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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동요를 찾아서 12]
바닷가에서
작사·장수철 작곡·이계석
해당화가 곱게 핀 바닷가에서
나 혼자 걷노라면 수평선 멀리
갈매기 한두 쌍이 가물거리네
물결마저 잔잔한 바닷가에서
저녁놀 물드는 바닷가에서
조개를 잡노라면 수평선 멀리
파란 바닷물은 꽃무늬지네
모래마저 금 같은 바닷가에서
https://youtu.be/8AgP8Y1uM5k
서언
봄을 기다리는 바다가 슬슬 기지개를 켜는 계절이다.
갈매기도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니 신나게 물장구도 치며 모래밭에 살짝 안기도 한다.
아직 해당화가 피기까지는 좀 더 기다려야 하지만 바닷가를 거닐면 문득 생각나서 흥얼거려보는 ‘바닷가에서’라는 동요이다.
겨울철에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동백만큼이나 늦은 봄철부터 초여름까지 해당화가 얼굴을 내밀면서 계절의 절정을 맞이하게 한다.
바다와도 잘 어울리는 꽃임에는 분명하다.
바다 한 번 바라보고 하늘 한 번 올려다보면 어김없이 온갖 그림을 그려대는 구름과 저녁놀이 바닷가에 핀 꽃들과 잘 어루러져 있음을 보게 한다.
‘해당화가 곱게 핀 바닷가에서
나 혼자 걷노라면 수평선 멀리’
자그마하게 소리내어 불러보는 동요로 인하여 다시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마음을 가지기도 한다.
이 동요는 6/8박자의 서정적인 동요로 느리고 조용한 전주에 이어지는 아련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또한 어딘가 구슬픈 느낌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마음을 한없이 차분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특히 파도가 철썩이는 바닷가에서 눈을 감고 조용히 부르다 보면 그 느낌이 더욱 강하게 다가옴을 느끼게 한다.
바닷바람에 하늘거리는 해당화와 파도의 아름다운 선율에 저절로 이 노래를 따라 부르게 한다.
작시자 장수철 (張壽哲, 1916~1993)
장수철은 1916년 평양에서 출생하여 평양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1933년, 약관 열여덟 살에 조선중앙일보에 시 <망실>이 실렸고, 1934년에 등사판으로 첫 시집 <전망도(展望圖)>를 발간했으니 조숙한 천재 시인이었다.
1937년 동인지 <시건설>의 동인이 됨으로써 작품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지물회사 등 회사를 전전하면서도 손에서 펜을 놓지 않았다.
시와 동시를 함께 썼는데 나중에는 동화도 많이 썼다.
한국전쟁 직전에 월남했는데 전시에는 합동신문 편집부장을 했다.
1·4후퇴 이후 제주도에 내려가서 정착, 제주신문사에 제주일보 편집부장을 했다.
휴전협정 체결 이후에는 <문학예술> 편집위원, 진명출판사 편집장, 중앙방송국 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이외에도 문총 중앙위원,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동요동인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한국아동문학회와 색동회의 간부로도 있었다.
만년에 한국크리스천문학가 협회장을 지낸 이후 과천문화의 진흥에 뜻을 두고서 1991년, 과천문인협회를 창립하여 초대 회장에 추대되기도 하였다.
한국전쟁을 겪었기 때문인지 초기에는 민족적인 비극을 자신의 개인적 수난을 곁들여 노래하면서 분단상황을 극복하고자 했다.
초기에는 특히 향토색 짙은 서정성, 목가적인 전원 풍경,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을 추구하였다.
장수철은 전통서정에 뿌리내린 시를 많이 썼으나 후기에는 아동문학에 관심을 기울였다.
장수철은 동요 <바닷가에서>가 그것을 보여준다.
해당화가 곱게 핀 바닷가에서
나 혼자 걷노라면 수평선 멀리
갈매기 한두 쌍이 가물거리네
물결마저 잔잔한 바닷가에서.
저녁놀이 물드는 바닷가에서
조개를 잡노라면 수평선 멀리
파란 바닷물은 꽃무늬 지네
모래마저 금 같은 바닷가에서.
이 동요에 곡을 붙인 이는 이계석으로, 노래비가 과천의 중앙공원에 새워져 있다.
노래비 건립은 당시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으로 있던 황명과 과천문인협회 이사장으로 있던 신세훈의 발의하였고 과천문인협회의 주관으로 1998년 5월 과천 중앙공원에 건립ㆍ제막되었다.
