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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강해(13) 2024. 9. 11
성전의 내부 단장
왕상6:14-38
<솔로몬의 성전 외부 건축 마감>
두로 왕 히람의 도움을 받은 솔로몬은 일군을 세우고 성전을 짖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가 ‘애굽 땅에서 나온 지 480년’만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세운 장소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려던 ‘모리아 산’이자, 다윗이 인구 조사 때문에 하나님께 징계를 당한 후에 회개의 번제를 드렸던 ‘아라우라(오르난)의 타작 마당’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의 규모는 길이가 60규빗(28m), 너비가 20규빗(9m), 그리고 높이가 30규빗(14m)입니다.
이 그 작은 성전을 건축하는데, 7년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것은 돌 하나에도 정성을 기울여 다듬었기 때문입니다. ‘성전 속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게’ 작업하였습니다. 그리고 백향목으로 지붕을 덮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7년 만에 성전의 외부 건축이 완성되었습니다.
<성전의 내부 단장>
이제 내부 단장(인테리어) 공사만 남았습니다.
14~18절 “솔로몬이 성전 건축하기를 마치고/ 15 백향목 널판으로 성전의 안벽 곧 성전 마루에서 천장까지의 벽에 입히고 또 잣나무 널판으로 성전 마루를 놓고/ 16 또 성전 뒤쪽에서부터 이십 규빗 되는 곳에 마루에서 천장까지 백향목 널판으로 가로막아 성전의 내소 곧 지성소를 만들었으며/ 17 내소 앞에 있는 외소 곧 성소의 길이가 사십 규빗이며/ 18 성전 안에 입힌 백향목에는 박과 핀 꽃을 아로새겼고 모두 백향목이라 돌이 보이지 아니하며.”
성전의 안쪽 벽에는 바닥에서 천장에 닿기까지 벽 전체에 백향목 널판으로 입히고, 성전의 바닥에는 잣나무 널판을 깔았습니다. 백향목은 당시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재료였습니다. 이유는,
1) 백향목은 견고합니다. 비틀리거나 틈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2) 향기가 좋습니다. 백향목으로 지은 집에서 잠을 자면 피곤함이 풀립니다.
3) 백향목은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4) 자체가 쓴맛을 내기 때문에 벌레가 가까이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함으로 내부 전체는 돌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소 안 백향목에 박과 핀 꽃을 문양으로 아로새겼습니다(‘박과 핀 꽃을 아로새겼고’ 17절).
그리고 성전 뒤쪽에서 앞쪽으로 이십 규빗(전체 성전 길이의 1/3, 성전 자체의 너비가 원래 20규빗임으로, 이 지성소는 정방형의 모양) 되는 곳을 재어 마루에서 천장까지 백향목 널빤지로 막아서, 성전의 내실, 곧 ‘지성소’(the Holy of Holies)를 만들었습니다(16절). 솔로몬 성전의 지성소 규모는 모세 성막의 지성소 규모의 2배였고, 창문을 달지 않았으므로 매우 어두웠습니다.
원래 모세 성막에서는 청, 홍, 자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짜서 그 위에 그룹을 수놓은 휘장만이 드리워져 있었습니다(출 26:31, 36:35). 그런데 이제 솔로몬의 성전에는 휘장뿐만 아니라 백향목 칸막이가 더해진 것입니다(대하3:14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고운 베로 휘장문을 짓고 그 위에 그룹의 형상을 수놓았더라.”) 지성소는 1년에 한 번 속죄의 날(7월 10일)에 오직 대제사장만이 희생제물의 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레 16:15, 34, 민 28:3, 히 9:6-7).
<지성소 안에 있는 언약궤>
성전 안에 ‘지성소’를 따로 둔 목적이 있습니다.
19~22절 “여호와의 언약궤를 두기 위하여 성전 안에 내소를 마련하였는데/ 20 그 내소의 안은 길이가 이십 규빗이요 너비가 이십 규빗이요 높이가 이십 규빗이라 정금으로 입혔고 백향목 제단에도 입혔더라/ 21 솔로몬이 정금으로 외소 안에 입히고 내소 앞에 금사슬로 건너지르고 내소를 금으로 입히고/ 22 온 성전을 금으로 입히기를 마치고 내소에 속한 제단의 전부를 금으로 입혔더라.”
