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 탐방>
열정과 사랑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신학자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김영진 교수-
봄이다. 산수유가 노랗게 피어나고 매화도 입을 열었다. 부지런히 채비를 마친 개나리와 진달래도 어디선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폭풍처럼 바람이 불더니 밤새 눈이 내렸다. 3월 중턱 꽃들로 환해진 세상에 눈이라니, 그러나 꽃들은 눈이 그치자 가장 먼저 눈을 털어내더니 웃고 있다. 거칠게 불던 바람과 밤새 퍼붓던 눈에 그 여린 꽃잎들이 상하지 않은 것이 참 신기하다.
3월 중순 봄 한가운데가 분명한데도 겨울인지 봄인지 가늠하기 어렵던 날, 연세대학교를 찾아갔다.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김영진 교수, 젊은 학자의 몸에서는 봄이 가득하다. 생명의 기운이 가득하다. 김영진 교수와 마주앉고 보니 비로소 봄임을 실감한다. 간밤에 내린 눈이 꿈같다. 김영진 교수의 말도 꿈같다.
“목회는 위대한 겁니다. 모든 목회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으로 시작합니다.”
교회와 신학의 관계, 오늘날 구약신학의 동향에 대해 질문을 하려고 했던 필자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는 자는 행복합니다. 그런 사람은 평생 임대아파트에 산다고 해도 행복해 합니다. 혹 어떤 이가 80평 아파트에 산다고 해도 그가 하나님을 모른다면, 그에게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하나님보다 세상의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면 그는 결코 행복한 사람이 아닙니다.”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목회자 앞에 앉아 있는 것 같다. 도무지 신학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학생들 간에는 지독하게 공부시키는 것으로 유명한 선생님인데, 또 보기 드물게 많은 저서를 가지고 있는 학자인데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학자가 아니라 목회자다. 무슨 이유일까? 준비해간 질문지를 조용히 덮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오늘 학자가 아니라 이 혼란한 시대의 어둠을 밝힐 목회자를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혹시 이런 말 기억합니까? ‘형만한 아우 없고, 스승만한 제자 없다’.”
“그건 초등학생도 다 아는 속담 아닌가요?”
“그 말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더러 형보다 나은 동생도 있고, 더러 스승보다 나은 제자도 있지만 동생이 형만 할 수 없고,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기도 힘든 것은 사실 아닌가요?”
“형만한 아우 없고, 스승만한 제자가 없는 나라는 망하는 나라입니다. 형보다 나은 동생들이 있어야 하고, 제자들은 스승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아, 그런 신념이 있어서 이 젊은 교수는 학생들을 혹독하게 공부시키는 것으로 유명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김영진 교수는 또 내 생각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연세대학교 신학과는 미래 사회의 리더, 또한 교회의 지도자를 길러내는 곳입니다. 학생들은 영적인 능력은 물론 지적인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학생이 공부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교수의 가장 중요한 직무인데, 내가 만약 그 직무를 소홀히 한다면 그 엄청난 피해가 누구의 몫이겠습니까? 그 커다란 피해는 학생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됩니다. 유학시절 새벽 2시 이전에 잠을 자 본 적이 없고, 또 6시 이후에 일어 난 적이 없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학생들이 평소 공부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와 보니 우리 학생들이 너무너무 공부를 안 하는 겁니다. 그래서는 미래가 있을 수 없지요. 더구나 대학교 1학년이 되면 그간 억눌려 있던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폭발합니다. 쉽게 다른 곳에 마음을 빼앗기는 환경에 우리 학생들이 처해 있습니다. 그런데 1학년 때 공부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면 회복이 어렵습니다. 마음껏 놀다보면 대학 4년은 금방 지나가고, 졸업하고 나서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르는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준비되지 않은 자를 쓰실 수는 없지 않습니까?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학생들이 이미 기본에 충실하다는 것입니다. 뛰어난 머리와 실력도 있고요. 그 바탕 위에서 혹독하다고 여길 만큼 공부를 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그러나 처음에만 어렵다고 하지 학생들은 곧 적응을 하고 또 그렇게 공부해야 되는 줄로 압니다.”