아동문학평론가인 이재철 단국대 교수가 비문을 썼고 성신여대 장윤우 교수가 비를 제작하였다.
중앙의 비를 두 손 모아 받들고 있는 조형물과 산재해 있는 모래 위에 섬 모양의 돌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는 아주 이색적인 시비다.
장수철 작사·이계석 작곡의 동요 ‘바닷가에서’가 적힌 장수철 노래비가 과천 중앙공원에 있다.
장수철 노래비. 검은색 부분에 악보가 새겨져있다.
장수철의 시집은 <서정부락>, <배회의 장>, <관악산 뻐꾸기> 등 9권이며, 동화집은 <황금 나비의 나들이>, <나비가 된 아이>, <꿈을 그리는 화가> 등 10권, 소년소설은 <해바라기의 노래>, <휘파람 부는 소년>, <꿈을 캐는 아이들> 등 18권에 달한다.
동시집 <엄마가 그리울 때>와 <바닷가에서>, 고희문집 <긴 여로의 숲속>, 회고록 <격동기의 문화수첩> 등도 펴냈다.
그는 문학단체의 모임 때마다 작은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어주는 자상한 분이기도 했다.
한국크리스천문학가협회상(1985), 눈솔상 문학부문(1990), 대교문학상 본상(1991) 등을 받았다.
1993년에 작고하여 경기도 오산 기도원 묘지에 안장되었다.
작곡가 이계석 (李啓奭, 1922~2011)
이계석은 1922년 현대 작곡가‧교육가러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에서 태어났다.
서라벌예술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47년에 효재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한 것을 시작으로 41년 동안 교직에 몸담았다.
서울특별시교육청 음악담당 장학사를 거쳐 은평초등학교 교장을 역임하였고, 한국아동음악상 운영위원과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교육현장에 몸담으면서 겪었던 이야기를 토대로 <초록바다>, <우산>, <귀뚜라미 노래잔치>, <도라지 꽃>, <바닷가에서>, <화음 삼형제> 등 수백 편의 동요를 작곡하는 등 평생 동요 창작에 힘써왔다.
이계석의 노래는 주로 교육현장의 생생한 경험을 토대로 밝고 경쾌하게 만들어졌다.
이러한 동요작곡에 대한 공훈으로 1977년에 제1회 한국아동음악상을 받았고, 1994년에는 제7회 반달동요대상을 차지하였다.
작곡가 이계석이 작곡한 동요들은 여전히 우리가 기분좋게 흥얼거리면 부를 수 있는 아름다운 동요이다.
https://youtu.be/PUYs9cKlQwk
리뷰
<작은문학 55호> 임신행 : 아동문학가가 읽은 시
요즘 들어 부쩍 외롭고 쓸쓸해진다.
쓸쓸해지고 외로워지면 나는 홀연히 바다를 만나러 바닷가로 간다.
인적이 드문 외딴 바닷가에는 버림받은 것들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나는 더 외로워지고 쓸쓸 해지기 위하여 바다를 만나러 간다.
바다로 가는 길에는 실존의 나비와 생각의 나비가 날고 있다.
작금 나는 참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짐승처럼 생활하고 있다.
결코 엄살도 아니고, 죽는 소리도 아니다.
내 일생을 통해 먹지 않고 절약해 모으고 모아 마련한 집을 송두리째 내주고 떠밀려 와 살고 있다.
몇몇 가진 자들이 손을 잡고 재개발을 하겠다고 횡포를 부리는 통에 떠밀려 났다.
어렵다, 어렵다 아우성치는 것은 바로 허접스러운 책 때문이다.
젊은 날 점심 끼니를 아껴 푼푼히 모은 돈으로 책을 한 권, 두 권 사 드린 책들을 어디다 둘 곳이 없어서이다.
“그깟 폐지 수집상에게 모두 줘버려” 하겠지만 책이라는 것을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이 풍진 세상에 왔다가 남들처럼 방 한 칸 차지하고 책들을 ㅁ자로 진열해놓고 그 가운데 책상을 놓고 혼자 거들먹거리며 책을 읽고 싶다.
흔히 말하는 서재에 느긋이 한 번 앉아 더러는 창밖을 내다보며 이 책 저 책 뽑아 읽고 머리 한번 주억거리고 싶은 것이 나의 간절한 소원이다.
이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얼마나 숨어서 발원을 했는지 모른다.
돈을 가진 떨거지들은 이십오년 전부터 아파트 단지를 만들어 검은돈을 삼켜 보겠다고 암암리에 작전을 짜는 통에 나의 양덕동 생활 역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이사 갈 불안만 안고 이십여년을 흘러보내다가 집값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끝내 밀려 나고 말았다.