지성소 안에는 언약궤(법궤)를 두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호와의 언약궤 - '언약궤'(아론 하베리트)는 자기 백성과 함께, 그리고 자기 백성 중에 거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신성한 언약의 징표이다(출13:21, 14:19, 20). 따라서 이 언약궤 앞에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있는 것과도 같았다(민 10:35, 수 6:8). 물론 언약궤 자체를 우상처럼 하나님과 동일시 할 수는 없다. 단지 올바른 여호와 신앙을 전제해서만 언약궤는 자기 백성과 친교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표징하는 지성물이 된다. 한편, 이 언약궤에는 본래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 한 오멜의 만나, 그리고 아론의 지팡이가 들어 있었으나 솔로몬 시대에는 단지 돌판만이 남아 있었다(8:9, 출 16:33, 민 17:10, 히 9:4). |
솔로몬은 성전 내부도 순금으로 입히고, 지성소 앞에는 금사슬을 드리웠으며, 그 지성소를 모두 금으로 입혔습니다. 그는 온 성전을, 빠진 곳이 전혀 없도록, 금으로 입혔습니다. 심지어는 성소에 속하여 있는 제단들까지도, 모두 금으로 입혔습니다. 고대의 도금 방식은 대개 얇은 금판을 못으로 부착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솔로몬의 성전에도 이처럼 못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대하 3:9).
이때 사용된 금만 육백 달란트가 들었습니다(대하3:8). 오늘날의 무게로 환산하면 2만 4천kg에 달하는 무게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성전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함을 드러내려고 애를 썼습니다.
<언약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지성소 안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였습니다.
23~28절 “내소 안에 감람나무로 두 그룹을 만들었는데 그 높이가 각각 십 규빗이라/ 24 한 그룹의 이쪽 날개도 다섯 규빗이요 저쪽 날개도 다섯 규빗이니 이쪽 날개 끝으로부터 저쪽 날개 끝까지 십 규빗이며/ 25 다른 그룹도 십 규빗이니 그 두 그룹은 같은 크기와 같은 모양이요/ 26 이 그룹의 높이가 십 규빗이요 저 그룹도 같았더라/ 27 솔로몬이 내소 가운데에 그룹을 두었으니 그룹들의 날개가 퍼져 있는데 이쪽 그룹의 날개는 이쪽 벽에 닿았고 저쪽 그룹의 날개는 저쪽 벽에 닿았으며 두 날개는 성전의 중앙에서 서로 닿았더라/ 28 그가 금으로 그룹을 입혔더라.”
감람나무(올리브 나무)로 '두 그룹'을 만들었습니다. 금을 입혀 그룹 형상을 만들었습니다(28절).
<그룹> 하나님의 영광과 존엄과 거룩을 파수하는 일종의 호위천사를 가리킨다(출 25:18). 이 천사들은 하나님의 엄위하심과 지존하심 및 그분의 능력의 탁월하심을 강조할 때 주로 등장하는 영적 존재로서 하나님의 보좌를 지키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이외에도 그룹은 에덴 동산에서 생명나무를 지키는 수호자로(창 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언약궤를 지키는 존재(출 25:18-20)로 나타난다. 따라서 그룹은 성전의 성물에 많이 새겨져 있는데, 법궤 위 속죄소[속죄소(시은좌)는 언약궤를 덮는 뚜껑]에는 그룹 둘이 서로 마주 보며 날개로 속죄소를 덮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민 7:89; 삼상 4:4; 히 9:5). 법궤는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감싸는 방법으로 만들었지만, 속죄소는 정금으로 만들었다. 속죄소와 그룹을 한 덩어리로 만들어 어떠한 상황에서도 속죄소와 그룹이 분리되지 않도록 하였다(출 25:18~21). 또, 성막의 네 덮개 중 가장 안쪽에 위치한 첫 번째 덮개에(출 26:1), 지성소를 가리는 휘장 위에(출 26:31) 청색 자색 홍색실로 수가 놓아져 있다. 이는 솔로몬 성전(왕상 6:23-28; 대하 3:14), 에스겔 성전(겔 41:17-25)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한편, ‘스랍’은 하나님의 보좌에 둘러서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천사들을 말한다(사 6:2-3).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가스펠서브) |
그룹 형상의 키가 10규빗인데, 성경에서 수(數)의 상징적 용법상 10은 기본수이면서 완전수입니다(창 24:10, 31:7, 레26:26, 수 22:14, 느 5:18, 욥 19:3, 마 25:1, 계 2:10). 가장 대표적으로 십계명에서의 '10'이란 신성한 수가 그것입니다(출 34:1, 신 4:13). 그 밖에도 다니엘, 에스겔, 계시록의 상징 등에도 '10'은 완전수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단 7:7, 계 12:3 등).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두 그룹 사이에 하나님이 임하신다고 믿었습니다.
