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화의 형식미에 현실적 리얼리즘을 융화
시서화에 일가 이룬 화가로 후학들에게 모범
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 화백은 전통적인 문인화의 격조를
현대적으로 변용해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한국화의 대가다.
그는 1912년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나, 18세 때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화백에게 그림을 배웠고, 20세 때인 1937년 선전(鮮展)에 입선, 이어 1941~1943년 연속 특선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서울대 미대 교수(1946~1961), 홍익대 미대 교수(1971~1974년)를 지냈으며, 1950년 제1회 개인전을 시작으로 총 20여 차례 개인전을 가졌다.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에서 초대전을 가진 바 있으며,
1963년 미국 워싱턴에 동양예술학원을 설립해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렸다.
1969년 한국미술가협회 부이사장, 1970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이사에 취임하고,
그 해 대한민국 예술원 원로회원,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운영위원이 됐고,
서울시문화상, 예술원상, 516민족상을 수상했다.
93세의 나이로 장수한 삶을 산 그는 실력과 덕을 겸비한 화단의 대가였다.
작품으로는 국회의사당 벽화 ‘백두산 천지’, 현충사와 충렬사 봉안 ‘이충무공창정’,
경주 통일전 ‘김유신장군 초상화’, 예산충의사 ‘윤봉길의사영정’과 ‘고사도’ ‘김유신장군창정’,
바티칸궁전소장 ‘성모자상’ 등 다수가 있다.
장우성 '학'
전통적이면서 현대성 있는 그림을 모색한 그의 작품은 필선을 위주로 한
수묵담채의 고아한 형식에 새로운 시대의 기운을 담아 간결하고 압축된 조형세계를 추구함으로써
한국화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기여했다.
문인화의 형식미에 현실적 리얼리즘이 융화된 그의 작품에서 독창성이 두드러지듯,
화제도 대부분 본인의 생활체험을 직접 쓰고 감흥을 읊은 자작시다.
평생을 초지일관 엄격한 작업태도와 왕성한 창조정신을 보여준 그는
시서화에 일가를 이룬 화가로 후학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다.