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
金秋子
김추자
김추자(金秋子, 1951년 1월 2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1951년 1월 2일 춘천에서 5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춘천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때에는 응원단장, 강원도 배드민턴·기계체조 선수였다.
춘천향토제에서 전통 창인 〈수심가〉를 불러 3위에 입상하였다.
1969년에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 신입생 노래자랑에서 1위를 하였고, 그 해 신중현의 녹음실로 찾아갔다.
신중현은 김추자의 노래를 듣고 곡을 주었고, 1969년 데뷔 음반이 발표되었다.
가창력과 섹시한 춤을 겸비한 김추자는 197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고,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유행어까지 생겼다.
음악 스타일
대부분 신중현이 작곡한 김추자의 음악은 신중현이 추구하던 한국적 록이었다.
사이키델릭 록처럼 당시 유행하던 트로트와 차별되는 현대적인 음악에
한국적인 요소를 섞은 음악이었다.
예를 들어 데뷔곡 〈늦기 전에〉를 들어보면 처음에는 소울과도 같지만
후반부에는 판소리 창법이 도입되었다.
노래·음반
데뷔 후 2년 간(1969 ~ 1971년) 12장의 음반이 제작되었고,
이후에도 다수 발표되었다.
1969년 1집 《늦기전에》(총 10곡 수록)
주제가
〈님은 먼 곳에〉는 1970년 동양TV에서 방영된 동명의 드라마 주제가로
만들어졌고, 다시 2008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에서 사용되었다.
1969년 발표된 〈늦기 전에〉와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는
1971년 같은 제목으로 영화가 제작되었다.
70년대 초 뭇남성들은 김추자라는 대형 여가수에
온통 정신을 빼앗겨 몽롱했다.
우선 터질 듯한 몸매를 여과없이 드러낸 꽉 조이는 의상과
엉덩이를 현란하게 돌려대는 춤이 그랬다.
60년대를 풍미했던 최초댄스가수 이금희와도 차원이 달랐다.
폭발적인 가창력까지 겸비한 그녀의 등장에 온국민은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드러내길 꺼리는 정적인 사회를 일순간에 후끈 달아오르게 했을 정도.
그녀는 파격 그자체였다.
40을 넘긴 중년의 남성들은 '잠자던 돌부처도 불러세웠다'는 김추자를
가요역사상 가장 섹시한 여가수로 기억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온국민들의 눈과 귀를 자신을 향해 고정시키게 한 여가수는 유래가 없었다,
노래건 스캔들이건 간에...
51년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다섯자매 딸부자집의 막내로 태어난 김추자.
명문 춘천여고 재학시절땐 공부도 곧잘했지만 강원도 기계체조 대표선수와
응원단장까지 도맡아 했을 정도로 끼가 넘쳐났던 다재다능한 귀여운 소녀였다.
대중과의 첫만남은 춘천향토제였다.
이때 부른 수심가로 3위에 입상한 김추자는
이은관(배뱅이굿으로 유명)으로부터 칭찬을 들었을 정도로 창도 맛깔나게 불렀다.
처음으로 가수의 꿈을 심게된 순간이였다.
교육자들인 언니들과 달리 동국대 연극영화과로 진로를 정한건 이 때문이다.
김추자는 신입생 노래자랑 대회에서 끼가 넘치는 춤과 노래로 심사위원,
관객 모두의 열광적인 호응속에 1등을 차지하면서 최고인기학생으로 자리잡았다.
18세 대학신입생은 신중현의 동생 신수현의 소개로 최고의 명성을
구가하던 작곡가 신중현의 삼각지 녹음실로 무작정 찾아갔다.
당시 인기절정의 유명가수 김상희와 신곡 발표준비로 분주하던
신중현이 김추자에게 눈길을 줄 리가 만무.
그래도 모른척 일주일동안 매일 찾아갔다.
귀찮아 내쫓을 궁리로 시켜본 노래테스트.
김추자는 단한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신중현의 마음을 앗아가 버렸다.
김추자의 데뷔앨범은 69년10월20일 출시된
<늦기전에/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예그린레코드,DG가06>.
신중현이 이끄는 '뉴덩키스'는 우리 국악의 창과 접목한
전혀 새로운 싸이키한 감각적 연주를 시도했다.
처음 음반이 나왔을땐 대중들은 낯설은 사운드에 어리둥절했지만
신선한 여대생 김추자의 열정적인 춤사위와 싸이키창법에 이내 열광하였다.
단조롭고 반복적인 멜로디와 묘한 바이브레이션 창법은
소울 싸이키가요라는 신조어를 탄생케 했다.
신데렐라의 탄생이었다.
판권을 이어받은 성음제작소는 더블,싱글자켓 등 여러가지 버전의 재판들을
동일날짜로 발매했을 정도로 데뷔음반은 날개 돋힌 듯 팔려 나갔다.
호사다마라 할까.
인기가 치솟은 김추자의 주변은 장안의 건달들이 들끓게 되었다.
이때 3곡을 부르며 데뷔앨범작업을 함께한 프로레슬러 출신 소윤석은
보디가드겸 매니저 역활을 맡게 된다.
김추자의 첫 스캔들 상대는 가수 박일남.
김추자를 놓고 벌였던 박일남과 소윤석의 스카라극장앞
노상혈투는 당시 사회를 벌집 쑤신 듯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데뷔앨범에서 발표한 창과 싸이키를 버무린듯한 창법의
'늦기전에'와 사회분위기와 맞아 떨어진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는 영화로도 제작될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또한 2면수록곡인 '떠나야할 그사람'은 숨겨진 명곡.
후에 펄 씨스터즈가 리바이벌해 큰 인기를 얻었던 곡이지만
미8군에서 명성을 날리던 김선을 영입해 결성한 '뉴덩키스'의
꽹과리소리와 작렬하는 전자기타가 빚어내는
프로그레시브한 사운드는 시대를 한참 추월했다
.
더구나 김선의 뛰어난 보칼로 구성된 7분40초의 롱버전은
소름끼치는 감동까지 선사한다.
69년 데뷔앨범발표이후 71년까지 김추자는 무려 12장의
음반을 발표하며 소공동 '라스베가스'를 주무대로 방송출연,
콘서트 등 눈코 뜰새없는 인기강행군을 벌였다.
신문방송의 가수상을 휩쓰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출연스케줄을 어기고 잠적을 밥먹듯이 하여
'다이나마이트'외에 '구름같은 김추자'라는
또하나의 별명을 얻게 된다.
방만한 스케줄관리와 약속의 불이행은 씻을 수 없는
그녀의 오점으로 남는다.
71년 7월초 배호와 김세레나와 함께한 부산의 쇼무대에서
휘날레를 장식할 가수를 놓고
김세레나와 머리채까지 잡는 한판 자존심 싸움을 벌인 뒤
출연도중 사라져버린 사건이 문제였다.
가수분과위원회(회장 최희준)는 한국가요사상 최초로 김추자에게
3개월 가수자격정지라는 극약처분을 내렸다.
이후 김추자는 유래가 없는 스캔들 메이커로
참새들의 입방아에 끊이지 않고 오르내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