출 25: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삼상 4:4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
왕하 19:15(히스기아의 기도)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시 80:1, 사 37:16)
한편, 모세 성막 내의 두 그룹은 법궤 쪽을 행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자세를 취하였으나(출 25:20, 37:9), 솔로몬 성전의 그룹은 모세 성막의 그룹과는 달리 입구 쪽을 향해 정면으로 나란히 놓였습니다(대하 3:13). 그리고 두 그룹의 바깥쪽 날개는 각각 지성소의 중앙 지점에서 서로 맞닿은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27절).
<벽에 새겨진 문양들>
그리고 성전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문양에 대해 설명합니다.
29~36절 “내 외소 사방 벽에는 모두 그룹들과 종려와 핀 꽃 형상을 아로새겼고/ 30 내외 성전 마루에는 금으로 입혔으며/ 31 내소에 들어가는 곳에는 감람나무로 문을 만들었는데 그 문인방과 문설주는 벽의 오분의 일이요/ 32 감람나무로 만든 그 두 문짝에 그룹과 종려와 핀 꽃을 아로새기고 금으로 입히되 곧 그룹들과 종려에 금으로 입혔더라/ 33 또 외소의 문을 위하여 감람나무로 문설주를 만들었으니 곧 벽의 사분의 일이며/ 34 그 두 문짝은 잣나무라 이쪽 문짝도 두 짝으로 접게 되었고 저쪽 문짝도 두 짝으로 접게 되었으며/ 35 그 문짝에 그룹들과 종려와 핀 꽃을 아로새기고 금으로 입히되 그 새긴 데에 맞게 하였고/ 36 또 다듬은 돌 세 켜와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켜로 둘러 안뜰을 만들었더라.”
솔로몬은 성전의 지성소와 성소의 벽으로 돌아가면서, 그룹의 형상(하나님의 임재 상징)과 종려나무(기쁨과 승리 상징)와 활짝 핀 꽃 모양(영광과 번영 상징)을 새겼습니다.
특히 종려나무 가지는 개선하는 전쟁 영웅들을 환영하는 행사에 많이 사용되었습니다(요 12:13 계 7:9).
예루살렘 사람들은 종려나무를 흔들며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주님을 환영하고 찬양하였습니다.
이처럼 외소(성소) 사방에 이러한 문양을 그려 넣음으로서 하나님의 임재 때 일어날 기쁨(승리)과 영광을 표현하였습니다.
이는 오늘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하는 자들이 가져야 할 태도를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온 우리는 기쁨으로 승리를 주신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승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믿고 마음을 다하여 찬양해야 합니다. 승리를 주신 후에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고난 중에도 승리를 주실 하나님을 믿고 찬양해야 합니다. 성전에는 감사와 찬양 소리가 가득하게 해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고 반드시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그 설계와 식양대로>
이렇게 해서 솔로몬은 성전을 칠 년 만에 끝냈습니다.
37~38절 “넷째 해 시브월에 여호와의 성전 기초를 쌓았고/ 38 열한째 해 불월 곧 여덟째 달에 그 설계와 식양대로 성전 건축이 다 끝났으니 솔로몬이 칠 년 동안 성전을 건축하였더라.”
솔로몬 즉위 4년 시브월(B.C. 966년 2월)에 기초석을 놓음으로 시작하여(6:1), 솔로몬 즉위 11년 불월(B.C. 959년 8월)에 완공되었습니다. 정확히 7년 6개월 걸렸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문장이 ‘그 설계와 식양대로’입니다. 솔로몬 성전의 전체 건축 내용은 일찍이 선왕(先王) 다윗이 솔로몬에게 일러준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께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대상 28:11~12(다윗이 받은 설계도) “다윗이 성전의 복도와 그 집들과 그 곳간과 다락과 골방과 속죄소의 설계도를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주고/ 12 또 그가 영감으로 받은 모든 것 곧 여호와의 성전의 뜰과 사면의 모든 방과 하나님의 성전 곳간과 성물 곳간의 설계도를 주고.”
대상 28:19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이 모든 일의 설계를 그려 나에게 알려 주셨느니라.”
그러니까 성전을 솔로몬이 짖기는 했으나, 이 모든 일을 이룰 수 있는 준비는 다윗이 거의 다 준비해 놓았습니다(대상 22:2-4).
<깨닫는 교훈>
오늘 본문을 통해 몇 가지 교훈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께 최선의 것을 드렸습니다.
성전을 짓는 자재를 고를 때, 아무것이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쓸 수 있는 최고의 자재, 곧 최고의 석재를 사용하고, 당시 가치 있는 백향목으로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그리고 성전 내부도 순금으로 입히고, 제단과 모든 성물도 금으로 입혔습니다. 그 당시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렇게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을 시각효과로 보여주려 한 것입니다.