이어지는 김영진 교수의 말은 깊은 영성의 세계에서 불어오는 한 줄기 맑은 바람을 느끼게 한다.
“실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영성입니다. 더구나 신학은 성서를 가지고 시작하는 학문이 아닙니까? 혹 김동호 목사님을 아십니까? 그 분은 보이지 않는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분이 세우신 보이지 않는 교회는 참으로 거룩합니다. 내 안에 성령을 모시고, 보이지 않는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 그것이 바로 영성입니다. 영성은 먼저 하나님 말씀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은 말씀 읽기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모르고는 영성이 뛰어날 수도 없고, 예수님 역시 내 말이 곧 영이고, 진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의해 변화되어야 하고, 하나님 뜻에 의해 우리가 가는 것입니다. 성경을 깊이 있게 많이 아는 학생들, 그로 인해 날마다 하나님을 향한 지식이 쌓여가는 학생들, 그 학생들이 기도하는 것과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신념의 문제를 뛰어 넘는 영성을 갖추는 것은 물론이고, 성공보다 민족을 이끌어가는 리더가 될 거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학생들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가득한 김영진 교수, 그의 연구실을 나와 연세대학교 교정을 걷는 동안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실력과 하나님 말씀으로 무장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면 나의 넘치는 마음일까? 그러나 김영진 교수와 마주 앉아 차 한 잔 나눈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느껴질 것이다. 교정을 천천히 걷는 나에게 김영진 교수가 내 어깨를 치듯 또 한 마디 던지는 말이 느껴진다. 아니다. 그것은 인터뷰를 마치고 막 일어서던 나에게 던진 말이다.
“성경에도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사람들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큰 집사고 돈 많이 버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약이 내 지경을 넓혀달라는 야벳의 기도라면 신약은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이 복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복입니다. 팔복에 물질적인 복은 없습니다. 보이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망하는 일입니다.”
김영진 교수가 섬기고 있는 교회는 평강교회다. 담임을 맡고 있는 평강교회에서 매일 밤 예배를 드리고, 일주일에 일곱 번 설교를 하는 사람, 그는 교인들이 하나라도 보라고 일곱 개의 설교를 주보에 모두 게재하는 마음 착한 목사님이다.
이미 25권의 저서를 가지고 있는 김영진 교수, 평생에 구약주석을 다 써보는 것이 소원인 그가 기자에게 선물로 준 아가서 주석의 책 이름 <가장 아름다운 노래 아가서>의 한 구절처럼 김영진 교수 그의 삶이 참으로 아름다운 노래이며, 오직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아름다운 헌신이기에 그를 만나고 오는 발걸음이 황홀했다.
(박은자 pulbat@hanmail.net)
김영진 교수 프로필
김영진 교수는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및 동대학원(B.A & Th.M)을 졸업하고,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 역사학과(성서시대 전공)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구약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성서히브리어>, <이스라엘 역사 서설>, <토라>, <성서와 민족>, <히스토리아>, <율법과 법전>, <언약과 조약>, <역사와 신앙>, <고대근동의 역사문헌>, <고대 이스라엘 역사>, <구약성서 읽기>, <이스라엘의 구원자, 야웨>, <삶의 의미를 찾아서>, <너희는 거룩하라>, <구약성서의 세계>, <더불어 사는 삶의 이야기 룻기>, <느비임>, <크투빔>, <성서시대의 역사와 신앙>, <녹색으로 읽는 성서>, <아가서>, <구약성서 개론>(공저), <History and Administration in Ancient Israel>(2003), <Ammon, Historiography, History>(2003), <Epigraphy and Old Testament Studies>(2005) 등이 있고, 역서로는 <나사렛 예수와 그 시대>, <알파벳의 기원> 등이 있다.
(크리스챤신문, 2010. 3.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