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찮게 [장르만 로맨스]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 전반부를 보다 “어머, 게이 영화야?” 나의 놀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남성 동성애에 관하여 어떻게 그려졌는지 약간의 기대가 올라왔다.
올라 온 약간의 기대는 동성애자인 두 사람(교수와 제자)의 관계에서 감정들을 어떻게 처리하였는지?
그리고 두 사람 사랑의 쟁점은 어떻게 치닫는지? 등 궁금증이 증폭 되었다.
내 안에 긴장감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늦은 밤 졸린 눈을 비비며 영화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만큼의 동성애에 대하여 다룬 영화가 아니었고, 여러 유형의 관계를 다루는 영화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이 영화의 조은지 감독도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 것을 보면, 여러 유형의 관계 설정을 통하여 다양한 관계를 선보인 것으로 보여 진다.
- 이혼 한 부부가 자녀를 두고 있는 상태에서의 관계.
- 재혼 한 부부가 자녀를 두고 있는 상태에서의 관계.
-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로 인하여 만남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관계.
- 이혼 한 친구의 부인과 친구사이에서 연인으로 되어버린 관계.
- 교수인 친구 제자와 동성애 사이였던 관계.
- 교수인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제자와의 관계.
- 이웃 유부녀와 사랑한 사이라 착각한 사춘기 고등학생의 관계.
이 여러 가지 관계 유형을 보면서, 마틴 부버의 [나와 너]에서 “우리는 관계적 존재이다.”라고 한 말이 생각이 났다.
즉, “인간은 대화적 존재이며 관계적 존재이다."는 것이다.
감독은 이 얽히고설킨 관계에서 그리고 싶었던 것이 관계 속에서 빛나는 힘, [관계의 힘]이라고 나는 보았다.
이런 관점에서 영화를 보게 되면,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고, 어떤 관계 방식을 가지고 있느냐?’에 의해서 관계가 만들어지고, 그 만들어지는 관계안에서 힘이 발휘되는 것.
그렇다고 한다면 이 영화에서 관계의 힘은, 자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동성 제자와 사랑하는 교수와의 관계를 어떤 시선으로 그려졌는가? 들여다보면 답이 나온다.
나를 사랑 한다 고백하는 동성 제자를 인정해 주고 바라봐주는 것.
제자의 감정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지켜봐주고 기다려 주는 것.
제자를 탓하거나, 비난하거나, 수치심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 헤아려 주는 것.
그래서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수용해주게 되면 결국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내가 그 누군가에게 온전히 “수용되었다. 받아들여졌다.”라고 느끼게 되면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유진(교수를 사랑한다는 제자)이,
“전 상처 받는 게 취미고, 극복하는 게 특기에요.”라고 말하지 않던가?
즉, "관계를 통하여 상처받고, 관계를 통하여 회복하여 제자리 찾는다.”는 것이다.
관계에서 비난받지 않을 때,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때, 있는 그대로 인정받을 때,
내 감정이 훼손 되지 않을 때 우리는 돌아올 수 있는 것이며,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돌아 올 수 있도록 그 자리를 비워두는 것. 돌아 갈 수 있도록 그 자리를 남겨두는 것.
이것이 관계의 힘이다.
김현(교수)이 북 콘서트에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누가 누구를 사랑하는 가는 그 어떤 누구도 폄하할 수 없다. 단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사랑하냐 아니냐 혹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느냐. 그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변화하는 그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라고 말하였다.
사랑의 상호작용 그 관계 안에서 상처 받기도 하고 치유를 통하여 성장도 경험하게 되는 것을 조은지 감독은 말하고 싶었다고 보여 진다.
즉, 관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 함께하여도 우리 각자의 독특하고 분리된 나로서의 존재는 여전히 머물고 있다. 그 안에서 우리 각자는 있는 그대로 수용되어지고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게 될 때 관계에서의 힘이 발휘된다.
상처와 치유는 우리에게 성장과 변화를 가져다주듯이.
이 영화의 마지막 멘트처럼.
“색을 섞는다고 그 색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다른 색으로 보일 뿐 실은 그 속에 우리가 알던 원래의 색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