족주의 진영이 퍼뜨린 거짓정보를 선전하는 일에 가담하는 우려할만한 현상이 발생 중이다. 이에 시의적절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이 글을 저자인 사하 교수로부터 허락을 얻어 '크메르의 세계'가 번역했다. 번역을 허락해준 저자에게 감사드린다. [크세] |
[칼럼] 로힝야족 인종청소 사태를 역사 논쟁으로 희석시키지 말라
조나단 사하 (Jonathan Saha)
미얀마의 라카인 주(Rakhine state: 구-아라칸[Arakan])에서 발생한 폭력사태로 인해, 현재 로힝야족(Rohingya people: 로힝가족, 로힝자족)의 탈출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를 둘러싼 공적 토론은 종종 역사학적 쟁점을 포함하곤 한다. 하지만 비판적이고 역사적인 분석이 분쟁에 대한 직관의 제공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만일 역사를 단일하고도 인식가능한 과거라고 여길 경우) 역사는 그렇지 않다. 특히 민족(ethnicity) 문제를 다룰 땐 더욱 그렇다. 과거가 그 어떻든 상관없이, 어떠한 역사적 연구도 현재 로힝야족에게 가해지고 있는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로힝야의 민족 정체성을 둘러싼 논쟁은 보다 넓은 범위의 역사기록학(historiography)적 의식을 결여하고 있다(즉, 역사학적 연구의 역사).
한쪽에선 이번 사태가 인종청소(ethnic cleansing)라는 것을 부정하는 이들이 "로힝야 민족"(Rohingya ethnic group) 같은 것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이 사람들이 실제로는 벵갈리 무슬림 이주자들(Bengali Muslim migrants)이라고 주장한다. 자크 라이더(Jacques Leider) 등 일부 역사가들의 저술은 이러한 입장을 지지한다. 자크 라이더는 (<이라와디> 지와의 인터뷰에서) '로힝야'라는 말이 무슬림 인구를 지칭하는 데 사용됐다면서, 18세기 유럽인 여행자들에게 알려졌던 말이긴 하지만 현대적 용어라고 주장했다. 그는 '로힝야'라는 말이 주로 정치적 목적의 정체성이라고 보았다.
한편, 로힝야족 활동가들은 이런 묘사를 반대한다. 그들은 라카잉 주에 무슬림들이 수 세기에 걸쳐 거주했다는 증거들이 존재한다고 반론하며, 이들 무슬림 집단이 주기적으로 '로힝야'로 불렸다고 주장한다.
지난 해 <디플로맷>(The Diplomat) 지의 기고문에서, 한 논평가는 "('로힝야'는) 민족이 아니라 정치적 구성물"이라며 이 논쟁의 매듭을 풀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정확성의 측면에서만 잘못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두 가지 측면에서도 잘못됐다. 첫째, '정치적'(political) 범주와 '민족적'(ethnic) 범주라는 기만적 구분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잘못됐다. 둘째, 이 주장은 우리가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고 가정한 점에서 틀렸다.
먼저 첫번째 문제부터 살펴보자. (부분적으로 정치적 구성물이기도 한) 민족적 정체성이란 것이 결코 존재하지 않다는 점이다. 민족(ethnicity)이란 역사학자들이 정확히 밝히기 어려운 대상이란 점은 증명됐다. 민족의 정의나 표현 양식은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그 결과, 민족적 정체성에 관한 현존하는 증거도 시대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각기 다른 시대적 범위를 포괄하여 연구한 역사학자들은 민족적 정체성이 정치적 방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빅터 리버만(Victor Lieberman)은 [동남아시아의] 중세 및 현대에 관한 세계적 역사학자이다. 그는 특히 미얀마의 경우 국가 구조의 발전이 민족적 정체성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고 주장한다. 정치적 조직체들(polities)이 더욱 더 관료체제를 구축하면서, 통치를 위한 민족적 정체성도 강화된다는 것이다. 데이빗 스콧(David Scott) 같은 19세기의 역사학자들은, 식민지 시대 국가 내에서 여러 종족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중요해짐에 따라 식민 정권들이 민족적 정체성을 더욱 강화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민족주의에 관한 연구가 보여주듯이, 반-식민 민족주의와 탈식민화는 민족의 정치적 중요성을 더욱 확대시켰다. 정치적 구성물이란 것은 로힝야족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벵갈리(Bengali: 벵갈리)도 그러하며, 라카잉족(Rakhine: [역주] 라카잉 주의 주류 불교도 소수민족) 역시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이러한 각기 다른 민족의 정치적 축조는 해당 민족의 자기 정체성의 모습까지 새롭게 형성시켜나갔다.
