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상실증 - 골 닳은 언니
변미순
추석 연휴직전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 형제자매들끼리 부산 해운대로 1박 2일 여행길에 감염된 듯하고, 여행갔던 인원 반이 확진되어 각자의 방에서 명절을 보내야했다.
명절이라고 모인 비감염자들은 연휴내내 확진자가 누워있는 실내를 피해 마당에서 캠핑놀이를 했다. 그동안 나는 제일 하기 싫어하는 다림질도 하고, 환절기 옷장 정리도 하였다. 움직임이 없으니 소화불량과 체증으로 배가 아팠다. 확진 후 내내 식은땀이 흘러 불편하였으나 큰 통증없이 그럭저럭 5일이 지났다.
그리고는 까무룩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정리하면 월요일 오후 5시경, 격리기간 중 두 번째 산책을 짧게 다녀왔다. 그 이후 화요일 새벽 3시까지 10시간의 기억이 사라졌다. 나는 모든 가족들의 질문에 말도 안되는 답을 하여 집이 아수라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모, 코로나 격리중인데 왜 마스크도 안끼고 나오셔요”
“내가? 코로나? 무슨 소리하느냐? 코로나가 뭐야?”
전 식구가 모였고, 나에게 전혀 기억이 없는 일이 벌어졌다. 식구들을 알아보기는 하였으나 1년전 조카가 결혼했다는 것을 몰랐다. 외손녀 도경이를 알기는 하였으나 나이를 몰랐다. 취업해 서울서 근무하고 있는 조카를 대구에서 같이 산다고 했단다. 1년전 딸의 분가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했단다. 격리 5일째 한순간 초 비상상황이 발생하였다.
친정 어머니의 치매 8년간을 지켜보았던 가족 모두는 나의 기억이 먼지처럼 사라져버려 혼줄이 났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스트레스 등으로 단기기억상실일 수 있다며 별별 갑론을박이 이어졌단다. 지인인 모 의사와의 상담에서 뇌경색 등이면 빠른 조치가 필요하므로 응급실 가는 것이 권해졌고, 늦은 9시 그렇게 대학병원 격리병동 응급실에 입원했다.
코로나 확진자라 담당의사와는 cctv로 문진하였고, 피검사, CT촬영 등 각종 검사가 진행되었으나 나는 계속 여기가 어디며, 오늘 날찌와 왜 여기 와 있는가 등의 같은 질문만 수십번 하였단다.
화요일 새벽, 기억잃은 지 10시간만에 부산 여행, 코로나로 자가격리중, 딸 분가, 반려견 중 최근 “누리”가 죽은 것, 등등 모른다 하였던 일들을 천천히 하나둘씩 기억해 내었다.
새벽 4시경, 격리병동 벽에 걸린 전화가 울렸다. 의사와 딸아이의 통화가 밖으로 흘러나왔다. 뇌혈관 깨끗, 뇌졸증 소견은 일단 없다는 말에 딸아이와 나는 서로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다. 혈액검사 결과가 나오는 오전 11시경 퇴원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나와 딸아이는 한숨을 몰아쉬고 난 뒤 잠시 눈을 붙였다.
제정신으로 돌아온 나의 귀가는 과거에서 장원급제한 일보다 더 다행이라는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나의 존재가 대가족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며 동생들은 눈물을 보였다. 가족 모두가 각자의 건강관리를 잘해야한다는 다짐의 일이 되었다.
정밀검사를 위해 금식 후 피검사, 뇌파검사까지 다 해야한다며 예약해 두었고, 최종 검사 결과를 듣기위해 일주일 뒤 신경과 담당의사 앞에 마주 앉았다.
뇌혈관, 뇌혈류, 뇌파, 간질, 갑상선, 피 검사 등등 모든 검사에서 정상 소견이었다. 일과성 고상 기억상실증이라는 병명을 내렸다. 갱년기 이후 여성들에게 많이 발생하고 평생 한번 한다고 하니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다만 그 순간은 뇌의 기억장치인 해마가 정지된 상태이므로 다른 기억은 모두 회복하지만 그 순간 기억은 평생 회복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되었는지 납득할만한 원인을 알고 싶었다. 내가 하려는 질문을 아시는지 의사의 명쾌한 설명이 먼저 있었다. 핸드폰의 성능이 아무리 향상되어도 한꺼번에 많은 앱을 사용하고, 작동을 빠르게 진행하다보면 한번씩 먹통이 된다. 먹통된 순간 입력한 몇가지는 날아가지만 재부팅하면 다시 멀쩡한 기계로 작동되는 것처럼 정상생활이 가능한 것이란다.
순간 60년간 사용한 “나”라는 기계가 생애 처음 60년만에 먹통 증세가 온 것이 오히려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별 수 없는 원인을 굳이 나열하지 않아도 재부팅되어진 상태가 감사할 뿐이었다. 다른 질문을 더 이상 할 필요도 없었다.
운전은 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고, 강의는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염려되었으나 멀쩡하게 그 전과 다름없는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스스로 안다. 최근 많은 일을 하고 있어 정신적, 육체적 무리중이었다. 코로나 확진으로 격리되어 갇힌 생활중 식은땀이 내내 흘렀고 그것이 나는 몹시 불편하였다.
운동을 너무 많이하면 연골이 닳는다는 의학 뉴스를 보면서 운동 중독증 있는 여동생에게 연골 검사 한번 해보라고 핀잔을 주었다.
“뭐래요? 언니는 골이 닳았잖아. 일 좀 줄이면 좋겠구만”
그 날 이후 난 “골 닳은 언니”가 되었다.
수필알바트로스 : 80-83, 2022. 1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