오늘날은 성전이 없기에, 예배당을 금으로 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 몸이 곧 성전’이라고 가르칩니다.
고전 3:16-17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이것은 오늘날 신앙생활 하는 자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가 하루아침에 ‘성화’ 되지는 못합니다. 성전을 지어가는 중입니다(도상 위의 존재).
하루하루의 삶이 곧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가는 영적 재료입니다. 거룩한 삶을 살도록 순간순간 노력해야 합니다.
한편 성전 내부를 금으로 입힌 것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금은 불변성과 고귀성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도들은 금과 같이 변치 않는 고귀한 믿음을 늘 지녀야 합니다. 벧전 1: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2) 그리고 금을 성전 내면에만 입힌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단순히 자신의 부를 자랑하고 명예를 높이기 위해 성전을 지은 것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외부에도 금을 입혔을 것입니다.
성도 역시 하나님의 성전인 자신을 가꾸는 데 있어 외면보다는 내면, 즉 심령을 진실과 경건으로 가꾸는 데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을 책망하신 이유도 외식 때문입니다(마23:27).
사도들도 이 얄팍하고 악한 세대 가운데 성도가 자신을 어떻게 단장해야 할지 알려주셨습니다.
벧전3:3~4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롬13:13~14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둘째, 성전의 모습 속에 ‘구원의 보편성’이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소 안 백향목에 박과 핀 꽃을 문양으로 아로새기게 하셨습니다(17).
‘박’(페카임)은 공동 번역에서는 '호리병'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둥근 박이 아니라 호리병 모양의 박입니다. 그런데 호리병 박은 넝쿨과 큰 잎들을 갖고 있어서 근동 지방의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줍니다(요나도 박 넝쿨 밑에서 쉼).
이는 ‘구원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이방인도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성전에 들어오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유다의 며느리 다말은 가나안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어찌하든지 생명의 역사를 잇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 613가지 계명 중에 첫째가 생육하라는 것입니다. 그녀는 당시에 남편이 죽고 시동생이 죽어 수혼법에 의해서 생명을 이을 수 없자 시아버지와 잠을 자서 후사를 낳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녀의 생명에 대한 강한 소원을 받으시고 그를 메시아의 할머니로 쓰셨습니다. 라합은 가나안의 첫 성인 여리고의 창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영접하고 보호하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다윗의 조상이요 메시아의 조상으로 쓰셨습니다. 신약에 수로보니게 여인 아시죠? 그녀는 가나안 여인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개라고 모욕을 주어도 예수님의 사랑을 신뢰하였습니다. 예수님께 개에게 주는 부스러기 은혜를 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녀를 여자 중에 가장 큰 믿음으로 칭찬하시고 그녀의 딸을 고치셨습니다. 하나님은 죄 많은 가나안 여자라도 믿음으로 나가면 성전에 들어오게 하십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어떤 차별도 없음을 미리 말씀하여 주신 것입니다.
롬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이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은 ‘그룹의 두 날개’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날개는 보호의 상징입니다.
모압 여자 룻은 남편을 잃고, 의지할 대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시어머니 나오미가 믿는 하나님을 따라서 이스라엘까지 왔습니다. 그녀의 이런 사정을 들은 보아스는 그녀를 향해 “하나님의 날개 아래 에 보호받으러 왔다”(룻2:12)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보아스를 통해 그녀를 메시아의 조상으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날개는 하나가 아니고 ‘두 날개’입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두 품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받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그 설계와 식양대로’ 완성되었다는 것은 구원의 완성이 ‘하나님의 뜻과 방법대로’ 이루어졌음을 알려줍니다.
무리 지혜로운 솔로몬이라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성전을 짓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다윗을 통해 알려주신 설계와 식양대로 지었습니다.
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고,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종교나 가르침의 도를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정하신 ‘구원의 방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방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입니다.
행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아무리 운동을 잘 한다고 하더라도 경기 규칙대로 하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뜻과 방법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멋진 건물을 지어도 ‘그 설계와 식양대로’ 지은 것이 아니면 ‘성전’이 될 수 없듯, 아무리 화려하고 멋진 삶을 산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한 것이 아니면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에 있습니다. 성전은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열왕기 저자는 하나님의 성전이 다시 회복되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회개하고, 다시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면 하나님은 다시 그들을 회복시켜주실 것이라는 가능성을 말합니다. 실제 그들은 바벨론 포로 생활을 통하여 마음 중심에 하나님과 말씀을 모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단순히 솔로몬의 성전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해 가는 과정임을 깨달아, ‘성화된 삶’, 곧 ‘그리스도의 완전’에 이르기까지 더욱 경건하고 거룩한, 그리고 사랑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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