두번째 문제점은 벵갈 만(Bay of Bengal) 끝자락에 위치한 이 지역에서 스스로를 '로힝야'라 부르는 무슬림들에 대한 역사적 증거가 제한적이란 점이다. 만일 (그리고 대단히 만일) 이들 거주자가 스스로를 규정했던 방식을 우리가 알 수 있다면, 역사적 증거의 부족이 보다 이른 시대까지 소급해볼 수 있는 민족적 정체성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그들이 스스로를 규정한 방식에 관한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으로서, 과연 어떤 기록들이 남겨졌어야만 한단 말인가? 심지어는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다. 만일 그런 자료가 있다면, 우리가 그 당시 과거 사람들이 사용했던 용어와 동일한 용어를 통해 그들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각 민족들이 사용했거나 채택했던 용어들은 역사적으로 유동적이었다. 맨디 사단(Mandy Sadan)이 카친족(Kachin)에 관해 연구한 놀라운 저서는 "존재하기와 되어나감"(being and becoming)의 이러한 과정을 상세하게 포착했다. 우리가 과거의 민족적 자기 정체성을 알 수 없거나 필연적으로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기록물의 부재가 현재의 민족적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는 근거가 되서는 결코 안 된다. 이러한 점이 버마의 국가정체성에도 진실이듯이, 그와 마찬가지로 로힝야 민족성에도 진실이다. 앨리시아 터너(Alicia Turner) 같은 역사학자가 보여준 바와 같이, (필자는 세계적인 현상이라 보는데) 미얀마에서 민족주의가 주된 정체성으로 부각된 것은 현대에 들어와서의 현상이며, 그 원인 중 하나는 부분적으로 반-식민주의 정치에서 파생된 것이다. (적어도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용어로서) 버마 민족(Burmese nation: [역주] 미얀마 최대 민족인 버마족)이란 명칭이 17세기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오늘날 버마족 사람들이 진짜 버마족이 아님을 의미하진 않는다.
역사는 제한을 갖고 있다. 우리는 단지 그만큼만 알 수 있다. 역사는 오직 특정한 질문들에만 답을 준다. 로힝야족 역사를 둘러싼 토론은 그 최악에서 민족적 토착성에 근거해 시민권을 규정하는 문제로부터 시선 집중을 분산시킨다. 그러한 규정은 나쁜 역사와 민족적 쇼비니즘(chauvinism: [역주] 광신적 애국주의, 배외주의)에 전제를 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전세계적 문제이다. 또한 더욱 긴박하게는, 바로 지금 현재 미얀마에서 이러한 민족적 쇼비니즘이 오늘날 '로힝야'라는 정체성을 지닌 한 민족에 대해 진행 중인 인종청소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과거를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림: Booker Cooke) 로힝야족이 많이 거주하는 방글라데시-미얀마 접경지역은 험준한 산악지형이 존재한다. 1944년 4월 일본군은 인도로 진격하기 위해, 군 본부가 있던 부티다웅(Buthidaung)에서 마웅토(Maungdaw)로 이어지는 40여km의 산악 루트를 행군했다.
(지도: 한국일보) 현재 진행 중인 인종청소를 피해 탈출한 로힝야족 난민들도 부티다웅에서 마웅토로 이어지는 산악도로를 넘어서 이동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관련기사)
* 관련 게시물
- "[개론] 로힝야족 (로힝쟈족) : 미얀마 서부의 무슬림 소수민족"(번역: 크메르의 세계 2012-12-9)
- "[한국 시민사회단체 공동성명서] 로힝자도 사람이다. 학살을 중단하라!"(국제민주연대 2017-8-31)
- "[로힝야족 난민캠프에 가다] "눈물 마른 로힝야족, 이 지옥이 꿈이길..""(한국일보 2017-9-17)
- "[칼럼] '로힝야 사람은 테러리스트'라는 주장, 사실이 아닙니다"(오마이뉴스 2017-9-18)
- "[긴급공지 및 해설] 로힝야족 학살 옹호 집회가 서울 한복판에서 진행된다!"(크메르의 세계 2017-9-24)
- "[완전분석] 끝까지 파보는, 로힝야족 학살 1 : 로힝야 사태의 진짜 배경은 따로 있다"(Samuel Seong/딴지일보 2017-11-6)
- "[완전분석] 끝까지 파보는, 로힝야족 학살 2 : 야차가 된 승려들"(Samuel Seong/딴지일보 2017-11-10)
- "[분석] 미얀마 불교 고승 시타구 사야도의 비-불교도에 대한 폭력 옹호 발언의 의미"(Paul Fuller/New Mandala 20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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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특히 소모뚜(이주노동자 인권운동가) 같이 한국어가 유창한 미얀마인들이
"로힝야란 인종은 우리나라에 없습니다. 고로 인종청소라는 말도 틀렸습니다"라는 주장을 하던데..
핵심은 지금 현재 사람이 집단으로 살해당하고 추방당하는 인종청소를 있다는 점이죠..
소모뚜라는 사람은 한국어로 한국인보다 더 선동적인 연설도 잘하는 사람인데요..
한국사회를 비판하며 스스로가 난민 자격을 통해 자리를 잡은 사람이..
이제 자기 나라의 소수민족 학살에는 정부의 거짓선전 선동가로 변했으니..
그저 기가 막힐 따름입이다..
한국에서 인권상도 받았었는데, 해당 기관들에 이의를 제기해야겠지요..
글 잘 보았습니다. 공부가 되었습니다.
오랫만입니다.. 새로운 가정에서 항상 행복하시길..
한국일보의 지도를 첨부했습니다..
지리적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오, 난파 님~~ 방가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