책은 쓰레기로 지금은 폐교가 된 교실에 쌓여 있다.
이 폐교 교실에서도 계약 일자가 얼마 남아지 않아 쫓겨나야 할 안타까운 실정이다.
이런 잡다한 일들을 뒤로 물리고 생활 수 있었던 것은 바닷가를 서성이는 일이었다.
바다로 가는 길은 결코 평온한 길이 아니다.
요즘 사람들은 승용차로 바닷길을 가는데 나는 자전거가 아니면 버스로 가 걸어서 간다.
풀과 풀 사이 나무와 나무사이 키 큰 꽃들 사이로 열려 보이는 바다는 광활하여 좋다.
천천히, 천천히 걸어 바닷길을 걷는 것은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고즈넉함과 삶의 서정 정성을 안겨 준다.
늘 살아 술렁이는 바닷물과 바람과 소나무와 풀이 내는 그 특유한 숲 향기는 내 삶의 에너지가 되어 준다.
단언컨대 승용차를 타고 바닷길을 가는 것은 삶의 질곡을 음미 할 수가 없다.
단지 구경하는 그것뿐이다.
산다는 것은 남의 소리를 경청하는데서 시작된다.
바닷가에는 우리가 꼭 들어야 할 소리들이 갯냄새와 소금기가 서려 있는 은은한 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사람이면 다 사람이 아니듯이 들린다고 다 소리가 아니다.
바다는 대수롭지 않은 것들을 포용하고 있다.
더러는 격랑의 물결 속에서 더러는 잔잔한 물결 속에서 우리의 양식을 꺼내 준다.
인간에게 필요한 만큼 바다는 내준다.
우리의 삶을 응원해주고 후원해주던 지상의 바다가 생기를 점차 잃어가고 있지만, 아직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고 있다.
뭍에는 온갖 꽃들의 축제인 오월!
갯마을이나 섬 바닷가에는 참으로 고요하고 수려한 해당화가 한창이다.
요란하지 않고 눈부신 바다의 윤슬을 보며 해당화 피고 진다.
해당화는 외로운 꽃이다
해당화는 쓸쓸한 꽃이다.
해당화에서는 *꼬시래기 냄새가 난다.
오월 바닷가를 서성이다 해당화를 만나면 더 없는 환희에 젖는다.
해당화는 스스로는 외로운 섬 처녀처럼 화사하지 않으나 야성을 지닌 겸손과 배려를 품고 있는 유열의 꽃이다.
필자는 북녘 시인 장수철 선생을 한국아동문학회 세미나 때 두서너 번 뵈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주제 발표를 하고 허허해 혼자 강연장 주변을 돌고 있을 때 공교롭게 만났었다.
툭진 얼굴에 자작나무 냄새를 풍기는 장수철 시인은 황소 웃음을 얼굴에 띠우며 내 손을 잡고 한참을 서 있던 그 분의 온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필자가 만난 때는 주로 여름이었고, 서울 정릉 골짜기에서였다.
장수철 시인은 내게 문득 문득 김종삼 시인의 ‘묵화’를 떠올리게 하는 분이기도 하다.
'묵화’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새삼스럽게 유행가 가사 한 소절이 떠오른다.
‘있을 때 잘 해 후회 하지 말고’
바다로 가는 오월에는 해당화가 피고 해당화를 찾아 나는 나비가 있고 새가 있고 풀벌레가 있다.
그래서 나는 바다로 가는 길을 좋아한다.
너무 외롭고 쓸쓸해 중얼거리는 동시 ‘바닷가에서’ 는 내가 나를 위로하는 페이소스가 있다.
첫댓글 홍향숙: 에고 많은분들이 어릴때 두손모아 배꼽위에 두손을 고이얹고
부르던 시절들이 생각나겠습니다!
너무 좋습니다!
국민학교운동장에 폈던
채송화도
해바라기도
글라디올라스도
꿀따먹든 새루비아도,,,,
추억에 잠겨봅니다!
샘! 감사합니다!
장덕상: 은혜의 바닷가를 평안히 거닐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성찬: 아름다운 가사와
수준높은 동요 스토리
감사합니다
홍석진: 고맙습니다!
감동이 항상 있습니다!^^
김성홍: 이번 동요는 너무 좋은데 잘 몰라
그런지도 모르겠으나
처음듣는 곡인 것 같습니다!
수고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