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곡이 연주되는 지도 모르고, 콘서트에 가겠다고 손을 들었다.
지난 무브먼트 워크샵이 시작될 때 어떤 음악을 들려주셨는데, 이유모를 눈물이 계속 흘렀다.
리차드 용재 오닐이 연주한 곡이라고 하셨다.
딸에게 가겠냐고 물으니, 어쩐 일로 간다고 해 함께 가게 되었다. 감기 약을 먹은 아이는 차 안에서 내내 졸았다. 공연장에서 오랜만
에 니르벳도 보고, 무니쉬 얼굴형에 박티의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는 두 분의 아들도 보았다.
프로그램을 받았을 때 탄성이 나왔다.
백 만년만의 고전 음악! 비탈리 샤콘느라니! 헨델의 오라토리오라니!
무대에서 챔발로를 발견하고 전율이 올라왔다. 오랜만의 바로크 음악이다.
나는 리차드 용재 오닐의 연주 때문이 아니라 바로크 음악을 들으러 온 것이었구나!
엄마와 함께 연주회를 가본 적은 없다.
대신 엄마는 클래식 카세트 테이프를 사 주셨다. 덕분에 비발디와 베토벤, 쇼팽, 바흐를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들었다.
백건우의 연주회에 가고 싶다고 하면 표를 살 돈을 주셨다. 생각해보니 책과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엄마가 물려 주신 귀한 선물이었다.
알테무지크서울의 헨델 협주곡으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바이얼린 6대, 비올라 2대, 첼로 1대, 더블베이스 1대, 챔발로 1대의 실내악단. 수로 보았을 때 균형이 맞을 까 싶었는데, 어느 악기
하나 튀지 않고 어울려 소리가 채워졌다. 챔발로의 ‘챙 챙’울리는 소리가 즐거웠다.
프로그램 순서와 다르게 두번째 곡은 비발디의 류트 협주곡이었다.
실제로 류트는 처음 본다. 클래식 기타와 소리가 비슷했고, 같은 연주자가 나중에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는 걸 보니 기타의 전신인가
보다. 하루가 지난 지금 두 번째 곡은 크게 인상에 남지 않았다.
마침내 리차드 용재 오닐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슈즈를 신고 입장했다.
비탈리샤콘느는 바이얼린이 주 악기로 연주되는 음에 익숙해서, 비올라 연주를 들으니 약간 생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곧 이 연주자가 유명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음을 풍부하게 내서인 듯하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연주한다는 게 그런 느낌일
까? 그의 연주는 비올라로 부르는 그의 노래였다.
존노라는 테너가 입장하고 헨델의 오라토리오가 연주되었다.
나는 그 이름을 처음 들었는데, 유명한 테너라고 했다.
고전음악이 왜 그렇게 좋은 느낌을 주는가 하루를 생각해보았는데, 결론은 아마도 연주 중 ‘내’가 사라지고 ‘음악’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바흐와 헨델의 음악이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이유는, 그 안에 ‘surrender’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올 여름 가우디의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에서도 똑같은 느낌이었다. 온전한 복종 안에서는 내가 사라진다. 그 사라짐은 소멸이 아니고 더 큰 존재로의 합일이
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줄 수 있다.
이 공연에서 가장 좋았던 곡은 텔레만이라는 작곡가의 비올라 협주곡이었다.
아마도 리차드 용재 오닐의 기량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인 듯하다. 처음 들은 곡이었는데 네 악장에 걸친 점점 빨라지는 이 곡에서
지휘자의 신호에 맞추어 동시에 끝났을 때 소름이 끼쳤다. 여러 명이 내는 한 곡의 음악, 그 안에서 그들은 개인이 아닌 하나였다.
마지막 음이 계속 생각이 나고 또 계속 소름이 끼친다.
반가운 사람들 과의 좋은 곡의 관람이 참 행복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딸아이와 나눈 대화들도 즐거웠다.
남편이 아이에게 공연이 어땠냐고 물었을 때 딸은 “저번에 레미제라블처럼, 엄마는 만족하고 나는 그저 그랬어.”라고 대답했다.
나는 우리 엄마처럼 아이에게 음악을 선물로 주지 못했다.
앞으로 기회가 있을까? 아니면 너무 늦은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